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8화
나는 들고온 가방에서 작은 수첩과 볼펜을 꺼내들었다. 혹시 몰라서 늘 필기도구를 가지고 다니는 습관을 들이길 잘했다. 오늘같이 쓰일날이 오긴 오는구나.
그다음 수첩을 펼치고서 어떤 방식으로 타순을 짤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프로야구를 보면 대체로 거의 일정하다. 1, 2번은 테이블세터, 발이 빠르고 작전수행을 잘하는 사람이 들어간다.
그리고 3, 4, 5번은 장타를 잘 치는 선수, 힘이 좋은 선수가 주로 맡는다.
마지막으로 6, 7, 8, 9번은 하위타순으로서 상위타순에 포진한 선수보다 타격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선수들을 배치한다. 주로 이게 정석이다.
물론 요즘에 6번까지 강력한 타자를 넣거나, 9번도 테이블세터로 생각하고 발빠른 선수를 넣는 경우, 아니면 1, 2, 3번까지 테이블 세터로 구성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생각하는 타순은 그런 보편적인 타순이 아니었다.
어차피 이기기도 힘든 시합, 거기다가 아무리 전부다 동네야구에서 하다가 온 애들뿐이어도 야구부는 야구부였다. 나도 전학만 안갔으면 아마 저기중에 일원이었을테니까.
그래서 지금 내가 생각하는 타순은 정석이랑 완전히 다른 타순이다. 1번에 발빠른 타자, 2번에는 파워형이나 비교적 잘치는 타자, 그리고 3번은 발빠른 타자. 한마디로 발빠른 애들이랑 힘이 세거나 타격을 잘하는 애들을 번갈아가면서 배치할 생각이었다.
사실 상대 야구부에 누가 있는지 몸을 풀기전에 한번 살펴봤었다. 그리고 대다수가 내가 야구할때 같이 하던 애들이었다.
그리고 그때 제대로, 혹은 실력이 좋은 애들은 몇몇 되지 않았다. 지금 다들 연습했거나, 잘하는 애가 새로 들어왔어도 분명히 수비가 부족한 점은 있을거다.
거기다 어제 이 학교에 다니는 다른 친구에게 들은 말로는 애들 수비가 뻥뻥 뚫린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었다.
물론 그래도 우리보다는 잘하겠지만.
여튼, 한명이 어떻게든 살아나가면 다른 한명이 안타를 쳐서, 상대의 수비실책을 이용하는 작전이었다.
그것도 확률이 높지는 않았지만 지금으로서는 가장 최선의 방법인듯 싶었다.
"그래, 이걸로 하자."
결국 고민하다가 번갈아가는 타순으로 결정했다. 비록 이길려면 상대가 도와줘야 된다는 점과 운도 필요했지만, 그게 없으면 우리가 이길 방도는 없었다.
아무리 이기는게 목적이 아니어도 설렁설렁 맥없이 질수는 없으니까. 그건 상대에게 실례다.
"정했어?"
"난 몇번이야?"
내가 다 적고서 일어나자 성빈이가 내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하나 둘씩 내쪽으로 몰려드는 애들. 나는 애들의 타선을 말해준 다음에 감독이 앉아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정했니?"
감독은 내가 오자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내가 적은 종이를 내밀자 건네받았다. 그는 잠시동안 읽어보더니 자신들의 라인업이 적인 종이를 건네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경기 시작하자."
"옙."
나는 짧게 대답하고는 애들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계단에 내려놓았던 글러브를 다시 들었다.
"얘들아, 경기 시작한다. 나가자!"
"시작이야?"
"떨려죽겠네."
"가자! 고!"
내 말에 애들은 가지각색의 반응을 보이면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들 그라운드를 향해서 걸어갔다.
그라운드로 오자 면홍중 야구부원들이 일렬로 서있었다. 그리고 우리팀도 눈치껏 그 줄에 맞춰서 일렬로 나란히섰다.
"자, 이번 경기 내가 심판을 맡으며, 경기는 총 7이닝으로 진행된다. 폭투, 견제는 있지만, 도루는 없다. 그리고 여기... 원정측에서 먼저 공격한다. 그럼 서로간의 인사!"
감독의 말이 끝나자 상대편은 모두들 모자를 벗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우리도 그에 허리를 숙이면서 인사를 했다.
그리고 서로간의 악수. 애들 대부분이 어색한 표정, 혹은 긴장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운선이랑 상민이는 제외였다. 상민이는 역시 친화력이 좋은지 벌써 적응한 듯한 눈치였고, 운선이는 늘 평상시와 같은 표정이었다.
인사를 마치고 나서 우리팀은 모두들 원래 위치로 돌아갔다. 그리고 상대편도 선발들을 제외한 애들은 우리 반대편 게단으로 들어갔다.
잠시뒤, 면홍중 야구부원들이 각자의 위치로 들어갔다. 자세히 보니까 시헌이는 중견수였다. 그리고 성우는 그라운드가 아닌 게단에 앉아있었다. 아마 교체선수인것 같았다.
우리팀의 1번타자는 호진이었다. 여기서 가장 실력이 좋고 기본기가 갖춰진 녀석이었다.
아직 호진이의 타격모습을 제대로 본적은 없었지만, 적어도 다른 애들보다는 잘할것 같았다. 수비만 봐도 클라스가 다르니까.
면홍중의 선발은 원세경이었다. 당연히 얘가 나올만 했다.
1학년때 키가 170을 넘기고, 덩치도 매우 컸었다. 그리고 지금 그때보다 키가 더 컸을거다.
그리고 단지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세경이의 가장 큰 장점은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백성진을 닮은듯한 투구폼과 중1때 이미 100km를 넘긴 구속이었다. 아마 지금쯤 적어도 120km 근처는 나올거다.
호진이는 우선 타석에 들어서고는 투수를 한번 쳐다봤다. 투수는 잠시 호진이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와인드업을 하기 시작했다.
파앙-
"스트라이크!"
투수의 손을 떠나서 순식간에 미트 안으로 들어가는 공. 그러자 감독, 아니 심판의 목소리가 시원하게 울려퍼졌다.
"헐..."
"시발, 우리 줬댔다"
"야, 방금 공 봤냐? 안보여!"
"우리 저거 맞으면 그냥 즉사하는거 아냐?"
"수혁아, 나 타석 안들어갈래."
"야 너 미쳤냐? 저런 공을 어떻게 치라는거야!"
"대애박..."
방금 공에 제대로 놀랐는지 아까까지만 해도 긴장한채로 가만히 앉아있던 애들이 마치 시장에 온것같이 시끄러워졌다.
하긴, 지금 애들이 지금까지 이정도의 공을 본 적은 없었으니까 당연하다. 나도 처음엔 그정도 반응이 나왔으니까.
"야야, 타석에 서면 생각보다 많이 안빨라. 괜찮아."
"야, 미쳤어? 저런걸 어떻게 치라고! 실수로 빠져서 맞는다고 치면... 일단 넌 한대 맞자."
"악! 야 야 그만, 그만!"
"이틈을 타서 산욱찡 가슴을!"
"넌 좀 꺼져!"
시간이 점점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팀 분위기는 점점 혼란스러원지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난장판에 가까웠다.
공에 놀라서 정신줄을 반쯤 놓아버린 녀석, 겁에 질린 녀석, 그리고 지금 이상황에서도 여전히 병신짓을 하는 녀석 하나. 완전히 개판 오분전이었다.
아, 그나저나 얼른 다음타자 나가서 대기해야 되는데.
"야, 다음타자 나가!"
나는 뒤늦게 현실을 떠올리고는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내말을 들리지 않는건지 여전히 난장판 상태인 애들. 결국 심판이 부르고 나서야 난장판은 조금 진정되었다.
"그쪽 2번타자, 김산욱! 빨리 나와라!"
"헐."
"수고염."
"잘가."
심판의 말에 산욱이는 잠시 굳은것처럼 멈춰버렸다. 하지만 이내 심판이 한번 더 외치자 떨리는 손으로 배트를 챙겨들고는 타석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산욱이가 나가자 호진이가 계단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는 배트를 내려놓고는 계단위에 앉았다
"호진아."
"어?"
나는 타석을 쳐다보면서 호진이를 불렀다.
"공 어떠냐?"
"내가 타격은 그리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모르겠는데... 일단 난 못건드릴거 같아. 답이 없어."
"그정도야?"
"몇번 더 보다보면 모를까, 아마 첫바퀴에서 배트 근처에도 못 갖다댈거야."
"역시"
설마 했는데 호진이의 말을 듣고 나니까 저절로 기운이 빠진다.
솔직히 나도 타격은 완전 꽝인데, 이거 경기중에 공을 맞출수나 있을지 걱정된다. 농담이 아닌 진짜로 걱정된다.
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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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첫 시합, 면홍중 야구부(3)2015.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