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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야구팀-78화 (78/255)

우리 동네 야구팀-78화

그렇게 2회초가 무난하게 지나가고 2회말, 내가 삼자범퇴로 수비를 끝내서 그런지 덕아웃 분위기는 아까보다 훨씬 나아져 있었다.

이번 선두타자는 4번 산욱이. 산욱이는 별말없이 헬멧을 머리위에 쓰고는 자기 배트를 들고 타석으로 걸어나갔다.

산욱이가 타석에 들어서자 다른곳을 보고 있던 투수가 포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공을 던졌다.

슈욱- 파앙-

"스트라이크!"

이번 공은 몸쪽 스트라이크, 전광판으로 고개를 돌리자 역시나 이번에도 130이 넘는 숫자가 찍혀있었다.

'와... 저건 진짜 괴물이네.'

나는 전광판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속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 구속이 부럽다는 생각과 열등감도 조금 들었다.

"수혁아."

그렇게 멍하니 있던 도중, 오른편에서 나를 부르는 감독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까 내 옆에 앉는 감독님, 그리고는 저 투수를 가만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일단 우리팀이 점수를 내기는 힘들거 같은데..."

"제가 봐도 그래요."

"그래서 말인데 저쪽 타자들은 어때, 상대할만해?"

감독님은 덤덤하게 타자들의 상태를 물어봤다. 하지만 조금 불안한건지 눈동자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 2회임에도 불구하고 애들을 저렇게 꽉 잡아버리는 바람에 꼼짝 하지를 못하니까 그럴만도 했다.

"저쪽 타자들은 겉모습만 그럴싸하지, 막을만 하던데요? 무실점으로 끝내는것도 가능할거 같아요."

나는 일단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감독님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래, 그럼 부탁한다."

감독님은 고맙다는 표정으로 내 어깨를 툭툭 치면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덕아웃 앞쪽으로 가더니 펜을 들고는 뭔가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감독님이 가버리자 나도 다시 그라운드로 시선을 돌려서 저 투수가 던지는 모습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같은 투수고, 나보다 구속이 더 빨랐다. 분명히 배울점이 있을거다. 그리고 그때 화를 내면서 자신이 배트를 들고 승부를 했으면 분명히 타자로서도 나올거다. 투구할때의 스타일을 보면 타격 스타일도 대충 감을 잡을수 있을거다.

현재 황룡기 전국 동네야구대회는 지명타자에 관해서는 매우 자유로웠다.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팀 사정에 따라서 지명타자제도를 쓸수도 있고, 쓰지 않을수도 있었다. 단지 경기 도중에는 바꿀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만약 저 투수의 타격실력이 좋다면 투수라고 하더라도 타자로 나올터, 그렇다면 지금부터 확실히 알아두는게 좋았다.

아니면 투구패턴을 조사하고 애들한테 알려줄수도 있을테고. 어쨌든 봐서 손해볼거는 없었다.

*

'뭐 이렇게 공이 빨라?!'

아, 진짜. 이거 막막해도 너무 막막하다. 처음 직구가 130이 넘게 나왔을때는 나도 모르게 저절로 입이 벌려졌다.

그래서 일부러 공이 매우 빠를거라고 예상을 하면서 들어왔는데, 젠장. 내 예상보다 더 빠르다.

분명히 공이 투수의 손에서 떠나는것 까지는 보였다. 그런데 어떻게 손에서 떠나자마자 바로 내 앞에 와있었다. 한마디로 눈이 공을 따라가지 못하는거다.

나는 그러면서 어이가 없었다. 지금 숫자로 찍히는 구속은 130대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적어도 150은 되는것 같았다. 그만큼 빨라보였다.

그러면서 안그래도 막막했던 상황이 이제는 막막하다 못해 갑갑해졌다. 완전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그래도 포기할수는 없었다. 난 그렇게 생각하면서 배트를 들었다.

'분명 지난번 그... 야구부랑 시합할때도 전혀 못칠것 같던 선발투수의 공을 쳤었어. 그리고 그라운드 홈런도 만들었고. 충분하다. 이공도 분명히 적응하면 칠수 있을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그리고 투수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이 점차 조용해지는 느낌이 나더니 이내 투수만 또렷하게 보이고 나머지는 전부 흐리게 보였다.

'뭐, 뭐지...?'

갑자기 주변이 전부 흐릿하게 보이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면서 갑자기 내 몸이 이상해졌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아닌것 같았다.

오히려 컨디션이 더 좋아진 느낌이 들고 집중도 더욱 잘되는것 같았다. 저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투수의 표정 하나하나가 보이는것 같은 기분이었다.

'후우... 와라...'

뭐가 어찌됐든 지금 이 상황은 나에게 매우 도움이 되고 있었다.일단 생각은 나중에 하고 다시 투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슈욱-

그리고 마침내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떨어졌다. 그리고 공은 순식간에 포수미트로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느려져 있었다. 여전히 매우 빨랐지만 이번에는 눈으로 따라갈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배트를 최대한 세게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살짝 풀었다. 그리고 힘으로 쳐내는 것이 아닌, 맞춘다는 생각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으랏차!"

*

까앙-

"어?"

"어, 어....?"

한창 투수를 바라보고 있던 도중, 산욱이가 배트를 휘두르더니 이내 매우 선명한 소리가 내 귓가에 울려퍼졌다.

그러면서 공중을 쳐다보니까 매우 높은 높이에서 내야를 훌쩍 넘어가고 있는 타구, 그러면서 쭉쭉 뻗어나가고 있었다.

"헐, 대박."

"얘 지금 그 공을 친거야?"

"미친..."

애들은 외야 공중에 떠있는 공을 보면서 다들 놀라면서 경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중에도 전혀 떨어질 생각을 하지 못하는 공, 그러면서 쉼없이 나아가더니 이내 담장을 넘겨버렸다.

"호, 홈런!"

심판도 이런 상황에 놀랐는지 말을 더듬으면서 홈런 제스처를 취했다. 산욱이도 어안이 벙벙한지 놀란 눈으로 담장을 쳐다보면서 천천히 그라운드를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운드 위에서 멍하니 담장을 쳐다보고 있는 투수, 멀어서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믿을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것 같았다.

짝-

"이야, 최고다!"

짝-

"사장님 나이스샷!"

짝-

"쥑인다!"

산욱이가 그라운드를 다 돌고 덕아웃에 돌아오자 누구 할것없이 모두들 산욱이랑 손바닥을 마주치면서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라면서도 웃고있는 산욱이의 얼굴, 산욱이를 알게 되면서 가장 환하게 웃고있는것 같았다.

그렇게 세레머니를 마치고 나자 다들 너무 달아오른 분위기를 조금 가라앉히고는 덕아웃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그라운드로 시선을 돌렸다.

이번 타자, 그러니까 5번타자는 성빈이였다. 성빈이는 타석 안으로 들어서더니 배트를 한번 휘둘러 보고는 이내 투수를 쳐다보면서 자세를 잡았다.

투수는 가만히 홈만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와인드업을 하면서 그대로 공을 꽂아넣었다.

파앙-

"스트라이크!"

공이 미트에 꽂히면서 심판의 목소리가 시원하게 울려퍼졌다. 그러면서 뭔가 공이 더 빨라진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은 전광판을 보면서 다시 한번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141km... 저거 사람 맞아?"

"헐."

"저거 전력 아니었어?"

"야, 오늘 겜 접을까...?"

애들은 내 말소리에 전광판을 보더니 깜짝 놀라면서 입이 떡 벌어졋다.

나는 벌어진 입을 겨우 다문채로 다시 투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아까까지는 없었던 뭔가 강력한 기운이 투수에게서 흘러나오는것 같은 착각이 느껴졌다.

'헐, 이젠 하다하다못해 기까지 풍기는게 보이네...'

분명히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헛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나 또렷하게 보이고 있었다. 그 투수의 뒤에서 나오는 강력한 기운이 보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옆에 애들을 둘러봤지만 애들은 자기들끼리 놀라면서 떠들고 있을뿐, 투수에게서 뭔가 기운을 느낀다거나 그런 모습은 없었다.

아마 같은 투수여서 그러는걸까, 그러면서 내 기가 살짝 꺾인듯한 기분이 들었다.

"와... 저건 진짜..."

나는 너무 기가 막힌 나머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면서 한숨만 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다시 들어올리자 투수코치로 보이는 사람이 마운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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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골드스타즈 VS D.라이더즈(4)2015.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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