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10화
나는 일단 타자가 누군지 쳐다봤다. 음, 일단 내가 아는 녀석이었다. 이름은 장휘운. 잘생긴 녀석이다. 제길, 갑자기 열등감이 생기네.
그리고 발도 빠른 녀석이었다. 타격은 잘 모르겠지만, 투수로 나온다면 우리로서는 꽤나 골치가 아플만한 녀석이다. 이녀석도 공이 한 100km 정도는 나올테니까. 제구가 관건이기는 하지만.
일단 타자에 대한 분석을 마친 나는 종빈이를 쳐다봤다. 그러자 종빈이는 일단 바깥쪽 직구 사인을 내밀었다.
'오케이, 바깥쪽이라... 괜찮은거 같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타자를 한번 쳐다봤다. 타자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떻게든 리드오프로서 꼭 치고 나가겠다는 의지가 보이고 있었다.
'후, 쉽게 당하지는 않을거다, 임마.'
비록 그때 부상을 당하고 점차 슬럼프에 빠져든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서 나 홀로 투구폼을 가다듬고 나름대로 근력도 키웠었다. 물론 성장에 방해가 안될 정도로 키웠었다.
그리고 이제 그 결과를 확인할때다. 나는 길게 숨을 내쉬고 종빈이의 미트를 쳐다봤다. 그리고 공을 던졌다.
슈욱- 파앙-
"스트라이크!"
초구는 스트라이크. 종빈이가 요구한 위치에서 조금 벗어났지만 미트는 바깥쪽에 위치해있었다. 오케이, 일단 출발은 좋다.
타자는 생각보다 좋아진 내 공에 놀란건지 잠시동안 미트만 쳐다봤다. 그러나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자세를 잡고 나를 노려봤다.
나는 그에 지지 않고 타자를 한번 쳐다봐줬다. 그리고 종빈이의 사인대로 공을 꽂아넣었다.
팅-
이번엔 빚맞은 공. 공은 유격수와 2루수의 사이로, 조금 애매한 곳으로 굴러갔다. 그러면서 갑자기 후끈 달아오르는 면홍중학교 야구부, 하지만 나는 침착했다. 어차피 호진이가 다 잡아줄 테니까.
다다다- 텁-
내 예상대로 호진이는 타구 방향으로 달려가서 가볍게 잡아냈다. 그리고 몸을 돌리고는 가볍게 1루쪽으로 던져줬다.
슈욱- 팡-
"아웃!"
깔끔하게 1루수 산욱이의 미트 안으로 공이 들어갔다. 그리고 한발 늦게 베이스를 밟는 타자. 누가봐도 아웃이었다.
"잘했어!"
나는 뒤로 돌아서서 호진이를 한번 칭찬해줬다. 확실히 우리팀의 기둥이 될만한 녀석이다.
그러면서 상대편 덕아웃을 쳐다보니까 뭐 저런애가 있나 하면서 벙찐 표정으로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애가 있는줄은 상상도 못했지?'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이번에 들어오는 타자를 한번 살펴봤다.
이번에 오는 타자도 내가 아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오늘 선발포수로 나왔었다. 이름은 전민재. 운동신경, 기본기 모두다 잘 갖춰져있고, 무엇보다 안정적인 느낌을 주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포수 역할을 맡았었다.
나는 일단 종빈이를 쳐다봤다. 그러자 종빈이는 이번엔 안쪽으로 미트를 내밀었다. 아, 안쪽, 내가 조금 부담스러워 하는 코스였다.
'그래도 던져야 된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미트만 쳐다봤다. 그리고 왼다리를 천천히 들어올렸다가 앞으로 쭉 뻗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팔도 휘둘렀다.
파앙-
"스트라이크!"
조금 애매했지만 안쪽으로 꽃힌 공. 그러면서 스트라이크 판정이 나왔다.
타자는 예전의 내 공을 예상했던건지 조금 놀라는 눈치에다가 미소까지 살짝 걸려있었다. 뭐야, 이정도 공은 칠수 있다는 건가? 은근히 기분 나쁘네.
나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가 다시 풀었다. 어차피 내 공이 그리 세지 않은건 사실이었다. 거기다가 맨날 태경이의 공을 봤을테니까 충분히 그럴만도 했다.
하지만 나도 내 나름대로 던지는 방법이 있었고, 생각해둔것도 있었다. 그리고 내 공이 이 동네야구나 면홍중 야구부에 비해서 많이 밀리는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 공으로 씹어먹지는 못할지라도, 충분히 버틸수 있었다. 아니, 그렇게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바로 투수의 기본 마음가짐이니까.
'자신의 공을 믿어라...'
나는 그 말을 몇번이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종빈이를 쳐다봤다. 종빈이는 이번엔 아래쪽에 미트를 내밀었다. 아마 헛스윙이나 땅볼을 유도하려는 생각 같았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뒤에 유격수를 제외한 뒤에 수비수들이 든든하고 안심이 되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내 공으로는 삼진을 잡기는 힘들뿐더러, 어차피 난 예전에도 의도한거는 아니었지만 적은 투구수로 타자들이 땅볼을 이끌어내는 타입이었다.
그리고 난 개인적으로 일단 수비수들을 믿고 가는 베이스가 깔려있다. 적어도 내야라면 평범한 타구는 잡을수 있을테니까.
만약 실책이 나오더라도 상관 없었다. 어차피 우리는 동네야구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생각하는 거지만, 야구의 맛을 알기 위해서 지금 이 시합을 하는 거니까. 실책을 해도 괜찮았다.
나는 길게 숨을 내쉬면서 사인을 확인했다. 이번 사인은 한번 더 아래쪽 공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바로 공을 던졌다.
슈욱-
최대한 앞에서 놓은 투구, 그래서 그런지 조금 전의 공보다는 더 빨리 나아가는것 같아보였다.
타자는 내가 던진 공을 보면서 빠르게 허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트를 내밀면서 몸에 붙어있던 팔도 같이 내밀었다.
깡-
"떴다!"
공은 제대로 맞은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와 다르게 공은 공준에 붕 떠서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하고 있었다.
아마 이정도면 중견수가 잡을만한 타구였다. 그리고 지금 중견수는 운선이. 그런데 뭔가 스텝이 불안정해 보였다. 그리고 그건 호진이도 마찬가지였는지 어느새 운선이의 주변에 가있었다.
"어?"
그런데 호진이의 자세가 조금 이상했다. 살짝 앉아잇는게 마치 굽실거리면서 용돈을 바라는 사람같았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 해보니까 왜 그런지 잘 알수 있었다.
'아, 혹시나 글러브에 빚맞으면 잡으려는 속셈이네.'
지금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보이는 움직임, 그렇다고 아예 자리를 뱄고 잡을 경우라면 문제가 생길수 있으니까 나오는 모습이인듯 싶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타자는 1루를 돌아서 2루까지 질주하고 있었다. 아마 동네야구라서 실책이 나올 확률이 높으니까 그냥 일단 뛰고보는거였다.
"으앗!"
그리고 타자의 예상대로 공은 운선이의 글러브 끝을 맞고 그 앞으로 튕겨나왔다. 하지만 그 주변에 몸을 살짝 숙인채로 있었던, 호진이의 글러브 안으로 들어갔다.
"아웃!"
호진이가 글러브 안에서 공을 들어보이자 심판이 외쳤다. 그리고 어이가 없는지 황당한 리액션을 보이는 타자. 하긴, 내가 그런짓을 당했어도 그럴만했다.
상식 밖을 벗어나는 플레이였다. 타구가 외야 한가운데까지 날아갔는데 유격수가 백업을 갔다. 사실 그거부터가 정상적인 플레이는 아니었다.
그리고 중견수 주변에서 숙이는 자세까지. 그리고 놓친 공을 바닥이 떨어지기 전에 잡았다. 프로야구, 아니 고교야구에서도 절대로 볼수 없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동네야구, 그리고 수비는 여기저기 구멍이 뻥뻥 뚫려있다. 나는 호진이의 생각을 추리하면서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나이스 플레이."
나는 작게 중얼거리고는 종빈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미 타석에 들어와있는 타자를 쳐다봤다. 그리고 동시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면서 고개를 살짝 옆으로 저었다.
'어우, 주자를 안내보내길 잘했네.'
지금 타석에 들어와 있는 타자는 김시헌,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타격은 아마 제일 잘할거다. 그러니까 지금 클린업에 배치가 되어있겠지.
하지만 시헌이는 발이 그닥 빠른편은 아니다. 평균, 아니면 그 이하였던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기본기나 스윙, 파워는 팀내 가장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위험한 타자다.
하지만 나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시헌이가 내 공을 멀리 처버린 기억이 거의 없었다. 물론 친 기억은 있지만, 거의 희미할 뿐더러, 시헌이는 타석에서 내 공을 친적, 아니 본적이 별로 없었다.
같은 팀인데다가 다른 애들을 통솔하느라 맨날 밖에서 봤으니까. 충분히 승부해볼만 했다. 그리고 아직 나는 숨겨둔 무기도 있으니까, 승부해볼 생각이었다.
'바깥쪽으로.'
'...음?'
종빈이가 사인을 보내왔다. 바깥쪽 공이라,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타자가 든 배트는 다른 타자들과는 다르게 나무배트, 그리고 조금 더 긴 편이었다. 아마 작년부터 썼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긴 배트로 바깥쪽을 주로 잘 공략했던걸로 기억한다.
'아니, 다른거.'
'그럼 안쪽?'
'오케이.'
나는 안쪽 사인이 나오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타자를 한번 쳐다본 다음에 미트를 향해서 공을 던졌다.
틱-
"파울!"
공은 배트에 빚맞았는지 작은 소리를 내면서 위로, 그리고 뒤로 떠올랐다. 결과는 파울. 하지만 공이 조금만 몰렸다면 곧바로 안타, 아니 우리 수비를 고려하면 2루타가 될수도 있는 타구가 나올뻔 했다.
"후... 역시 무섭네."
시헌이는 아까 맞추지 못하게 아쉬웠는지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래, 나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니까. 한때 너네팀 에이스였는데. 쉽게 안무너져.
나는 잠깐동안 씨익 웃었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차리면서 종빈이가 보낸 사인을 확인했다. 이번공은 아래쪽 직구,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미트를 향해서 그대로 공을 던졌다.
슈욱-
────────────────────────────────────
11화-첫 시합, 면홍중 야구부(5)2015.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