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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야구팀-4화 (4/255)

우리 동네 야구팀-4화

"내가 펑고 한번 쳐볼테니까 저기서 공 한번만 받아봐".

난 그렇게 말하고는 구석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공을 위로 살짝 던지고는 일부러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는척을 하기 시작했다.

부웅-

"아, 미안, 다시 칠게"

부웅-

"음, 오늘 왜이러지? 잠깐만..."

부웅-

"아이씨... 오늘 왜이래."

내가 계속 일부러 헛스윙을 하자 그애는 점차 얼굴에서 지루하다는 표정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그래, 내가 노린 타이밍이 바로 이때였다. 그리고 난 방금 던졌던 공을 다시 오른손으로 받은 다음에 왼쪽으로 세게 던졌다.

"받아!"

내가 던지면서 소리치자 그애는 급하게 공을 쳐다봤다. 그리고 공이 내 손에서 떠나는 순간, 자신의 몸도 동시에 움직이면서 빠르게 날아가는 공으로 쫒아갔다.

하지만 공은 한참 옆을 지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몸을 날린다면 모를까, 보통 동네야구의 레벨이라면 거의 잡기 힘들 수준이었다.

하지만 공이 바닥에 한번 바운드가 되는 순간

타앗-

하는 소리와 함께 그애가 엎어지는듯 슬라이딩을 하면서 캐치를 시도했다.

터업- 촤아악-

그리고 글러브 안으로 들어간 공. 그 순간 나는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아니, 상식적으로 저런 수비가 가능한 사람이 왜 동네야구 레벨에서 있겠냐고, 지금쯤 야구부에서 훈련하고 있겠지. 그러면서 내 입은 떡 벌어졌다.

그애는 태연한 표정으로 일어나더니 옷에 묻은 모래를 툭툭 덜어냈다. 그리고 나에게 공을 던져줬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딱 한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무조건 잡아야 한다. 무조건, 쟤는 무조건 잡아야 한다!'

우선 내가 생각하는 수비력이 뒷받침된 유격수에 딱 안성맞춤이었다. 지금 하는걸 보니까 기본기는 탄탄하서 어느 포지션에 갖다놓든 다른 애들보다는 더 잘할것 같아보였다.

거기다가 몸을 날릴줄 아는 허슬 플레이까지. 방금과 같은 플레이는 팀의 사기를 증폭시켜주는데 매우 좋은 역할을 해준다.

비록 아직 타격 실력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이정도면 수비 하나로도 자기 역할 그 이상을 해줄수 있다. 무조건 데려와야 한다.

"잘하는데? 이름이 뭐야?"

"아, 이호진이야."

"난 안수혁, 그나저나 진짜 잘하는데? 아까 몸날리는거 장난 아니었어!"

일단 난 웃으면서 그애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오바하면서 칭찬을 해줬다. 그애는 내 칭찬에 별거 아니라면서 쑥쓰러워했다. 그러면서도 기분은 좋은지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야, 우리 언제하냐?"

"포지션 알려준다고 하지 않았어?"

내가 그애랑 얘기하고 있는 사이에 몇몇 애들이 내쪽으로 걸어왔다. 아, 맞다. 얘네도 챙겨야지.

난 주머니에서 종이 한장을 꺼냈다. 그리고 애들을 불러모아서 각 포지션을 얘기해주기 시작했다.

잠시뒤, 다 불러주자 애들은 대체적으로 일단 수긍은 하는 분위기였다. 뭐 딱히 어떤 포지션을 할지 생각이 안나는 걸수도 있겠지만.

"넌 하고싶은 포지션 있어?"

나는 애들의 표정을 살피고는 그애를 쳐다봤다.

"어, 저기... 난 그냥 와본건데, 같이 연습해도 되는거야?"

그애의 대답은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역시, 너도 나랑 같은 코스를 밟는구나. 나는 대답 대신에 먼저 공을 던져줬다.

"우리랑 같이 야구하려고 온거 아니었어? 글러브랑 배트까지 다 챙기고 온걸 보면 그냥 견학하러 오지는 않았을테고... 기왕 이렇게 된거 우리팀에 들어와."

"...진짜?"

내 제안에 그녀석은 조금 망설이는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야구를 진짜 좋아하는 녀석이라면, 아마 들어온다고 대답할거다.

어차피 전학온지 얼마 안되서 아는 애들도 없으니까 우리랑 같이 어울릴수도 있는거고.

"그럼... 할게."

그렇지, 당연히 수락할줄 알았다. 자, 그럼 이제 인원수는 다 모았고, 포지션도 다 알려줬겠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훈련에 들어가면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종빈이를 쳐다봤다. 포수이기도 하고, 그나마 가장 안정적으로 펑고를 쳐줄수 있으니까 쳐주는 역할에는 딱 안성맞춤이었다.

"자, 그럼 이제 시작하자. 다들 자기 포지션으로 가봐."

내가 말하자 애들은 글러브를 들고는 각자 자기 위치로 걸어갔다. 하지만 다들 위치로 가자 한가지 문제가 딱 보였다.

운동장이 너무 좁으면서 직사각형 모양이었기 때문에 외야수 세명이 거의 바로 옆에 붙어있었다. 이래서는 안되는데, 하지만 근처에 넓은 운동장도 없고... 별수 없다. 그냥 해야지 뭐.

나는 애들을 쭉 한번 둘러보고는 마운드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찾은 다음에 신발로 선 하나를 그었다. 그리고 다시한번 종빈이를 쳐다봤다.

"시작해!"

"오케이."

종빈이는 내 목소라와 함께 공을 위로 살짝 던졌다. 그리고 공이 떨어지는 순간, 재빨리 배트를 잡고는 가볍게 휘둘렀다.

까앙-

알루미늄 배트에 공이 빚맞았다. 그리고 공은 꽤 빠르게 2루수 쪽으로 굴러갔다.

충분히 잡을수 있는 타구였다. 그리고 성빈이도 자신있는 표정으로 공쪽으로 달려갔다. 그런 다음에 안정적인 자세로 공을 잡은 다음에 여유롭게 1루로 송구했다.

슈욱-

현재 1루수를 맡은 사람은 산욱이. 그런데 자세가 조금 어정쩡해 보였다.

완전히 앞으로 나와서 받는건지, 아니면 서서 받는건지. 그리고 산욱이를 살짝 빗나가는 송구까지. 이거 아무래도 못잡을거 같아보였다.

촤앙-

그리고 딱 적중한 내 예상. 공은 산욱이의 옆을 지나가더니 글러브 끝을 맞고는 뒤쪽 철조망에 그대로 부딪혀버렸다.

"야, 공을 어떻게 주는거야?"

"그럴땐 옆으로 빠져서 받아야지. 그럼 충분히 받을수 있다고."

산욱이가 놀라자 성빈이는 민망한지 큰소리로 대꾸했다. 아니, 처음부터 이러면 어쩌자는거야. 그래도 일단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말려야겠다.

"산욱아, 그냥 공이많이 빠진다 싶으면 그쪽으로 달려가서 잡으면 돼. 아웃 못시켜도 괜찮으니까."

나는 산욱이에게 설명을 해주고 다시 성빈이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그만 하라는 의미였다.

다행히 성빈이는 눈치챘는지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고서 다른곳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거 참 처음부터 삐걱대네.

그러고 나자 종빈이는 공을 받더니 이번에도 가볍게 배트를 휘둘렀다. 이번엔 하늘 위로 높이 솟은 공. 그러나 앞으로 뻗지 못하면서 내야 뜬공이 될거 같아보였다.

"선민아!"

나는 하늘위로 손은 올리면서 선민이를 불렀다. 지금 공은 대충 3루쪽으로 향해가는중. 그리고 선민이도 알고 있었는지 위를 보면서 공을 쫒아가고 있었다.

선민이가 위치를 잡자 떨어지기 시작하는 공. 그러나 선민이의 글러브가 조금 늦게 닫혔는지 공은 글러브를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야, 그정도는 잡아야지."

선민이가 공을 놓치자 종빈이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야, 안그래도 의욕도 별로 없는 편인데 그런말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

"아냐, 괜찮아. 지금은 위치파악 한것만 쳐도 잘한거야. 충분해. 그리고 어차피 이런건 안잡아도 아웃 처리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괜찮아. 괜찮아."

나는 일부러 웃으면서 기분이 살짝 나빠졌을 선민이를 달랬다. 그러면서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야구를 하는 맛은 직접 경기를 해봐야 아는건데, 그때까지 조금 힘들어도 이런 방식으로 참고 나가야된다. 그런데 뭐 벌써부터 기운에 다 빠지네. 이제 겨우 펑고 시작했는데.

힘들어 죽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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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야구의 맛은 경기를 했을때 알게 된다.201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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