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12화
"호, 홈런이다!"
"그것도 그라운드 홈런..."
"대박! 대박!"
산욱이의 그라운드 홈런, 딱히 실책이라고 기록될만한 플레이도 없었다. 단지 수비 시프트가 잘못됬을뿐이었다.
아마 상대편이 정석적으로 타순을 짰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그렇다면 작전이 다른 방향이긴 해도 성공하긴 성공했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이제 리드를 잡고 있으니까 다들 긴장이 될테고, 그러면 몸이 굳어버릴수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나였다.
아무리 실력이 나쁘거나 프로를 목적으로 하는 야구부가 아니어도 야구부는 야구부다. 그렇다면 슬슬 내 공도 익숙해질수가 있을텐데, 거기다가 이제 이기고 있는 상황인지라 나에게 더욱더 많은 부담감도 몰려올테고, 게다가 난 부담가지면 잘 못하는데...
'하아... 미치겠네...'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온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냥 추울때 한번 부르르 떠는 정도가 아니라, 온몸에서 진동이 나듯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아씨, 망했다. 이대로면 투구는 커녕, 마운드 위에서 서있기도 힘들거 같다. 제길.
"하아..."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들자 애들은 끝내기라도 친듯이 기뻐하면서 산욱이를 맞이해주고 있었다. 산욱이는 그저 씨익 웃으면서 내가 이정도라고 떵떵 소리치고 있었다.
그리고 마운드를 쳐다보자 세경이가 멍한 표정으로 우리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 수비들이 실책을 해서 주자들을 보낸 경우는 많았을거다. 하지만 이렇게 장타를 맞아서 홈런, 그것도 그라운드 홈런을 맞는건 아마 처음이었을거다. 그러니까 당연히 멘탈이 흔들릴만 했다.
그리고 한번 흔들린 멘탈은 다시 진정되지 않았는지
"볼, 볼넷."
"악!"
볼넷과 데드볼로 무사 1, 2루가 만들어졌다.
"됐다!"
"여기서 점수 더 내고 넘어가자!"
"나이스!"
그러면서 흥분된 우리팀 덕아웃. 다들 한번 보니까 재밌어 하는거 같았다. 그래, 이게 바로 야구의 맛이라고.
나는 씨익 웃으면서 다시 그라운드를 쳐다봤다. 그런데 타석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 배트랑 헬멧을 건네는 호진이. 아, 내타석이구나.
"허허, 여기서 찬물 끼얹을거 같은데..."
아, 어떡하지. 지금 분위기를 제대로 탄 우리팀, 그리고 이번 타자는 나였다. 막막했다.
아무리 멘탈이 흔들리고 있어도 건드리기도 힘든 공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허무하게 아웃이 된다면 그쪽에서 그걸로 다시 분위기를 반전시킬지도 모른다.
"아냐, 그래도 뭔가 방법은 있을거야."
일단 그딴 고민은 집어치우고 타석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투수를 한번 쳐다봤다.
거친 숨을 내쉬면서 흔들리고 있는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에겐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나를 통해서 이 위기를 극복하려고 하는지
파앙-
"스트라이크!"
파앙-
"스트라이크 투!"
연달아 한가운데 공을 던지면서 나를 제대로 압박했다. 이거 기분이 조금 나쁜데...
'제길, 타자로서는 날 그냥 호구로 보는거냐?'
일단 추구는 몰라도 두개의 공이 연달아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이건 완전히 나를 물로 보고 있다는거다.
아, 이거 생각하면 할수록 열이 뻗친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그 공을 건드릴수 있는 타격 실력도 아니고, 그렇다고 번트를 대기에도 놈들은 전진수비를 해오고 있었다. 번트는 완전히 차단하겠다는 계획인것 같았다.
"타임."
나는 어떻게 할지 생각을 하기 위해서 잠시 타석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라운드를 살펴봤다.
'우선 내가 번트를 대면 주자는 3루까지 보낼수가 있어. 하지만 지금 저쪽은 전진 압박수비. 내가 공을 건드리지 못한다는건 저 녀석들도 잘 아니까 할수 있을거야.
그리고 만약 내가 번트를 대게 된다면 분위기는 푹 가라앉고, 추가득점은 힘들어진다. 반면에 투수는 잠시 한숨을 돌리면서 안정을 되찾을수도 있다.
만약 1루주자가 빠르다면 해볼만은 하겠지만 지금 1루에는 성빈이, 오른쪽 발목에 고질적 후유증이 있어서 빠르지는 않아. 그러면...'
"어이, 슬슬 재개하지?"
"에, 넵!"
한창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심판이 나를 불렀다. 별로 길게 있지는 않았지만, 지금 내가 이래서 좋을거는 하나 없었다. 시간이 지체되면 저쪽도 진정할수가 있을테니까.
나는 일단 타석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동안 투수를 쳐다보다가 그냥 번트 모션을 취했다. 그러자 더더욱 앞으로 다가오는 수비수들. 이건 나를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수비였다.
잠시뒤, 투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공을 던졌다. 아마 이번에도 가운데 공일거다. 어차피 번트를 댈거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아무도 모르고 있다. 지금 이렇게 순순히, 단순하게 넘어갈 생각은 없다.
슈욱-
드디어 손이랑 공이 떨어졌다. 그리고 앞으로 달려오는 1루수와 3루수, 나는 그 둘을 파악하고는 배트를 뒤로 다시 되돌렸다. 페이크 번트였다.
"뭐야?"
내가 배트를 다시 돌리자 옆에서 놀라는 양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수비수들도 잠시 움찔하면서 달려오던 걸음을 멈췄다.
혹시 모르니까. 보지 못한 몇달 사이에 내가 열심히 연습해서 건드릴 실력이 됬을수도 있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멈춘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런 실력은 안됬다. 그리고 씨익 웃으면서 배트를 살살 휘두르는 척을 하면서 다시 번트 자세로 바꾸었다. 한마디로 번트도 아니고, 버스터도 아닌 어중간한 대처였다.
원래 뭔가를 할때 어중간한건 안하느니만 못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달랐다. 그 어중간함이 철저히 계획된 것이었다면? 그리고 그 어중간함이 뚫고 들어갈만한 구멍이 있다면? 그럼 결과는 다르다.
터엉-
공은 배트와 그대로 부딪히면서 앞으로 또르를 굴러갔다. 그리고 당황하면서 뒤늦게 달려오기 시작하는 수비수들. 나는 죽어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루 베이스를 밟자마자 바로 옆에서 송구를 받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이프!"
그리고 이어지는 심판의 세이프, 올 세잎이였다.
"아자!"
"나이스!"
"잘했다!"
난 주먹을 높이 쥔채로 들어올리면서 소리쳤다. 그러자 우리편에서 들려오는 환호소리. 자, 이제 분위기는 최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분위기를 증명이라도 하는듯이 지금 투수의 얼굴은 완전히 정신줄을 놓아버린듯한 상태가 되어있었다.
결국 마운드 위로 올라가는 포수, 그러면서 내 옆으로 1루수가 다가왔다. 일단 보니까 내가 모르는 얼굴, 아마 야구부가 만들어지고 합류한 사람인거 같았다.
그애는 나를 잠시동안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어?"
"너가 그 예전에 에이스라면서?"
"그렇지."
"그런데 아까 그 작전은 뭐야?"
뭐야. 상대편한테 방금의 작전을 그렇게 대놓고 물어봐도 되는건가? 나는 잠깐 의심의 눈초리로 그애를 쳐다봤다.
하지만 앞으로 붙어봐야 친선경기로 붙을테고, 이 작전도 여러번 먹힐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면 뭐 말해줘도 딱히 상관은 없겠지.
"난 타격이 안좋아, 완전 못해. 그걸 나랑 야구했었던 몇몇 애들은 알고 있지. 그래서 내가 번트모션을 취할때 다들 극단적으로 전진수비를 펼쳤던거야.
그런데 내가 자시 배트를 뒤로 뺴자 너를 포함한 수비수들이 혹시 버스턴가 하면서 잠시 움찔했지. 나는 그떄 반동과, 프로급은 아닌 수비력을 이용해서 번트를 댄거야. 주력은 자신 있었고, 그 결과 세이프. 그거야."
"오..."
내 계획을 말하자 그애는 신기한건지 아니면 대단하게 생각하는건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면서 추임새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새 다시 내려간 포수. 그러면서 경기는 다시 재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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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첫 시합, 면홍중 야구부(7)2015.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