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69화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게임 셋!"
그뒤로 경기는 별일없이 흘러서 5회초, 그 사이에 우리팀은 계속 득점을 하면서 4회말에 10점을 넘겼었다.
그리고 방금 막 15번째 아웃을 잡으면서 경기 종료. 정확히는 우리팀의 콜드승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양팀 선수들이 모두 일렬로 선 다음에 서로 인사를 했다. 하지만 뭔가 불만이라도 있는지 그녀석들의 태도는 영 불성실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긴경기, 괜히 긁어서 부스럼 만들 일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별일 없이 인사만 하고 애들이랑 경기장 밖으로 나왔다.
"으아... 콜드게임으로 끝나서 그런지 예상보다 일찍 끝났네."
"오늘 엄마한테 좀 늦게 끝난다고 얘기했는데, 피방 콜?"
"됐어. 난 피곤해 죽겠다."
경기장 밖으로 나오자 애들은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면서 지하철 역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몇몇 애들은 피곤한지 별말 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서 감독을 쳐다보니까 감독은 음악이라도 듣는건지 이어폰이 귀에 꽂아져 있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서 앞을 쳐다봤다.
"...어?"
그런데 앞에 한 여자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155cm 정도로 보이는 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눈, 남들이 보면 예쁜 편은 아니라고 할만한 얼굴이 보였다.
그런데 나에게는 매우 익숙한, 그리고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모습이었다. 설마 하면서 자세히 보니까 여운이였다.
여운이를 보는 순간 나는 살짝 놀라며넛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 이내 여운이에게 가야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옷은 갈아입어서 유니폼은 아니었다. 그리고 땀도 별로 안나서 냄새도 나지 않았다. 단지 조금 불편한 점이라면 지금 내가 장비를 넣은 가방을 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렇다고 쳐도 여운이가 다른 약속이 있는 거라면? 다른 사람을 만나러 오는 거라면? 그런 생각들이 들면서 순간적으로 망설어졌다.
"얌마, 가방은 내가 처리해줄테니까, 얼른 가봐 임마."
내가 망설이는 도중, 감독이 내 가방을 자기가 가져가버렸다. 그리고는 내가 아까까지 바라보고 있던 방향을 가리켰다.
그 말에 내 뇌는 뭔가 막힌게 뚫린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옛날에도 그렇게 망설이다가 기회를 놓쳤는데, 지금 또 이렇게 망설이고 있다니, 나 참 한심하네.
"감사합니다."
나는 감독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여운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때마침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여운이. 그리고 나를 발견하고는 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도 달려가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더 일찍 여운이랑 얼굴을 마주하고 싶었다. 지금은 단지 그뿐이었다.
그렇게 걸어가서 드디어 바로 앞에서 보이는 여운이. 여운이는 살짝 숨이 차는지 살짝 거친 숨을 내쉬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혹시 몰라서 최대한 괜찮은 옷들로 골라입고 왔는데, 다행이다. 너무 다행이다.
"어디 있었어? 한참을 찾아봐도 안보였는데..."
"경기 끝내고 조금 있다가 나왔어."
여운이의 물음에 나는 간단하게 대답해줬다. 그리고 간단한 대화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빠르게 뛰고있는 심장, 진정시키려고 해봐도 진정이 잘 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 대화가 끝나니까 갑자기 둘다 말이 없어졌다. 그러면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어색해보이는 지금 이 느낌. 그러면서 왠지 불안해지는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이러면 안돼는데..."
1년 정도의 공백이 이렇게 컸을 줄이야. 정말 상상도 못했다. 생각도 못했었다. 그러면서 순간적으로 절망했다.
하지만 다시 가까워지면 되는 거다. 그리고 지금 그럴러면 무슨 말이라도 해야될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말을 걸려는 순간
"안수혁!"
저 멀리서 앙칼진 목소리가 들리면서 누군가가 나를 향해서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에 나는 물론 여운이까지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봤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예상한대로 유예영. 그애였다. 그애는 드디어 찾앗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향해서 달려오고 있었다.
'어, 어... 얘는 왜 갑자기 나오는건데!'
그애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이자 내 머릿속은 잠시동안 마비가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몸은 잠시동안 굳어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멍하니 서있으면 그애가 나를 끌고 가면서 그대로 여운이랑 떨어지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싫다. 죽어도 싫다. 그때 이후로 처음 만난거고, 지난번에도 그애가 나를 끌고 가는 바람에 별 얘기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되기는 싫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내 손은 자동적으로 여운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 어...?"
내가 갑자기 손을 잡자 여운이는 조금 놀란건지 살짝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지금 상황을 눈치챘는지 내가 달리자 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어, 어? 어디가! 안수혁! 어디가!"
달리기 시작하자 뒤에서 그애가 소리치는게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그 소리를 무시하고는 게속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그다음 바로 앞에 보이는 건물로 들어가버렸다.
"하아... 하아..."
건물 안으로 들어와서 멈추자 여운이는 허리를 살짝 숙인채로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되는 거리를 꽤나 빠르게 달려서 그런지 여운이는 게속해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중에도 꼭 잡은채로 놓지 않고 있는 오른손. 그 손을 보자 도망치느라 잠시 잊고 있었던 심장박동이 다시 느껴졌다.
두근, 두근, 계속해서 뛰고있는 심장. 거기다가 지금 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 있는 여운이의 손, 그러면서 내 몸은 완전히 미쳐버릴것만 같았다.
분명히 경기를 뛰고나서 피곤했는데도 그 피곤함은 온데같데없이 다 사라지고 푹 자고 일어난것만 같았다.
옛날엔 이런 기분이 일상이었는데, 오랜만에 느끼니까 너무나도 황홀하고 행복하다. 지금 이대로 온몸이 터져버려도 좋을것만 같았다.
"하아... 이제 안쫒아오지...?"
내가 그렇게 황홀한 기분에 빠져든 사이, 여운이는 조심스럽게 뒤를 살폈다.
"걱정마. 또 오면 그땐 내가 안고 달릴게."
"나..? 나 무거운데?"
내가 웃으면서 조금 농담같이 한 말에 여운이는 진심으로 받아들인건지 조금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는 이러지 않아서 몰랐었는데, 이런 모습도 있었네. 너무 귀여워 죽겠다.
"그런데 여긴 어디지...?"
잠시뒤, 진정한 여운이가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그리고는 어딘지 전혀 모르겟다는 표정으로 먼곳만 멍하니 쳐다봤다.
나도 그제서야 주변을 둘러보면서 여기가 어딘지 확인했다.
일단 건물 밖으로 나오니까 커다란 길에 근처에 지하철 역이 있는거 같고...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뭐 지하철 역만 있으면 길 찾는건 어렵지는 않겠지만.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여운이를 쳐다봤다. 여운이는 뭔가를 찾고있는지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찾는거라도 있어?"
"어, 아니..."
내가 물어보자 여운이는 뭔가 있는건지 얼버무리면서 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뭔가 아쉬워하는 표정이 드러났다.
"여기 근처에 아무것도 없네..."
여운이는 아쉬워 하면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 여운이랑 하고 싶은게 많았는데 정작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아쉬워하고 있을 즈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가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저기, 잘 어울리시는 두분?"
────────────────────────────────────
70화-영화관에서는 누구나 과감해진다2015.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