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81화
'무조건 막는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까 조금 전과는 다르게 온몸에 힘이 샘솟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서 종빈이의 사인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떻게든 막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제구, 제구에 중점을 두면서 던지기 시작했다.
슈욱- 파앙-
슈욱- 파앙-
슈욱- 파앙-
"스트라이크 삼진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삼진 아우웃!"
그렇게 한이닝, 한이닝씩 타자들을 돌려세우면서 막아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내려가고 공격 상황이 되면 이번엔 그 투수가 우리팀 타자들은 제대로 압도하면서 돌려세우기 시작했다.
마치 기록만 보면 우리 둘은 거의 비슷해 보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투구 내용을 보면 전혀 정 반대의 방식으로 공을 던졌다.
나는 경기 초반에 숨겨두었던 커브를 꺼내들면서 요리 조리 스트라이크존을 이용한 반면에, 그 투수는 별 특별할것 없는 볼배합이었지만 구위로 우리팀 타자들을 찍어 누르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기교파 투수랑 정통파 투수의 대결이었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투수전의 양상을 띄던 경기는 이제 확실하게 투수전 분위기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6회 초까지 끝나고 이제 6회말, 나는 선두타자로서 시원하게 헛스윙 삼진을 당하고 돌아와서는 벤치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길게 숨을 내쉬면서 물 한모금으로 목을 축였다.
"하... 여태까지 이런 투수전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그런가... 더럽게 떨려 죽겠다."
"우리가 여태까지 상대했던 팀들을 봐도 투수전인 경기는 단 한번도 없었으니까 그런거지."
내가 혼자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영훈이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런데 뭔가 유식한척을 하는것 같은 말투, 왠지 성빈이가 닥치라고 한마디 할것 같은 모습이었다.
"얘들아."
"아, 감독님."
하지만 닥치라는 성빈이의 목소리대신, 감독님이 나랑 영훈이 옆으로 다가오셨다. 그리고는 영훈이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영훈아, 7회에 투수로 한번 나가봐라."
"네?"
감독님의 말에 가장 먼저 반응한건 옆을 지나가던 성빈이었다. 성빈이는 놀란 눈으로 감독님을 쳐다보면서 급하게 말리기 시작했다.
"감독님, 얘 공 어떤지 아시잖아요! 제구나 구속 둘중 하나도 뛰어난게 없고, 거기다가 어깨가 좋은것도 아닌데, 왜 마운드 위로 올리세요!?"
"야, 나도 던질수 있거든?"
"넌 일단 닥쳐봐."
"맨날 나만 닥치래..."
성빈이는 영훈이의 반박을 무시하고는 계속해서 하던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역시, 닥치라고 할줄 알았다.
"감독님, 차라리 호진이나 상민이를 올리세요, 걔네가 훨신 낫다니까요?"
"아니, 지금 뭔가 불안하게 짚히는게 있어서 그래... 그리고 그걸 알아내는데 영훈이가 제격인거 같고."
"..."
"그리고 영훈이 얘도 원래 투수라면서? 영훈아, 마음껏 던져봐. 져도 삼겹살 쏠게."
"그럼 전 찬성이요. 고기만 보장된다면."
감독님의 제안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성빈이가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아니, 이거 연습경긴데 왜 그렇게 열을 내고 그래?
물론 나도 영훈이의 공이 그만큼 좋지 않다는건 알고 있다. 나도 영훈이의 공을 받아 본적이 있었으니까. 확실히 영훈이의 공은 심각하긴 심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연습경기, 그리고 우리가 골드스타즈에게 승산이 있다는 점도 알았다. 그렇다면 영훈이이게 마운드에 서게 하는 경험을 시켜보는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혹시 모르지. 영훈이가 이번 경험을 계기로 실력이 쑥쑥 올라갈지.
"스트라이크 아웃! 이닝 체인지!"
그리고 때마침 종료되는 공격, 나이스 타이밍이었다.
이닝이 교체되자 영훈이는 감독님이랑 같이 마운드 위로 올라갔다. 나는 글러브랑 모자를 챙기고 외야로 천천히 걸어갔다.
우익수 자리에 도착하자 저 멀리 마운드 위에서 영훈이가 서있는 모습이 작게 보였다.
영훈이는 감독님이랑 뭔가 얘기를 나누는듯 싶더니 감독님이 옆으로 물러나고 연습구를 던져보기 시작했다.
*
"영훈아, 한번 던져봐라."
"이거... 져도 괜찮은거죠?"
"음... 그럼 너 부담될때 종빈이를 불러. 그럼 내가 올라가서 교체해줄게. 됐지?"
"네."
후아, 너무 떨린다. 수혁이를 대신해서 내가 올라올줄이야, 솔직히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난 어깨도 약해서 구속도 빠르지 못하고, 제구도 수혁이보다 훨씬 안좋은데, 이런 내가 마운드 위로 올라올줄은 생각 하지도 못했다.
그나어자 이제 슬슬 우익수에 익숙해져가고 있었는데, 내가 잘 던질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무리 운동을 해왔어도 선천적인건 선천적인것, 역시 내 실력은 다른 애들에 비해서 월등히 떨어진다.
그러면서 과연 제구는 어떨지, 그리고 구속은 얼마나 나올지, 걱정되면서 은근 기대되기도 한다. 설마 수혁이보다 더 나오는건... 아니겠지...
여튼, 감독님이 말씀하신대로 연습구 몇번을 던져보기 시작했다. 내가 던질수 있는 공은 직구 단 하나, 사실 직구 구속이랑 제구도 안되서 변화구는 일찌감치 배우지도 않았다.
쨌든, 나는 종빈이의 사인과 미트 위치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첫 연습구니까 최대한 제구에 맞춰서 살살 던졌다.
슝- 퍼엉-
"후우..."
다행이다. 솔직히 마음 한구석으로는 공이 포수한테까지 갈까 생각했었는데, 제대로 들어갔다. 다행이었다.
그렇게 연습구를 몇번 더 던지고 나자 감독님이 다시 내 옆으로 오셨다. 그리고는 내 어꺼에 툭툭 치면서
"그럼, 네 마음대로 한번 던져봐라."
라는 다정한 한마디를 하고는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후우..."
아, 감독님이 내려가시니까 갑자기 다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타자가 타석 안으로 들어오니까 이내 자신감마저 떨어지기 시작한다. 만약 저 타자를 맞췄다가는... 난 아마 죽겟지?
'아냐, 지금 어떻게 올라온 마운든데 이런 생각을 하고있어? 지우자, 지우자!'
나느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애써 그런 불길한 생각들을 지워냈다. 그리고는 숨을 최대한 깊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사인을 확인했다.
이번 공은 직구, 미트가 한가운데에 있는걸 보니까 아무데다 던지라는 소리인것 같았다.
나는 글러브 안에서 천천히 공을 쥐었다. 그리고 떨리는 다리에 온 힘을 모아서 최대한 앞으로 내밀면서 던지기 시작했다.
티잉-
"파울!"
타자는 내 공이 이렇게까지 느린줄 몰랐던거지 배트가 일찍 나오면서 공은 파울선을 넘어가버렸다.
휴우, 다행이다. 그럼 일단 스트라이크 하나가 쌓인 상황. 일단 처음은 괜찮았다.
나는 자신감이 쌓인 상태로 두번째 투구를 준비했다. 그리고 두번째 공을 던진 순간
부웅-
타자의 배트가 매우 빠르게 돌아가더니
까앙-
하는 소리가 내 귀에 매우 크고 선명하게 들려왔다.
"어, 어..."
나는 아무말없이 그저 뒤로 돌아서 날아가는 공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공은 떨어질 줄을 모르면서 내야를 가로질러서 계속 날아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중견수랑 좌익수 사이에 놓인 타구, 그러면서 2루타가 되었다.
"아..."
결국 성빈이가 우려하던 상황이 벌어졌다.
내가 올라가면 뻥뻥 얻어터질거라는 성빈이의 말, 그때 기분은 나빴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다시 확인이라고 하듯이 이렇게 장타를 맞아버렸다.
"..."
그런 생각이 드니까 더이상 공을 던지고 싶지 않아졌다. 아니, 정확히는 지금은 더이상 던지지 못할것 같았다.
애들이 힘겹게 만들어놓은 승리를, 내가 공을 던지고 싶다고 해서 망칠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종빈이를 손짓으로 불렀다. 그리고 고개를 뒤로 돌려서 수혁이를 쳐다봤다.
'나도 잘 던지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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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화-골드스타즈 VS D.라이더즈(7)2015.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