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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최강
부산 해운대에서 열리는 롤챔스 결승전!
근처에 사는 팬들에겐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저 멀리 차를 타고, 기차를 타고 수 시간씩 걸리는 팬들도 많다.
그럼에도 이 자리에 도착해있다.
오늘 경기를 보기 위해 먼 걸음 마다하지 않았다.
어찌 들뜨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 여름의 해변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해운대! 전국에서 E-스포츠 팬들이 모여드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뭐긴 뭐야, 결승전 하니까 보러 온 거지.
전범준 캐스터의 호들갑은 알아준다.
하지만 없어서야 섭한 것도 사실이다.
부산 해운대의 드넓은 해변가.
비치해 놓은 수만 개의 간이 의자들은 이미 제주인을 찾았다.
관중들이 전범준 캐스터의 물음에 뜨거운 환호로 대답한다.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건 정답이 아니라 분위기다.
<슬슬 해가 저무는 시간이죠. 기온이 딱 알맞게 식고 있어서 관람을 하기에 최적의 환경. 마침 서늘한 바닷바람도 불어오고 있습니다.>
<애인과 함께 바다에서 신나게 놀고, 해가 저물면 재밌게 롤챔스 관람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최고의 하루가 되겠네요.>
방금 전까지 열광하던 관중들이 정색, 하늘에서 야유가 빗발친다.
정말 쓸데없는, 로드 오브 로드 팬들의 9할 이상과 인연이 없을 사족이 붙었다.
얼마 전 인생의 종착지에 도달했다는 클끼리의 자랑은 어쨌든.
이렇듯 야외 무대에 나오면 분위기는 절로 달아오른다.
더욱이 오늘 경기를 치르는 라인업부터가 미쳐 돌아간다.
<정말 대박이라는 말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신세상 매직, 이 팀 대체 어떻게 막냐? SKY T1 K가 꺾이고, 삼선 레드도 꺾였어요, 이제 더 이상 호적수가 없는 것 같은데? 아니죠, 아닙니다.>
신세상 매직 대 삼선 블루.
이번 섬머 시즌의 마지막을 장식할 결승전이다.
어, 삼선 블루? 거기 형제팀보다 살짝 부족하지 않나?
지금으로부터 1주일 전 다시 결론이 났다.
<삼선 레드를 3대1로 꺾었어요. 게다가 8강에서는 SKY T1 K를 잡았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신세상 매직에 대한 도전권을 갖췄다는 겁니다.>
클끼리의 목소리에서 비장한 각오가 느껴진다.
그만한 기세를 담아 열변을 토하고 있다.
포장이 아니라 진심을 전하기 위함이다.
지금 이 화면을 보고 있을 시청자들.
그 모두가 지난 경기들을 챙겨봤을까.
당연하게도 안 본 사람들도 많다.
안 본 정도가 아니라 결과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말해주는 거다.
오늘 이 자리에 올라온 삼선 블루.
너희가 아는 그 삼선 블루가 아니다.
김은준 해설도 슬슬 입꼬리가 간지럽다.
<공부 잘하는 애들한테 물어보면 꼭 교과서 위주로 예습, 복습 철저히 했다고 하죠.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그런데 정말 말이 됩니다. 삼선 블루는 그런 팀이에요.>
삼선 블루의 가진 바 팀 색깔은 이전부터 확실했다.
원딜이 중심이 되는 팀임에도 공격적.
얼핏 쉬워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는 모범생들 따라서 똑같이 교과서만 보면 당연히 망하거든요. 교과서는 핵심 정리가 안돼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95점이 아닌 100점을 맞기 위해서는 때때로 필요합니다.>
가짜에어 독수리처럼 봇라인만 주구장창 키우는 게 아니다.
마진 공격대나 KTX 롤러코스터 A처럼 원딜러를 버리는 게 아니다.
어느 라인도 소외되는 곳 없이 성장시킨다.
이 균형감이 프로 레벨에서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다.
아직 할 말이 안 끝난 듯 김은준 해설이 설명을 잇는다.
<비효율적이라도 완벽하게 알아야 한다. 그만큼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느리지만 착실하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결과, 이 자리까지 섰습니다.>
김은준 해설의 성향은 이론파에 속한다.
규칙대로 딱딱 흘러가는 경기를 좋아한다.
이 선수가 지금 이거 해줘야 하는데.
그가 늘 플레이에서 근거를 찾는 이유다.
하지만 선수들은 저마다 사고의 방향이 다르다.
내가 지금 왜 사려야 되지?
그냥 슈퍼 플레이해서 더블 킬 따면 안되나?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어디까지나 이론적으로 접근했을 때다.
삼선 블루는 가장 이상적인 프로팀이다.
플레이에 항상 근거가 있으며, 선수들 저마다 역할이 뚜렷하다.
무르익자 완벽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이렇다 할 단점이 없는 팀이에요. 막말로 이 팀을 이기려면 잘해야 합니다. 잘하는 수밖에 없어요.>
<선수들의 각오도 남다를 겁니다. 형제팀을 꺾고 올라온 이상 결승전 반드시 이기겠다. 평소의 교과서적인 모습 이외에도 예상할 수 없는 카드, 신세상 매직에게 한 방 먹일 폭탄! 기대 충분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삼선 블루로선 이 자리에 선 각오가 남다르다.
승부의 세계는 때때로 냉정함을 필요로 한다.
형제팀을 밟지 않고서는 이 자리까지 설 수 없었다.
의지를 이어 받는다.
<잘해야 이길 수 있다고 말하셨는데 그 잘하는 거. 누구보다 잘하는 팀이 신세상 매직 아닙니까? 난공불락의 성벽도 정면돌파 해버리는 돌파력이 있거든요!>
<저는 난공불락이라기 보단 무기가 다르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창과 방패. 아니, 창과 검이에요. 언제 어느 때 휘어 들어올지 모르는 창과 균형감 있게 벼러진 한 자루의 검. 신병이기의 대격돌입니다.>
두 팀 모두 기본 성향은 비슷하게 공격적이다.
하지만 그 공격을 표현하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
그렇기에 오늘 경기의 결과는 예측이 되지 않는다.
전범준 캐스터가 우렁차게, 해운대가 떠나가라 외친다.
<양 팀 선수들 준비되었다고 합니다. 로드 오브 챔피언스 리그 섬머 시즌! 그 첫 번째 세트의 밴픽! 보시죠~~!>
시원한 외침과 함께 시작한다.
첫 번째 세트의 밴픽.
결승전답게 양 팀 모두 준비를 해왔다는 게 눈에 보인다.
일단 밴부터 서로 주력 카드를 잘랐다.
자르면서도 눈치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상대가 과연 어떤 조합을 구성할지.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가져갈 픽이 꼬이지 않는 게 중요하다.
<파사딘 내려놓네요. 현명한 판단입니다. 같이 먹다간 체할 수 있어요.>
<이미 해외 대회에서도 기용되고 있는 피로라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습니다. 준결승전에서의 임팩트를 생각한다면 섣불리 못 가져가죠.>
아무래도 아직 첫 번째 세트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특이한 까드를 꺼내지 않았다.
천천히 떠보는 흐름으로 가겠다.
익히 있을 수 있는 구도다.
신세상 매직이라고 항상 요상한 픽만 하는 건 아니다.
물론 픽 자체는 언제나 그렇듯 재미지다.
<나무카이 상대로 재미 봤던 알칼리. 그리고 화끈하게 심장을 움켜쥐었던 애꾸사자! 어.. 진짜 매번 보는데도 실감이 안 나네요.>
<저희가 너무 익숙해진 감이 있긴 해요. 전세계적으로 따져도 여성 선수는 거의 없거든요? 늘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밴픽을 중계하던 김은준 해설이 잠시 말을 더듬는다.
클끼리 해설도 자연스럽게 포장이 흘러나온다.
그럴 만도 하다.
해당 선수가 픽을 하면 카메라가 한 번 비춘다.
딱히 의미가 있는 게 아니고 어떤 경기든 행해진다.
그런데 카메라가 조금 많이 멈춰있는 것 같다.
나온 선수가 우중충하지 않다.
보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정화된다.
전범준 캐스터가 너스레를 떤다.
<부스 안에 피어있는 한 떨기 꽃! 오늘따라 더욱 화사해요! 아니, 두 송이 인가요?>
<아이돌 선수까지 따지면 그렇게 되겠네요. 사실 제가 놀란 이유가 원래 뮴뮴 선수가 표정이 어두워요. 그리고 외모를 남성적으로 꾸미는 경향이 있다. 인터뷰에서도 한 번 나온 내용이고 개인적으로도 한 번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해설자의 권한을 남용해 개인적으로 뮴뮴 누님을 만나다니!
한국만 해도 수십 만, 북미와 유럽까지 아우르면 100만이 넘어가는 기사단을 자극하는 발언이다.
유부남인 클끼리가 아니었다면 가차 없었다.
과장이 아니라 진실로 뮴뮴 선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세계 최초의 여성 선수, 인종을 가리지 않는 우월한 외모.
남자친구가 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음에도 인기는 나날이 올라간다.
그 남자친구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니 그런 감도 있다.
아무튼 그런 뮴뮴 선수에게도 한 가지 단점이 존재한다.
<이 누님 살짝 포스 있다, 얼굴이 굳어있는 것 같다, 남자친구가 맞고 사는 거 아닌지 걱정된다! 마지막은 당연히 우스갯소리지만 커뮤니티 게시판들 돌아다니다 보면 비슷한 글들이 가끔 있어요. 그런데 오늘은 무척 기분이 좋아 보입니다.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네요.>
<미인의 웃는 얼굴은 보기만 해도 치유가 됩니다. 화장도 평소보다 살짝 연하게 한 것 같죠? 제가 이런 거 진짜 잘 맞히거든요.>
<클끼리 해설 자중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안주인 분이 분명 보고 계실 텐데..>
<아…. 물론 저는 안사람 이외에는 전혀 여자로 보지 않습니다.>
김은준 해설도 클끼리 해설도 일단 젊다.
젊은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여자 이야기 나오면 정신 못 차린다.
아주 잠깐 이야기가 삼천포로 새버렸다.
그 사이에도 밴픽은 척척 진행되고 있었다.
딱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없었다.
올마스터 특유의 의외성 넘치는 픽도 없다.
삼선 블루 또한 첫 세트는 떠보는 흐름이다.
화제성을 더욱 북돋아야 하지 않겠는가?
뜬금없이 뮴뮴 선수 이야기가 화두에 오른 데는 그러한 계산도 있었다.
실제로 화면에 비친 뮴뮴 선수가 평소 이상으로 아리따워 보이기도 했다.
아무튼 잡담을 하는 사이 양 팀의 조합 구성이 거의 완료됐다.
<일단 신세상 매직은 조합 완성됐습니다. 무난한 미드 랄라, 혹은 탑랄라일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겠네요.>
<최근에야 꺼낸 적이 없다지만 라인 랄라 자체가 올마스터 선수가 원조입니다. 언제 기용해도 이상하지 않은 카드죠. 조합 구성은 깔끔, 그 자체!>
지난 시즌만 해도 랄라는 무조건 서포터로 가는 챔피언이었다.
하지만 올마스터에 의해 미드 랄라가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탑으로도 쓰이는 추세다.
물론 간간히 서포터로도 안 쓰이는 게 아니다.
<이미 광우스타가 나왔기 때문에 거기까지는고려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이러면 삼선 블루는 눈치 볼 것 없이 파사딘! 후픽의 이점을 잘 살렸네요.>
알칼리가 미드로 오든, 랄라가 미드로 오든 파사딘은 충분히 할 만하다.
막말로 피로라만 아니면 어느 누가 와도 괜찮다.
삼선 블루는 자신들이 원하던 최상의 조합을 구성했다.
침착한 밴픽 또한 김은준 해설이 삼선 블루를 고평가하는 이유다.
<조합의 완성도만 놓고 보자면 삼선 블루가 더 낫습니다. 대세픽을 가져오기도 했거니와 라인전 풀어나가기도 좋죠?>
<나무카이와 파사딘의 약점은 초반 갱에 약하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애꾸사자는 초반 압박이 강한 편은 아니에요. 물론 게임 풀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입니다.>
완벽하게 잡아먹히는 구도가 아닌 이상 밴픽 단계에 유불리를 평가해서는 안된다.
특히 신세상 매직처럼 난전 좋아하는 팀.
랄라와 알칼리가 가지는 변수는 무궁무진하다.
애꾸사자는 그 난전을 열어줄 수 있는 키카드다.
그렇게 특별한 이변 없이 무난하게 시작하는 첫 세트.
이 무난이라는 건 게임의 구도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신세상 매직이 가지는 고유의 팀 색깔을 말하는 것이다.
또 골 때리는 픽이 나오는 건 아닐까.
마지막 순간까지 방심할 수 없었다.
<이거 설마, 설마 진짜 하나요? 아니 뭐 올마스터 선수라면 못할 것도 없긴 한데..>
<가능성, 있다고 봅니다..! 스킬 구조를 봤을 때 딜탱으로 사용할 만해요. 버프도 먹었으니 나올 만은 합니다! 사실 랄라가 처음 나왔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거든요?!>
김은준 해설이 흥분해서 외친다.
그 설마가 맞아 떨어졌다.
분명 이상이 없었던 신세상의 매직의 조합.
다시 생각해보면 이상이 없었던 게 이상했다.
조합은 이상한 쪽으로, 아니 익숙한 방향으로 재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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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새로운 픽, 의외의 픽, 라인 스왑.
요는 얼마나 특이하냐가 아니다.
'얼마나 예상에서 벗어났냐지.'
두 가지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알고도 당한다는 말이 괜히 나오겠는가?
상대의 틈이 좁든, 넓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일단 찌를 수만 있으면 어떻게든 들어간다.
내가 밴픽에서 추구하는 이상이 바로 그것이다.
기존의 상식에서 어긋난 생뚱맞은 픽.
실질적으로 꺼내는 일은 잦지 않음에도 잘 먹히는 이유다.
하지만 간간히 진짜 찔러버릴 때도 있다.
쿵!
만나면 일단 인사 대신이다.
성난 광우스타의 뿔이 곧 장작이 될 나무카이를 들이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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