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77화
"후우... 얘네는 생각보다 많이 세던데?"
"돈으로 떡칠을 해댔는데 그정도도 못하면 그냥 병신인거지."
1회초를 마치고 1회말. 나는 덕아웃에 앉은채로 그라운드를 멍하니 쳐다봤다.
지금 마운드 위에는 지난번에 나에게 당했던 그 사람이 서있었다. 나는 그 사람을 가만히 쳐다보면서 지난번 대결을 잠시 떠올렸다.
지금 마운드 위에 올라간걸 보면 투수인데도 그때의 타격폼은 절대로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야수들보다 더 좋은 자세 같아보였다.
"그나저나 저기 마운드 위에 저 투수, 지난번에 너한테 발린애 맞지?"
"응, 그래서 그런지 경기전에 인사할때 나 째려보던데."
옆에 앉은 종빈이의 말에 나는 실소를 지으면서 다시 그란운드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팀 1번타자는 언제나처럼 운선이. 빠른 발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매일 1번타자로 나오고 있었다.
운선이가 타석 안으로 들어섯음에도 불구하고 투수는 가만히 포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와인드업을 하기 시작했다.
슈욱- 파앙-
"스트라이크!"
공은 시원한 소리를 내면서 미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면서 전광판에 찍히는 숫자 135. 여태까지 우리가 절대로 경험하지 못한 구속이었다.
"허, 헐..."
"야... 이건 진짠 망했는데..."
"이정도면 거의 고교선수급.."
"망할."
전광판에 찍힌 구속을 보자 모두들 놀라면서 입이 다물어비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감독도 마찬가지인지 입을 벌린채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난 아무리 돈으로 떡칠을 했다고 쳐도 중딩이니까 기껏해야 120km 정도 나올줄 알았다. 그정도면 사회인 야구에서도 에이스 취급을 받을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 녀석은 내 예상을 아예 뛰어넘어버렸다. 135km, 135정도면 중학교 권에서는 못해도 에이스, 거기에 제구까지 완벽하다고 치면 거의 전국구의 실력이었다. 실제로 고교야구 선수들도 130대의 구속의 선수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동네야구대회에서 이정도의 구속을 가진 사람이 올줄이야.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한 경우였다.
"아니, 이정도 구속이면 선수로 뛰지, 왜 여기서 쪼렙을 털고 다니는건데."
나는 순간적으로 너무 어이가 없어서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마운드 위에 서있는 투수를 한껏 노려보기 시작했다.
'와, 이건 진짜 아니지. 돈도 충분하면 차라리 야구선수를 하던가, 왜 이런 대회에 나오는건데.'
아 진짜, 이건 너무 심했다. 이정도면 우승은 커녕, 자칫하다간 조별예선도 통과하지 못할거것 같다.
나는 이젠 허탈한 얼굴로 그 투수를 쳐다봤다. 그리고 입에서는 한숨만 푹푹 쉬어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삼진으로 당하고 돌아오는 운선이. 그러자 덕아웃은 더욱 절망적인 분위기가 되었다.
"자, 자, 쫄지 말고! 적응만 하면 칠수있어!"
감독이 축 처진 분위기를 띄우려고 노력을 해봤지만 애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리고 2번, 3번 모두 삼진으로 돌아오자 모두들 힘없이 각자 위치로 나가기 시작했다.
*
1회말이 허무하게 끝나고 2회초로 공수를 고대한 시간, 우리팀 애들은 다들 절망적인 표정을 지으면서 그라운드로 걸어나갔다.
"하아... 미치겠네..."
"감독님, 뭔가 생각해둔 작전은 없어요?"
힘없이 한숨을 쉬자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놀라면서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수혁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음... 딱히 생각해둔 작전은 없었는데..."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힘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살짝 표정이 어두워지는 그녀석, 그리고는 뒤늦게 마운드로 뛰어나갔다.
모두들 그라운드로 나가자 나는 힘없이 벤치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는 상대편 덕아웃으로 고개를 돌린 다음에 가만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기껏해봐야 완전 저질 야구라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얘기하자면 내가 생각한 동네야구는 절대로 이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주변에서 들었던 걸로, 평범한 학생들이 가끔씩 야구 하는 모습을 봤을때는 정말로 막장이었다.
평범한 땅볼을 놓치고 뒤로 빠트리는 모습, 그리고 배트는 휘둘렀다 하면 헛스윙, 투수를 했다하면 맨날 볼만 나오고,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동네야구는 뭐 대충 저정도의 실력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대회에 나올때 딱히 준비를 하지 않았다. 정확히 애기하자면 모든 게임을 확실히, 여유있게 이기기 위해서 애들은 훈련시켰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애들의 능력치를 상승시키는 역할만 할뿐, 그 효과를 증폭시켜줄 작전을 하나도 세우지 않았다. 그냥 수혁이가 던지고, 나머지 애들이 잡고 치면 모든 게임을 수월하게 이기줄 알았다.
하지만 내 예상은 완벽히 빗나갔다. 아니, 정확히는 방금 완벽하게, 아주 완벽하게 빗나갔다. 직구가 130을 넘는 중학생이라... 절대로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내 실수였다. 동네야구라고 만만히 보고 열심히 준비하지 않았던 내 실수였다. 그냥 대충하면 이길줄 알고 시프트 연습같은건 하나도 안시켰는데, 사인같은것도 만들지 않았는데, 내 실수였다.
"스트라이크, 삼진 아웃!"
그나마 다행이라면 수혁이 이녀석이 이런 애들을 상대하면서 잘 던져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
"휴우, 일단 한타자 처리했고."
나는 오른손으로 이마를 살짝 긁으면서 종빈이가 던져주는 공을 받았다. 그리고는 지금 막 타석으로 들어오는 타자를 한번 쳐다봤다. 그러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근데 타자들은 생각보다 많이 센것 같지는 않은데... 놀부 머니즈때 보다는 나은데 그렇다고 나를 압도하는것 같지는 않고... 그냥 그 투수만 더럽게 센팀인가?"
나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면서 다시 글러브 속의 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1회말 그 투수의 인상이 너무 깊어서 그런걸까, 타자들이 못하는것 같지는 않은데, 이상하게 자꾸만 나에게 일부러 잡히는 느낌도 약간씩 들고 있었다.
분명히 체격이나 타격폼으로 봐서는 타격좀 해본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가 공을 던졌다 하면 내야 밖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공들. 아직 몇타자 상대하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느낌이 오고 있었다,
알고보니 이녀석... 허당이었다.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종빈이의 사인을 받았다. 그리고는 타석에 서있는 타자를 슬쩍 쳐다봤다.
역시나 이번 타자도 아까의 타자들처럼 폼은 그럴싸했다. 그리고 눈빛까지. 어떻게든 안타를 치고 나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이녀석들이 허당이라는걸 파악한 상황, 나는 이제부터 아까와는 다르게 거침없이 투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슈욱-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슈욱- 퍼엉-
"아웃!"
각각 삼진과 2루수 땅볼로 완벽하게 2회초도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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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골드스타즈 VS D.라이더즈(3)2015.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