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101화
까앙-
공이 배트에 맞았는지 맑은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뒤로 돌려보니까 외야 가운데로 날아가는 타구, 하지만 운선이의 정면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덕분에 운선이는 제자리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은채로 간단히 잡을수가 있었다. 그러면서 쓰리아웃. 그러헥 1회초가 끝이 났다.
"후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덕아웃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덕아웃으로 들어가니까 감독님이 뭔가 기분이 나쁘신건지 굳은 표정으로 상대편 덕아웃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라운드로 시선을 돌려서 경기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지금 타석에 서있는 타자는 1번 운선이. 운선이는 침착한 표정으로 투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투수가 공을 던질때마다 움찔 거리면서 유인구들에 나오려는 배트를 참아내면서 볼넷을 만들었다.
그리고 2번타자 호진이, 호진이는 배트를 가볍게 휘둘러본 다음에 타석으로 들어갔다.
투수는 그런 호진이를 잠시 쳐다보다가 별 주저없이 공을 던졌다. 그리고 호진이도 그에 응수하듯이 배트를 휘둘렀다.
까앙-
공이 제대로 맞았는지 꽤나 큰 소리가 들려왔다. 타구는 순식간에 내야를 넘어서 외야로 날아갔다. 하지만 중견수가 천천히 움직이면서 위치를 잡고 가볍게 캐치, 중견수 뜬공으로 아웃이 되었다.
"아으... 아깝다"
"여기서 안타치면 처음부터 흔들수 있는건데..."
호진이가 아웃되자 몇몇 애들이 아까워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 겉으로 별 티는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 아까워했다.
그러면서 감독님을 슬쩍 쳐다봤다. 하지만 감독님은 표정의 변화없이 성빈이에게 작전을 지시하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수혁아, 잠시만 와봐"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신지 나를 부르셨다. 그리고 내가 오자 잠시 문을 열고 덕아웃 밖으로 나가더니 문을 닫아버렸다.
"무슨 일이에요?"
나는 문이 닫히자마자 먼저 물어봤다. 그러자 아무말없이 나를 빤히 쳐다보는 감독님. 표정을 보니까 뭔가 말하기를 망설이고 있는것 같았다.
"그게... 그러니까 말이다..."
감독님은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면서 천천히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방금, 호진이 타구는 그렇게까지 간단하게 잡힐 공은 아니었어. 충분히 안타가 될수 있었다는거지"
"네?"
내가 보기엔 그냥 평범한 뜬공처럼 보였는데?
"네가 잠시 딴데 신경쓰고 있을때, 저쪽 외야수들이 슬금슬금 이동하는게 내 눈에 보였거든"
"아..."
감독님의 말에 나는 놀라면서 딱히 별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는지 감독님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더 중요한건, 저쪽에서 뭔가를 숨기고 있는것 같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것 같아. 이런말 하면 안되지만... 불길해.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어"
"...예?"
감독님의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온몸이 굳어버렸다.
그저 그냥 나 혼자만의 기분이라고 대충 넘어가려고 했었는데, 감독님까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이정도면 나 혼자만의 느낌이 아니었다. 진짜로 뭔가 꿍꿍이가 있는거다.
그렇게 결론이 나자 내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버리면서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숨이 저절로 나오며서 엄청난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혹시 감독님은 그 꿍꿍이가 뭔지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감독님을 다시 쳐다보는 순간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그 꿍꿍이를 모르겠다는 거지..."
'아, X됐다'
속으로 욕 한마디밖에 나오지 않았다.
*
"후우... "
그렇게 얘기를 하고 돌아오자 어느새 이렇게까지 간건지 4번 산욱이가 타석에 서있었다.
현재 상황은 2사에 주자 2루. 주자의 발을 생각한다면 단타 하나로도 충분히 들어올수 있었다. 무조건 산욱이 쳐야만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전광판에 찍힌 카운트는 노볼 2스트라이크. 산욱에게 불리한 상황이었다. 연습경기때와는 투수에게 밀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산욱이를 조금 불안한 모습으로 쳐다보면서 투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투수는 산욱이와는 다르게 여유가 있는 표정이었다. 확실히 카운트가 유리하니까 그럴만도 했다.
'지금은 한번 끊어줘야 될거 같은데...'
보통 야구에서 코치나 감독이 타임을 외치고 올라가는 경우는 거의 투수에게만 그런다. 보통 타자들은 그냥 벤치에서 작전을 지시하면 끝이니까.
하지만 지금 산욱이를 보니까 완전히 기세에서 밀린듯한 모습이었다. 유인구에 낚인거든, 직구의 구위에 눌린거든 지금 표정에서부터 완전히 밀리고 있는게 보였다.
지금 상대는 꿍꿍이가 있다. 어떻게든 최대한 점수차를 벌려 놓아야만 한다.
"타임!"
'그렇지'
감독님도 나랑 같은 생각이셨는지 타임을 외치고는 나를 쳐다봤다.
"수혁아, 가서 산욱이좀 진정시키고 와봐"
"에?"
아니, 이건 무슨 소리래?
"얼른"
"...옙"
나는 무슨 생각인가 하면서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산욱이에게 걸어갔다.
산욱이는 무슨 일인간 하면서 잠시 타석 밖으로 나와서 내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산욱이랑 거리가 가까워지자 곧바로 어깨동무를 하고는 조용히 속삭이기 시작했다.
"야, 너 투수가 너한테 어떤 공으로 승부했어?"
"직구 두개. 공이 지난번보다 더 빨라보여"
"직구 두개..."
내 물음에 산욱이는 분하다는듯이 대답했다. 그나저나 직구 두개라... 나는 잠시 고개를 뒤로 돌려서 투수를 힐끔 쳐다봤다.
투수는 여전히 여유가 넘치고 있었다. 그리고 글러브 안에서 공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역시 이걸로 상대의 구종을 예상하는건 무리같고...'
나는 투수를 보면서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서 산욱이를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지금 투수는 직구로, 그러니까너를 구위로 누를 생각을 하고 있을거야. 이럴땐 밀리지 않도록 네 스윙을 해. 배트에 걸리면 무조건 넘어갈거야. 확실해"
"진짜? 믿을만해?"
"확실해. 그러니까 넌 네 스윙만 하면 되는거야"
나는 산욱이의 불안함을 떨쳐내주기 위해서 최대한 확신하는 말투로 대답했다.
"후... 그럼 너만 믿는다"
다행히 효과가 있었는지 산욱이의 표정이 아까보다는 한결 나아진것 같아보였다. 나는 산욱이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는 덕아웃으로 다시 들어갔다.
"뭐라고 말했냐?"
덕아웃으로 돌아오니까 감독님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물어봤다.
"그냥 직구 오니까 자기 스윙 하라고 했어요"
"그래? 근데 진짜로 직구 오는거 맞아?"
"사실은 저도 몰라요"
"그러다 변화구 오면 어쩔려고?"
내 대답에 감독님은 재밌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다시 나에게 물어봤다.
"우리팀에서 가장 타격훈련을 열심히 한애가 산욱이에요. 그리고 지난번에 저 투수에게서 홈런도 때려 냈었고요. 쟤는 타격쪽으론 확실히 재능이 있어보여요. 마음만 안정된다면 적어도 적시타는 나올거라고 보이는데요"
"와우... 대단한데?"
감독님은 아까의 재밌다는 반응을 넘어서 이제는 놀라고 있었다. 아마 내가 말을 그럴싸하게 늘어놓아서 그런건듯 싶었다.
사실 거기까진 생각하진 않았지만... 일단 이렇게 말하고 보니까 나 은근히 대단한 사람같은데?
나는 속으로 내 자신이 방금 한 말에 대해서 뿌듯해졌다. 그리고 감독님은 그런 내 말빨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지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까앙-
────────────────────────────────────
102화-골드스타즈 VS D.라이더즈(4)2015.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