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18화
'이녀석들 크게 스윙하라니까 왜 가만히 있다가 카운트를 몰리냐고. 하아, 미치겠다...'
아, 진짜 답답하다. 아무리 동네야구 출신들이라도 그렇지. 크게 스윙하라는 작전도 제대로 못따르다니. 너무 답답하다.
처음에 교장 말로는 분명 전교에서 야구를 좀 하고, 좋아한다는 애들만 모아놨다고 했다. 그런데 실상은 완전히 달랐다.
'몇몇 애들을 뺴면 실력은 완전히 야구를 처음하는 사람의 수준, 거기다가 지도해 주는거는 더럽게 안따라, 실력이 없으면 열정이라도 있어야 되는데 열심히 하지도 않고 툭하면 빠져. 내가 왜 이런 팀을 맡아서는...'
지금도 애들을 보면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감독이라면 계속해서 선수들을 독려하고 이끌어야 하는데, 애들이 안따라주니까 이것마저도 안된다.
그러면서 애들은 맨날 승리를 바란다. 물론 열심히 노력하는 애들에게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하지만 맨날 빠지고 뺸질거리는 애들도 그런 생각을 한다는게 문제였다.
거기다가 완전 꼴통학교라 팀원의 절반이 일진들. 제어하기도 힘들고, 팀웍도 잘 다져지지 않는다. 그 순하던 세경이가 제대로 화나서 경기를 말아먹으려고 했던 정도니까.
그나저나 지금 보이는 저 투수, 그리고 유격수. 왠지 자꾸만 눈길이 간다. 프로선수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거라면 충분히 에이스라고 불릴만한 실력들. 그러면서 기회만 된다면 왠지 저녀석들을 한번 가르쳐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전에 오늘 경기부터 이겨야겠지만.
'하아...'
*
"후우, 일단 한타자 처리했고."
나는 길게 숨을 내뱉었다. 이제 슬슬 경기 후반이 다가오니까 왠지 긴장이 되는것 같았다. 거기다가 아직 무실점이나까, 이대로면 완봉을 할수 있다는 생각에도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방심은 할수 없다. 상대는 야구부다. 나 정도의 공은 정신차리지 않으면 뻥뻥 치고도 남을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뺨을 찰싹 후려쳤다.
짝-
"아으... 아파 죽겠네."
뺨은 괜히 때렸나보다. 얼굴만 괜히 얼얼하다. 안그래도 대한민국의 평범한 오징언데 갑오징어가 되기는 싫다.
다시 한번 길게 숨을 내쉬면서 산만한 정신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타자를 한번 쳐다본 다음에 종빈이의 사인을 확인했다.
'이번 공은 몸쪽 직구라...'
이번 타자는 좌타자, 나에게 불리한 타자였다. 그리고 이럴때면 투수는 주로 바깥쪽으로 타자를 공략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종빈이는 과감하게 안쪽으로 내밀었다.
잘 이해는 가지 않지만, 일단 종빈이를 믿어보기로 했다. 배터리는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면 없는게 나은 사이니까.
부웅- 파앙-
"스트라이크!"
공은 요구한곳 근처로 들어갔다. 그리고 스트라이크, 타자는 노리고 있었는지 시원하게 스윙했다. 하지만 공의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헛스윙이 될 뿐이었다.
'뭐야?'
일단 헛스윙이 나오면서 기분은 좋았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우리의 상대는 중학교 야구부다. 아무리 잘하는 곳이 아니더라도 90대 초반정도로 느껴지는 직구를 뒤늦게 헛스윙을 할리가 없었다.
혹시 노리는 코스가 다른곳은 아니었을까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타이밍이 아닌 궤적이 달랐어야 했다. 하지만 둘다 달랐다. 그러면서 내 머릿속에서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설마 얘네 우리보다 더 못하는거 아냐?'
그러면서 계단을 한번 둘러봤다. 그리고 애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니까 작년에 같이 야구했던 녀석들은 거의 다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그때 같이 안했던 애들, 그리고 1, 2학년 같은 애들도 보인다는점. 그렇다면 계산은 다 끝났다.
'이정도면 완봉 가능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러면서 갑자기 얼굴에 미소가 씨익 그려졌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나는 또다시 방심할뻔한 나를 자책하면서 심호흡을 했다.
그렇게 진정시키고 나서 종빈이를 쳐다보자 사인을 내고 있었다. 나는 사인대로 그립을 고쳐잡은 다음에 타자를 쳐다봤다. 그리고 침착하게 공을 던졌다.
팅-
공은 배트의 끝부분에 맞더니 내 앞으로 천천히 굴러왔다. 나는 공을 맨손으로 잡은 다음에 1루를 향해서 가볍게 던졌다. 그리고 결과는
"세이프!"
"엥?"
세이프였다.
잠시만, 분명 타이밍이 조금 애매하긴 했지만 충분히 아웃이었다. 내가 내 두눈으로 똑똑히 봤다. 타자가 베이스에서 한발짝 모자란 상태에서 산욱이가 공을 잡았다. 엄연한 아웃이었다.
"아니, 저게 왜 세이프에요!"
"세이프 맞다. 1루수 발이 떨어졌어."
"제대로 잡았다니까요!"
"1루수가 놓쳤다. 한번 물어봐봐."
종빈이가 일어나서 따져봤지만 결과는 번복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화를 가라앉히면서 다음 타자를 맞이할수밖에 없었다.
다음 타자는 덩치가 조금 있어보였다. 누군가 하면서 얼굴을 쳐다보자 성우가 배트를 든채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 성우네."
나는 성우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잠시 미소가 지어졌다. 작년에는 제대로 기본기도 갖춰져있지 않았는데, 과연 올해는 어떻게 됐을지. 궁금해서 얼른 던져보고 싶었다.
성우가 준비를 다 마친듯하자 종빈이가 사인을 보내왔다. 이번 사인은 확 떨어트리는 커브, 아마 종빈이 눈에도 거포 유망주 같아보였나보다. 확실히 보이는 것부터 그렇게 보일만 했다.
부웅- 파앙-
"스트라이크!"
역시 우리 예상대로 성우는 초구부터 힘껏 휘둘렀다. 그리고 스윙 궤적과 한참 떨어진 곳에 위치한 미트. 성우는 꽤나 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다.
왜그래, 나 옛날에 너네 에이스였다니까?
나는 공을 다시 받고서 종빈이의 사인을 살펴봤다. 이번 사인은 몸쪽 직구, 확 안쪽으로 넣는걸 보니까 스트라이크가 목적이 아닌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깐 텀을 둔 다음에 공을 던졌다.
부웅- 파앙-
"스트라이크 투!"
성우는 이번에도 힘껏 휘둘렀다. 이미 몸쪽으로 엄청 들어가서 맞추기 힘든 공인데도 스윙은 망설임없이 돌아갔다.
어렵게 받은 기회였나보다. 스윙이 아까 그 타자보더 더 느렸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있는 모습이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을 보니까 그런거 같았다.
여튼 이제 투 스트라이크, 성우를 제대로 몰아붙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더 커브 사인,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깐 성을 쳐다봤다.
성우는 꽤나 긴장한건지 얼굴이 굳어있었다. 아마 이번에도 헛스윙을 하다가는 아웃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러면서 한번 빼줄까 생각도 했지만 승부는 승부, 그냥 확실히 잡기로 했다. 그리고 그립을 바꿔쥐고는 공을 던졌다.
슈욱-
느낌상으로는 잘 긁힌 커브. 공은 조금 밋밋한 직구처럼 살짝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타자의 조금 앞에서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팅-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늦었던 성우의 스윙, 그리고 배트 끝에 아슬아슬하게 맞으면서 공은 파울선을 넘어가버렸다.
'어?'
예상 밖으로 걷어낸 성우, 그러자 이번에는 직구 사인이 날아왔다. 아마 종빈이도 상대편 선수들 대부분이 스윙이 느리단걸 느꼈었는지 스피드로 눌러버리려는것 같았다.
그나저나 난 스피드나 구위로 누르는 타입은 아닌데... 기분 참 새롭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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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첫 시합, 면홍중 야구부(13)2015.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