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5화
"오랜만이네..."
그렇게 첫 연습을 간신히 끝낸후의 저녁, 나는 지금 내 방에서 휴대폰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휴대폰에 찍혀있는 번호. 그래, 지금 시합을 걸만한 곳은 여기밖에 없다.
물론 실력차이가 많이 나겠지만, 거기다가 어차피 애들끼리 모여서 팀을 만들고 시합한다는것 자체가 매우 드문 경우니까. 힘들어도 야구부 같은곳이랑 일정을 잡아서 해야만 했다.
하지만 통화 버튼으로 손이 가지 않았다. 거의 1년동안 아무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시합하자고 연락을 한다니까 왠지 몇년동안 연락하지않던 친구에게 문자로 청첩장을 보내는 사람이 된듯한 기분이었다.
한마디로 필요할때만 써먹는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것 같은 기분도 든다. 거기다가 괜히 어색할거 같기도 하고.
그래도... 지금 팀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다. 나쁜놈이 되더라도 무조건 해야만 한다.
꾸욱-
결국 망설이다가 간신히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들려오는 연결음, 한 서너번 정도울리다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웬일이야?'
"어, 오랜만이다."
지금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당시 거의 팀의 실세이자 중심이었던 녀석이었다.
이름은 김시헌, 포지션은 내, 외야 딱히 가리지 않았던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타격도 잘했고, 확실히 기본기가 잘 갖춰진 애였다.
"야, 혹시 이번주 주말에 시간 되냐?"
나는 일단 시간이 되는지 물어봤다. 기왕 하는거, 후딱 해버리고 애들에게 야구시합을 하는 맛을 알려주는게 좋을것 같다. 어차피 지금 이대로 연습만 했다가는 한달도 안되서 흐지부지해질테니까.
그런데 우리중에서 시간이 안되는 애가 있으면... 아 진짜 끔찍하다.
"우리 어차피 매주 토요일마다 훈련하잖아."
내 물음에 시헌이는 당연하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아, 토요일마다 모이는건 그대로였구나.
"그럼 일요일은?"
"그때도 종종 모이긴 하는데. 왜, 뭐하려고?"
이번엔 시헌이가 나에게 물어봤다. 하긴, 거의 1년만에 전화해서 궁금할 만도 하겠지.
"야구시합하자."
"뭐?"
내 제안에 시헌이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가 잠시뒤, 시헌이가 나에게 물어봤다.
"애들이 있기는 해?"
"있으니까 이러는거지."
"애들 실력은?"
"어... 그러니까... 못하는건 아냐."
시헌이의 물음에 나는 잠시 오늘 연습을 생각해봤다. 매번 놓치는 외야 플라이, 그리고 평범한 땅볼, 그마나 다행이라면 유격수에 엄청난 애가 있다는 것뿐.
결국 일단 대충 둘러댔다. 실력이 안좋다는걸 대놓고 말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그 대상이 나 혼자면 그렇게 말할수는 있지만, 나뿐만이 아닌 다른 애들이 있으니까 그렇게는 말을 못하겠다. 나중에 애들이 듣기라도 한다면 기분 나빠할수도 있으니까.
시헌이는 내 대답에 잠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면서 나도 같이 아무말도 없어졌다. 그러면서 나는 속으로 게속 빌기 시작했다.
'제발, 받아줘라. 네가 안받아주면 야구 팀이고 뭐고 간에 다 끝이야. 끝이라고. 여기 아니면 아는 팀도 없는데, 제발 받아줘라. 제발...'
그러자 그렇게 계속 빌었던 효과가 있었는지
"음... 다음주 토요일은 어때? 우리가 그때 연습경기를 좀 해야될거 같은데, 옆에 숭화중은 그때 다른학교랑 붙는다고해서."
내 간절한 마음을 알아채기라고 했는지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그래, 날짜는 딱히 상관없다. 어차피 그때 학원이 있으면 다들 재끼라고 하지 뭐.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주먹이 쥐어졌다.
"야, 고맙다. 진짜 고맙다!"
"뭐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럼 확실하게 결정된 시간은 나중에 알려줄게."
"어, 고맙다."
뚜- 뚜- 뚜-
"됐다!"
고맙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겼다. 그리고 저절로 나오는 환호성, 나는 두 팔다리를 쭉 뻗으면서 힘껏 소리쳤다.
*
시합 일정을 따낸뒤 다음날, 오늘은 어제 그 운동장이 아닌, 그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모였다.
어차피 오늘은 주말이었기 때문에 뭐라하는 사람도 없었고, 애들이 모이는데는 그닥 어렵지 않았다.
학원이 있는 애들을 배려해서 늦게 잡은 시간, 그러다 보니까 피시방에서 방금 나온듯한 몰골을 하고 오는애들도 보였다.
약속 시간에서 한 30분이 지나자 다들 모인애들. 하지만 난 애초에 워래 예상한 시간보다 30분쯤 더 빠르게 약속시간을 잡아놨었다. 예전에도 많이 써먹었었던 방법이었다.
애들이 다들 오자 나는 애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혹시 안온애들이 있나 하면서 애들을 쫙 한번 둘러봤다. 하나, 둘, 셋... 오케이. 다 왔네. 그럼 이제 슬슬 말해야겠다.
"얘들아, 첫 시합 일정이 잡혔어."
"뭐?"
내 말에 대부분의 애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마 지금 자기들 실력으로는 경기를 뛰기 무리라는 생각이겠지.
하지만 난 야구는 직접 시합을 해보지 않으면 그 매력에 절대로 빠져들수 없다고 생각한다.
맨날 기본기가 갖춰질때까지, 잘할때까지 연습, 또 연습만 하다보면 대부분의 애들이 지루해서 나가 떨어질수가 있다.
그리고 시합을 한다고 치더라도 덕아웃에만 있는다면 그 시합이 재미있을리가 없다. 내가 직접 경험해 봐서 잘 안다.
그리고 시합만 뛰다보면 기본기가 부족하고, 맨날 질수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뭐 프론가? 우리는 그저 야구를 즐기려는게 목적이고, 즐기면 된거다. 그리고 다치지만 않으면 된거다. 그걸로 된거다. 우린 프로가 아니다.
나는 애들의 표정을 보면서 살짝 장난기가 섞인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애들에게 조금씩 겁을 주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상대는 면홍중학교 야구부야."
"야, 정식 야구부?"
"미쳤냐?"
"정신 나갔지?"
"너 그 예전에 다니던 학교 아냐?"
이번 말에 애들은 미쳤냐는 반응을 나타냈다. 정식 야구부랑 붙으니까 그렇겠지.
"성빈이랑 종빈이, 영훈이는 아마 기억할걸, 같이 야구한적도 있으니까."
"아, 그 걔네들이야?"
내가 어떤 애들인지 설명해주자 쌍둥이 둘은 조금 누그러진 표정을 보였다. 그정도 애들이라면 야예 불가능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인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애들은 아직도 나를 미쳤냐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 당연히 부담감이 많이 쌓여있겠지.
"난 그래서 너네에게 딱 두가지 요구만 하려고."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니, 그나저나 왜 상대가 정식 야구부냐고!"
내 대답에 애들은 나에게 강하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아마 지는게 두려운 모양이라도 되는것 같이 말이다.
하지만 난 승패는 상관없다. 아니, 지려고 하는거다. 물론 이기면 좋겠지만, 그건 힘들다.
우리중에 구속이 110정도 나오는 애를 누가 상대하겠냐고. 나도 타격은 완전 꽝인데. 그나저나 애들이 내 말은 아예 안중에도 없는것 같다.
쩝, 야구부라는 말은 괜히했나?
"우선!"
나는 애들의 시선을 모으기 위해서 소리쳤다. 안그래도 목소리가 큰편이었기 때문에 애들의 시선을 내쪽으로 돌리기에는 수월했다. 나는 애들이 시선이 모이자 그제서야 할말을 이어갔다.
"첫번째로 실책을 하면 미안하다고 사과하기. 두번째는 실책이 나오면 괜찮다고 위로하면서 더욱 파이팅을 불어넣기. 이거 딱 두가지만 하면 되는거야."
내 말에 애들의 표정이 조금 바뀌었다. 아까의 놀라거나 나에게 따지는 표정이 아닌, 이해가 잘 안간다는듯한 눈빛. 그러다가 영훈이가 나에게 물어봤다.
"그럼 실책을 수십번씩 해도 괜찮은거야?"
"실책? 얼마든지 해도 괜찮아. 우리가 10점을 내주든, 100점을 내주든 상관없어. 어차피 우린 이번에 지러 간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마음 편하게 먹어. 그냥 놀러간다고 생각해."
내 말에 영훈이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아마 평상시에 성빈이랑 종빈이에게 실책으로 욕을 많이 먹어서 그런듯 싶었다.
그래, 어차피 난 상관없어, 이번에 너네가 야구의 재미만 알게 되면 난 승패따위는 상관없거든.
"자, 그럼 슬슬 펑고 시작하자! 연습은 해야지!"
잠시동안 아무말도 없는 애들에게 내가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각자 글러브를 챙겨들고 자리로 달려가는 애들. 나는 각자의 위치로 달려가는 애들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렸다.
"다음주까지만 기다려봐. 아마 너네들도 그뒤엔 야구의 매력에 빠져서 못나오게 될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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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학창시절에는 뛰어노는게 공부만큼 중요하다.2015.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