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26화
수업이 끝나고 조금 늦은듯한 오후, 나는 어제 말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버스를 타고 있었다.
사실 가기는 싫었지만, 만약 그랬다가는 지난번처럼 또 학교로 찾아올까봐 울며 겨자막기 식으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거의 도착한 상황. 이제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그애가 점심시간에 보낸 문자로는 면홍중 앞으로 와달라고 했다. 거긴 버스에서 내려서 조금 더 걸어가야 나오는 곳에 위치해있었다.
멍하니 바깥을 쳐다보다 보니까 어느새 내릴 역에 다다랐다. 카드를 찍고 내려오자 오랜만에 보는 이 동네. 지난번에 시합할때는 시합만 하고 가서 제대로 볼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학교로 걸어갔다. 그리고 조금 걷다보니까 면홍중 정문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학교 주변에는 하교시간이 끝난지 좀 되어서 그런지 거의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더 걸어서 마침내 도착한 정문 앞. 주변을 둘러보니까 그애가 나에게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진짜 왔네?"
그애는 나를 보면서 활짝 웃어보였다. 하지만 난 다른곳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애꿎은 옆머리만 살짝 긁었다.
"그런데 뭐할려고."
"당연히 데이트지!"
난 너랑 데이트 할 생각이 없는데. 그러게 말하면서 그냥 가버리고 싶었지만, 내 생각을 읽은건지 그애는 이미 나에게 팔짱을 끼고는 나를 이끌기 시작했다.
나는 그냥 아무말 없이 그애가 가는대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내가 여기에서 좀 살아봤어도 많이 놀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피씨방좀 가고, 야구좀 하면서 노는것 뿐이었으니까.
"야, 어디가는거야."
"어허, 예영아~ 이래야지!"
하,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별 요구를 다한다. 나는 그냥 입을 다물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계속해서 나를 끌고다는 그애. 그러다가 어느 한곳에서 발걸음이 멈춰섰다.
걸음이 멈춘곳은 영화관 매표소 앞이었다. 그애는 어떤 영화를 볼지 고민하는건지 가만히 선채로 상영중인 작품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 보고싶은거라도 있어?"
"별로."
나는 대충 대답하고는 휴대폰을 꺼내서 그냥 별 생각없이 이거 저거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이렇게 서있으니까 뭔가 어색하고 뻘쭘한 기분이 들었다. 평생동안 가족, 친척을 제외한 여자랑 팔짱을 껴본적이 없었는데, 기분이 은근 미묘했다.
그때 팔짱을 끼고 있던 팔이 풀리더니 그애 혼자서 어디론가 걸어갔다. 그리고 잠시뒤 영화표 두장을 들고서 다시 돌아왔다.
"뭐야."
"저거!"
내가 물어보자 그애는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니까 뭔가 뻔한 로맨스 영화 같아보이는 포스터가 보였다. 아, 나 오글거리는거에 엄청 약한데. 그냥 아무거나 고를걸 그랬나보다.
"자, 그럼 이제 팝콘사러가자~"
내가 속으로 절망하는 사이에 그애는 다시 팔짱을 끼고는 나를 끌고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팝콘 하나와 콜라 두개를 시켰다. 그리고 콜라 하나를 제외하고는 나에게 넘겨버렸다.
팝콘은 볼땐 그닥 커보이지 않았는데, 받아보니까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다. 내가 왠만하면 많이 먹는다고는 하지만, 나 혼자서는 영화 내내 먹어도 남을것 같은 양이었다.
"이걸 다 먹게?"
나는 순간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애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애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너랑 같이 먹을건데?"
'미쳤나... 왜 하필 큰거 한개를 시키는건데.'
그 순간 나는 잠시동안 멍한 표정을 지은채로, 그러면서 속으로는 그애를 실컷 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뭐, 나도 먹긴 먹을거니까... 그냥 넘어가자. 또 화내기 싫다...'
이내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그애를 한번 쳐다봤다. 그리고 마주친 두눈. 그러면서 뭔가 묘하게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그냥 예쁜 사람을 봐서 반하는 느낌이 아닌,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느낌과 함께 뭔가 아련한 느낌, 그러면서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야, 야, 안수혁. 정신 차려.'
후아, 위험했다. 나는 급하게 다른곳으로 시선을 돌려버리고는 허벅지를 살짞 꼬집어서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내가 다른곳으로 시선을 돌려버리자 그애가 다시 팔짱을 껴왔다. 나는 팔짱을 풀려고 했지만 그애가 세게 붙잡는 바람에 결국 끌려갈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상영관 앞에서 표를 확인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뒤면 상영 시작이어서 그런지 대부분의 자리에는 사람이 앉아있었다. 그중에서 비어있는 우리 자리. 나는 자리에 앉아서 콜라를 옆에 컵 홀더에 끼워두었다.
그러고 한 몇분간 기다렸을까, 들어왔을때부터 게속 나오던 광고가 마침내 꺼지고는 영화가 시작되기 시작했다. 그애는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닥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첫 장면이 나오는 순간, 대충 어느정도 스토리가 파악이 되는것 같았다. 그냥 평범한 로맨스물 영화였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딱 양산형 로맨스 영화 같았다.
하지만 그애는 영화에 푹 뻐져든채로 열심히 보고 있는거 같았다.
그나저나 집중할때 입이 살짝 벌어지는 타입이네. 입안에 뭔가 넣어주면 딱일것 같은 비주얼이다.
'입안에 파리 들어가겠구만.'
나는 속으로 궁시렁 거리면서 다시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멍하니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영화가 중간정도 왔을즈음, 옆을 한번 돌아봤다. 그러자 나를 빤히 쳐다보는 그애. 그냥 쳐다보는게 아니라 웃으면서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연예인을 보는듯한 표정이었다. 혹시 내가 잘생겼나 할정도로 매우 빠져든채로 보고 있었다.
"뭐."
나는 살짝 당황했지만 고개를 조금 뒤로 빼면서 최대한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냥... 그닥 잘생긴것도 아닌데, 참 신기하게 너한테 자꾸만 끌린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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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두번째 고백2015.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