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73화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나는 폭발할거 같은 감정을 가까스로 억누르면서 그 사람의 어깨를 짚었다.
비록 덩치 때문에 팔이 올라가면서 겉보기에는 조금 우스워 보였지만 지금 내 기분은 그렇지 않았다.
"뭐야?"
내가 어깨를 짚자 그 사람이 짜증난다는 듯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비슷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옆의 여자. 그러자 애들도 뭔가 사태의 심각함을 느낀건지 내쪽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방금 뭐라고 했냐고 묻고 있습니다."
"뭐래."
그 사람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비웃음을 날렸다. 그리고는 어깨를 짚고있던 내 손을 툭 치워버리고는 다시뒤로 돌아서서 걸어갔다.
"방금 뭐라고 했냐고 물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여태까지 최대한 예의를 지키던 말투를 반말로 확 풀어버렸다.
"..."
확실히 효과는 있었는지 그 사람의 발걸음이 잠시 멈춰섰다. 그리고는 내쪽으로 뒤돌아서 다시 걸어왔다.
그 사람이 내 바로앞에 서자 적어도 180은 되어보이는 그 사람의 키가 나를 자꾸 누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은 잠시, 아주 잠시동안 비워졌다. 하지만 이내 다시 정신을 차리자 그 사람이 비웃으면서 말했다.
"실력도 없는것들이 지랄한다고 했다. 왜, 꼽냐?"
그 순간, 내 분노는 그대로 한계치를 완전히 넘어서버렸다.
나 하나를 욕하는건 나만 참으면 됬었고, 참을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애들까지 다같이 싸잡아서 욕하는건 참을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나로 인해서 다른 애들이 욕을 먹는거라면 더더욱 참을수는 없었다.
그래도 보통은 대충 참고 넘어갔는데 이번만큼은 넘어가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가장 화가 나는건, 그 사람을 보나 옆에 있는 여자를 보나 양아치 같아보이는 것들이 자기들도 못하면서 무시하는 것이었다.
맨날 운동장에서 별것도 아닌 발재간이나 부리는 것들이 그런말을 하는건 참을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확 나갈뻔한 주먹, 하지만 상대가 안될게 뻔히 보였기 때문에 무턱대고 주먹부터 날리지는 않았다. 대신 다른 방법으로 저녀석에게 굴욕을 줄 방법이 떠올랐다.
"지는 얼마나 잘한다고 저러는건지..."
나는 그 사람이 화가 나도록 궁시렁 거리는 목소리로 비꼬기 시작했다.
"너 뭐라고 했냐."
그러자 아까 내가 했던 말을 똑같이 하는 그 사람, 확실히 효과가 있는것 같았다.
하지만 이걸로는 뭔가가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조금더 살살 긁어내기 시작했다.
"못한다고 했다. 뭐, 불만있냐? 불만 있으면 증명을 해보이던가."
내말에 그 사람은 확실히 화난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그리고는 저 멀리 떨어져 있던 배트를 쳐다보더니 다시 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덤벼 이새끼야."
그 사람이 말하자 나는 그 사람, 아니 그 녀석을 살짝 비웃었다. 그리고 말도 안하고 턱짓으로 배트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녀석은 겉옷을 벗어서 여자에게 넘기더니 내가 가리킨 곳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뭔가 걱정이 되는건지 애들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있었다. 만약 진다면 어떻게 될지 몰랐으니까, 확실히 걱정이 될법도 했다.
하지만 나는 별로 걱정이 되지 않았다. 별것도 안되는 발재간이나 부리는 애들이 배트나 제대로 휘두를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라면 모를까, 걱정은 전혀 되지 않았다.
나는 씨익 웃으면서 그 녀석이랑 적당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그 녀석을 쳐다봤다.
"공이 내 뒤로 넘어가면 네가 이긴걸로 쳐줄게"
"저새끼가 아까부터..."
그 녀석은 내 말투가 불만인건지 혼자 욕을 내뱉으면서 배트를 붕붕 휘둘렀다.
나도 일단 공을 던지기 전에 어깨를 돌리면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러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떠올랐다.
'아, 맞다. 아직 종빈이가 안왔는데 포수 없이 해야되나?'
"너네 뭐해? 그리고 얘는 또 뭐야?"
나이스 타이밍, 딱 맞춰서 와주네.
"종빈아, 공좀 받아주라!"
"갑자기 뭔데? 뭐 승부같은거냐?"
"그거 맞으니까 얼른!"
"알았어. 좀만 기다려봐"
종빈이는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면서 미트를 왼손에 끼고는 그 녀석 뒤로 가서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미트를 주먹으로 두어번 쳤다.
"오케이, 가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타자를 한번 쳐다봤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아까 신경질적으로 배트를 붕붕 휘두르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침착하게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외로 뭔가 안정되어 보이는 자세, 초보자가 아닌것 같았다. 야구를 꽤나 하는 사람 같아보였다.
'뭐야, 야구하는 사람이었어?'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자칫하면 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수하려고 기껏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유도했는데 만약 진다면... 이만한 쪽팔림 거리도 없을거다.
게다가 전국대회를 목표로 하는 중이라면 그 타격은 더하겠지.
하지만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불길한 생각은 지워버렸다. 그리고 충분히 잡을수 있다고 머릿속으로 주문을 계속해서 걸기 시작했다.
'황룡기에 나가는 선수가 아닌 이상, 평범한 학생이 내 공을 칠리는 없어. 그리고 친다고 해도 멀리 못나갈거야.'
그렇게 생각을 하자 다시 나아진 기분. 나는 숨을 길게 내쉬고는 손가락으로 직접 사인을 내보냈다.
'일단 초구는 커브로 간다.'
'오케이.'
일단 초구는 아래로 확 빠지는 커브, 볼이 되더라도 일단 상대를 위축시키는 작전이었다. 그리고 종빈이는 동의하는건지 고개를 끄덕였다,
사인이 결정되자 나는 글러브 안에서 커브 그립을 잡았다. 그리고 타자를 한번 노려보고는 천천히 왼다리를 들기 시작햇다. 그리고 앞으로 쭉 뻗으면서 힘차게 팔을 휘둘렀다.
슈욱-
공은 손에서 나쁘지 않게 빠져나갔다. 그리고 공은 살짝 붕 뜬 상태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
'뭐야, 고작 이정도 공을 가지고서 이랬다고?'
수혁이 공을 던지자 남자는 공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면서 지켜봤다. 그러다가 공이 오는것을 보고는 순간적으로 너무 어이가 없었는지 얼굴에는 허무한 표정이 가득했다.
'역시 실력도 없는 것들이 아주 입만 살아있구만.'
평상시 그가 보던 공들과는 다르게 넘 천천히 오는 공. 그는 여유있게 타이밍을 맞춰서 배트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맨트가 반쯤 나왔을때
투툭-
공이 잠깐 멈추는듯한 기분이 들더니 이내 대각선으로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 어어...?'
공이 잠시 멈추는 기분에 뚝 떨어지기 시작한 상황, 그는 당황하면서 아직 덜 나온 배트를 급하게 내밀었다.
하지만 이미 타이밍, 궤적 둘다 모두 무너진 상태, 결국 배트는 허공을 가르다가 간신히 배트의 끝에 맞아버렸다.
팅-
아주 희미한 소리를 내는 배트, 그리고 공은 수혁의 앞으로 천천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수혁은 천천히 굴러오는 공을 글러브도 아닌 맨손으로 가볍게 잡았다. 그리고는 그 사람을 쳐다봤다.
"뭐... 별거 없었네."
수혁은 잡은 공을 공중으로 띄우고는 글러브로 잡았다. 그리고는 멀리서 구경하던 애들을 다시 불러모았다.
"얘들아, 하던거나 게속 하자!"
수혁의 말에 천천히 수혁쪽으로 걸어가는 애들, 그와 동시에 그 사람이 배트를 바닥에 내던졌다.
탕-
"으아아!"
그 남자는 매우 분한지 크게 소리치고는 수혁을 힘껏 노려봤다.
하지만 수혁은 그쪽으로는 아예 시선도 주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아예 애들을 데리고 다른곳으로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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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여자 카사노바, 유예영(1)2015.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