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리 동네 야구팀-95화 (95/255)

우리 동네 야구팀-95화

'아... 망했다'

나는 좌절하면서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멍하니 1루 베이스만 쳐다봤다.

사실 영훈이에게 번트를 지시해 놓고는 이런 결과가 나올줄은 예상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희생번트가 될줄 알았고, 그러면 나도 연속으로 희생번트를 대면서 2사 3루, 그리고 운선이가 어떻게든 타구를 만들어 내는게 작전이었다.

물론 그렇게 안될 확률이 더 높았지만, 어느정도 투구수를 늘리거나 어느정도 투수를 괴롭히는것 정도는 할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번트타구가 라인 옆에서 멈추는 경우는 프로에서도 드문 경우다. 때문에 설마 영훈이가 이렇게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줄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예상이 빗나가면서 나는 즉석에서 작전을 짜내고, 계획을 세우느라 내 뇌는 정신없이 돌아갔었다. 그러다보니 내 차례까지 아무도 잡히지 않고 바톤이 이어졌다.

한마디로 내 역할이 매우 중요한 상황이다.

'후우, 일단 진정하고...'

나는 심호흡을 하고서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할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선 현재 노아웃, 내가 희생번트를 대면 2, 3루. 충분히 투수에게는 압박이 될수가 있어. 그렇다면....'

"어이! 얼른 들어와!"

한참 생각을 하던 도중, 심판이 얼른 하자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나를 불렀다. 나는 마음속으로 어떻게 할지 정하고는 타석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타석에 들어가자 나를 쳐다보고 있는 투수가 보였다. 투수는 아직까지는 괜찮은건지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다는 건가... 완전 무시당하는구만'

나는 투수를 살펴보면서 양손으로 배트를 꽉 쥐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무조건 친다는 생각만 하기 시작했다.

'생각이 바뀌었어. 무조건 친다.'

*

부웅- 부우웅-

'뭐야, 치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너무 대놓고 풍기는데? 하위타순인걸 봐서 타격은 그닥 아닌거 같은데...'

수혁이 타석에서 배트를 위협적으로 붕붕 휘두르자 포수는 살짝 흠칙하며서 수혁을 쳐다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살짝 미소를 짓고는 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야, 유인구로 살살 꼬드겨보자. 일단 낮게 던져봐.'

'오케이.'

포수의 사인에 투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올라가는 왼다리, 그리고 팔이 휘둘러지는 순간, 수혁의 배트가 힘차게 돌아갔다.

부웅-

"스트라이크!"

공은 처음부터 낮게 날아가더니 그대로 포수의 미트 안으로 들어갔다. 누가봐도 배트를 휘두르지 않을만한 공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배트를 크게 휘두르면서 어이없이 스트라이크를 내주고 말았다.

'얼라? 그냥 막 휘두르네? 그렇다면 한번 더 해볼까...'

수혁의 반응에 포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똑같은 공을 요구했다.

투수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왼다리를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부우웅-

"스트라이크, 투!"

'이제 확실하네. 등신새끼.'

심판이 힘차게 외치면서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 포수는 그런 수혁을 쳐다보면서 확실하다는 생각과 함께 비웃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부웅- 부우웅-

수혁은 그런 포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건지 화가 난 사람처럼 인상을 찌푸리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배트를 붕붕 휘둘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침착하게 경기를 관찰하고 작전을 내던 그의 모습과는 전혀 정 반대였다.

막상 자신이 타석에 들어서니까 갑자기 머리가 백지처럼 텅 비워진걸까, 아까까지만 해도 작전을 요구하고 팀배팅을 하면서 어떻게든 점수를 짜내려는 모습이 아닌, 그저 치겠다는 욕심만이 잔뜩 들어간 스윙을 하고 있었다.

'이녀석 완전 등신이다. 이번에도 똑같은 공으로.'

'오케이.'

수혁이 간신히 진정하고 다시 자세를 잡자 포수가 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투수도 타자를 얕보는건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포수를 향해서 가볍게 공을 던졌다.

슈욱- 파앙-

"볼."

투수의 공은 밋밋하고 느리게 날아갔다. 그러다가 포수가 요구한 곳으로 잘 들어갔다.

그러나 이번에 수혁의 배트는 움직이지 않았다. 얼굴을 보니까  오히려 처음부터 움직일 생각이 없어보이는 표정이었다.

'뭐야?'

에상치 못한 반응에 포수는 살짝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다시 투수에게로 시선을 돌려서 똑같은 사인을 내밀었다.

슈욱- 파앙-

"볼."

이번에도 똑같이 들어간 공. 구속도 아까랑 거의 비슷했다. 하지만 수혁의 배트는 전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분명 수혁이 처음에 보여준 행동이면 이렇게 느려터진 공에는 스윙이 나오는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지금 삼진이 목적인 사람처럼 공을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이녀석... 뭐야?'

포수는 그런 수혁을 뭔가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리고 그냥 삼진으로 끝내자고 생각하면서 존 안으로 미트를 내밀었다.

그리고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스윽-

수혁의 오른손이 배트의 중심부분으로 이동하더니 그대로 몸이 숙여지면서 배트를 내밀었다.

*

티잉-

공이 제대로 맞았는지 알루미늄 배트에서 맑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난 곧바로  배트를 던져 버리고는 1루를 향해서 전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질주하면서 각 베이스를 바라보니까 종빈이는 알아서 3루로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영훈이는 잠시 머리가 하얘졌는지 1루와 2루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서있엇다.

"뛰어! 뛰어!"

나는 전력으로 달리면서 어정쩡하게 서있는 영훈이에게 소리쳤다. 영훈이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는지 2루를 향해서 전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다다다다- 타앗-

그렇게 열심히 달려서 1루 베이스를 밟고 나자 그제서야 발걸음이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뒤로 돌리면서 공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런데 공이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뭐야? 공은?"

나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내야를 둘러봤다. 그러자 멍하니 외야만 쳐다보고 있는 3루수가 보였다. 시선을 돌리니까 우익수가 급하게 앞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둘다 뛰어!"

나는 곧바로 애들에게 소리쳤다. 애들은 기뻐하다가 내말에 나를 쳐다봤

다. 그리고 그 옆에 우익수를 보더니 이내 다시 한번더 전력으로 베이스를 향해서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둘다 여유롭게 세이프, 그러면서 한점 더 달아날수가 있었다.

"됐다!"

"오케이!"

"나이스!"

종빈이가 홈으로 들어오자 덕아웃이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종빈이가 들어가자 다들 한번씩 손을 마주치면서 기뻐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런 덕아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호진이가 오자 보호구를 풀러서 건네줬다.

"야, 어떤 작전이었길래 이런 결과가 나온거야?"

호진이는 보호구를 받고는 궁금하다는듯이 물어봤다.

"너도 봤잔아. 기습번트."

"그냥 기습번트는 아닌거 같은데."

"거기에 어이없는 헛스윙 두방으로 상대한테 방심을 심어줘서 번트를 댄거고."

"오... 응용작전이네?"

내 대답에 호진이는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런 셈이지 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다음 애들한테 전할 작전은 없어?"

그러고 나자 호진이가 혹시 애들한테 지시할 작전은 없냐면서 나에게 물어봤다. 그 질문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일단 생각좀 하다가 떠오르면 그때 부를게. 아니면 네가 괜찮다 싶은 작전 있으면 내도 되고. 그럼 얼른 들어가봐."

"알겠어."

호진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운선이가 타석에 들어서고 심판이 다시 경기를 재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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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화-D.라이더즈 VS 놀부 머니즈(7)2015.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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