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82화
"흠..."
영훈이가 마운드에 올라가자 나는 펜과 수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최대한 앞으로 나갈수 있는 곳까지 나간 다음에 영훈이랑 상대 타자를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솔직히 지금 수혁이가 잘 막아줘서 좋기는 좋앗지만, 뭔가 수상한 냄새가 맡아지고 있었다.
뭔가 정확하게 뭐라고 말하기는 좀 애매하지만, 처음부터 뭔가 수상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솔직히 돈으로 도배를 하면 수혁이 정도의 공은 지금 뻥뻥 맞고 있어도 아예 이상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럴 가능성도 있기는 있었다.
물론 수혁이가 잘 막고 있다는건 좋은 거였다. 하지만 뭔가 꾸리꾸리한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그래서 한번 투수를 교체해보는 거였다. 그렇게 되서 지금 영훈이가 마운드로 올라간거였다.
물론 그것 때문에 바꾼것만은 아니었다.
우리 팀에서 제대로 된 투수는 수혁이 단 한명, 물론 수혁이의 실력이 좋아서 지금까지는 어느정도 버틸수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수혁이 하나로 버틸수는 없었다. 다른 투수를 만들거나 영입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만약 영입을 한다면 다시 교통정리를 해야만 한다. 그리고 팀웍도 다시 다져야 한다. 일이 복잡해진다.
그래서 적어도 이번 대회까지는 다른 선수를 영입할수는 없었다. 이대로 가야만 했다.
그래서 백업 투수를 만들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오늘 내 눈에 들어온게 영훈이었다. 일단 이번엔 영훈이에게 맡겨보고, 안된다면 다른 애들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까앙-
하는 소리가 나면서 타자가 2루까지 진루했고, 영훈이가 고개를 숙인채로 종빈이를 부르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 본건가...'
그동안 투수를 했었다면 꽤나 당당한 성격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나는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마운드로 천천히 걸어갔다.
*
"야, 왜그래?"
종빈이가 마운드 위로 올라와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할수 없었다.
그냥 단지 내 공은 배팅볼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지금 입을 열었다가는 눈물이 후두둑 쏟아질것 같았다.
왜 그런지 모르겟다. 투수가 안타를 맞는건 흔한 일인데, 매우 흔하고 또 흔한 일인데, 지금 나에게는 끝내기 홈런을 맞은것보다 더 허탈하고, 절망스러웠다.
도대체 왜 그런걸까. 그러면서 생각을 하면 언제나처럼 나오는 결과는 늘 하나, 내 공이 별로라는 결과 뿐이었다.
제구도, 구속도 다 표준 미달이고, 학원때문에 던지고 싶어도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 시간이 되서 애들이랑 야구를 하더라도도 애들이 내려오라고 하니까 할 기회조차도 없고... 간신히 올라와도 맨날 볼넷, 혹은 얻어터지는 패턴만 반복되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 덤덤해진줄 알았는데, 갑자기 울컥 눈물이 차오르는것 같다.
"영훈아. 가서 수혁이랑 교체해라. 그리고... 아니다."
내가 아무말도 하지 않자 감독님이 교체 명령을 내리셨다. 그리고 아마 마지막에 하려다 만 말에서
'넌 아무래도 투수는 아닌것 같다.'
라는 뒷말이 들려오는것 같았다. 그러면서 내 자신이 매우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래, 난 애초에 투수따위는 어울리는 투수가 아니었던 모양이었나 보다. 그냥 우익수나 더 열심히 할걸 그랬나보다. 괜시리 다시 투수를 해본다고 해서...
결국 힘들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우익수 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고개를 들지 저 멀리서 수혁이가 마운드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
"쩝... 교첸가보네..."
저기 저 멀리서 영훈이가 내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잠시 벗어두었던 글러브를 다시 손에 낀 다음에 마운드 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운드 위에 도착하자 종빈이랑 감독님이 같이 서있었다. 감독님은 날 보시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마무리, 해줄수 있지?"
"넵."
"그럼 부탁한다."
감독님은 그 한마디를 남기고는 다시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종빈이까지 다시 위치로 돌아가자 심판이 경기를 재개했다.
'얼른 마무리하고 끝내버리자.'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사인을 확인했다. 그리고 타자를 슬쩍 쳐다보고는 그대로 공을 꽂아넣었다.
슈욱- 파앙-
"스트라이크!"
확실히 깔끔하게 들어간 공, 타자는 칠 생각이 없었는지 가만히 서있었다.
나는 종빈이가 던져주는 공을 받았다. 그리고 사인이 나오자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두번째 공을 던졌다.
깡-
이번엔 칠 생각이었는지 타자가 배트를 휘둘렀다. 그리고 공중에서 쭉 벋어가다가 유격수 호진이가 몸을 날리면서 글러브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잽싸게 다시 일어나서 2루에 들어간 성빈이에게 토스하면서 아웃. 안타인줄 알고 뛰었던 주자까지 잡히면서 순식간에 더블플레이가 만들어졌다.
"오-케이!"
병살타가 나오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기뻐했다. 하지만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은 상황,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는 다음 타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타자를 쳐다보니까 어떻게든 살아서 나가겠다는 목적인지 배트를 짧게 쥐고 있었다. 그리고 매우 무서운 눈빛으로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음... 그럼 이번에는 이렇게 가볼까..."
나는 타자를 보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종빈이가 사인을 받아오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직구 사인을 만들고는 왼쪽 어깨에 갖다댔다.
'직구로 가자. 빠르게 제압할게.'
내가 보낸 사인에 종빈이는 잠시동안 답이 없었다. 그러다가 생각을 다 마쳤는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타자의 몸쪽으로 미트를 내밀면서 직구 사인을 보냈다.
나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종빈이의 사인과는 다르게 커브 그립을 쥐고는 한참 바깥쪽을 향해서 던져버렸다.
슈욱- 퍼억-
공은 잘 날아가다가 대각선으로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종빈이가 급하게 당황하면서 온몸을 움직였지만 공은 뒤로 빠져버린 상태, 그러면서 폭투가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놀란듯한 종빈이의 표정, 하지만 내가 괜찮다는 의사를 보이면서 안심시키자 다시 원래자리로 돌아갔다.
"후우... 일단 첫번째 단계는 성공적이고."
종빈이가 다시 자리로 돌아가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내 생각은 이러했다. 우선 폭투를 던져서 상대의 반응이 조금 느슨해지게 만든 다음, 빠른 템포로 공을 던지면서 삼진을 잡아버리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방금 던진 공은 내 바람대로 폭투가 된 상황, 이제 이런식으로 계속 볼을 던지면서 시간을 조금만 더 끌다가 빠르게 카운트를 잡고서 끝내버리면 되는거다.
어차피 낫아웃 상황이 되는것도 아니니까 출루할 걱정도 없고, 기왕 이렇게 여유로운 김에 마지막은 삼진으로 잡고 가고 싶었다.
나는 종빈이를 쳐다보면서 사인을 확인했다. 그리고 두번더 종빈이가 요구한 위치는 무시하고 존 바깥쪽 아무데나 던지기 시작했다.
파앙- 파앙-
"쓰리볼."
그러면서 순식간에 꽉 차버린 초록색 불빛, 그렇게 되자 나는 잠시 타자를 쳐다봤다.
타자는 내 예상대로 확실히 아까보다는 조금 느슨해진것 같았다. 갑자기 제구가 흔들리는데 굳이 칠 이유가 없긴 하겠지. 아마 지금쯤 볼넷으로 걸어나갈 생각만 하고 있을거다.
'그럼, 이제 끝내보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종빈이의 사인을 확인했다. 그리고 곧바로 미트를 향해서 공을 꽂아넣었다.
파앙-
"스트라이크!"
살짝 몰리긴 했어도 미트 근처로 잘 들어간 공. 타자는 움찔하고는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나는 타자에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종빈이의 사인을 받고는 한번더 곧바로 꽂아넣었다.
파앙-
"스트라이크 투!"
이번에도 빠른 템포로 밀어붙인 상황, 나는 다시 공을 받고는 이번엔 사인도 받지 않고 곧바로 공을 꽂아넣었다.
슈욱-
그리고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게임 셋!"
그대로 경기를 끝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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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변화(1)2015.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