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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야구팀-17화 (17/255)

우리 동네 야구팀-17화

슈욱-

공을 놓는순간 손 끝에서 좋은 감각이 느껴졌다. 제대로 긁혔다는 느낌. 그러면서 공은 밋밋한 직구처럼 날아갔다.

시헌이는 내 손에서 공이 떠나자 배트를 휘둘렀다. 아마 공을 보고는 실투라고 생각했을거다. 그리고 공이 홈플레이트에 거의 다왔을 즈음

휘익-

공이 45도 대각선으로 휘면서 뚝 떨어졌다.

시헌이는 갑자기 공이 떨어지자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배트에 맞춰보려고 했지만 이미 배트는 너무 많이 나간상황. 결국 헛스윙을 하고 말았다.

"오케이!"

나는 헛스윙이 나오자 저절로 주먹이 꽉 쥐어지면서 환호성이 나왔다.

최근게 별로 던진적도 없고, 아직 완벽하게 익히지 않아서 잘 안될수도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 잘 휘어줬다. 그래서 기쁨이 두배인것 같았다.

시헌이는 포수 미트를 보면서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심판의 삼진 콜이 나오자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계단으로 돌아갔다.

시헌이가 계단으로 돌아가자 나도 주먹을 풀고 환호를 멈췄다. 아직 원아웃. 두개의 아웃카운트가 남아있기 때문에 방심은 절대로 금물이었다.

*

'어, 방금 커브 였지? 휘는게 장난 아니네. 휘는 각도뿐만 아니라 체인지업 처럼 잠깐 멈췄다가 휘는 느낌이야.'

조금전에 커브로 에이스 타자를 잡아낸 수혁. 심판은 그런 수혁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동네 야구 레벨이라면 제대로 된 변화구는 던지는 경우가 엄청나게 희박하다. 뭐 다들 포크니 체인지업이니 별별 변화구를 다 던질수 있다고 얘기하지만 그건 그냥 힘없이 떨어지는 볼이나 밋밋한 볼일 뿐이다.

하지만 방금 그 커브. 각이 크고 독특하면서도 확실히 잘 떨어졌다. 그러면서 그는 수혁이 탐나기 시작했다.

실력도 나쁘지 않고, 거기다가 제대로 된 커브까지. 수혁의 커브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심판, 아니 면홍중 야구부의 감독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그에게 막히면 오늘 경기는 지게 된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얼굴에 쓰고있던 마스크를 벗었다. 그리고 잠시 타임을 외치고는 덕아웃으로 걸어갔다.

*

"뭐라는거야?"

아싸, 나로서는 좋다. 물론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어떤 작전을 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내 다리 근육을 어떻게든 다시 진정시키고 풀어주는게 급선무다. 그러면서 지금 내 오른손은 왼쪽 허벅지를 주무르고 있었다.

근데, 이거 별 효과는 없는거 같네.

잠시뒤, 감독이 작전을 다 내렸는지 다시 심판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들어오는 다음 타자. 딱히 수상한 점은 없어보였다.

나는 일단 작전은 무시하기로 생각했다. 지금 내 코가 석잔데 남의 작전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별로 다른 작전없이 공 세개만에 두타자들 모두 유격수 땅볼, 유격수 뜬공으로 아웃. 하지만 분명 파워가 세보이지도 않는데 막 휘두르는 모습이 뭔가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다음 우리팀의 공격차례. 나는 계단에 앉은 다음에 애들을 잠시 불러모았다. 그리고 잠시뒤에 모인 애들. 나는 고개를 숙인채로 작게 말하기 시작했다.

"얘들아, 내가 지금 다리상태가 그닥 안좋아. 아까 던질때 근육이 놀랐나봐."

"그러면 어떻게 되는건데?"

"뭐긴 뭐야. 투구에 힘을 제대로 실을수가 없지. 그것때문에 커브도 예정보다 일찍 꺼냈어."

운선이가 물어보자 종빈이가 보충 설명을 해줬다. 그러자 꽤나 심각해지는 애들의 얼굴. 나는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도 끝까지는 어떻게든 버틸수는 있을거 같아. 하지만 문제는 무실점으로 막을수 있을거 같지는 않단 말이지. 그래서 아마 이번에 어떻게든 점수는 내야될거 같아."

"..."

내 말에 심각해던 애들의 표정이 조금 진지하게 변했다. 그래, 이기는건 생각하지 않았는데 막상 이기고 있으니까 이기고 싶지?

"지금 이기고 있는거 기왕이면 이기고 싶지? 그럼 여기서 점수 조금만 더 뽑아내자. 그리고 이기자고. 알겠지?"

"오케이. 그러니까 점수 뽑아내면 되는거지?"

상민이가 웃으면서 다시 물어봤다.

"그렇지."

"오케이, 그럼 내가 가서 길 닦아놓는다. 다들 잘 따라오라고."

내가 웃으면서 대답해주자 상민이도 웃으면서 타석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순식간에 헛스윙 삼진. 그리고는 멋쩍게 웃으면서 계단으로 돌아왔다.

"하, 하, 조금 어렵네."

"뭐... 괜찮아."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그라운드로 시선을 돌렸다. 사실 여기서 상민이가 살아나가주지 않으면 이번 공격은 어렵다고 봐야된다. 왜냐면 그 다음 타자가 우리팀 최대의 구멍, 영훈이 차례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부웅-

"스트라이크, 아웃!"

이변없이 순식간에 삼진을 당하는 영훈이, 그러자 운선이가 머리에 헬멧을 쓰고 타석으로 걸어나갔다.

이렇게 타자들이 순식간에 아웃되는 와중에도 나는 계속해서 왼쪽 허벅지를 주무르고 있었다. 어떻게든 회복을 시켜서 경기가 끝날때까지만이라도 버틸수 있게 만들어놔야했다.

하지만 다리는 아무리 주물러도 그닥 나아지는 느낌이 들지 않고 있었다. 거기다가 운선이도 투수앞 땅볼로 아웃.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우리팀의 6회초 공격이었다.

나는 어쩔수 없이 글러브를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마운드 위로 천천히 걸어갔다.

'후우... 참자, 참자...'

걸어가는 도중에 최대한 다리가 멀쩡하게 보이도록 걸었다. 만약 상대편에서 내 다리 상태를 알게 된다면 어떤 작전이 나올지도 몰랐다.

난 일단 마운드 위로 올라가서 공을 받았다. 그리고 타자가 타석 안으로 들어오자 종빈이가 사인을 보내왔다.

'한가운데 직구.'

종빈이는 허를 찌를 생각인지 한가운데를 요구했다. 하지만 한가운데를 던지는거는 엄청난 도박이었다. 거기다가 지금 내 공이 최상 수준도 아니기 때문에 더 위험했다.

하지만 타자는 방금 막 들어오고 경기가 진행된 상황, 지금 곧바로 던진다면 충분히 허를 찌를수 있을거 같았다.

슈욱- 파앙-

"스트라이크!"

초구는 스트라이크, 우리의 의도대로 타자는 깜짝 놀라면서 가만히 서있었다. 아마 배트를 내밀었어도 파울이었을거다.

나는 공을 받은 다음에 곧바로 종빈이의 사인을 확인했다. 타자가 당황한 사이에 후딱 끝내버리려는 작전이었다. 지금으로서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슈욱- 파앙-

"스트라이크 투!"

두번째 공은 바깥쪽으로 들어갔다. 그러면화 확실히 타이밍을 잃어버린듯한 타자. 종빈이는 이번에도 곧바로 공을 보냈다. 그리고 마무리를 하려는 순간

"타임!"

타자가 타임을 외치면서 심판이 콜을 인정했다.

"아... 아깝네."

지금 타이밍이면 아웃시키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끊는 바람에 잠시 흐름도 뚝 끊겨버렸다.

타자는 타석 밖으로 나가서 배트를 몇번 휘둘렀다. 그리고 다시 타석 안으로 들어왔다.

타자가 돌아오자 종빈이가 다시 사인을 보내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 사인대로 공을 던졌다.

슈욱-

공은 살짝 밋밋해보이게 날아갔다. 그리고 타자도 눈치챘는지 배트가 시원하게 돌아갔다.

하지만 배트의 앞에서 훅 떨어지는 공. 그리고 포수의 미트 안으로 쏙 들어갔다.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공이 미트 안으로 들어가자 심판이 아웃을 외쳤다. 그리고 답답한지 마스크를 벗고는 야구부원들을 쳐다봤다. 아마 지시한 작전이 잘 안되는거 같았다.

물론 그러면 우리야 좋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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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첫 시합, 면홍중 야구부(12)201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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