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리 동네 야구팀-94화 (94/255)

우리 동네 야구팀-94화

"세이프!"

덕아웃에서 아쉬워하던 찰나, 갑자기 2루수가 소리를 지르더니 공이 잔디 위로 떨어지고 심판이 세이프를 외쳤다.

'뭐야?'

나는 순간 무슨 일인가 하면서 그라운드로 나가봤다. 그러자 잔디 위에 떨어진 공을 줍고있는 2루수가 보였다.

'아, 햇빛이...'

나는 하늘 위를 올려다보면서 왜 그런지 이해했다. 그리고 종빈이에게 보호구를 건네받기 위해서 1루로 걸어갔다.

"이야... 운 장난 아니었네."

1루 근처에 오자 나는 실소를 지으면서 보호구를 건네받았다.

"그러게, 마침 딱 햇빛이 비춰줘서 덕분에 살았지."

종빈이도 마차가지인지 실소를 지으면서 투수를 쳐다봤다.

"그나저나 짜놓은 작전은 있어? 하나 제대로 먹힌다면 투수 흔들기에는 딱인데."

"그런데 다음 타순이 영훈이랑 나라서..."

"젠장."

종빈이가 물어보자 나는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허탈한 표정으로 웃었다. 종빈이도 그런 내 기분을 알아서 그런지 나랑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냥 확 도루나 해버릴까?'

"해봐, 나쁘지 않네. 난 그럼 간다."

나는 종빈이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다시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그다음 보호구를 한쪽에 내려 놓고 그라운드로 시선을 돌리자 영훈이가 타석에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는 말없이 영훈이를 쳐다봤다.

영훈이는 타석에서 뭔가 위축되어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타격 폼은 평상시 그대로였지만, 몸이 너무 뻣뻣하게 굳어있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결과는 뻔하다. 무조건 아웃이야.'

나는 그런 영훈이를 보면서 그대로 결과를 단정지어 버렸다.

앞일은 그 누구도 알수 없다고는 하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 영훈이가 안타를 치거나 볼넷으로 출루를 할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나마 병살이라면 확률이 조금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자기 자신을 믿지 않으면 그 무엇을 해도 되지 않는다. 내가 투수를 하면서 가장 뼈저리게 느낀 감정중 하나였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수는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괜찮은 작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음.. 우선 얘는 버리고, 나도 버리면 투아웃, 삼진으로 물러날 바에는 차라리 번트라도 대는게...'

그렇게 생각해 보니까 떠오른 희생번트, 작전 중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작전이면서 이정도면 더블스틸이나 수비 시프트 같은 작전보다는 훨씬 성공할 확률이나 난이도도 낮은 편이었다.

이 작전이면 확실히 괜찮을것 같았다.

"타임!"

나는 타임을 외치고는 영훈이에게 뛰어나갔다. 그러자 영훈이도 타임을 말하고는 잠시 타석 밖으로 발을 빼냈다.

"영훈아, 잠깐만 일로 와봐."

나는 영훈이에게 가자마자 곧바로 머리를 내쪽으로 끌어당겼다. 영훈이는 일단 내 말에 그대로 잘 따라 주면서 머리를 내 쪽으로 당겨주었다.

"희생번트, 할수 있겠어?"

머리가 가까워지자 나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희생번트..."

영훈이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는지 그닥 놀란 눈치가 아니었다. 그리고 잠시동안 아무말도 없었다.

그리고 잠시뒤,

"할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볼게."

라고 말하면서 영훈이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못해도 뭐라 안할게. 타격은 너나 나나 거기서 거기잖아. 일단 살아나가."

나는 허탈하게 웃으면서 어깨를 툭툭 쳐주고는 다시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리에 앉자 영훈이가 다시 타석에 들어가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 할일이 확실하게 있어서인지, 아니면 작전이 내려와서인지 영훈이의 모습은 아까보단 덜 굳어 있었다.

'그나저나 종빈이한테 사인을 못보냈네. 뭐, 눈치껏 하겠지.'

나는 잠시 종빈이한테도 갈까 생각했지만, 종빈이라면 내 행동을 보고 희생번트를 계획하고 있다는걸 눈치챌만한 녀석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타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번트 작전이 내려왔지만 영훈이는 아직까지 타격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아마 기습번트라도 할 생각인것 같았다.

'기습번트... 많이 어려울텐데... 거기다가 내가 나갔을 즈음부터 번트 작전은 눈치채고 있었을테고'

나는 영훈이의 선택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조금 아닌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영훈이의 체격은 나이에 치고는 작은편이다. 그리고 생긴것부터 풀풀 풍겨오는 범생이의 아우라와 8번타순까지. 확실히 상대 타자가 쉽게 보고있을게 뻔했다.

그런 상황에서 기습번트를 한다는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숨겨진 실력이라도 있는것도 아니고, 불가능이었다.

'그냥 대놓고 해도 되는데...'

나는 여전히 똑같은 표정으로 영훈이를 쳐다봤다. 그리고 투수쪽으로 시선을 돌리려는 찰나,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나갔다.

슈욱- 파앙-

"스트라이크!"

심판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영훈이는 포수 미트에 박힌 공을 보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한손으로 배트 중심을 잡고는 번트 자세를 취했다.

'그래, 지금은 그래도 번트대기 힘들어.'

영훈이의 자세가 바뀌자 나는 그제서야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기습번트는 아무나 대는게 아니라고. 지금같이 투수가 압도적이면 더더욱 그렇고.'

"수혁아."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자 옆에서 호진이가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하면서 고개를 돌리자 종빈이가 헬멧을 내밀고 있었다.

"다음타석 넌데."

"아, 맞다."

나는 급하게 헬멧을 받아서 머리에 쓴 다음에 내 배트를 들고서 덕아웃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배트를 몇번 휘둘러보기 시작했다.

부웅- 부웅-

배트는 훈련할떄와 별 차이가 없는 정도로 잘 휘둘러졌다. 스피드도, 힘이 실리는 듯한 느낌도 전부다 평상시 만큼은 나오는것 같았다.

문제라면 다른건 다 좋아졌지만, 여전히 배트를 컨트롤하는 부분이랑 공을 컨텍하는 능력이 너무 떨어졌다.

투수라서 다른 애들보다 타격 연습을 덜한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너무 심하게 뒤처져있었다. 영훈이랑 비슷한 정도니까.

"하아... 진짜 타격 한번 더럽게 안되네..."

나는 한숨을 쉬면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는 잠시 눈을 감았다.

티잉-

눈을 감자 옆에서 공이 맞는 소리가 들려왔다.

"쳤나?"

그러면서 재빨리 눈을 뜨고 그라운드로 시선을 돌리니까 공이 파울라인을 따라서 천천히, 매우 천천히 굴러가고 있었다.

'애들은?'

시선을 돌리니까 영훈이랑 종빈이 둘다 각자 베이스를 향해서 전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영훈이는 천천히 뛰어도 괜찮긴 했지만, 지금 타구 코스를 보니까 전력으로 뛰는게 맞는것 같았다.

"야, 잡아?"

"잡지 말아봐!"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니까 투수와 1루수가 공 주변에서 잡을지 말지 서로 상의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흘러만 가는 시간, 그리고 영훈이의 발이 1루 베이스를 밟았을때, 거의 멈춰가던 공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세이프!"

잠시뒤, 심판의 세이프 판정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서 상황은 무사 1, 2루. 그리고 이번 타자는...

"나잖아?"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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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화-D.라이더즈 VS 놀부 머니즈(6)2015.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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