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59화
그렇게 설득에 성공하고 다음날 방과후.
운동장에는 평상시처럼 나를 포함한 10명의 사람들이 서있었다. 일단 아홉명이 쭉 일렬로 늘어서고 그 앞에 서있는 감독, 감독은 우리들을 한번 둘러보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애들은 성빈이랑 종빈이를 힘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 지금쯤 다시 돌아왔다는걸 대충 예상하고 있을것이다.
"자, 어제 설득을 하러 간 결과, 수혁이 덕분에 쌍둥이를 다시 빼내올수가 있었다."
감독의 말에 애들은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 클라스가 이정도라고."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애들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지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실컷 웃기 시작했다.
"니가?"
"헛소리도 정도가 있지."
"말도 안되지."
나는 애들의 말에 그냥 웃으면서 대충 흘려들었다. 그러자 다시 소리치면서 시선을 우리에게 집중시키는 감독, 그리고는 옆에 놓여있던 고깔을 집어들었다.
"자, 일단 우리팀의 가장 큰 문제는 체력이다.
지금까지는 7이닝 경기만 했었지? 하지만 전국대회 본선에서부터는 총 9이닝 경기다. 거기다가 한여름 땡볕에서 뛰어야 한다. 그렇다면 수많은 체력이 요구되기 마련이고, 결국엔 체력싸움이다.
그래서 우린 오늘부터 훈련 처음, 혹은 마지막으로 흔히 셔틀런, 혹은 팝스라고 말하는 20m왕복 달리기를 하면서 체력을 단련시킬거다."
감독의 말에 애들은 질리는 표정으로 싫다는 의사를 분명히 나타냈다. 하지만 이건 꼭 필요하다. 이번 대회를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어디서든지 두고두고 유용하게 써먹을수 있을거다. 확실히 필요하긴 필요했다.
그리고 내 예상으로 50개 정도로 잡아뒀을테니까 나는 충분하 할수 있었다. 컨디션이 안좋은 날에도 70개는 충분히 돌파했으니까 문제 없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나마저도
"안수혁, 기록을 보니까 넌 체력이 좋더라. 그러니까 120개"
라는 감독의 말에 애들이랑 똑같이 질려버렸다.
"헐."
"미친."
"대박..."
감독의 말에 애들은 모두 놀라면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나는 그저 입만 벌린채로 멍하니 감독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왜..."
"이거 어차피 기록 안재는거니까 천천히 뛰면 별 무리는 없을거라고 생각한다만."
감독의 말에 나는 할말이 없어졌다. 감독의 말이 맞는 말이었다. 시간제한이나 그런게 없고 천천히 뛰어도 된다면 충분히 할수는 있는 양이었다. 젠장, 이럴줄 알면 좀 살살뛸걸.
그렇게 내가 절망하고 있는 사이에 감독은 한명씩 지목하면서 각자 달릴 거리를 지정해줬다. 그리고 각자 뛸 거리를 다 말해주자 조금 떨어진 곳에 뛰어가더니 한쪽에 고깔 두개씩, 총 네개를 놓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자, 그럼 지금부터 시작이다!"
자리로 돌아온 감독은 곧바로 소리쳤다. 그리고 우리들 각자의 등을 두들기면서 고깔 사이로 살짝 씩 떠밀었다.
우리들은 그렇게 감독에게 떠밀려서 고깔 사이로 들어갔다. 그리고 감독을 한번 슬쩍 쳐다보고는 이내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일단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체력이나 달리는 속도에는 역시 차이가 있었는지 얼마 안가서 다른 애들이랑 점점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수혁아, 너 몇개냐?"
그렇게 한창 달리던 도중, 어느새 따라온건지 호진이가 내 옆에 달라붙었다. 그리고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나 120개잖아. 너는?"
내가 물어보자 호진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만한게 지금 시작한지 약 15분이 지났고, 현재 내가 뛴 갯수는 약 60여개, 그리고 호진이는 나 다음으로 가장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칠만도 했다.
"난 90개..."
호진이는 말하는 것조차도 힘든지 간신히 한마디를 하고는 다시 거칠게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이 다 끝나자 더이상을 달리지 못하겠는지 속도를 늦추면서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뒤처진 호진이. 나는 처음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계속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테스트를 할때와는 다르게 60개를 넘어갔는데도 그닥 지쳤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단지 조금 힘들다는 생각이 들뿐, 숨을 거칠게 몰아쉰다거나 그런 느낌은 들지 않고 있었다.
'확실히 시간제한이 없으니까 훨씬 뛰기 편하네.'
왕복달리기 시험을 볼때는 안내방송이 나오면서 구호음과 함께 반대편으로 뛰어간다. 그리고 갯수가 올라갈수록 그 구호음의 시간 간격은 더욱더 짧아지기 때문에 체력이 좋다고 자부심을 갖던 나도 6, 70개가 넘어가면 슬슬 힘들어지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건 아무래도 시간 제한이 없어서인지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것 같았다.
"헉... 헉..."
"흐어... 흐어..."
"후아...."
천천히 뛰는데도 다른 애들은 많이 힘든지 거의 좀비가 되어가면서 뛰고 있었다. 그러다가 힘들어서 조금 걷다보면 어느새 감독이 뛰라고 소리쳐서 일정거리 이상은 걷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애들을 쳐다보면서 그저 한숨이 나왔다. 그러면서 얘네가 그렇게 체력이 약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영훈이면 몰라도, 운선이나 선민이는 어느정도 운동신경이 있어서 체력도 좀 있을줄 알았는데, 얘네도 지금 미친듯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렇게 한 15분 정도가 더 지났을까, 나는 앞으로 1번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전속력으로 달려서 골인. 그리고 나서 곧장 허리를 숙이고는 약간 거칠어진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수고했다. 역시 기록대로 체력 하나는 좋네."
내가 허리를 숙이던 도중, 감독이 내 등을 토닥이면서 생수 한병을 가져다줬다. 나는 아무말없이 물병을 받아들고는 뚜껑을 따고서 한모금 마셨다. 그리고 다시 허리를 일으켜서 다른 애들을 보기 시작했다.
다른 애들은 나보다 갯수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힘들어 하고 있었다. 그리고 뛰는 속도도 매우 느렸다.
비록 시간제한이나 일정한 속도 이상으로 뛰어야 되는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계속 뛰다보면 지치기 마련이다. 그리고 애들은 모두들 힘들어 하고 있었다. 그나마 덜 힘들어 하는 사람이라면 호진이랑 운선이 정도밖에 없었다.
"감독님, 쟤네 몇개에요?"
나는 감독에게 물어봤다. 그러자 감독은 뭔가 답답한지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영훈이는 50개, 쌍둥이랑 산욱이는 70개, 선민이랑 상민이는 80개, 호진이랑 운선이는 90개로 했는데... 너 얘네들 데리고 어떻게 면홍중한테 이겼냐?"
감독은 애들의 낮은 체력에 실망했는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나마 호진이랑 운선이는 그나마 어느정도 하지만... 다른 애들은 너무 심각한 수준인데? 이래서 여름 떙볕에 어떻게 버티려고..."
"여기 애들 죄다 학원에 짱박혀서 공부만해요. 그래서 처음에 팀만들때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감독의 투정에 나는 허탈하게 웃으면서 그 이유를 설명해줬다. 그러자 한숨을 내뱉는 감독, 9이닝으로 경기를 해본적이 있는 나로서는 감독의 기분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가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내가 그때 할때는 체력이 좋은편이 아닌 애들도 별 무리없이 잘 해냈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체력에 집중하는건지 잘 이해가 가지 않고 있었다.
"감독님."
"왜."
"그런데 왜 그렇게 체력이 집착하세요? 중간중간에 쉴수 있는데."
내 질문에 감독은 나를 슬쩍 쳐다봤다. 그리고는 다시 애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직접 경험해보면 알아. 대회때면 긴장감 때문에 평상시보다 체력을 더 많이 소모할수도 있고, 집중을 하려면 체력이 있어야돼. 안그러면 금방 무너져 버리고 말걸?"
"거기에 훈련이 꽤나 빡셀테니까 체력좀 길러야 된다... 뭐 이런 의도는 없어요?"
"허... 들켰냐?"
"네. 그러니까 그런 개고생을 시키겠죠."
감독은 내 말을 듣고는 허탈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살짝씩 끄덕였다. 나도 감독의 같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와중에도 아직 끝나지 않은 애들. 방금 막 호진이랑 운선이가 다 끝내고서 들어와있을 뿐이었다.
"감독님, 그런데 얘네 언제 끝나요?"
나는 슬슬 지루해지면서 감독에게 물어봤다.
"글쎄, 얘네 생각보다 체력이 안좋아서...."
감독은 내 물음에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래도 체력을 키우는데는 조금 오랜 시간이 걸릴것 같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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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본격적인 훈련(2)2015.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