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58화
"누구냐?"
현관쪽으로 나온 사람은 우리들을 보고는 잠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일단 감독의 앞으로 다가가서 오른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십니까, 성빈이, 종빈이 애비되는 사람입니다."
"유용식이라고 합니다."
아버지라는 사람의 인사에 감독은 태연한 표정으로 그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는 그의 안내에 따라서 거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들은 감독과 따로 성빈이랑 종빈이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감독 혼자서는 무리일거 같아서 같이 있으려고 했지만, 감독이 눈빛으로 들어가라고 하는 바람에 어쩔수없이 들어갈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뭔가가 불안했다. 감독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옆에서 말리거나 보조해줄 사람이 필요해 보였다.
결국 난 어쩔수없이 방 안에서 문을 살짝 열고 문틈으로 밖의 상황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너네 둘이 같이쓰는거야?"
"응."
"오, 2층침대네. 누가 1층이야?"
"내가 1층이고, 형이 2층이고."
"그나저나 뭔 방에 글러브랑 야구공밖에 없냐."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지켜보는데 무리가 있었다. 일단 둘이 바닥에 앉는것까지는 잘 알겠는데, 뒤에서 애들이 떠드는 바람에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결국 난 조용히 성빈이를 불렀다.
"야, 성빈아."
"왜?"
"화장실 어디냐? 급해 죽겠는데."
"나가서 바로 앞으로 쭉 가다가 왼쪽을 봐. 그럼 바로 나와."
"감사."
나는 성빈이의 끄덕이고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제서야 잘 보이는 두사람, 그리고 문을 닫으니까 이야기 소리도 잘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금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거실은 쌍둥이의 방과 화장실의 사이, 운이 좋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천천히 화장실을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몇걸음 정도 걸으니까 어느새 세팅을 해놓은건지 거실 한가운데에는 좌식 테이블 하나와 그 위에 주스 두잔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는 두사람, 나는 그쪽을 슬쩍 보면서 화장실로 천천히 걸어갔다.
"일단... 누구십니까? 애들을 끌고 온것도 그렇고... 혹시 담임 선생님이신가요...?"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D.라이더즈의 감독, 유용식입니다."
화장실로 걸어가는 도중,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화장실로 들어갔을때도 들려오는 대화소리, 나는 일단 화장실 안에 우두커니 서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기 시작했다.
"D.라이더즈요...? 그 야구팀 입니까?"
감독이 자신을 소개하고나자 그 남자의 목소리가 조금 날카로원진것 같았다. 조금만 더 건드렸다가는 완전히 폭발할것만 같은 말투였다.
"예, 맞습니다."
"예... 그 잘나신 감독님께서 왜 이런곳에 오시는지...?"
하지만 아버지라는 사람은 화를 참고 있는건지 아까와는 다르게 다시 말투가 잠잠해졌다. 하지만 화는 참을수록 타인들이 보기에는 더 불안한법. 결국
"저희 팀엔 성빈이랑 종빈이가 꼭 필요합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라는 감독의 말과 함께
쾅-
책상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서 테이블이라도 엎어진건지 다시 한번더 책상을 내리친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에 나는 일단 어른들의 대화고 뭐고 간에 말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급하게 밖으로 뛰쳐나왔다.
밖으로 나와보자 거실에는 아버지라는 사람이 심호흡을 하면서 화를 간신히 참고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에 감독이 가만히 앉아있었다.
"가십시오."
"못갑니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계속해서 끓어오르는 화를 간신히 참고 있는것 같았다. 하지만 감독은 계속해서 그 앞에 앉아있었다.
이대로 포기할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지금 여기서 설득을 시켜야만 했다. 앞으로 연습할 시간도 많이 없다. 무조건 설득해야 한다.
"가십시...오."
어느새 아버지라는 사람이 한게에 도달했는지 더욱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감독은 여전히 앉아있었다.
"한번만, 딱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애들의 꿈을 딱 한번만 믿어 주십..."
쾅-
감독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의 손이 한번더 상을 세게 내리쳤다. 그리고 드디어 폭발한건지 완전히 인상을 찌푸린 얼굴, 하지만 아직까지는 참고 있었다.
"저는 분명히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가주십시오."
"..."
감독은 한번이라도 더 건들이면 폭발한 것만 같은 느낌 때문인지 이번엔 반박하지 않았다. 그리고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자신의 진정성을 보이면 혹시나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부딪혀 보니까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직 내밀만한 카드가 더 있어보였다. 단지 감독이 말주변이 부족해서 그냥 직접적으로 부딪혀 보기밖에 못하는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처음부터 같이 있겠다고 한거였는데.
결국 나는 감독의 옆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젠 어른들의 대화고 뭐고, 내가 학생이고 뭐건간에 할말은 해야될것 같았다. 안그랬다가는 나중에 후회할것만 같았다.
내가 감독 옆에 앉자 그 사람은 물론, 감독도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고개를 돌려서 감독을 쳐다보니까 딱히 들어가라는 눈치같은건 없어보였다. 아마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힘든것 같아보였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서 그 사람을 쳐다봤다. 그냥 보통 가정의 아버지같은 모습, 단지 조금 다른점이라면 다른 아버지들에 비해서 엄격한것 같아보였다. 그리고 그 엄격해 보이는 느낌 때문에 조금씬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설득을 해야되는 상대였다. 나는 살짝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속으로 셋까지 센 다음에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전 D.라이더즈의 주장이자, 팀을 만든 장본인인 안수혁이라고 합니다."
내가 첫 마디를 꺼내자 아버지라는 사람의 인상이 조금 찌푸려졌다. 확실히 자기 아들들을 이렇게 만든 주범에 가까우니까 인상이 좋지 않을만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표정에는 신경쓰지않고 계속해서 내 할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버님, 혹시 성빈이하고 종빈이가 야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십니까?"
"그, 그야 잘 알지."
내 예상외의 첫마디에 그 사람은 조금 당황한건지 살짝 말을 더듬었다. 나는 계속해서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럼 얼마나 좋아합니까? 대충 아는대로 다 말씀해 주세요."
"뭐, 대충 야구팀 좋아하고, 선수들 이름 외우고, 타격폼 따라해보고, 하는거 좀 좋아하는 그정도 아닌가?"
내 물음에 그 사람은 별 막힘없이 술술 얘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내 입가에는 아주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이걸로 일단 어느정도 설득할 무기는 확보한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있게 반박했다.
"틀렸습니다."
"아니, 무슨 소린가? 내가 걔들 아버진데, 자네가 나보다 더 잘 안다는건가?"
내 반박에 그 사람은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쳐다봤다.
"성빈이랑 종빈이는 야구를 매우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 둘의 열정은 다른 야구팬들과는 다릅니다."
"어떤 면에서 다르다는 건가?"
내 대답에 그 사람은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는 식으로 나에게 다시 물어봤다.
"단지 특정 야구팀을 좋아하고, 선수들의 이름과 얼굴, 특징등을 외우는 것. 그것들은 야구를 조금만 좋아한다면 1, 2년만에 익힐수 있는겁니다. 적어도 자기가 응원하는 팀은 그게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하지만, 제 주변에 다른 야구팬들이 야구에 대해서 얘기할때면 다들 그냥 즐겁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성빈이랑 종빈이는 달랐습니다. 자기도 하고 싶었다는 애잔함, 후회, 씁쓸함의 느낌이 느껴졌습니다. 말투에서부터 느껴졌습니다."
"잠깐, 그런건 그냥 자네 개인적인 감정이지 않나?"
내가 말하던 도중, 그 사람이 내 말을 자르고 태클을 걸어왔다. 하지만 이 태클은 내가 예상했던 태클, 나는 가볍게 돌파해주었다.
"그건 아버님이 더 잘 아실거 같습니다만."
"..."
내 대답 한마디에 그 사람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그냥 찍어본건데, 다행히 그런적이 있었나보다. 운이 좋았다,
이걸로 일단 이 싸움에서 내가 어느정도 우위를 차지한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제 슬슬 쐐기를 박을때,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아버님, 부탁드립니다. 성빈이랑 종빈이는 충분히 실력도 있고, 무엇보다 그걸로 성공할수 있는 가장 큰 재능인..."
"...뭔가?"
"즐기는 마음과 열정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공부도 하지 않고 매일 훈련만 하겠다는게 아닙니다. 단지 앞으로 두, 세달동안만, 평일 방과후에만 시간을 내게 도와달라는 겁니다. 공부는 주말에 하면 됩니다."
"..."
"그리고 정 안된다 싶으면 교장선생님이 저희 스폰서입니다. 교장선생님께 부탁시켜서 학교 교사를 붙이던 간에 해서 과외같이 공부도 도와줄수가 있습니다."
"..."
"그러니까, 부탁드립니다. 성빈이랑 종빈이의 꿈을 한번만이라도 지켜보고, 응원해 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마지막 말을 마치고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제 내가 할수있는 말들은 다 했다. 이제 남은건 그 아버지라는 사람의 선택뿐 이었다.
이렇게 해서도 안된다면... 다시 다른 방법을 찾겠지만, 일단 실패한다는 조건따위는 생각하기 싫었다. 무조건, 무조건 성공할거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좋습니다."
그 사람의 입에서 드디어 원하던 한마디가 떨어졌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세달 사이에 제가 상응할만한 결과가 없다면 앞으로 얘네들에겐 야구를 시키지 않겠습니다. 불만 없으시죠?"
"네, 없습니다."
그 사람의 조건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아무런 조건도 없이 수락할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거기다가 이미 우리는 전국대회에 나가기로 신청이 되어있는 상황. 열심히 연습만 한다면 전국대회 본선까지는 오를 자신이 있었다. 이정도 조건이면 충분했다.
감독도 나랑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그 사람에게 고개를 숙여서 감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그렇게 수혁이 수락을 받고 모두들 돌아간 성빈, 종빈네 집. 안방에서 아버지라는 사람이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리고 뭔가를 떠올리는건지 감고 있는 눈. 그러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아까 그 학생 말을 참 잘하던데, 뭔가 그나이대 애들보다 훨씬 더 성숙한거 같기도 하고... 글 쓰면 잘쓰겠어."
그렇게 그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침대에 누워버렸다. 그리고는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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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본격적인 훈련(1)2015.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