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19화
나는 종빈이의 사인대로 직구 그립을 잡았다. 그다음 성우를 잠깐 쳐다본 다음에 공을 던졌다.
슈욱-
공은 종빈이가 요구한 곳으로 잘 날아갔다. 그리고 이번에도 거침없이 나오는 성우의 배트, 그리고는
까앙-
하는 소리와 함께 공은 땅볼 타구가 되어서 1루수 앞으로 굴러갔다.
타구는 그렇게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았다. 거기다가 바운드가 그렇게 까다롭지는 않아서 충분히 잡을수 있었다. 나는 됐다는 생각으로 주먹을 꽉 쥐면서 산욱이를 지켜봤다.
"어, 어?"
툭-
하지만 산욱이는 달려오는 주자에게 신경을 썼었는지 제대로 포구하지 못하고 공을 놓쳐버렸다. 뒤늦게 다시 공을 주워서 베이스를 터치했지만 그땐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그러면서 타자까지 올 세이프, 가볍게 끝낼수 있었던 6회가 갑자기 위태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도 조금씩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괜찮아, 괜찮아."
나는 일단 산욱이에게 관찮다고 말해줬다. 그래야지 얘도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가실테니까.
그 다음에는 심호흡을 하면서 긴장을 떨쳐내려고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확실히 긴장이 안될리는 없는지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처음에는 그냥 즐기다가 오자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이기고 있으니까 이기고 싶다는 생각에서 이제는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되어버린거 같았다.
이겨야 된다는 승부욕이 나쁜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가는게 더 좋다. 그러면 부담감이 덜할테니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러지 못해서 이럴때 무너지고 마는 경우가 많다. 프로선수들도 자주 그러니까.
"후우..."
결국 난 긴장감을 떨치려는 생각을 버렸다. 그리고 종빈이를 쳐다봤다. 종빈이는 내가 쳐다보자 사인을 보내왔다.
'바깥쪽 직구.'
끄덕-
나는 사인에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리고 타석에 서있는 타자를 쳐다봤다. 뭐, 평범해 보이는게 아마 타격을 잘하는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거기다가 아까 실책이 나오면서 호진이를 제외한 다른 애들도 몸이 굳어있을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힘을 빼서가 아닌, 조금 무리해서라도 세게 던질 생각이다.
내 생각에는 지금이 최대 위기다.
"후우-"
숨을 길게 내쉬면서 종빈이의 미트를 한번 쳐다봤다. 그리고 왼다리를 천천히 들어올린다음, 앞으로 쭉 뻗으면서 오른팔을 휘둘렀다.
슈욱-
'읏!'
다리가 뭔가로 누르는듯한 압박감이 느껴졌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리고 내 손에서 떠나간 공, 나는 팔로스로를 하고는 오른발로 급하게 땅을 디디면서 왼쪽 허벅지에 손을 갖다댔다.
"으으..."
다행히 죽을것같은 그런 고통은 아니었다. 하지만 허벅지에 쥐가 난것처럼 계속해서 통증이 몰려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표정 관리는 힘들것 같아보인다.
*
'뭐야, 왜 다리를 붙잡고 있어?'
마스크 너머로 투수가 다리를 붙잡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면서 뭔가 5회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그 이상한 느낌이 뭔지 알수 있을것 같았다.
5회부터 투구폼이 조금 바뀐듯한 느낌이 들었다. 경기 처음보다 다리를 벌리는 폭이 줄어들은게 눈에 확 띄었다.
처음에는 그냥 체력이 떨어져서 그런것 같았지만, 시헌이에게 들은 바로는 체력 하나는 괴물 수준이라고 했던 녀석이었다. 이정도에 지칠 체력은 아닐거라고 생각하면서 뭔가가 의심스러웠었다.
그리고 지금 이제서야 그 이유가 드러났다. 다리에 문제가 있는거였다. 그래서 다리 폭이 확 줄어든거고.
그런데도 우리 애들은 그 공에 헛스윙을 연발하기 일쑤였다. 그러면서 얼마나 만만하게 보였을지...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는건...'
다리를 잡고 힘들어하는 투수를 보면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저 투수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는 지금 누구를 이기든간에 1승이 매우 소중한 시기다.
여태까지 다른 중학교랑 한 시합에서 모두 다 졌기 때문에 정식 시합이 아닐지라도, 누구라도 1승을 챙겨야만 한다.
거기다가 오늘 이 경기는 교장도 하는걸 알고 있었다. 지난번에 만났을때 한번만 더 지면 날 감독직에서 자를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내 목이 걸린 마지막 기회다. 다시 야구할 기회를 놓치기는 싫었다.
*
"뭐야?"
내가 다리를 계속 주무르면서 어떻게든 통증을 완화시키려고 하는 도중, 상대편 감독이 마스크를 벗은 다음에 잠시 타자를 끌고 나갔다.
아마 지금 내 다리 상태를 보고서 작전을 내리려는 거겠지. 그러면서 난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감독은 타자에게 뭐라고 말하더니 다시 마스크를 쓰고 포수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들어오는 타자, 난 사인을 받고는 곧바로 다음 공을 던졌다.
슈욱- 파앙-
"스트라이크 투!"
"후우..."
이번 공도 전력을 다해서 던졌다. 그러면서 다리는 더욱 아파왔지만 지금은 그런걸 신경쓸때가 아니었다. 어차피 지금 잠깐 이런다고 심각하게 다치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계속 조여오는 느낌의 다리,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내려갈수 있다면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도 간절히 들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내려가면 이 팀은 무너진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막아야된다.
야구할때 가장 의욕이 떨어지고 허무한 경우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기고 있다가 역전패를 당할때다. 그리고 역전패는 경기 막판에, 큰 점수차에서 당할수록 더더욱 의욕이 떨어지고 상실감만 커진다.
그러니까 이미 시작한 경기, 그리고 지금 이기고 있는 상황, 그때부터 이 팀을 유지할수 있는 방법은 딱 한가지밖에 없었다.
무조건 이기는것. 여태까지 지거나 실책해도 괜찮다 해왔지만, 이제는 아니다. 수비 하나, 공 하나가 매우 중요한 시점이 되었다.
"하아..."
나는 길게 숨을 내쉬고는 종빈이를 쳐다봤다. 종빈이는 내가 자신을 본다는걸 눈치채자 사인을 보내왔다. 이번 사인은 커브, 아마 삼진으로 카운트를 늘리려는 생각인거 같았다.
슈욱-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사인대로 던진 커브, 공은 잘 떨어지면서 종빈이의 미트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배트가 나오지 않은 타자, 배트가 못나온게 아닌, 아예 휘두를 생각이 없어보였다.
타자는 놀란듯이 나를 쳐다보고는 힘없이 들어갔다. 아마 낙폭이 큰 커브를 존 안에 넣을수 있어서 그런것 같았다.
나는 들어가는 타자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음 타자가 누군지 살펴봤다. 그리고 타석으로 걸어오는 타자, 그때 감독이 마스크를 벗었다.
"타임! 대타!"
'헐.'
감독이 대타를 외쳤을때 난 순간 잘못들은줄 알았다.
지금 동네애들, 그것도 인원수도 겨우 맞추는 애들 상대로 대타를 낸다고? 순간적으로 지금 우리팀을 놀리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장난하나. 동네애들한테 대타나 쓰고, 그것도 인원수 겨우 맞춰오는 애들한테 자기들 사람 많다고 자랑하는것도 아니고...'
감독이 지명한 녀석이 대타로 나오자 나는 속으로 계속해서 욕이 나오고 있었다. 지금 맘같아서는 시원하게 욕을 갈구고 싶었지만 흥분하면 지게 되어있는법, 차분해야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먼곳을 멍하니 쳐다봤다. 나만의 머릿속을 비우는 방법이었다.
────────────────────────────────────
20화-첫 시합, 면홍중 야구부(14)2015.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