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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최강
<비켜! 이 구역의 스타는 나야!>
예은의 아링이 신나가지고 펄쩍 뛴다.
아무도 없는 미드에서 자세를 잡고 난리 나셨다.
이전 판만 해도 이 구역의 다른 분이었는데 엄청난 출세를 해버렸다.
정말 오랜만에 미드를 하는 데도 자신감이 넘치신다.
본체의 미드가 바람직하셔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아무튼 팬서비스를 하고자 뽑은 픽이 아니다.
'요는 얼마나 라인전을 터트리냐지.'
이번 세 번째 세트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간단하다.
한 마디로 뚝빼기를 때려 부순다.
그렇기에 가져간 조합이다.
파앙!
2초가 지나며 술통이 터진다.
구리가스의 Q스킬 술통 던지기.
그 증폭된 위력에 블루 골렘이 깜짝 놀란다.
'확실히 너프를 먹기는 했어.'
지난 스프링 시즌 결승전에서 선보였던 탑구리가스.
당연하다면 당연한 수순을 밟게 됐다.
대세 픽이 되자 게임사가 칼을 들었다.
미니언에게 가해지는 술통 던지기의 피해량이 30% 하락.
얼핏 작아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다.
라인 클리어가 두 방이냐, 한 방이냐의 차이다.
마나 코스트인 구리가스에겐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그 외에도 소소한 너프를 먹으며 사장되고 말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미니언에게 가하는 피해만 너프됐을 뿐이다.
'정글로 쓰면 상관 없다는 소리잖아?'
어떻게 보면 간단한 발상의 전환이다.
당시에는 결코 떠올리기 쉽지 않았다.
전통적인 미드AP누커였던 구리가스.
탑으로 전환한 것도 파격적일지언데 정글로 써버린다?
만약 쓴다고 해도 저걸 AP로 어떻게 쓰냐.
정글러가 억겁의 스태프를 올릴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
때문에 템트리가 완전히 변천한다.
이번 섬머 시즌에 또다시 파란을 일으킨다.
콰라락!
말카림의 Q스킬 언월도 돌리기가 늑대를 스친다.
그렇다.
나는 정상적인 리쉬를 받지 않았다.
대신 말카림과 함께 정글을 돌고 있다.
"봇 갈까?"
"아니, 이대로 쭉 돌자."
현재 메타에서는 의외로 흔히 있는 광경이다.
세 번째 세트는 상대 측에서 라인 스왑을 걸었다.
지금 탑과 봇은 양 팀 봇듀오가 프리징 중이다.
'탑 입장에선 정말 답도 없는 메타야.'
지난 스프링 시즌의 준결승전에서 써먹었던 방법의 연장선이다.
전진 프리징으로 상대 미니언 웨이브를 태워버린다.
그때는 아군만 했지만 이번엔 양 팀이 전부다.
즉, 양 팀의 탑솔러는 오갈 데 없는 처량한 신세다.
그래서 정글러와 함께 정글을 돈다.
역버프 시작 이후, 같이 2레벨을 찍고 라인을 한 번 밀어준다.
대회에서는 이미 정석화가 돼버린 해법이다.
'하지만 말카림은 그러기가 조금 애매해.'
말카림은 라인 스왑에 특히나 취약한 챔피언이다
미니언 먹다가 적 원딜러에게 카이팅을 당한다?
그러다가 점멸에 킬각이 잡혀버린다?
그 길로 인생 종치는 수가 있다.
때문에 고안한 방법이다.
조금 더 오래 정글을 돈다.
그리고 가볍게 핑을 찍는다.
─신세상 AllMaster님이 용을 지목.
대회 특유의 라인 스왑 메타.
게임사에는 이를 막기 위해 여러가지 패치를 했다.
라인 스왑을 한 쪽이 조금 더 리스크를 지게 하자.
그 결과, 초반에 용이 주는 골드량이 늘어났다.
시즌3 정도는 아니지만 꽤나 짭짤하다.
라인 스왑을 걸어온 대가를 치를 때다.
아군 서포터 인어를 불러 용을 먹어버린다.
─용을 처치했습니다!
게임 시간 3분 대에 용을 잡았다.
글로벌 골드 격차가 정확히 1천 벌어졌다.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수치.
무엇보다 말카림이 풀렸다는 게 크다.
슈우웅..!
마법 무효화의 망토를 구입한 말카림이 봇라인에 텔레포트를 탔다.
역으로 봇듀오는 귀환해서 탑에 올라간다.
어차피 용을 먹은 이상 탑과 봇의 라인 구분은 무의미.
위아래만 바뀐 채 정상적인 라인전이 시작된다.
벌컥벌컥!
그리고 나는 체력을 채우며 갱각을 잡는다.
구리가스 정글의 장점 중 하나.
체력 관리가 이보다 더 쉬울 수가 없다.
특히 쌍버프를 두르고 있을 때는 무서울 정도다.
레드 버프에 의한 5초당 1%의 체력 회복.
블루 버프에 의한 끊이지 않은 마나 재생.
용을 잡다가 낮아진 체력이 쭉쭉 차오른다.
'허를 찌르기엔 절호의 기회지.'
그냥 집 가면 되는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니다.
한 가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다.
이곳은 대회 무대.
각 선수들이 모두 상식을 가진 채 플레이 한다.
우리가 이른 시간 용을 가져갔다.
그런데 그 용, 그냥 가져갈 수 있었을까?
당연히 체력이 많이 깎일 수밖에 없다.
체력이 깎였으면 당연히 집에 가야겠지.
적 정글은 아군 블루 지역의 정글몹들을 편안하게 빼먹는다.
상대의 상식적인 플레이에서 빈틈을 읽어낸다.
후웅!
한창 치열하게 치고 박고 있는 미드 라인.
아링이 던진 물방울이 미니언 웨이브를 크게 훑는다.
이에 살짝 스친 필리언은 목표한 바를 이뤄냈다.
퍼엉!
4초가 지나며 아링의 머리 위에 달린 폭탄이 터졌다.
상대가 가져간 픽은 미드 필리언.
Q스킬 시한 폭탄 견제는 지극히 까다롭다.
현재 필리언의 시한 폭탄은 타겟팅 스킬이다.
심지어 사거리가 긴 편에 속해 안 당하기가 힘들다.
아링으로선 물방울을 던져 접근을 저지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그 가위바위보 싸움에서 필리언이 우위에 있다.
한 마디로 상성에서 밀린다.
게다가 적 정글이 집에 갔다고 한다.
필리언이 생각할 건 뻔하다.
견제 빡세게 해서 라인전 이득을 보자.
만에 하나의 사태가 일어나도 아군 정글이 근처에 있다.
안타깝게도 두 가지가 예상에서 빗나갔다.
벌컥벌컥!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견제를 넣기 위해 앞무빙을 밟았던 필리언.
미니언 사이에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안전하다.
정말 웬만하지가 않게 들어갔다.
투웅!
배치기 이후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점멸.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아니, 여기서 갱각이 잡혀?
그걸 해버리는 게 구리가스다.
심지어 배치기 판정이 너프되기 전이다.
그리고 Q스킬 술통 던지기도 진짜 짜증난다.
술통을 숙성하지 않아도 둔화 지속 시간이 2초다.
파앙!
일단 맞은 이상 못 도망간다.
그런데 점멸로 들어갔기 때문에 무조건 맞아야 한다.
그냥 죽었다고 보면 된다.
─퍼스트 블러드!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예은의 아링이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둔화가 오래 가는 덕에 넉넉하다.
용과 더불어 선취점까지 가져왔다.
"사모님 나이스샷!"
"뭐래니."
상대로선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다.
아니, 왜 구리가스가 여기 있어?
의외의 갱킹, 점멸을 활용한 강제 이니시에 된통 당해버렸다.
츄륵!
한 발자국 늦게 도착한 이블퀸이 밀린 라인을 받아먹는다.
근처에서 갱각을 엿보고 있던 모양이다.
만약 단순히 갱킹을 한 정도라면 상관없었을지 모른다.
점멸이 빠진 나를 이블퀸이 마무리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체력이 낮은 상태가 아니다.
그리고 너무 깔끔하게 필리언을 잡아냈다.
상대로선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게 된 꼴.
이제 와서 패인을 분석하기에는 늦고 만다.
찰칵!
귀환하자 나도, 아링도 아이템이 나온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현재 잿빛거인이 없다.
불타는 망토와 비슷한 효과를 가지고 있는 정글 아이템.
없어도 충분히 먹고 살 만하다.
'연대 골렘의 혼령도 충분히 쓸 만하니까.'
타오르는 효과는 없어도 강인함이 붙어있다.
즉, 아테나의 신발이 강제되지 않는다.
구리가스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쿨타임 감소를 훨씬 빠르게 갖춘다.
.
.
.
* * *
2014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섬머 시즌.
그 대망의 결승전이 벌써 세 번째 세트에 돌입했다.
큰 산으로 따지자면 이제 막 중턱까지 온 것일까.
아니다.
그건 서로가 팽팽했을 때의 이야기다.
앞선 두 세트를 한 팀이 독식했다.
이번 세 번째 세트도 굉장히 유리해 보인다.
투웅!
구리가스의 배치기가 틀어박힌다.
그 효과는 딱히 유별난 건 없다.
부딪힌 상태를 조금 밀어낸다.
그리고 1초간 기절 상태에 빠트린다.
쇈의 도발만 해도 지속 시간이 1.5초다.
단일 CC기로 봤을 때 특출난 효과를 가진 건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 궁극기가 연계된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필리언 고통입니다. 매혹 연계되면서 부활도 못 쓰고 죽었어요.>
<썼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죠. 그냥 배치기를 맞은 순간 운명이 결정됐습니다.>
보는 이들로선 한탄밖에 흘러나오지 않는다.
아니, 갱각 날카롭게 잡았으면 환호를 해야지 왜?
한두 번 죽은 거라면 그러려니 한다.
미드 갱만 벌써 네 번째다.
<이쯤 되면 이제 인사하는 느낌입니다. 어, 왔어? 그럼 다시 퇴근해!>
<6레벨까지만 무난하게 찍으면 갱킹 면역에 가까운 필리언인데.. 완전히 씨를 말렸네요.>
당하는 입장에선 아주 넌더리가 쳐질 만한 상황이다.
용을 먹고 집도 안 간 채 대기하고 있다가 점멸 갱.
아링이 6레벨 찍자마자 강제 다이브.
이후로는 그냥 들릴 때마다 킬각이 나온다.
미드 라인만 지나치게 봐줬다?
그렇지도 않다.
탑라인의 상황도 다를 바가 없다.
벌컥벌컥!
보기만 해서 신물이 날 지경이다.
구리가스가 적 정글을 넘어 1차 포탑의 뒤로 돌아왔다.
대놓고 술을 마시며 다이브를 대기한다.
랄라는 생존의 기회를 엿보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쿠워어어어-!
말카림의 궁극기가 퍼부어진다.
그 효과는 단 1초의 공포.
짧은 시간이지만 충분하다.
구리가스의 두터운 살에 랄라가 파묻힌다.
<커져라 써보지만 이미 배치기랑 술통이 다 들어가서.. 말카림이 따라가서 마무리합니다.>
<뺏으면 좋았을 텐데 벌써 도착할 거라 예상을 못한 모양이죠? 못할 만도 합니다. 쿨타임 감소를 40% 갖춘 구리가스라 기동성이 파사딘에 준해요.>
앞서 김은준 해설은 탑구리가스를 예상했다.
결과만 따져보자면 반은 맞췄다.
포지션은 틀렸지만 아이템트리.
정말 구리가스로 탱템을 두르고 있다?
연대 골렘의 혼령과 아이우에오의 신발,
그리고 발화석까지 올렸다.
블루 버프 없어도 쿨타임 감소가 40%다.
배치기로 쭉쭉 미끄러지며 소환자의 전장을 누비고 다닌다.
미드는 물론 탑라인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물론 삼선 블루도 맞고만 산 건 아니다.
대디의 이블퀸이 큰 그림을 그렸다.
<바싹 마른 혀 끝에 떨어진 이슬 한 방울! 가까스로 인어 잡는데 성공합니다..!>
<못 잡았으면 큰일날 뻔했어요. 탑, 미드 백업 포기하고 봇라인 갱 갔는데 수확 못 거두면 게임 답도 없어지거든요.>
대회에서는 흔히 보기 힘든 난전이다.
서로가 지키기보다는 약탈을 추구한다.
신세상 매직의 정글러 구리가스.
삼선 블루의 정글러는 이블퀸.
양 정글러의 동선이 모호하다.
한 쪽은 밑도 끝도 없는 기동성.
다른 하나는 챔피언 특유의 은신.
서로 자꾸 갱킹을 성공시킨다.
하지만 분명하게 차이가 난다.
클끼리 해설의 비유는 과장이 없다.
그만큼 삼선 블루는 수세에 몰렸다.
봇라인을 제외하면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다.
<그래도 삼선 블루의 입장에서는 다행입니다. 망한 게 탑이랑 미드에요. 토이치는 잘 컸습니다. 그리고 이 조합은 토이치만 잘 크면 어떻게 풀 가능성이 있어요!>
언제나 약자의 편에서는 클끼리다.
확실히 삼선 블루의 조합은 그 어느 때보다 원딜 중심.
탑랄라와 미드 필리언 둘 다 원딜러를 밀어주는 픽이다.
성장을 못했다 하더라도 토이치만 지킬 수 있다면!
한 가지 아쉬운 건 신세상 매직의 조합이다.
단단한 방패를 깨부술 만한 저돌성을 지녔다.
<양 팀의 1차 포탑들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운영 단계에 들어가는데.. 삼선 블루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요? 저는 솔직히 회의적입니다.>
클끼리와는 언제나 반대의 입장이다.
그렇기에 더욱 게임의 상황을 알기가 쉽다.
김은준 해설이 실상을 적나라하게 고한다.
삼선 블루가 방패라면 신세상 매직은 창.
밀어붙인 라인전을 통해 제대로 벼뤄졌다.
그 날카로운 창끝이 꿰뚫지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
조합부터가 이미 심상치가 않다.
<솔직히 서로 시너지가 있는 조합은 아닙니다. 전형적인 솔랭형 조합. 구리가스가 정글로 간 것만 빼면 특이할 건 없어요. 삼선 블루는 한타 대박 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죠. 백업 능력, 소규모 교전에서 두각을 발휘하는 챔피언들이에요. 주도권을 바탕으로 운영 들어가면 진짜 무섭습니다. 그래서 제가 삼선 블루가 위기다 이 난관을 한동안 버텨내야 한다 말씀드린 거거든요?>
양 팀 모두 이기는 그림이 그려진다.
승패를 단정 짓기에는 아직 이르다.
삼선 블루가 마지막 불씨를 살릴 수 있을지.
그마저도 자근자근 짓밟혀 사라져버릴지.
낮아진 기온과 반비례해 달아올라버린 해운대 앞바다.
이미 어느 팀을 응원하냐, 어느 팀의 팬이냐 구분은 사라졌다.
결승전은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