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87화
그러고 나자 또다시 들려오는 심장소리, 이제는 치우라는 말도 나가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런거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아까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던 손이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애의 머리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
그애는 그새 또 잠들어 버린건지 아무런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 단지 여전히 심장소리가 들려오고 있을 뿐이었다.
"으음... 뭐해...?"
내가 손을 올리고 있는걸 느꼈는지 그애가 천천히 눈을 뜨면서 나를 쳐다봤다.
그러면서 급하게 다시 원래자리로 돌아간버린 손. 그러면서 심장이 쿵쾅대면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뭐, 뭐야? 도대체 왜 이러는건데?'
나느 순간적으로 긴박하게 뛰는 심장을 저지하려고 해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전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머리좀... 치우라고."
나는 간신히 티나지 않도록 말하면서 그애의 머리를 손으로 툭 밀어냈다. 그나저나 아까는 안되더니, 이번엔 되네.
"네 어깨 너무 푸근하고 좋은데... 기대면 안돼...?"
"싫어. 무거워."
결국 그애는 똑바로 앉은 다음에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나는 그애를 쳐다보지도 않은채로 쌀쌀맞게 대답했다.
그러자 포기한건지 더이상 아무말도 없는 그애, 설마 포기했나 하면서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투욱-
하면서 어깨에 닿는 감촉과 함께 그애가 다시 내 어깨에 기대었다. 그리고는 눈을 서서히 감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아 진짜..."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한숨, 하지만 이번엔 밀어내지는 않았다.
"..."
그냥 오래간만에 들리는 이 소리. 조금만 더 느껴보고 싶었다.
*
"으아... 개운하다..."
"아으... 분명 머리는 비었을텐데 뭐가 이렇게 무거워..."
그뒤로 약 한시간 정도가 더 지나서 간신히 내린 지하철, 아직 해가 질때는 아닌지 하늘은 여전히 밝은채로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되는거야"
나는 약간 뻐근한 왼쪽 어깨를 오른손으로 꾹꾹 주무르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음... 아, 이쪽이야."
그애는 그렇게 말하더니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는 어딘가로 달리더니 역 근처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예영아!"
"진짜 오랜만이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자 한쪽 테이블에서 두 여자가 그애를 반기고 있었다. 그리고 매우 반가워하는 그애, 아무래도 말한 사람이 얘네들인것 같았다.
그애는 내 손을 잡은채로 자기 친구들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 맞은 두 자리에 앉았다. 그 둘은 나를 살짝 보더니 자기들끼리 놀라면서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여기 얘가 걔야?"
"오~ 맨날 고백 차고 다니던 애가 무슨 일이래?"
서로 인사가 끝나자 그애의 친구들이 나에게 관심을 돌렸다. 그리고는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그애를 은근히 놀리는듯한 말투로 장난을 걸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얜 여기서도 인기는 많았나보네. 그리고 그걸 또 다 차버렸다니... 하, 내 인생이랑은 완전히 딴판이네.
나는 속으로 약간 부러움을 느끼면서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러자 다시 나를 쳐다보는 둘의 시선, 그러면서 갑자기 부담감이 확 몰려오기 시작했다.
"흠... 그렇게까지 잘생긴건 아닌데..."
"도대체 뭐가 좋아서 사귀는거야?"
두 사람은 매의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그애게게 물어봤다. 나는 그 두 사람에 시선에 잠시 몸이 굳어비린채로 가마히 서있을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귀는 사이라고...?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나는 아까 들은말을 가만히 되짚어보다가 깜짝 놀라면서 그애게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나를 힐끔 쳐다보는 그애, 그리고는 간절한 눈빛으로 아무말도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었다.
'하, 진짜 미치겠네...'
결국 간절한 부탁에 나는 화를 참으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그애를 잠깐동안 티나지 않게 째려봤다.
"와, 이와중에도 서로 쳐다보는거봐."
"서로 진짜 좋아하나 본데?"
내가 째려보는걸 오해했는지 둘은 대단하다고 중얼거리면서 계속해서 감탄만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얘가 남자한테는 쌀쌀했어나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그런데 그건 둘째치고, 왜 내가 째려보는걸 그렇게 해석하는건지.
내가 봐도 내 눈이 조금 날카로워 보이기는 한데... 그래도 바로 앞에서 그걸 그렇게 오해하는것도 진짜 신기하네.
나는 그애를 째려보던 시선을 다시 거두고는 말없이 앞만 쳐다봤다. 어차피 째려봐야 바뀌는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런데 막상 시선을 다시 거두고 나니까 딱히 할일이 없었다.
지금 이야기에 끼어들기에는 조금 그런것 같고, 그렇다고 게속해서 그애만 쳐다보기는 싫고. 이럴때 마실거라도 앞에 있으면 모를까, 진짜로 할게 없었다. 뻘쭘했다.
"아, 그런데 너랑 같은학교야?"
그렇게 얼마나 가만히 있었을까, 드디어 대화 주제가 내쪽으로 돌려진건지 세명 모두다 나를 쳐다봤다.
그러면서 갑자기 확 부담되는 시선들. 나는 그 부담감을 최대한 경계심으로 바꾸면서 혹시나 이상한 대답을 하지 않도록 정신을 똑바로 차쳤다.
"아니, 내가 전학가기전에 다른데로 전학갔어."
"무슨 소리야?"
그애의 설명이 너무 부실했는지 두 사람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설명해볼까 했지만, 괜히 나서서 좋을것 같지 않다고 판단되어서 그냥 게속해서 가만히 있었다.
"그러니까, 얘가 면홍중에서 있다가 전학을 간 다음에 내가 면홍중으로 온거야."
"헐, 그런데 어떻게 이어졌어?"
"우리학교 야구부랑 시합한다면서 자기 친구들이랑 왔을때 처음 봤어."
"대박... 이건 진짜 운명이다..."
그애의 이야기를 들은 둘은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우리 둘을 쳐다보면서 감탄하고 있었다.
아니, 그런데 운명은 무슨 운명이야. 난 지금 얘 때문에 더 피곤해 죽겠는데.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리고는 오른손을 목으로 가져다대면서 살살 주물렀다. 갈곳없는 오른손의 선택지였다.
"그런데 야구를 한다고?"
"생긴거 봐서는 그냥 범생이인거 같은데."
"그럼 야구부야?"
아까 그애의 대답에 둘은 뭔가 제대로 된 거리라도 잡았는지 아까의 질문에 대해서 계속해서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진짜 불편해죽겠다. 이거 언제쯤 끝나는건지.
그런데 그애가 무슨일인지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단지 나를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내가 야구부인지 확실하게 잘 모르는것 같았다.
아, 진짜 내가 왜 여기와서 처음보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까지 해야되는건지. 난 다시한번 그애를 째려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 선수는 아니고... 그냥 애들끼리 모여서 전국대회 나가는정도..."
"전국대회?"
"막 150 강속구 찔러넣고 그런거야?"
"대박!"
잠시만, 그렇게 오해하면 내가 곤란한데. 도대체 앞뒤 다 잘라먹고 전국대회라는 말만 들었나.
나는 급속도로 흥분하는 둘을 보면서 갑자기 난처해지기 시작했다. 오해는 빚더미처럼 순식간에 불어나는것, 얼른 수습하지 않으면 힘들어진다. 나는 그러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그정도까지는 아니고..."
"어쨌든 전국대회잖아!"
"야, 너 야구하는 사람이 그렇게 좋다고 하더니 결국 제대로 하나 잡았네!"
"그런데 그거 아니어도 자상하고, 친절하고 진짜 최고야."
야, 잠깐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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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화-전혀 다른사람같은(4)2015.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