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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야구팀-86화 (86/255)

우리 동네 야구팀-86화

어느 한 아파트 단지의 아무도 모르는 풀숲 뒤의 공터. 커다란 나무 밑동에 소년과 소녀가 나란히 앉아있었다. 그리고 둘다 저 멀리서 지고 있는 노을을 구경하고 있었다.

[와... 여기 진짜 좋다...]

[그렇지? 여긴 나 빼고는 아무도 몰라. 그래서 심심하면 여기로 자주 오고 그래.]

툭-

[뭐야?]

[네 어깨에 푸근하다...]

[...]

소녀는 눈을 살며시 감으면서 소년의 어깨애 툭 기대었다. 그러자 조금 놀라는 소년, 그러나 이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런데 너는 왜 애들이 괴롭히는거야?]

소녀의 말에 소년은 한번더 흠칫하면서 조금 놀랐다. 그리고 잠시 말이 없더니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코 한번 파다가 들켰다고...]

[뭐? 푸하하!]

소년의 대답에 소녀는 재밌다는듯이 웃었다. 그리고 조금씩 붉어지는 소년의 얼굴, 그러면서 조금 인상이 찌푸려지려고 하자 소녀가 웃던 웃음을 조금씩 멈추기 시작했다.

[미, 미안.]

[아냐....]

소녀가 사과하자 소년은 괜찮다면서 대답했다. 다시 노을을 멍하니 바라보자 귀가 아닌, 느낌적으로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두근- 두근-

'뭐지? 얘의 심장소리인가?'

소년은 그 소리에 소녀에게로 시선을 돌려봤다. 하지만 소녀는 점점 잠이 들어가는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거 다른 애들한테는 비밀이야. 알겠지?]

[응...]

소녀는 졸린건지 조용히 대답했다. 소년은 다시 노을을 멍하니 바라보자 갑자기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두근- 두근-

'뭐지? 심장소리 같은데'

소년은 그 소리에 소녀에게로 시선을 돌려봤다. 하지만 소녀는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잠이 들었는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신기하네...'

소년은 그 심장소리를 계속 들으면서 소녀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면서 작게 미소가 지어지졌다.

*

"으음..."

아마 잠시 눈을 감다가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나 보다. 다시 눈을 뜨니까 몸이 마치 자고 일어난듯이 개운하면서 조금 찌뿌둥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간만에 그때 꿈을 꾸다니, 이 동네로 오고나서는 처음이었다. 기간으로 따지면 거의 1년 반 만이었다.

'그 이후로 아마 개가 내 어깨에 많이 기댔었었고... 그때는 하루종일 무슨 일이 있어도 기분이 좋았었는데.'

하, 그때 생각을 하면서 기분이 나빠졌지만, 그 여자애랑 단둘이 있던 때를 생각하면 다시 기분이 나아졌었다.

그건 그 동네를 떠나고도, 그때 기억이 다시 떠올라도 언제나 똑같았다.

그러면서 남들이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걸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애 말고는 내 어깨에 기댈 사람도 없었고, 그 누가 기대도 그냥 무겁고 짜증나기만 했었다.

물론 여자가 내 어깨에 기대는 일따위는 없었지만. 여운이랑은 그런 스킨십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고.

그런데 이번만큼은 왠지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그때의 꿈을 꿔서 그런거라고 그대로 단정지어 버렸다.

설마 이런 애가 내 기분을 좋게 할리는 없었다. 다른애들에게 피해를 주는게 일상인 애들인데, 그럴리가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추억팔이만 할수는 없는법, 하던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보자 지하철은 어느새 열 정거장이 넘게 지나가고 있었다.

"야, 어디서 내려야 되는거야."

나는 일단 나를 끌고가는 그애를 툭툭 건들면서 깨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애는 아무리 건들어도 움직이지를 않았다. 아마 이 자세로 있다가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것 같았다.

툭- 툭-

"야, 야, 일어나봐."

아무리 건들어도 일어나지를 않자 이제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꾹꾹 밀어내면서 깨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도중에

"오빠, 여자친구한테는 그렴 안되죠."

"여자친구 아니다."

옆에 앉은 초딩으로 보이는 여자애한테 핀잔도 듣긴 했지만, 가뿐히 무시하고는 게속해서 깨우기 시작했다.

"으음..."

그렇게 얼마나 건들였을까, 그애가 그제서야 정신이 들엇는지 천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보더니 급하게 머리를 정리했다.

"나 잘때 이상했어?"

그애는 휴대폰으로 잠시 상태를 확인하고는 나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내가 뭘 알리가 있나. 나도 같이 자버렸는데.

"몰라. 그건 그렇고, 얼마나 더 가야되는거야."

나는 지루하다는 식으로 조금 투덜거리면서 물어봤다. 그애는 내 물음에 잠시 안내판 쪽으로 시선을 올리더니 잠시뒤에 다시 내 어깨에 기대었다.

"아직 한참 남았어. 15정거장 이상 걸릴거야."

"거의 종점까지 가는거야?"

아니, 지금 장난하나. 이 노선이 짧은것도 아니고.

나는 순간적으로 놀라면서 조금 화가 났다. 그애가 말한 정도라면 거의 종점 근처까지 가는거였다. 그리고 이 노선이 지하철치곤 그리 짧은편도 아닌, 아니 긴 편에 속하는 지하철이었다.

그렇다는건, 지금 얘가 나를 데려가려는 곳은 서울이 아닌 서울 바깥이었다. 그것도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도대체 어디를 가길래 그렇게까지 가는건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건 좀 아닌것 같았다. 그러면서 나는 그애에게 따지는 말투로 묻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애는 살짝 말하기를 주저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어... 그러니까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했거든..."

"설마..."

아, 안들어도 알것같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지금 나보고 한번 데리고 와보라는 거고, 그래서 지금 그애가 나를 거의 반 강제적으로 끌고 가고 잇는 중이라는 소리였다.

아, 망할. 괜히 따라오는게 아니었다. 확 잡아 끊었어야만 했다. 아니, 나는 왜 이딴애랑 엮여서는...

나는 속으로 절망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누구일지 대충 한번씩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얘가 친한 사람이면 날라리일테고, 뭐, 어른이라고 쳐도 예전에 양아치거나 이상한 사람들밖에 없을거 같은데...'

대충 예상되는 사람들을 나열하니까... 후, 이거 한숨이 한번 더 저절로 나온다. 난 어쩌다가 그런 소굴로 끌려들어가는건지, 진짜로 막막하다.

설마 거기 갔다가 내가 싫어하는 척이라도 하면 설마 반 죽이는거 아냐?

"아, 그리고..."

내가 혼자서 별의별 생각을 하는도중, 그애는 아직 할말이 남앗는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 거기서는 그... 지금처럼 그러지 않았었거든... 그리고 거기에서는 지금 내가 이런앤줄도 모르고..."

"뭐?"

헐, 이건 또 무슨 소리래.

그러면서 난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잠시동안 사고가 굳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돌아오자 아까 들었던 별의별 생각들은 다 날아가버리고, 그냥 평범한 학생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러니까... 넌 거기서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말이야?"

"응 ... 그래서 의심할만 말이나 행동은 안해줬으면..."

그애는 진심으로 부탁하는건지 난처한 표정으로 나에게 부탁하고 있었다.

'헐, 가관이네.'

그러면서 속으로는 싫다고 하고 싶었지만, 그쪽 사람들과의 관계에 피해를 주기는 싫었다. 그애가 남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해서 나도 똑같이 그러면 똑같은 놈일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난처한 표정으로 부탁하는데, 그냥 무시할수는 없었다. 무시한다고 치면 그 후폭풍을 감당하지 못할것만 같았다.

지난번처럼 정문 앞에서 또 들이댄다면... 어우, 끔찍하다.

"...알겠어."

"고마워!"

내가 긍정적으로 대답해주자 그애는 진심으로 기뻐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내쪽으로 조금 더 바짝 붙어서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야, 치워."

나는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면서 머리를 치워내려고 했지만, 말만 나갈뿐, 아까처럼 손이 올라가지를 않았다. 그러면서 다시 그애의 심장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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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화-전혀 다른사람같은(3)2015.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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