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54화
"너..."
고개를 들고 얼굴을 보는순간, 나는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텅 비면서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난 지금 이 상황이 꿈인지 진짜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보고싶어했던 사람, 내가 여태까지 살면서 유일하게 좋아했던, 그리고 끝내 서로 간만 보다가 고백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연락이 끊어졌었던 그애였다.
그 순간 나는 왠지 모르게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심장이 쉴새없이 쿵쾅거리면서 주체할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애도 나를 쳐다보고 있는게 확실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었다. 그애가 확실했다.
"장여운... 맞지?"
"안수혁?"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꺼내서 만든 한마디. 그애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직 나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에 나는 눈물이 왈칵하고 쏟아질 뻔했다.
그토록 원하고, 다시 한번만이라도 만나길 원했던 사람을 드디어 만났다. 그리고 지금 나를 기억해주고 있었다.
나는 지금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마치 날아갈것만 같았다.
"오랜... 만이야."
"1년... 정도지?"
아, 지금 대화를 나누는 이 순간에도 기분이 매우 황홀했다. 지금 이 상황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계속 이렇게 서로 마주보고 싶다. 그리고 마주보니까 끌어안고 싶고, 손도 잡고싶고, 그냥 하루종일 같이 있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1년 넘게 지나서 우연히 만난 동창의 사이, 그 이하면 몰라도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래도 난 지금 이렇게 마주보는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이 되고 있었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한마디라도 더 들으려고 이런저런 말들을 건네기 시작했다.
"잘 지냈어?"
"응... 너는?"
"나도 뭐...괜찮게 지냈는데..."
하지만 대회는 좀처럼 별로 진전이 없었다. 마치 소개팅을 하는 남녀처럼 어색한 기운만 감돌고 있었다. 그래도 한때 서로 스스럼없이 잘 지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된건지. 시간이 미워졌다.
그나저나 지금 내 폰에는 그애의 전화번호가 없었다. 몇달전에 휴대폰에 문제가 생긴걸 해결하느라 전화번호가 전부 지워져서 옛날에 저장해뒀던 번호들은 이미 다 사라진지 오래였다.
게다가 무슨 일인건지 메신저에서도 친구 목록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결국 완전히 연락할 길이 사라진 상태로 지금까지 그리워 하기만 했었다.
그래서 난 지금 여운이의 번호를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작정 번호를 달라고 하면 조금 그럴텐데, 뭔가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무리 생각을 해봐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기회를 놓치기는 싫었다. 다시 연락하고, 그애의 마음을 확인하고서 내 여자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면서 난 무작정 말을 내뱉었다.
"저... 내가 최근에 번호가 다 사라져서 그러는데 번호좀 찍어줄수있어...?"
드, 드디어 말했다. 그리고 내 심장은 더이상 걷잡을수 없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물론 여운이를 봤을떄부터 빠르게 뛰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쁠게 뛰고 있었다. 숨소리마저 떨릴 정도로 엄청나게 긴장이 되고 있었다.
"응... 기다려봐..."
다행히도 그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의 폰을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뒤에 울리기 시작하는 내 휴대폰, 나는 화면을 한번 쳐다보고는 그애를 다시 쳐다봤다.
"번호... 있었어...?"
"응..."
내 물음에 여운이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전화를 끊고는 휴대폰 전원을 꺼버렸다.
그리고 서로 말없이 쳐다보는 우리, 그리고 나는 여운이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걸 눈치챌수가 있었다.
원래대로의 소심하면서도 조용한 모습, 그러자 1학년때 맨날 여운이랑 밤새도록 문자하던 기억들, 학교에서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챙겨줬던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땐 진짜로 행복하고 매일이 설레고 그랬었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머피의 법칙처럼 올것은 결국엔 오는법, 저 멀리서 지금만큼은 제일로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혁아~"
그리고 그 소리의 주인은 자서처럼 달려와서는 내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애가 내 옆에 달라붙자 여운이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지는게 살짝 보였다. 나는 여운이에게 어떻게든 해명하려고 했지만, 그애의 팔이 나를 바깥으로 잡아끌는 바람에 난 어쩔수없이 끌려갔다.
"내가 나중에 전화할게!"
결국 끌려나가면서 겨우 내뱉은 한마디, 그리고는 여운이가 보이지 않을떄까지 계속해서 여운이가 있는 곳만 쳐다봤다.
*
"만나면 안되는데..."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어떻게 해야될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지금 수혁이가 좋기는 하지만... 여태까지 건드렸던 남자애들을 아직 다 처리하지 못했었다.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수혁이에게만 신경을 쓰고 싶었지만, 눈치가 없는건지 내가 싫다는 눈치를 계속 보내도 여전히 나에게 치근덕 거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수혁이가 너무 보고싶어서 집에 불쑥 찾아가기는 했지만... 일이 이렇게까지 될줄은 몰랐다.
지금 수혁이랑 있는 모습을 들키거나,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그애들 귓속으로 들어가면 안된다. 지금 그 남자애들 모두다 내가 여러명을 건드린걸 모르고 있었다. 어떻게든 들켜서는 안된다.
그러면서 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여기 와서 친하게 지내는 혜경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몇번의 연결음이 가더니 이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지금 내가 건드린 애들, 어디있는지 알아?"
"내가 어떻게 알아. 그나저나 너 또 지금 남자랑 있냐? 그짓거리 이제 안한다더니, 그만좀해. 너 이러다가 꼬리 잡히면 뒤지는 거라니까?"
"아, 닥쳐."
나는 약간 성질을 내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나저나 수혁이가 싫어할까봐 앞으로 최대한 순하게 말하려고 했는데, 역시 한번 들인 습관은 고치기가 힘들었다.
"이럴때는 또 더럽게 땡긴단말야..."
아, 이럴때는 한대 피워야 되는건데. 다른 남자애들이랑 다니면 내 취향에 맞춰서 하나씩 주고 했는데, 내가 어쩌다가 저런 순하고 평범한 애한테 빠진건지. 이해는 잘 가지 않았지만, 정작 수혁이 얼굴을 생각하니까 또다시 미소가 번졌다.
"아, 몰라. 그냥 나가지 뭐."
결국 난 제대로된 게획도 세우지 못하고 화장실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리고 저기 멀리서 보이는 수혁이. 혹시 도망가지나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뭐야..."
그런데 수혁이 앞에 한 여자애가 서있었다. 그리 예쁘지도 않고, 별로 튀는것도 없어보이는 여자애가 수혁이 앞에 서있었다. 그런데 나를 대할때와는 다르게 엄청나게 어색하고, 수줍어 하고 있었다.
"저년이..."
그 순간 자연스럽게 주먹이 쥐어졌다. 하지만 다시 주먹을 풀고 밝게 웃으면서 수혁이에게 달려갔다.
"수혁아~"
일단 수혁이에게 달려가서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네가 수혁이랑 무슨 사이던 간에 얘는 내 남자라는걸 인식시켜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지 넘보지 않을테니까.
내가 옆에 찰싹 달라붙자 수혁이가 나를 잠시 쳐다봤다. 하지만 그 여자애를 볼떄랑은 와전히 다른 표정, 오히려 평상시에 나를 대할때보다 더 나쁜, 눈에서 얼음이 나올것같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러다가 다시 그 여자애로 고개를 돌리자 다시 방금전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안돼, 내가 처음으로 좋아한 사람인데, 뺏길순 없어!'
수혁이의 모습을 보니까 일단 어떻게든 그 둘을 떨어트려야 될것같은 직감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수혁이의 손목을 잡고는 바깥으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수혁이는 어떻게든 끌려가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내가 모든 힘을 다해서 끌기 시작하자 마지못해 끌려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나중에 전화할게!"
그리고 도중에 나오면서 외친 수혁이의 한마디. 그리고 그 한마디에 나는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버렸다.
'내가 저년보다 더 예쁘고, 몸매도 좋은데, 왜...? 왜 그러는거야...?'
그러면서 순간적으로 눈물이 왈칵 나올뻔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마음을 다잡고는 수혁이를 밖으로 끌고 나가기 시작했다.
'네 마음, 나로 가득 채워줄거야. 그딴년은 기억하지도 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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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황룡기 전국 동네야구대회2015.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