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88화
야, 잠깐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애의 말에 내 순간적으로 내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왼손으로 내 허벅지를 두어번 톡톡 두들기는 그애. 일단은 가만히 있어달라는 신호인것 같았다.
미칠것 같았지만 지금 여기서 사실대로 다 말했다가는 그뒤 후폭풍의 감당이 되지 않을것 같았다. 결국 나는 속으로 또 참으면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우우웅- 우우웅-
그렇게 수다를 떤던 도중에 들리는 진동소리, 그리고 그애가 휴대폰을 슬쩍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잠시만."
이라고 말하더니 이내 화장실 쪽으로 달려가버렸다.
'야, 잠깐만. 네가 가버리면 나는 어떡하라고!'
나는 그애를 붙잡고 싶었지만 그럴수는 없는 노릇, 그러면서 두 사람을 상대로 내가 혼자서 마주하고 있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시선이 엄청나게 부담스럽다. 결국 나는 온몸으로 느껴지는 부담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시합때 떨지 않기 위해서 지금 이틈에 이미지 메이킹을...'
하지만 내 계획은
'그런데 아까 걔가 야구 좋아하는 사람이 좋다고 했었지 않았나?'
다른 곳으로 새어버리면서 실패해버렸다.
대신, 내 앞에 잇는 두 사람과의 어색함을 떨쳐낼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저기..."
"응?"
"예영이가 야구 잘하는 사람이 좋다고 한거... 진짜에요?"
"응, 걔 예전에 야구 했었거든. 그리고 자료 수집하는것도 엄청 좋아해서 프로야구는 물론이고, 고교야구 까지는 모든 데이터를 가지고 있고, 요즘 그 뭐더라... 아, 황룡기 동네야구던가? 쨌든 그런 대회가 열린다면서 거기 데이터도 모은다고 했어. 장난 아냐."
"지, 진짜요?"
"응, 그리고 가끔씩 같이 야구장가면 걔가 데이터 읊어주면서 어떤 스타일의 공을 좋하고, 그래서 투수는 어떤 공을 던질거라고 그러면서 분석도 엄청 잘해."
헐, 이건 전혀 에상치 못한 반전이었다.
처음 봤을때부터 그냥 개념없는 양아치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까 야구에 미쳐있는 사람이면서, 엄청난 전력분석가라는 사실에 나는 엄청나게 놀랐다.
그리고 더 대단한건, 그냥 동네야구나 마찬가진인 대회까지도 데이터를 수집한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보통 프로야구 데이터를 모으기도 힘든데, 어떻게 그런 대회의 데이터까지 모은다는건지. 정말로 대단했다.
"얼마나 데이터가 좋으면 몇몇 고등학교에서 분석한걸 구입해가겠어. 아마 그 바닥에서는 꽤나 유명하다고 자기 입으로 그러는데."
"와... 진짜 대박..."
덧붙여진 말에 나는 이젠 아예 대놓고 입을 벌린채로 그저 감탄만 하고 있었다.
몇몇 고등학교에서 자료를 구입해갈 정도라면... 데이터의 양이 방대할 뿐만 아니라, 세밀하고, 자세하게, 혹은 투구, 타격 영상같은것도 많다는 건데, 갑자기 그애가 대단하게 느껴지네. 그거 모으기 엄청나게 어려운건데.
"그런데, 예영이의 어디가 좋아서 만나는거야?"
그렇게 한참 감탄하고 있을 무렵, 둘이 나를 쳐다보면서 기습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 갑자기 뜨끔하는 심장, 그러면서 뭐라고 말해야될지 내 머리는 재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진짜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시했던지라 딱히 할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어쩔수없이 거짓말을 할수밖에 없었다.
"음... 그냥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나오고, 뭔가 기분이 좋아지고 그래요."
"헐, 걔 남자애들한테는 진짜 차가웠는데, 진짜 좋아하긴 하나보네."
"아까 쳐다볼때부터 뭔가 눈빛이 달랐잖아."
다행히 내 말에 둘은 별 의심도 하지 않고 쉽게 넘어갔다. 그러면서 속으로 안심하려는 찰나
"그런데 남친이 그것도 모르고 있었어?"
"예...?"
"의외네. 나중에 남친 생기면 그런거 꼭 같이 해보고 싶다고 늘 말하고 다녔었는데..."
내 말에 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얼마 안가서 다시 잊어버리고는 나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그 시선들 진짜 부담된다.
그렇게 얼마나 시선을 받고 있었을까, 잠깐 시선을 돌리니까 그애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애는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둘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의심하는 눈빛을 보냈다.
"너네 나 없는 사이에 이상한 질문하거나 그렇진 않았지?"
"했다면?"
그애의 말에 둘은 킥킥거리면서 장난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그러자 별일 없다고 판단한건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면서 그냥 웃어버리는 그애, 그러면서 내 손등위로 뭔가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아 진짜...'
나는 그 순간 속으로 짜증이 마음속에서 솟구쳤다. 딱 봐도 뻔했다. 분명히 그애가 손을 올린 거였을거다. 나는 자연스럽게 손을 뺴내고는 내 다리위로 올렸다. 그리고는 그애를 잠시동안 째려봤다.
"아, 그런데 너네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어?"
"예영이 성격상 아직 손잡는것도 안했을거 같은데."
"하긴, 남자랑 닿는거 그렇게 싫어하는 애였으니까."
다시 시선을 돌리자 둘은 우리에게 진도가 얼마까지 나갔나고 묻고 있었다. 그러면서 조금 당황하는 우리 둘. 일단은 그애랑 입을 맞춰야 하기때문에 그애를 슬쩍 쳐다봤다.
그애는 당황한건지, 아니면 뭐 이상한 상상이라도 하는건지 방금 전과는 다르게 얼굴이 많이 달아올라 있었다.
반면에 나는 이번엔 또 어떻게 거짓말을 쳐야 자연스러울까 하는 생각으로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그냥 닥치고 있자.'
결국 생각끝에 나는 가만히 있기로 하고 그애를 슬쩍 쳐다봤다. 그다음 고개를 아주 미세하게, 둘에게는 티가 안나도록 저으면서 나는 말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냈다.
끄덕-
다행히 그애는 내 의도를 이해했는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을 하는 척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음... 일단 볼뽀뽀까지는 해봤어."
"진짜?"
"헐... 얘 진짜 많이 변했는데...?"
그애의 말에 둘은 진심으로 놀랐는지 그만 말을 잃어버리면서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진짜... 대박이다..."
"너 예전에 마지못해 받아준 남자애들이랑은 스킨십 완전히 차단했었잖아?"
"응, 그런데 얘는 내가 좋아서 먼저 다가간거니까."
"헐... 얘가 고백한게 아니었어?"
"오히려 반대야. 내가 달라붙고, 그럼 얘가 밀어내고 그래."
헐, 그런말이 덤덤하게 잘만 나오네?
그애는 웃으면서 자신에게 상처가 될수도 있는 모습을 덤덤하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옆에서 바라본 그애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안타까우면서도 쓸쓸해 보인다는 착각도 잠시 들었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계속 그럴건데. 빨리 마음 접으면 쉬울텐데.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건 나도 알고있긴 하고...
'이렇게 보니까 너도 참 불쌍한 애구나...'
그러면서 그애를 동정이 담겨있는 눈으로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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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화-전혀 다른사람같은(5)2015.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