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11화
따악-
시헌이의 배트가 돌아가면서 시원한 소리가 들려왔다. 느낌상으로는 못해야 안타, 그러면서 뒤를 돌아보니까 공은 생각보다 덜 나가고 있었다.
"마이볼!"
이번에도 중견수 운선이에게 향한 공. 운선이는 이번엔 안정적으로 잘 잡아냈다. 그러면서 쓰리아웃, 1회 말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
"흐음..."
저기 서있는 투수, 생각보다 잘 던진다. 조금 전에 몇몇 애들에게 물어본 바로는 정식 야구부가 되기전 한때 에이스 투수였다고 했었는데, 확실히 어느정도 기본기나, 몸은 단련이 되어있는것 같아보인다.
그런데 뭔가 압도적으로 잘 던진다거나 구속이 빠른것 같지는 않아보인다. 구속이 빠른것도 아니고, 제구가 매우 좋은것도 아니다.
단지 구속에 비해 공의 회전수가 잘 먹히는것 말고는 딱히 특징이 없어보였다. 시헌이가 거의 제대로 맞춘 공을 외야 뜬공으로 막았으니까.
분명 못던지는건 아닌데, 그렇다고 잘하는것도 아닌거 같았다. 그냥 딱 보통, 아니면 그것보다 조금 위에 정도밖에 안되보이는 투수같아 보였다.
"감독님, 시작 안해요?"
아차, 저 투수를 보느라 잠시 한눈을 팔고 있었나보다. 눈을 몇번 깜빡이고는 투수와 타자, 그리고 수비수들이 준비를 다 마쳤는지 한번 살펴봤다. 그리고 모두들 준비가 된걸 확인되자 경기를 이어나갔다.
"플레이볼!"
*
이번 우리팀의 공격은 5번타자, 나부터 시작이었다. 일단 나는 헬멧을 머리에 쓴 다음 가장 가벼운 배트를 들고서 오른쪽 타석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투수를 한번 쳐다보자 덩치서부터 저절로 압박이 되는 느낌을 받는게, 자연스럽게 침이 꿀꺽 삼켜지면서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난 타격을 잘 못하는 타입이다. 배트 스피드나 파워는 둘째치고, 컨텍이 안됐다. 아예 공이 오는 타이밍의 위치를 잘 못짚는 유형이었다.
그런데도 라인업을 짜다보니까 이렇게 되버렸다. 제길, 더 뒤쪽으로 옮길걸. 갑자기 후회된다.
일단 그래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수비수들을 한번 둘러봤다. 그리고 여전히 전진 수비중인 수비수들. 아무래도 번트는 무리인것 같다.
끄덕-
내가 다시 투수를 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바로 와인드업을 하더니 공을 꽂아넣었다.
파앙-
"스트라이크!"
어우, 역시 얘 공은 진짜로 장난 아니다. 작년에도 타석에서 몇번 봤었지만, 역시나 내가 노릴만한 공은 아니었다.
그런걸 보면 산욱이는 어떻게 맞췃는지, 그리고 운선이는 어떻게 번트를 댔는지,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한숨을 내뱉자 투수가 와인드업을 하기 시작해다.
'어, 나 아직 준비 안됬는데...?'
그 덕분에 아직 준비하지 못한 나는 급하게 배트를 휘둘렀다.
부웅- 파앙-
"스트라잌 투!"
"어우..."
내가 휘두른 배트는 그대로 허공을 갈라버렸다. 혹시나 기대한 내가 바보지. 그리고 다음번도 헛스윙, 그렇게 시원하게 삼구 삼진을 당하면서 내려왔다.
계단으로 돌아오자 애들은 그럴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애잔하게, 혹은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얌마, 너네들이 직접 타격해봐. 진짜로 건들기도 힘들다니까. 게다가 나 투수라고.
분명 속으로는 몇가지 변명들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올것만 같았지만 일단 참았다. 어차피 내 타격실력이 형편없는건 내가 제일 잘 아니까. 슬픈 현실이다.
내가 타석에 들어오자 종빈이가 배트를 들고 걸어나갔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삼진. 그리고 그 다음 선민이도 삼진을 당하면서 2회 초는 매우 허무하게 끝났다.
그리고 2회말, 나는 마운드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첫 타자를 삼진, 유격수 땅볼, 투수 앞 땅볼로 처리하면서 가볍게 이닝을 끝냈다.
그런 방식으로 게임은 순식같에 흘러갔다. 예상 외의 투수전이었다.
우선 면홍중쪽의 세경이의 호투는 대부분이 예상한 결과였다. 그쪽도 그렇고, 그건 우리팀도 에상할수 있었다. 그런데 내 호투는 예상 외라고 생각되는지 상대편에서 다들 꽤나 놀라있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까 왜 다들 놀라있는거지? 나 이래뵈도 한때 너네 에이스였는데. 지금 날 얕보고 있는거야, 뭐야?
쨌든 0대 0, 둘다 피안타는 하나씩만 맞은 상태로 4회초가 시작되었다.
지금부터는 모두들 두번째 타석이다. 그리고 아마 더 익숙해졌을테니까, 진짜 승부는 이제 시작된거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동네야구 레벨이라서 익숙해지건, 아니던 상관 없을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지금 타석에는 2번타자 산욱이가 나와있었다. 산욱이는 배트를 길게 잡고서 투수를 노려봤다.
지금 우리 팀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된 안타를 만들만한 녀석은 산욱이 하나였다. 아까도 공을 맞춰냈으니까. 그리고 힘도 좋으니까, 잘만하면, 아주 잘만하면 혹시나 장타가 될수도 있었다.
잠시뒤, 투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와인드업을 하기 시작했다.
슈욱- 파앙-
"스트라이크!"
일단 초구는 몸쪽 꽉 찬공, 산욱이는 움찔 거리면서 배트를 휘두르지도 못했다. 그리고 이어서 들어온 두번째 공. 이번엔 배트가 돌아갔지만 공에는 닿지 않았다. 그러면서 투 스트라이크. 단 1분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얘가 못치면 우리 그냥 답 없는건데..."
하... 막막하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큰 점수차로 지면 괜히 의욕만 떨어지는 대 참사가 일어날텐데.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아무나 한번쯤은 치고 나가야 되는데. 지금 그게 너무 어렵다.
고작 동네야구팀에 꼭 에이스를 투입 해야되나...
내가 원망하는 표정으로 잠시 마스크를 벗은 감독을 째려봤다. 하지만 그는 뒷머리를 살짝 긁고는 다시 마스크를 쓸 뿐이었다.
"야, 수혁아."
내가 혼자서 한숨을 쉬자 성빈이가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
"뭐 임마."
"이거 계속 이대로 가면 애들 의욕 떨어질거 같은데. 너 이거 애들한테 재미 붙이려고 계획한거 아니었어?"
"맞지. 그거지. 그런데 지금 딱 보면 공도 못건드리고 있잖아. 여기서 큰 타구 하나만 나와주면 좋을..."
깡-
내가 한창 말하고 있을 즈음, 꽤나 큰 타구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하면서 운동장을 쳐다보자 배트는 바닥에서 구르고 있었다. 그리고 산욱이는 타구를 보면서 1루로 달려가고 있었다.
"야, 타구 어딨어?"
"저, 저기... 지금 중견수 뒤로.... 넘어갔다!"
중견수 뒤쪽으로 훌쩍 넘어가버린 타구, 그러면서 끝을 모르고 임시로 설치한 펜스까지 데굴데굴 굴러가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목겨한 즉시 운동장에 뛰어나왔다. 그리고 팔을 빙빙 돌리면서 천천히 뛰는 산욱이를 크게 불렀다.
"산욱아, 뛰어! 뛰어!"
산욱이는 나를 보더니 외야를 한번 쓱 쳐다봤다. 그리고 속도를 팍 높이면서 거의 전력질주로 2루를 밟고, 3루까지 밟아서 홈까지 내달리기 시작했다.
산욱이가 달리는 사이, 중견수는 펜스 근처에서 공을 주웠다. 그리고 외야쪽으로 살짝 넘어온 유격수에게 공을 던졌다. 그리고 홈으로 달리는 산욱이를 보고는 곧바로 홈으로 송구, 매우 깔끔하지는 않아도, 군더더기 없는 중계 플레이였다.
유격수가 홈으로 던지는 사이, 산욱이도 홈 플레이트에 거의 다다랐다. 그리고 포수가 공을 받았을 즈음
"세이프!"
라는 심판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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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첫 시합, 면홍중 야구부(6)2015.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