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75화
"야, 일로와봐."
"왜?"
내가 말하자 그애는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내쪽으로 성큼 다가왔다.
"얼굴좀 봐봐."
그애가 다가오자 나는 그애의 고개를 조금 돌려서 뺨 위에 손을 올려봤다. 그러자 손에 뜨거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이정도는 그냥 찜질만 하면 괜찮다니까."
"됐어. 그냥 따라와."
나는 괜찮다고 하는 그애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듯이 그대로 잘 따라오는 그애. 아니, 정확히는 팔짱까지 끼면서 같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애가 갑자기 팔짱을 끼자 나는 흠칫하면서 오른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서 아까 그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건 너한테 당한 여자애들이 복수좀 해달라고 부탁해서 그랬는데.]
'설마... 얘 지금 나한테도 뭔가 부탁받아서 이러는거 아냐...?'
그 말이 떠오르니까 설마 내가 잘못한게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지금까지 여자한테 딱히 뭔가 잘못한거리는 없었다. 만약, 나를 좋아하는 애가 있었다고 쳐도 이런 부탁을 하지 않았을것 같고.
게다가 난 원래 여자 앞에서는 거의 병풍인데...
[음... 맞아. 여자애들이 나한테 뭐라고 안했던것도 복수해달라는 의뢰를 받아서 한거니까. 물론 가지고 놀고 싶었기도 했고.]
'아니면 그냥 날 가지고 놀려고 작업거는건가? 아니면 뭔가 개인적인 원한이라도 있는건가...'
그러면서 이제는 얘가 날 가지고 놀려는건가, 작업을 거는 중인건가, 아니면 내한테 개인적인 원한이라도 있는건지, 별별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여전히 팔짱을 낀채로 걸어가고 있는 그애. 그러다가 이제는 내 어깨에 머리를 살짝 기대기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내 머릿속은 점점 더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점점 더 굳혀졌다.
그래, 얘는 지금 나한테 작업을 걸고 있는게 확실하다.
나는 그렇게 마음을 굳히면서 그애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애가 내 시선을 느낀건지 고개를 옆으로 올려서 나를 쳐다봤다.
"응? 왜 그래?"
"...아냐."
나는 나한테 왜 이러는지 물어보려다가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려버렸다.
그래, 스파이가 자기가 스파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나. 물어봐도 내가 좋아서라고 대답하겠지.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주머니 속으로 손을 찔러넣었다. 그리고 난 절대로 넘어가지 않는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약국이 안보이네."
"뭐하러 약국까지가?"
"파스나 뿌려줄까 했는데."
"뭐?"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애가 나를 쨰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짜로 째려보는게 아닌 귀여운척을 하면서 째려보는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내 표정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다른 남자들이라면 아마 그 모습에 녹아내리거나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겠지만, 난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얘가 나한테 작업을 거는걸 알고 있어서 그런지 오히려 가식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가만히 있자 그애도 조금 민망한지 이내 시선을 다른곳으로 돌려버렸다. 그리고는 볼에 바람을 넣어서 부풀린채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니, 네가 그래도 나한테는 안먹힌다니까. 어디서 개수작이야.'
하지만 그애가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그애가 더욱 질리기 시작했다. 일단 나때문에 다친것 같아서 뭐라도 해줘야 될것 같아서 같이 있기는 하지만 , 지금 심정으로는 그냥 버리고 싶었다.
그러던 와중, 갑자기 그애가 팔짱을 낀채로 가만히 멈춰섯다.
"안가고 뭐해?"
"그냥 우리집으로 데려다 주면 안돼...?"
내가 놀라면서 뒤돌아보자 그애는 아까와는 다르게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어봤다.
'뭐 같이 있기도 싫고... 얼굴은 괜찮겠지.'
나는 속으로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애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자기 집 방향으로 데려가기 시작했다.
*
'얘는 왜 안넘어 오는거지...?'
아, 진짜 미치겠다. 오늘 우연히 마주쳐서 왠지 잘 풀릴것 같았는데, 얘가 나한테 전혀 틈을 보여주지 않는다.
진짜 어떻게든 넘어오게 만들려고 평상시에는 잘 안하던 짓까지 했는데, 전혀 넘어오지 않고 있었다. 보통 남자들은 이정도면 다들 넘어왔었는데. 왠지 모르게 너무 안넘어온다.
여태까지 내가 접근한 남자들 중에서 가장 미동도 없는 녀석이었다. 도대체 그년이랑 무슨 관계이길래 이렇게까지 안넘어 오는건지. 진짜 미치겠다. 나도 포기하기는 싫은데.
'내가 뭔가 잘못한게 있나...?'
그러면서 혹시 뭐가 잘못됐나 생각해봤지만 그럴때마다 돌아오는건 얘가 너무 철벽이라는 점과 한숨뿐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예 아무것도 모르겠다는건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왜 그러는지 생각할때마다 뭔가 한가지가 빠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뭔가가 하나 빠져있는 기분만 들뿐, 어떤건지 전혀 감조차도 잡히지 않고 있었다. 막막했다.
'하아... 진짜 미치겠다... 얘는 진짜로 잘해줄 자신도 있고, 그러고 싶은데...'
얘는 왜 이렇게 내 마음을 몰라주는걸까. 난 속으로 그애를 원망하면서 그애 옆모습을 쳐다봤다.
"왜."
내가 빤히 쳐다보자 그애가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갑자기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 그러면서 얼굴도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얘를 절대로 놓치기 싫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엉뚱하게도 지금 여기서 한번더 고백해보자는 생각으로 흘러가버렸다.
'그래, 뭐 까짓거 한번 더 고백해보자. 차여도 나만 마음먹으면 계속 달라붙을수 있으니까.'
나는 작게 숨을 내쉬면서 그애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리고는 힘겹게 말하기 시작했다.
"나랑 사귀..."
"싫은데."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애는 내 말을 자르면서 거절해버렸다. 그리고 그 매몰찬 거절은 내 정신줄을 잠시동안 놓게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잠시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언제 그런건지 팔짱을 끼고 있던 팔이 살짝 풀린채로 가만히 서있었다.
'왜...?'
그러면서 머릿속에는 혼란이 오고 팔은 조금씩 떨려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남자에게 고백한적이 얼마 없었다. 어차피 남자들이 알아서 좋다고 졸졸 쫓아다니고 고백해주니까 나는 그게 익숙했고, 그중 내가 남에 드는 남자랑 만나면 되는거였다.
그래서 내가 고백을 했다는건 진짜로 그 사람이 좋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애는 나를 매몰차게 한번도 아닌, 두번씩이나 거절했다.
처음이었다. 이런 경우는. 설마 내가 남자한테 차일 줄이야. 전혀 그럴거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진짜로 차여버렸다. 그것도 한 사람에게 두번씩이나.
그렇게 생각되자 간신히 팔짱을 끼고 있던 내 손에 힘이 완전히 풀려버렸다. 그리고는 혼자서 먼저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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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화-골드스타즈 VS D.라이더즈(1)2015.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