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40화
"저기, 그런데..."
그렇게 모든 애들이 수긍하는 분위기를 보이는 찰나, 호진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전교생을 상대로 붙는다고 했지? 그러면 전교생들이 전부 학교 애들을 응원할테고, 그럼 우리한테 엄청난 야유를 퍼부우지 않을까...? 특히 여기 여자애들이 자기편 아니면 무조건 욕하고 엄청 노려보던데..."
호진이는 자기 성격답게 조심하면서 물어봤다. 그리고 그 질문은 확실히 내가 이 시합을 수락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고민이었다.
호진이가 느낀대로 우리학교 여자애들이 확실히 그런 성향이 있다. 자기편이 아니면 무조건 무시하고, 욕하고, 야유를 보내는 성격이 있었다.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최곤줄 알거나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건 덤이고. 아마 남학생이 여학생들의 절반이 안되어서 일어나는 현상인것 같았다.
어쨌든 지금 호진이가 걱정하는건 애들의 야유였다. 특히 여자애들의 야유. 처음 봤을때부터 많이 소심해보이던 호진이에게는 엄청난 고통일것이었다. 아마 듣지 않으려고 해도 야유소리가 엄청나게 들려올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별로 다른 방법이 없었다. 교장에게 야유를 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을 해도 분명 애들은 야유를 보내올수도 있었다. 결국엔 자신이 무시학나, 극복하는 것이었다.
"음... 그건 어쩔수 없을거 같은데... 어차피 넌 센터라인이라서 소리는 잘 안들릴거야. 괜찮아."
"음... 알겠어."
걱정이 되지만, 일단은 괜찮을 거라고 둘러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호진이도 그런 내 마음을 알아주는지 다행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더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려서 애들을 한번씩 훑어봤다. 다행히 처음보다는 괜찮아진 모습들이 보였다. 아마 이젠 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은것 같았다.
그러면서 잠시동안 찾아온 정적, 그 누구도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자, 그럼 슬슬 훈련이나 해볼까? 우선 각자 자리로!"
정적을 가장 먼저 깨트린건 감독이었다. 그는 웃어보이면서 자신이 가장 먼저 자리로 들어가서 배트를 잡았다.
감독이 먼저 움직이자 우리들도 그제서야 각자 글러브를 끼고는 자신의 위치로 들어갔다.
"자, 그럼 친다!"
깡-
모두들 자기 자리로 들어가자 감독이 펑고를 쳐주기 시작했다. 대부분 평범한 타구였기 때문인지 모두들 별다른 실책없이 처리해내고 있었다.
나도 내 앞으로 오는 타구를 처리하면서 열심히 집중했다. 그러다가 잠시 쉬는시간이 왔을 즈음, 뒤로 한번 돌아봤다.
애들은 지난번 펑고를 받을떄와는 표정들이 달라보였다. 뭔가 두렵거나 그런건 아닌것 같았지만, 뭔가 평상시에 느껴지는 것과는 달랐다.
물론 애들이 그대로이고 내가 다르게 느끼는 것일수도 있었지만, 그건 아닌것 같았다. 평상시 병신짓을 일삼던 운선이도 왠일인지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뭔가가 다르게 느껴졌다.
뭔가 긴장하고 있는것처럼, 모두들 하나같이 제대로 된 경기를 하고 싶다는 느낌을 풍겨오고 있었다. 그리고 열심히 할거라는 느낌도 같이 풍겨오고 있었다.
애들에게서 그런 느낌이 풍겨져오자 나는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아마 이제서야 야구의 맛을 서서히 알아가는것 같았다.
왠지 면홍중과의 시합 전과는 많이 달라진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
그날 훈련이 끝난뒤 늦은 밤, 성빈이 부엌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성빈을 유심히 쳐다보는 한 남자, 그러다가 성빈을 불렀다.
"성빈아, 종빈이 데리고 여기 와서 앉아봐."
"..."
남자의 말에 성빈은 잠시동안 아무말도 없이 그 남자만 쳐다봤다. 그러다가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종빈이랑 같이 그의 앞에 앉았다.
그렇게 해서 거실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세사람, 다른 가족들은 다들 어디로 간건지 시계소리 빼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있었다.
"성빈아, 너 진짜 성적 올려야된다. 네가 뭐 따로 하고싶은 일이 없다면 어떻게든 성적을 올려야된다고. 종빈이 너도 마찬가지고. 그정도 성적으로는 절대로 안된다. 요즘은 그림 그린다고 하면 공부도 잘해야된다. 알지?"
"..."
"..."
그 남자의 말에 둘은 미세하게 인상을 찌푸린채로 가만히 앉아있었다.
정작 자신들이 좋아하는건 하지 못하게 만들었으면서, 자신들이 하고 싶은건 지원은 커녕 불가능 하다고 불가능하다고 말했으면서, 어영부영 세월만 보내버리다가 이제는 아예 할수 없게 되었다.
비록 지금부터 한다고 해도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그리고 남들보다 몇년은 더 늦는다. 남들이랑 같이 출발할수 있는 시기는 지나버렸다. 이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어쩔수 없는 부분이었다.
비록 종빈은 그림을 그리기는 하지만, 성빈은 그걸 제외하고는 하고싶은게 없었다. 그렇다고 공부는 더더욱 하기도 싫고. 목표도 없고, 하고 싶은것도 없는 딱 요즘 청소년, 혹은 20, 30대까지의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남자는 계속해서 어떻게든 성적을 올려야 된다고 애기하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 이미 성적을 올리기에는 힘들어 보였지만, 그는 겟고해서 공부만 고집하고 있었다.
둘도 열심히 한다고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성적은 오르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추락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후우... 됐다. 가서 자라."
한찬동안 연설 못지않은 말들을 늘어놓은 남자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피곤한지 소파 위에 올라가서 그대로 누워버렸다.
둘도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기들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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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심리적 압박감2015.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