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74화
"어우, 아직 밤에는 좀 춥네..."
그뒤로 며칠뒤 금요일 저녁 6시경. 오늘은 간단한 훈련만 했기 때문에 집에서 뒹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오성이에게 걸려오던 전화, 그리고 먹을거라는 미끼에 낚여서 지금 막 면홍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는 중이었다.
"먹을거 없으면 죽어버려야지..."
나는 후드집업 지퍼를 끝까지 다 올리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열심히 오성이네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오성이네 집은 정류장에서 그닥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그리고 이제는 친척집 못지 않게 찾아가던 곳이라거 너무나도 익숙한 위치, 지금 내가 걷는 속도만 유지한다면 5분 이내로 도착할수 있어보였다.
하지만 한참 걸어가던 도중
"미안."
여자로 추정되는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쪽으로 향하는 발길, 오지랖이 넓은것 같아보이는데도 저절로 발길이 이끌어졌다.
왠지 남 연애사를 듣거나 보면 왠지 재밌고 팝콘이 땡기는건 아마 누구나 그럴거다. 그래서 대한민국에 로맨스 작품들이 판치는거고. 아마 나도 그런 심리인듯 같았다.
여튼,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걸어가서 모퉁이 하나 사이를 두고 가만히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는 누가 하는건지까지 보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내 담력이 허용하지 않았다. 대신 벽의 맨 끝에서 들리는 소리에 최대한 집중하면서 듣기 시작햇다.
"왜, 왜...? 그럼 여태까지 나한테 보인 반응은 뭐야? 나 좋아했던거 아니었어?"
"그건 너한테 당한 여자애들이 복수좀 해달라고 부탁해서 그랬는데."
남자가 어이가 없는, 혹은 놀란 말투로 물어보자 여자는 또 다시 냉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거참, 여자가 누군지. 목소리 한번 장난아니게 차갑네.
"너... 설마 다른 녀석들한테도..."
"음... 맞아. 여자애들이 나한테 뭐라고 안했던것도 복수해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한거니까. 물론 내가 가지고 노는걸 잘하기도 하고, 하고 싶었기도 했고."
헐, 여자의 말을 듣다 보니까 엄청난 사람인것 같았다. 내용으로는 양다리 그 이상인거 같고, 거기다가 여자애들의 부탁을 받아서 하니까 여자애들한테 욕먹을 일도 없을테고.
남자를 가지고 놀 정도면 분명 예쁠테고, 거기다가 머리도 좋다니... 진짜 신은 공평하지 않은것 같았다.
"진심... 이야?"
"뭐, 내가 다른곳에서는 무식할지 몰라도 이쪽에서는 전문가 수준이거든. 그리고 지금 내 표정 보면 몰라? 진심이잖아."
'와, 여자 진심 대박이다.'
나는 여자가 한마디 한마디 내뱉을때마다 놀라움에 뭔가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함까지 느껴졌다.
그나저나 엄청나게 시크하고 쿨하네. 그러고 보니까 얼굴이 슬슬 궁금해진다. 도대체 누구려나.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모퉁이 너머는 잠시동안 정적이 흐르는건지 아무런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혹시 어디로 간건가 하면서 고개를 살짝, 아주 살짝 내밀었다.
하지만 내가 고개를 내미는 순간
짜악-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여자의 얼굴이 돌아갔다.
'헐, 대박. 너무 심한거 아냐?'
나는 여자의 얼굴이 심하게 돌아간것을 보고는 입이 그대로 쩍 벌어졌다. 그리고 남자의 얼굴을 살펴보니까 남자는 화가 난건지 호흡이 떨려오는 게 보이는것 같았다.
거리가 좀 되서 떨리고 있는건지는 확신할수는 없었지만, 아마 화가 나고도 남았을거다. 자신이 좋아했던 여자가 자신을 노리고 접근해서 배신한다면 누구나 기분이 나쁠것이다.
하지만 그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일테고, 카사노바같은, 가볍게 만나거나 가지고 노는 정도였다면 자신이 당했다는 분노감에 화를 주체하지 못할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저 남자가 하는 행동으로 봐서는 그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것 같았다. 그래서 여자의 뺨을 그대로 때린거겠지.
'야... 대단하다. 어떻게 남자가 되서 여자를 떄리고 앉아있냐. 그래도 잘생겼다고 여자들이 또 달려들겟지. 썩을놈의 외모지상주의 같으니라고.'
나는 속으로 저 남자랑 외모지상주의를 욕하면서 여자를 한번 쳐다봤다.
여자는 언제 다시 고개를 돌린건지 90도 이상으로 팍 꺾여있던 고개가 다시 앞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또 다시 손을 드는 남자. 그 순간, 나는 저절로 발걸음이 움직여졌다.
"저기요!"
나는 밖으로 나와서 일단 크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화를 내는듯한 목소리가 아닌, 뭔가 길을 묻는듯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내 목표는 무턱대고 덤벼드는게 아닌, 말리는 거니까.
내가 밖으로 나오자 그 남자는 놀라면서 손을 다시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여자도 무슨 일인가 하면서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뭔가 얼굴이 익숙하다...?
"어...?"
그 여자도 나를 아는건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직은 확신할수 없었다. 거리도 조금 떨어져있었고, 가로등 불빛도 조금 약한 편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쪽으로 걸어가면서 두 사람과 가까워지고 두 사람의 얼굴이 드러나자 확실해졌다.
"안수혁!"
유예영, 그애였다.
그애는 나를 보더니 얼굴에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아니, 그나저나 그 얼굴부터 어떻게든 좀 해야될거 같은데...
"넌 뭐야?"
그렇게 부어오른 뺨을 쳐다보자 남자가 나를 불렀다.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보니까 짜증이 난듯한 남자의 얼굴, 하지만 잠깐동안 쳐다보니까 뭔가 불안해 보였다.
"표정에서 딱 드러나네요. 왜 여자 얼굴에 손을 대고 그럽니까. 이거 일 커지면 장난 아니겠는데."
나는 다 알고있다는듯이 말하면서 그애의 뺨을 다시 한번 쳐다봤다. 다행히 뺨은 심한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뭐 어떻게 할건데?"
남자는 아직도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까의 불안한 표정은 사라진것 같아보였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 내리니까 뭔가가 불안한건지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는 두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음... 전학생이신거 같은데, 저도 면홍중 다녔습니다. 아직 알고 연락하는 사람들도 좀 되고요. 소문 한번 퍼트려 드릴까요?"
"내가 아니라고 하면 어쩔건데?"
"소문에서 중요한건 진실이 아닐텐데..."
나는 남자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순간적으로 웃음이 나와버렸다. 그러자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는지 꿈틀거리는 남자의 눈썹, 곧 때릴것만 같아보였다.
하지만 그 남자는 아무말도 없이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소문 퍼트리면 죽는다는 한마디와 함께 그길로 쭉 걸어가버렸다.
"와우... 키때문에 살짝 쫄았는데. 순순히 물러나줘서 살았네."
"그걸 꼭 솔직하게 말한 필요는 없어보이는데."
내가 그 남자가 사라진 방향을 보던 와중, 그애가 조심스러운 말투로 나에게 말했다. 그러자 나는 뒤늦게 뒤로 돌아보면서 그애의 뺨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아니, 너는 뭘 그렇게까지 도발을 하고 그래. 그냥 미안하다고 하면서 가버리면 될걸."
"그래야 확실하게 안매달리니까 그렇지."
내가 살짝 질책하는 말투로 말하자 그애는 나를 살짝 한심하게 쳐다보면서 반박했다.
그나저나 그렇게 말하다는 거는 이런 경험이 많다는건가? 그러고 보니까 아까 말한 내용도 그랬었고... 설마 얘 지금 나한테 작업거는건가?
나는 뭔가를 알아차린것 같자 의심하는 눈으로 그애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애는 다른곳으로 고개를 돌린채로 있었다.
그러자 그애의 뺨이 드러났다. 그러자 아까보다 더 빨갛게 부어오른 뺨이 보였다. 아까처럼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야, 너 그거..."
"괜찮아. 그녀석 약해빠져서 별로 안아파."
그애는 괜찮다면서 자기 뺨을 손으로 가렸다. 하지만 내심 뭔가가 찝찝했다. 그러면서 조금만 더 일찍 나갈걸 하고 살짝 후회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뺨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두면 아무래도 안될것 같았다.
"야, 일로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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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여자 카사노바, 유예영(2)2015.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