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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야구팀-16화 (16/255)

우리 동네 야구팀-16화

"너... 안되겠다."

"뭐, 뭐가?"

"영훈아!"

종빈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외야에 서있던 영훈이를 불렀다. 나는 설마 지금 상태를 들킨건가 하면서 종빈이를 쳐다봤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종빈이의 시선을 내 왼다리를 향해있었다.

"이번회만, 아니 한 5분에서 10분만 잠깐 외야에서 쉬고 있어봐. 그리고 좀 나아지면 그거랑 섞어서 던지자고 그럼 됐지?"

아, 들켰다. 확실하게 들켰다. 결국 난 어쩔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영훈이가 오자 옆으로 자리를 비켜줬다.

"자, 한번 살살 던져봐."

"수혁아, 근데 왜 갑자기 내가 던져?"

영훈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하긴, 뭐 갑자기 에이스를 내리고 올라오면 그럴만 하지. 나는 간단히 설명했다.

"다리 상태가 좀 그래."

"아..."

내말에 영훈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종빈이가 던져준 공을 받았다. 그리고 왼다리를 들었다가 앞으로 살짝 뻗으면서 가볍게 던졌다.

펑-

"..."

일단 제구는 그닥 니쁘지 않았다. 원래 제구가 나쁜 녀석은 아니니까.

문제는 구속, 구속이었다. 아마 60km도 안될듯한 직구의 스피드. 최근에 투구연습장에서 본 초등학생이랑 비슷한거 같았다. 그때 그애가 55에서 62정도 찍었으니까 그쯤 하겠네.

예상외로 실력이 엄청 처지지만 그래도 지금 우리의 상대는 야구부. 이정도 공은 충분히 칠수 있을거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영훈이도 아는지 막 올라왔을때 보다는 조금 자신감이 줄어든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수혁아, 진짜 내가 던져도 되는거야? 그러다가 지면 어떡해? 나 또 욕먹는거 아냐?"

"어차피 욕은 하도 많이들어서 익숙하잖아. 그리고 너 아니면 투수 경험있는 애들 없어. 성빈이랑 호진이는 수비를 해야되고, 넌 종빈이 아니면 못던지잖아."

지금 우리 팀에서 나를 제외하고는 투수로 나올만한 녀석은 얘 하나 뿐이었다. 아무리 구속이 낮고, 공의 위력이 없어도 나올만한 애는 영훈이 뿐이었다.

종빈이는 포수고, 얘 아니면 포수 경험이 있고 볼수 있는 사람은 나 혼자. 하지만 난 지금 다리 상태가 그닥이라서 불가능. 산욱이는 핵폭탄이라고 불릴만큼 제구가 엉망이다.

그다음 성빈이는 아예 투구폼 자체가 갖춰저 있지 않다. 애초에 타자였으니까. 호진이는 만약 투수가 된다고 치더라도 지금은 올릴수가 없다. 얘가 아니면 우리팀 수비는 망하니까.

그리고 선민이, 상민이, 운선이는 딱히 투수를 한 경험이 없을거다. 원래 야구를 그렇게 많이하는 애들은 아닐테니까.

상민이는 알게된지 며칠 안돼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투수를 좀 할줄 안다면 지금 바꾸는 모습을 보고 바로 달려왔을거다.

"하... 이번회만 어떻게든 좀 막아줘. 그뒤는 내가 막을테니까."

"알겠어."

내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하는데도 영훈이는 밝에 웃어보였다. 하여튼, 너무 순수하단말야. 그러면서 난 외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내가 우익수 자리에 도착하자 경기는 대시 재개되었다. 그런데 외야에 있다 보니까 상황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가만히 지켜보던 와중

깡-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앞으로 공이 천천히 굴러왔다. 시작하자마자 안타를 맞은 것이었다.

"후우... 역시 그럼 그렇지..."

나는 공을 2루수에게 던져주고는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역시, 그때 내가 내려오는게 아니었다.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막아내고 공격시간을 최대한 끌면서 다리를 풀어주는게 맞는 방법인거 같았는데.

하지만 혹시 모른다. 영훈이의 공이 다른 타자들에게는 충분히 먹힐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 기대는 영훈이나 연속으로 볼넷을 내주면서 와장장 깨져버렸다.

"에라이..."

혹시나 막아줄까 하고서 기대한게 잘못이다.

*

"어어..."

첫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한 영훈. 그리고 그는 지금 처음보다 많이 주눅이 들어있었다.

그래도 자신의 제구면 어느정도는 막을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대로 안타를 맞아버리니까 허무한 느낌도 들면서 동시에 자기는 안될거라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영훈의 말대로 지금 그의 실력으로는 전혀 막을수 있는 타선이 아니었다. 단지 수혁의 실력이 동네야구 에이스 혹은 그 이상이었을 뿐이었고, 실력이 좋은 야구붑가 아니었기 때문에 여태까지 잘 막아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영훈의 공도 그렇게까지 막 칠수 있는 공은 아니었다. 오히려 투심이나 커터를 가지고 있었다면 잠깐정도는 막아줄수 있었을거다. 제구는 괜찮으니까.

그런데 영훈은 지근 자기 자신을 스스로 깍아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패배의식을 쌓고 있었다. 자신이 한단계 더 올라가기를 거부하고 멍청한 짓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수혁도 자기 자신을 자주 깍아내렸다. 하지만 그 위에 다시 자신감을 쌓거나, 겸손을 쌓았었다. 영훈처럼 패배의식을 쌓는게 아니었다.

겉은 하는 행동은 비슷해 보이지만 속은 확실히 다른 두사람, 그게 바로 지금 이 경기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

"하... 미치겠네."

마운드랑 멀리 떨어져 있는 외야임에도 영훈이의 모습이 보이고 상상이 되었다. 아마 지금쯕 주눅든 표정으로 축 처져 있겠지.

지금 이대로면 영훈이는 무조건 맞는다. 크게 맞고 만다. 지금 나오는 타자가 시헌이니까. 컨텍과 파워를 동시에 갖춘 녀석이니까.

지금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여기서 안타 하나만 나오면 최소 2득점, 그리고 조금 큰것만 나와도 턱 밑이나 다 따라잡을수도 있다.

"아오..."

나는 내 왼다리를 주무르면서 한번 쳐다봤다. 왜 하필 지금 문제가 생긴건지. 지금만큼은 내 다리가 제일 원망스러웠다.

물론 계속해서 던질수는 있겟지만, 그렇다가는 아마 많이 맞아나갈 거다. 지금 다리 상태면 전력으로 던지는건 조금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공을 상체로만 던지게 될테고, 그러면 구속이 더 떨어지는건 확실하다.

물론 옛날에는 거의 상체로 던져서 어색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게 던진다면 공의 위력이 약해진다.

그렇다고 지금 멘탈이 붕괴되버린 영훈이를 그대로 둘수도 없는 상황, 결국 나는 마운드로 걸어갔다.

내가 마운드로 올라오자 영훈이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종빈이가 뒤늦게 마운드로 다시 올라왔다.

"어, 수혁아. 왜 왔어?"

"좀 나아졌다. 바꾸자. 털리더라도 내가 털릴게."

"야, 다리는?"

"하체에 힘을 덜 실으면 던질수 있어."

내 말에 종빈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내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는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 너무 무리하지 말고. 그거 쓴다."

"오케이, 그리고 영훈아. 수고했다."

나는 외야로 영훈이의 등을 두드려주고는 투구판 앞에 발을 대었다. 그리고 종빈이가 돌아가서 미트를 내밀자 가볍게 던지기 시작했다.

슉- 파앙-

다행히 하체를 덜쓰고 조금 살살 던져도 공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거 같았다. 그렇게 몇번을 던지고 나자 다음 타자가 들어왔다.

이번 타자는 아까 본대로 시헌이였다. 아마 이번에는 내 공을 제대로 노리고 들어올거다.

하지만 야구부 애들이 나에 대해서 모르는 점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점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점을 이용하려면 일단 어느정도 카운트를 잡아야만 했다. 나는 살짝 숨을 내뱉은 다음에 직구 그립을 잡았다. 그다음 종빈이가 요구한 곳으로 공을 던졌다.

슉- 파앙-

"스트라이크!"

일단 초구는 몸쪽 스트라이크, 종빈이가 요구한 곳으로 잘 들어갔다. 힘을 빼니까 제구가 더 잘 잡히는것 같았다.

공이 잘 들어간 탓인지 시헌이의 배트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혹시 배트가 못나간건가 싶었지만, 시헌이의 눈빛을 보니까 그건 아닌듯 했다. 아마 노리는 코스가 아닌것 같았다.

나는 공을 받은 다음에 곧바로 두번째 공을 던졌다. 일단 빠른 템포로 시헌이를 밀어 붙일 생각이었다.

슉- 파앙-

"스트라이크!"

두번째는 아래쪽 스트라이크. 이번엔 방망이가 시원하게 돌아갔다. 역시, 파워가 있는 녀석이다 보니까 지금 큰것을 노리는것 같았다.

'오케이, 일단 아래쪽을 노리고 있는건 잘 알겠고...'

이제 시헌이가 노리는 코스, 그리고 카운트까지. 그것을 쓸 준비는 모두 다 끝났다. 잠깐 그걸 쓰지 않고 시헌이를 잡아볼 생각을 했지만, 시헌이는그런 수작으로 절대로 당하지 않을 녀석이다. 아마 계속 커트할거다.

'그거, 낮게. 존에서 아예 빠지게.'

종빈이가 잠깐 망설이다가 사인을 보내왔다. 역시, 얘도 나랑 같은 생각이구나.

나는 옅게 미소를 지으면서 그립을 바꿔쥐었다. 그리고 잠시 시헌이를 쳐다보고는 왼다리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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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첫 시합, 면홍중 야구부(11)2015.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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