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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야구팀-93화 (93/255)

우리 동네 야구팀-93화

산월야구장 근처의 어느 한 커피숍, 두 남녀가 서로 마주본채로 앉아있었다.

여자는 뭔가 조금 어려보이는,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 남자는 운동을 많이 한듯한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또 왔네요."

여자는 꽤나 도도한, 그러면서 장난기가 서린듯한 표정과 말투로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반면에 뭔가 약점이라도 잡힌건지 조금 미안하면서도 무안한 표정의 남자, 그리고 그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오랜만이지? 그때 짤리고 나서 몇몇 팀들을 하도 전전하느라 만날 틈이 없었어."

"그건 저한테 하지 말고 우리 언니한테 직접 하세요. 요즘 연락 안된다고 엄청 실망하는 눈치던데."

"아 그래...?"

"아, 됐어요. 계속 그렇게 간보지만 말고 얼른 고백해버려요. 남 연애에 끼어들어서 이런짓 하는것도 이제 슬슬 짜증나거든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성질이 나는지 앞에 놓인 음료를 빨대로 한모금 쭉 빨아들였다. 그리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뭐 오늘 저 따로 보자고 한 이유는... 정보 달라는거죠?"

"어, 어떻게 알았어?"

"표정만 봐도 답이 딱 나오거든요."

여자는 한손으로 턱을 괴면서 남자를 한심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저렇게 표정에서 생각이 다 읽혀버리는데 무슨 감독을 하겠다는 건지...'

여자는 한번더 음료를 빨대로 쭉 빨아들였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작은 USB 하나를 꺼내놓았다.

"뭐야? 설마 벌써 조사해둔거야? 어떻게 알고?"

여자의 행동에 남자는 놀란 눈으로 여자를 쳐다봤다. 아직 어떤 정보인지도 말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다 끝내기라도 한건지 정보를 딱 내놓았다.

"여자의 감이죠."

"와... 진짜 여자의 감이란게 있긴 하구나."

여자의 짧은 한마디에 남자는 감탄하면서 USB를 집어서 주머니 속에 넣었다.

'뭐, 사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여자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봤다. 그리고 주의할점을 말해줬다.

"아, 그리고 아직 전부다 조사한 정보도 아니고, 완벽히 정리된 것도 아니라서 자료가 조금 엉성하고 적을거에요."

"야, 그래도 이정도면 어디야. 다른 팀들은 지금 정보 하나도 없을텐데."

여자의 말에 남자는 신기함과 기쁨이 섞인 표정을 지으면서 여자에게 한번 웃어보였다.

"아오, 이런건 좀 우리 언니한테나 하라고요. 어디서 애를 꼬시고 있어. 아청법으로 잡혀가고 싶어요?"

여자는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뒤로 살짝 뺴냈다. 그러자 어이가 없나는 표정을 짓는 남자, 그리고는

"이거가지고 꼬시기는 무슨, 그 음란한 네 뇌나 청소좀 해라. 이 꼬맹아."

라고 말하고는 여자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꾹 밀었다.

"아 진짜 머리 나빠지게 왜그래요?"

남자의 행동에 여자가 머리를 감싸면서 성질을 냈다. 그런데 갑자기 표정이 변하는 남자, 그리고 잠시동안 여자의 얼굴을 주시했다.

"너 요즘들어서 애가 변했어."

"가, 갑자기 뭔 이상한 소리에요?"

남자의 말에 여자는 뭔가 찔리는 거라도 있는지 갑자기 표정이 어색해졌다. 남자는 그런 여자를 보면서 살짝 웃음이 새어나왔다.

"얼굴에 화장으로 떡칠하고 부담스럽게 얼굴만 들이대더니, 요즘들어서 확 바뀐거 같은데?"

"그건 그냥 양아치 짓거리 그만하려고 그런거죠."

"왜? 그냥 그럴리는 없어보이고...  좋아하는 애가 이런거 싫어하냐? 뭐 보나마나 야구하는건 당연할테고..."

남자는 별 생각없이 추리하면서 앞에 놓인 음료를 한모금 마셨다. 반면에 갑자기 말이 확 없어진 여자,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빨리 고백이나 해요. 요즘 언니 노리는 남자 있던거 같은데."

라고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먼저 나가버렸다.

*

"아니, 조금만 버리타면서 왜 이렇게 안오는거야..."

나는 덕아웃 벤치에 앉은채로 그라운드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타석에 서있는 사람은 7번타자 종빈이. 그리고 마운드 위에는 1회에 바뀐 그 투수가 여전히 지키고 있었다.

'여기서 종빈이가 출루하면 좋을텐데...'

나는 타석에 서있는 종빈이를 쳐다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확실히 선두타자가 출루하면 그 회 공격을 풀어가기가 매우 쉬워진다.

우선 주자가 있고, 아웃카운트는 하나도 없으니까 여러가지 작전을 지시하는데 부담도 덜하고 투수가 흔들릴수도 있었다.

하지만 희망은 희망일뿐, 내가 보기에 지금 이 투수는 아까의 그 투구가 우연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파앙-

"스트라이크 투!"

몸쪽으로 과감한 연속 승부로 순식간에 유리한 카운트를 가져가는 투수, 반면에 종빈이는 게속해서 움찔거릴뿐, 배트를 내밀지 못하고 있었다.

'확실히 그럴만도 하지. 사이드암에 100km를 찍는 공을 어디서 보겠어. 동네야군데.'

동네야구 수준에서 구속 100km가 아주 없는건 아니었다. 체격이 좋거나, 던지는 기술이 좀 있다면 100km는 찍을수 있었다. 그리고 내 구속도 100km에 약간 안되는 수준인지라 종빈이가 못칠리는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투수의 투구폼이 사이드암이라는 점이었다.

사이드암, 언더핸드, 동네야구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투구폼이었다. 사이드암은 가끔 던지는 사람이 있다고 쳐도 그정도 구속을 가진 경우는 공대에서 여자 신입생을 찾는 것만큼 희귀한 투구폼이었다.

각자 본다면 모를까, 그 두개가 합쳐지면서 지금까지는 본적 없던 공이 형성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종빈이가 고전하는것도 당연했다.

'하... 아무래도 당분간 점수 내는건 힘들어 보이네...'

나는 투수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

'아오, 진짜 이거 미치겠네.'

거의 본적 없었던 궤적에 빠른 구속,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다. 공의 궤적을 따라가면 타이밍이 늦고, 그렇다고 타이밍을 맞추면 공의 궤적에 배트가 가지를 않는다.

이렇게 되면 결과는 뻔하다 헛스윙 삼진, 그러면서 기습번트라도 대볼까 했지만, 내 발로 들어갈수 있을것 같진 않았다.

'아, 몰라. 그냥 오면 휘두르자.'

결국 난 복잡한 생각을 그만두고는 머리속을 비웠다. 그리고 투수를 쳐다보면서 오면 휘두른다는 단순한 생각만 하기 시작했다.

잠시뒤, 투수가 와인드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다음 왼발이 나오고, 이어서 옆으로 나오는 오른팔. 나는 수혁이의 공을 칠때와 같은 타이밍을 떠올리면서 배트를 휘둘렀다.

티잉-

'맞았다!'

배트가 휘둘러지는 순간, 빚맞은 소리가 들리면서 공이 위로 붕 떠오른채로 2루수 쪽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아... 아깝다..."

나는 위로 붕 뜬 공을 쳐다본채로 아쉬워하면서 1루쪽으로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어, 어...? 공이 안보여!"

그렇게 중간정도 왔을 즈음, 갑자기 2루수가 무슨 문제라도 있는지 양팔을 휘휘 저으면서 소리쳤다.

'어, 안보여?'

그 소리가 들린 순간 나는 저의 반사적으로 1루를 향해서 전력으로 질주했다. 그리고 1루 베이스에 발이 딱 닿는 순간

"으악!"

하는 소리와 함께 볼이 잔디발 위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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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화-D.라이더즈 VS 놀부 머니즈(5)201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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