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13화
퍼억-
"으악!"
경기가 다시 진행되자마자 또 몸에 맞는 볼이 나왔다. 아마 본적도 없는 상황이어서 그런것 같아보였다. 그라운드 홈런을 맞고, 번트-버스터 자세를 번갈아가면서 번트를 댔으니까.
그러면서 밀어내기로 점수는 2대 0. 슬슬 우리팀이 승기를 잡아가는것 같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하지만 지금 나는 자연스럽게 안심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타자는 볼넷. 그러면서 점수는 3점차로 벌어졌다. 하지만 너무 분위기를 탄걸까, 슬슬 공략해볼만하다는 생각이 인식됐는지 다음 세 타자들 모두 짠듯이 배트를 휘두르면서 삼연속 삼진. 그러면서 분위기는 다시 평행상태가 되었다.
이정도면 됐다고 만족하면서 돌아오자 애들은 막 떠오르던 분위기가 삼진으로 인해 가라앉은듯 해보였다. 그래도 다들 의욕적인 모습으로 글러브를 들고는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벌써 알았네."
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모자를 쓰고 글러브를 왼손에 낀 다음에 마운드 위로 올라갔다.
*
"후우, 그라운드 홈런에 요상한 번트까지... 확실히 나도 어이가 없었긴 없었다만, 그래도 세경이가 이렇게까지 흔들리는 애가 아닐텐데..."
4회초가 끝나고 4회말로 넘어가는 잠깐의 시간. 심판이자 면홍고 감독은 힘없이 돌아가는 세경을 유심히 지켜봤다.
아직 알게된지 얼마 안되었지만 그가 아는 세경은 매우 우직하고, 듬직한 이미지였다. 그리고 여태까지 몇몇 시합들을 봤을때, 아무리 위기 상황이 되어도 스스로는 잘 무너지지 않고, 꾸역꾸역 막아냈었다. 물론 중학교 야구부를 상대로.
그랬던 세경이 오늘은 조금 이상했다. 그가 본 상대편은 실력만 봐서는 수비도 제대로 안되는 엉성한 동네 야구팀이었다.
그런데 다른 경기와는 다르게 세경이 너무 흔들리고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런걸까? 혼자서 곰곰히 생각하던 감독은 뭔가가 떠올랐는지 세경을 쳐다봤다.
'설마?'
혹시 그것 때문인가? 그러면서 감독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
'내 공이 동네야구에 공략당할 공이야? 아냐, 내 공은 강한데, 강한데. 도대체 왜 그런거야?'
4회초를 힘들게 마무리하고 내련 세경, 그리고 게단에 털썩 주저앉아서 혼자 중얼거리면서 생각했다.
분명 그의 공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늘은 오히려 평상시보다 훨씬 더 좋은 공이었다. 분명히 문제가 될만한게 없었다.
그런데 동네야구, 실력도 별로 안좋아보였던 녀석에게 홈런을 맞았다. 그것도 그라운드 홈런으로.
"후우..."
세경은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공이 원래 약햇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원래 수비들은 좀 그랬다고 치자, 그래도 그라운드 홈런... 그건 좀 아니잖아?'
세경은 고개를 숙인채로 다른 선수들을 째려봤다. 물론 그들도 지금 표정은 좋지 않았다. 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세경에게 미안한하는 눈치는 없어보였다. 세경은 어이가 없었다.
'하, 이제 이런건 일상이다 이거냐?'
그 순간 세경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다른 선수들을 한번 노려봤다.
'그럼 너네들도 어디 한번 당해봐라.'
*
4회초가 끝나고 4회말. 나는 마운드 위에서 첫 타자가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첫 타자는 2번타자부터 시작한다. 득점을 내기에는 딱 좋은 타순이었다. 그만큼 나는 더욱 신중한 표정으로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잠시뒤, 타자가 타석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배트를 한두번 휘두르고는 자세를 잡았다.
타자가 자세를 잡자 종빈이가 사인을 보냈다. 이번 사인은 바깥쪽 직구. 비교적 부담이 덜되는 코스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공을 던졌다.
슈욱- 파앙-
"스트라이크!"
공은 종빈이가 예상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가만히 서있는 타자. 건드려봤자 좋은 타구는 나올것 같지 않아보였나보다.
타자가 다시 자세를 잡는 사이에 종빈이가 공을 보내왔다. 이어서 곧바로 사인을 보내왔다.
'이번에도 바깥쪽 직구로.'
'똑같은 공?'
나는 종빈이의 사인에 잠깐 움찔했다. 진짜 경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나 마찬가진데, 그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 공이 그렇게 압도적인 것도 아닌데.
'아니, 다른데로 하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내 공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라 전략적으로도 아닌거 같았다. 녀석들은 야구부다. 연속으로 같은 코스의 공이 오면 충분히 칠수도 있었다.
거기다가 지금 타자는 2번타자. 바로 뒤부터 클린업이다. 위험하다. 어떻게든 잡고 가는게 좋다.
"타임!"
내가 고개를 흔들자 종빈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운드 위로 뛰어왔다. 아니, 뭐 그렇다고 마운드 위로 올라올거 까지는 없을텐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거야?
내가 의아해하는 사이에 종빈이는 내 앞까지 다가왔다. 그리고는 포수 미트로 입을 가린채로 나에게 얼굴을 들이댔다.
"야, 수혁아. 내가 덕아웃에서 말하는걸 깜빡했다."
"뭔데?"
"이제까지 볼배합 기억나냐?"
종빈이의 질문에 나는 잠시 그떄를 떠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우선 몸쪽 하나, 바깥쪽 하나, 그다음 아래... 여러군데를 왔다갔다 했었네?"
"그렇지. 그래서 이번에는 패턴을 바꾸려고. 안되면 원래 패턴으로 돌아가고."
"그래서 방금 똑같은 코스를 요구했다?"
아, 그러면 이제 이해가 간다. 아까는 현란하게 미트를 옮겼으니까 이제는 방식을 바꾸겠다는 작전이네. 그리고 내 제구가 정확한건 아니니까 같은 코스로 요구하면 위치는 조금씩 다를테고.
간단하게 초반엔 위치를 확연히 다르게 했다면 이제부턴 미묘하게 다른 코스로 가겠다는 거네.
내가 이해한듯 고개를 끄덕이자 종빈이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 더 할말이 있었는지 내려가지 않고 있었다.
"아, 그리고 지금부터 상황 봐서 그거 던질거야. 사인은 손가락 두개로 브이자를 만들거야. 알겠어?"
"오케이. 그럼 슬슬 시작하자. 심판 눈치보인다."
"그럼 이번공은 아까 그대로."
"오케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종빈이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쪼그려 앉아서 미트를 내밀었다. 나는 타자를 한번 쳐다보고는 공을 던졌다.
부웅- 파앙-
"스트라이크!"
이번 공도 스트라이크, 내가 보기엔 약간 빠진 볼이었지만 타자가 배트를 휘둘렀다.
그런데 배트를 휘두른 쪽이 안쪽이었다. 그러니까 적어도 저 타자에게는 패턴이 읽혔다는 소리였었다. 하마터면 큰걸 맞을뻔했다.
"헐, 얘는 어떻게 저런걸 에상했대?"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종빈이를 향했다. 그리고 잘했다는 의미로 엄지손가락을 올려세웠다.
그리고 한번 더 바깥쪽 직구로 헛스윙 삼진, 그리고 후속 타자들도 깔끔하게 처리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후우... 이제 절반은 막았다."
"나이스 피칭, 이대로 쭉 가자고."
내가 내려오는 도중, 종빈이가 나랑 글러브를 서로 마주치면서 먼저 계단으로 돌아갔다. 나도 돌아가서 계단에 걸터앉은 다음에 안경을 잠시 벗고 땀을 닦았다. 그리고 물 한모금을 마시려는 순간, 건너편 계단에 몇몇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뭐지?"
일단 선수들과 떨어져 앉은것과 옷차림으로 봐서는 선수는 아닌것 같았다. 뭔가 하면서 안경을 써보니까 왠 몇몇 여자애들이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있는게 보였다.
"왜 앉아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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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첫 시합, 면홍중 야구부(8)2015.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