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14화
"왜 앉아있지?"
"뭐가?"
내가 혼자서 중얼거리는걸 들었는지 성빈이가 내 옆으로 와서 내 시선을 따라 쳐다봤다. 그리고 잠시뒤에 눈이 번쩍 뜨이면서 갑자기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야, 저기 왼쪽에 여자애 엄청 예쁜데?"
"야, 우리 지금 경기하러..."
"영훈아 넌 좀 닥치고. 어디?"
"아니, 왜 맨날 나보고 닥치래..."
성빈이의 한마디에 가만히 앉아서 쉬고있던 애들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지금 타석으로 가는 산욱이, 그리고 딱히 별 관심이 없는 영훈이랑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저기 반대편 계단에 앉아있는 여자애들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호진이 너는 안그럴줄 알았는데, 너도 남자구나.
나는 별 관심이 없는지라 다시 그라운드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투수가 와인드업을 하고는 미트로 공을 던졌다.
파앙-
여전히 압도적인 구속과 구위. 그런데 여태까지와는 달리 포수의 미트가 존에서 멀리 떨어져있었다. 그냥 폭투인가 하고서 넘기자 또 똑같은 코스로 강력하게 들어오는 공. 뭔가가 이상했다.
내 예감대로 포수도 뭔가를 느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운드 위로 올라가서 몇마디를 나누고는 다시 내려왔다. 아마 잠시 팔에 힘이 좀 많이 들어간거 같았다.
파앙-
"볼!"
하지만 투수의 제구는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공은 아까보다 더 바깥쪽으로 빠지는것 같았다. 그러면서 산욱이는 볼넷으로 가볍게 출루했다.
그때, 감독이 마스크를 벗고는 포수에게 뭐라 말하기 시작했다. 아마 지금부터 슬슬 작전을 지시하려는 모양이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집중되는 시선, 그리고 무슨 작전일까 하면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지금 상황에서 나올만한 작전은 투수교체 말고는 딱히 없는거 같은데...'
확실히 지금 딱히 지시할만한 작전은 별로 없었다. 다음 타자가 그리 위협적인 것도 아니고, 주자가 빠른것도 아니다. 지금 유일하게 바꿀만한 점이라면 제구가 불안한 투수였다.
야구경기에서는 투수가 제구가 안되서 경기를 말아먹고 강판당하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그만큼 제구는 투수의 가장 기본적이자 필요한 덕목이라고 할수가 있다.
그리고 내 예상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마운드 위에 서있던 투수는 들어가고 유격수 자리에 있던 선수가 마운드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한번 더 자리를 바꾸는 몇몇 선수들, 그리고 게단에 앉아있던 한 선수가 1루로 걸어나왔다.
"어, 성우네."
성우가 1루에 들어왔다. 그리고 살짝 허세를 부리면서 마운드 위에 있는 투수에게 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아마 무사히 막고 내려오면 자신이 홈런하나 쳐주겠다는 내용일거다. 허세가 조금 있는 스타일이니까.
남자라면 보통 그정도 허세는 부리니까 딱히 상관은 없었다. 단지 나는 성우의 힘이 얼마나 센지 알고 있으니까 오히려 살짝 긴장이 되고 있었다. 배트에 맞으면 못해야 장타가 될 정도로 힘은 진퉁이니까.
"야, 대박. 우리동네랑 완전히 달라!"
"야, 거기 있는애들 말도 하지마."
"와..."
내가 경기를 유심히 지켜보는 도중에도 애들은 반대편에 여자애들을 보면서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
확실히 우리동네는 공부만 하는 동네고, 여기는 툭 까놓고 말하자면 날라리가 많은 동네니까. 여자애들이 확실히 꾸미는데에 더 신경을 쓰기는 하지.
그나저나 슬슬 그만볼법도 한데, 얼마나 외로웠으면 그럴까 하는 생각에 말리려다가 그만 두었다.
그래, 어차피 솔로인데 구경이라도 실컷 해라.
'그런데 어떻게 생겼길래 그러는건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도 다시 그라운드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언제 타석으로 간건지 운선이가 타석에 서있었다.
이어서 마운드로 눈을 돌리자 아까 그 유격수에 있던 선수가 서있었다. 그는 잠시동안 아무런 움직임도 없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곧바로 투구를 하기 시작했다.
슈욱- 퍼엉-
"스트라이크!"
"언더핸드?"
이번 투수는 공을 아래서부터 던졌다. 언더핸드라, 오버핸드 쓰리쿼터랑 투구 궤적이 정반대라서 적응하기가 힘들다. 거기다가 언더핸드 투수는 희귀하니까 적응하기가 더 힘들다.
그것뿐이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언더핸드는 볼 끝이 더럽다. 쉽게 설명하자면 공이 타자 근처에 왔을 즈음 살짝씩 휘어서 들어오기 때문에 맞추기가 더욱 힘들다.
"와... 이 인간 완전히 죽이려고 하나보네."
나는 자연스럽게 욕이 나오려는걸 하려다가 참았다.
며칠전에 여기 동네 친구에게서 야구부가 맨날 진다는 소리는 들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딴 동네야구 팀을 상대로 이기려고 하다니. 이건 좀 아닌거 같았다.
이겨야 본전인 게임에 그렇게 목을 매다니, 이건 좀 아닌거 같았다. 이겨봤자 별로 기분좋지도 않을텐데.
퍼엉-
"스트라이크!"
내가 생각하는 사이에 두번째 공이 들어왔다. 이번 공도 스트라이크, 운선이는 적응을 못하겠는지 가만히 서있었다. 그리고
퍼엉-
"스트라이크, 아웃!"
그대로 삼진을 당하면서 힘없이 물러났다.
나는 일어나서 들어오는 운선이를 맞이했다. 그리고 아까부터 가장 열심히 보던 성빈이를 불렀다.
"야, 네 타석이야."
"아, 그래?"
성빈이는 내 말에 헬멧을 쓰고서 배트를 들고 급하게 달려나갔다. 그다음 자세를 잡고는 투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투수는 성빈이가 들어오자 곧바로 와인드업을 하고 공을 던졌다.
파앙-
"스트라이크!"
결과는 스트라이크, 한가운데로 들어오는 공이었다.
성빈이는 투수의 투구폼을 보고는 잠시 놀라는 눈치였다. 그럴만한데 언더핸드니까. 거기다가 우리 동네에는 언더핸드 투수가 없는걸로 알고 있다. 그러니까 성빈이한테는 더더욱 낯설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성빈이는 무슨 자신감인지 잠시 타석 밖으로 나오더니 배트를 몇번 휘두르고는 다시 들어왔다.
성빈이가 다시 들어오자 투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 와인드업을 하고 곧바로 공을 던졌다.
깡-
성빈이의 배트가 돌아가면서 시원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공은 빠르게 굴러가면서 유격수와 3루수 사이를 꿰뚫었다. 성빈이는 그 사이에 1루 베이스를 밟았다.
"헐, 대박."
나는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평상시에는 내가 공을 던지면 잘 맞추지 못했었다. 그리고 언더핸드의 공을 치는걸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안타로 만들수가 있는지.
"수혁아, 너 나가야 되는데."
"아, 맞다."
영훈이가 나에게 헬멧을 건넸다. 아, 맞다. 성빈이의 안타에 놀라서 내 타석이라는 것을 잠깐 까먹고 있었다.
나는 영훈이에게 헬멧을 받아서 머리에 쓴 다음 내 배트를 든 다음에 타석으로 걸어갔다. 그다음 자세를 잡고 투수를 쳐다봤다.
'한번 보면 알겠지.'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 다음에 투수를 쳐다봤다. 그러자 투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와인드업을 하기 시작했다.
퍼엉-
"스트라이크!"
'어?'
뭔가가 이상했다. 분명 밖에서 봤을때는 꽤 빨라보였는데, 타석에 서서 보니까 생각보다 많이 느렸다. 아무리 언드핸드라지만 느려도 너무 느렸다. 뭔가가 이상했다.
나는 포수 미트와 투수를 번갈아 쳐다봤다. 제구는 바깥쪽을 아슬아슬하게 걸칠 정도로 매우 좋았다. 그런데 구속이 너무 낮았다. 타격을 못하는 내가 봐도 쉽게 공략할수 있을것만 같았다.
퍼엉-
"스트라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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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첫 시합, 면홍중 야구부(9)2015.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