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리 동네 야구팀-15화 (15/255)

우리 동네 야구팀-15화

내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에 두번째 공이 들어왔다. 타자가 생각하는 사이에 던지다니. 매너도 없네.

여튼 난 다시 한번 포수미트를 쳐다봤다. 이번에는 몸쪽으로 깊게 들어온 미트. 보니까 충분히 스트라이크라고 할만큼 안쪽으로 들어와 있었다.

'확실히 제구는 좋네.'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다시 투수를 쳐다봤다. 그리고 투수가 3구째를 던지는 순간, 나도 배트를 빠르게 휘둘렀다.

깡-

공은 배트에 제대로 맞고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나는 날아가는 타구를 쳐다보면서 1루를 향해서 전력질주하기 시작했다.

공은 좌익수의 키를 넘어가는듯 보였다. 그리고 떠있는 높이도 꽤나 높았었다. 이대로면 좌익수에게 잡힐 위험도 있지만, 일단 나는 죽어라 달렸다. 어차피 나는 잡히면 무조건 아웃이니까.

하지만 점차 떨어지가만 하는 공과는 달리 좌익수는 뒤로 뛰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공은 거의 수직으로 낙하고 있었다.

뒤늦게 좌익수가 다시 앞으로 전진하려 했지만 상황은 이미 늦었다.

파악-

결국 공은 좌익수 앞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가 1루 베이스를 밟았다.

나는 1루 베이스를 밟자마자 2루를 쳐다봤다. 지금 2루에는 베이스 커버를 들어온 2루수만 보이고 있었다. 그렇다는건 지금 성빈이는 3루에 있다는거다.

성빈이가 3루에 있다면 2루는 비어있는 상황, 내가 뛰어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판단이 끝나자마자 나는 곧바로 2루를 향해서 전력으로 질주했다.

"으자자자잣!"

내가 소리치면서 빠르게 달리자 좌익수는 당황하면서 2루로 공을 던졌다. 하지만 송구가 조금 빗나가면서 베이스 커버를 들어왔던 2루수가 조금 옆으로 이동하면서 잡아냈다. 그 사이에 나는 속도를 줄이면서 세이프. 여유롭게 들어올수 있었다.

"됐어!"

나는 생애 처음으로 번트를 제외하고 안타를 쳤다는 사실에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이제 한번 더 득점찬스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더욱더 세게 주먹을 쥐었다.

"타임!"

내가 한창 좋아하고 있을 즈음, 포수가 타임을 외치고는 마운드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몇마디 얘기를 나누더니 투수는 계단으로 돌아가고 다른 선수가 마운드로 올라왔다.

방금 올라온 투수는 몇번 공을 던져보고는 된건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언더에 이어서 좌완투수네. 이인간 진짜 전력으로 하려는거야? 쪽팔리지도 않나...'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투수를 쳐다봤다. 그리고 타석에는 종빈이가 서있었다.

종빈이는 배트를 한번 휘두르고는 자세를 잡았다. 투수는 숨을 한번 내쉬고는 와인드업을 하고 공을 미트로 꽂아넣었다.

파앙-

"스트라이크!"

초구는 스트라이크, 일단 미트가 거의 움직이지 않은걸 봐서 제구는 좋아보였다.

'그런데 왜 우리한테 자꾸 털리는거야?'

진짜 궁금하다. 제구도 좋고, 투구폼도 안정이 되어있는데, 왜 자꾸 평범한 학생들한테 맞아나가냐는거지. 참 이해가 안된다.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좌우로 살짝 저었다. 그리고 다시 투수를 쳐다보자 종빈이의 배트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까앙-

"위에!"

공이 맞는 소리가 들려오자 투수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나는 자연스럽게 투수의 손가락을 따라서 공중에 붕 떠있는 타구를 쳐다봤다.

공은 내야를 거쳐서 외야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슬슬 떨어지는 걸로 봐서 홈런까지는 않을것 같아보였다.

중견수는 타구가 자기 정면으로 오는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안전하게 잡아냈다. 그리고 동시에 성빈이가 홈으로 향해서 뛰기 시작했다.

그에 덩달아서 나도 같이 3루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둘다 여유있게 세이프. 그러면서 점수는 4대 0이 되었다.

"잘했어!"

나는 3루 베이스를 밟은채로 둘을 칭찬해줬다. 보기엔 쉬워 보이지만, 동네 야구에서 이런 플레이는 서로의 호흡이 맞지 않으면 어려웠다. 역시 쌍둥이 형제인지라 호흡은 잘 맞는거 같다.

내 칭찬에 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계단으로 돌아갔다. 나는 같이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투수를 쳐다봤다. 하지만 투수는 표정이 별로 변한게 없어보였다. 아마 이건 원래 줄 점수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나보다.

그뒤로 다음 타자들이 땅볼과 삼진으로 연달아서 아웃 처리되면서 주자 3루 상태에서 이닝 종료. 하지만 우리팀은 한점을 더 추가하면서 더 달아날수가 있었다. 뭔가 조금 아쉬웠지만, 그정도면 충분했다. 내가 막아내면 되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계단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글러브를 챙겨든 다음에 바로 마운드로 올라갔다. 그리고 캐치볼을 하면서 약간 식은 어깨를 다시 달구었다.

잠시뒤, 타자가 천천히 타석 안으로 들어오고는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심판이 경기를 진행시켰다.

'몸쪽 깊숙히 한번 찔러보자.'

경기가 재개되자 종빈이가 곧바로 사인을 보내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종빈이가 요구한 곳으로 공을 던졌다.

슈욱- 파앙-

"스트라이크!"

"읏!"

이번에도 요구한 대로 잘 들어간 공, 그런데 4회까지랑은 다르게 조금 힘에 부쳤다. 아마 슬슬 나도 체력에 한계가 오는거 같아보였다.

그러면서 다시 발판으로 걸어가려는 순간

"읏!"

다리에서 순간적으로 통증이 느껴지더니 계속해서 느껴졌다. 맞거나 찔린 통증보다는 뭔가로 꾹 누르는듯한, 혹은 근욱이 놀랐을때 느껴지는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왼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뭔가가 이상했다.

"후욱-"

깊은 숨을 내쉬면서 진정을 시켜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다리는 여전히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근육이 놀라면서 경련이 일어난거 같다.

"아씨... 왜 하필 이럴때..."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혀를 쯧 찼다가 왼다리를 살짝 들고서 탈탈 털어봤다. 그리고는 잠시 타임을 외쳤다.

"타임!"

내가 타임을 외치자 타자가 잠시 타석 바깥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종빈이에게 올라오라는 제스처를 취하자 종빈이가 마운드 위로 올라왔다.

"왜 그래?"

"그게..."

나는 말끝을 흐리면서 뒤를 한번 돌아봤다. 원래 잠시동안 투수를 교체하려고 했지만 마땅히 교체할 애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말하면 안될거 같고.... 결국 난 대충 둘러댔다.

"야, 내가 슬슬 체력이 떨어진거 같아."

"너가?"

"내가 처음에 너무 힘을 많이쓴거 같아. 아무래도 정식 야구부고 하다 보니까 조금 세게 던졌거든."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혹시 다리 상태를 알아볼까봐 걱정했다. 종빈이는 살짝 걱정되는 표정은 지었지만 다리쪽은 쳐다보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지친것도 사실이다. 지금까지 약 70구를 던졌으니까. 아무리 야구를 많이 했다고 치더라도 프로가 아닌 이상, 아니 프로야구에서도 선발투수가 아닌 이상 100구를 던지기는 매우 힘든거였다.

"그래서, 앞으로 뭐 어떡하자고. 투수 바꾸자고?"

"아니, 그거 쓰자."

"그거? 벌써? 야, 아직 5횐데? 6회쯤부터 쓸거 아니었어?"

"아니, 지금부터 체력때문에 세게 못던져. 그럼 구속이 줄어들테고, 잡아먹히기 쉬운 공이 되버릴 거라고."

종빈이는 내 말에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자기가 4회에 상황 봐서 던진다는 말은 벌써 다 까먹은거야?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무릎에 손을 얹고서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왼쪽 허벅지를 살살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고개를 올리니까 종빈이는 그제서야 꽤나 심각한 상황인거를 알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야구를 보면 선발투수들이 100개정도 던지니까 100개를 던지기 쉬운것처럼 아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제대로 던진다면 실제로는 10개만 던져도 많은 사람들이 지치기 마련이다.

그만큼 투수는 많은 체력을 요구하는 포지션이며, 매우 힌든 포지션이다. 꾸준한 연습과 운동신경,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절대로 불가능한 포지션이었다.

그리고 종빈이는 그걸 알고 있는 녀석이기 때문에 아무런 말 없이 나를 살피고 있었다.

사실 지금 체력보다 더 심한 문제는 다리 상태인데 말이지. 그리고 지금 그걸 말 못하고 있다보니까 시간이 질질 끌어지는 거고.

하지만 지금 종빈이에게 이 말을 할수가 없었다. 나를 제외하면 마운드 위에 올라올 사람이 없는데, 굳이 애들을 걱정시킬 필요는 없었다.

물론 투수를 바꾸고 질수는 있었지만, 지금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역전을 당한다면 기분이 나쁠것 같았다.

분명 처음엔 그냥 즐기자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기고 있으니까 또 지기 싫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승부욕이 약한 나도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른 애들도 아마 나랑 같은 생각일거다. 더 정확히 짚자면 이대로 유지만 하면 이길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읏차."

더이상 시간을 끌수 없을거 같아서 허리를 다시 일으켰다. 그리고 조금 걱정하는듯한 얼굴의 종빈이가 보였다.

"그러니까 앞으로 그거도 좀 섞어서 던지자고 오케이?"

나는 살짝 웃으면서 그립을 바꾸어 잡았다. 하지만 아직도 이상한 종빈이의 표정, 그리고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었다.

"너... 안되겠다."

────────────────────────────────────

16화-첫 시합, 면홍중 야구부(10)2015.02.0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