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102화
까앙-
"뭐야?"
"쳤어?"
다른곳에 한눈을 팔다가 들려온 타격음. 그 소리에 우리 둘다 순식간에 고개가 돌아갔다.
공중을 쳐다보니까 타구가 외야 한가운데서 엄청나게 까마득한 높이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도저히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저, 저거... 홈런 아냐?"
"네... 그래 보이는데요..."
타구의 진행 속도는 느렸지만, 전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새 다다른 담장, 그리고 담장을 훌쩍 넘겨버렸다.
"호, 홈런!"
"우오오오오!"
"와아아!"
공이 담장을 넘기자 우리팀 덕아웃은 가스레인지처럼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산욱이는 자기도 이렇게 될줄은 몰랐는지 어벙벙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환호하면서 그라운드를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산욱이가 1, 2, 3루를 돌고 마지막 홈까지, 그렇게 다 찍고 나서 덕아웃으로 들어오자 애들은 단체로 산욱이에게 달려들어서 한대씩 치기 시작했다.
"나이스샷!"
"최고다!"
"캬캬캬!"
"나이스 4번타자!"
산욱이는 그런 애들의 환호를 즐기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애들도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면서 다시 그라운드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다들 아직 아까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건지 대부분 들뜬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도 역시 마찬가지. 그러면서 이대로라면 오늘도 이길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선민이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뜨겁게 달궈졌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
"후아..."
공수교대가 끝난 지금, 나는 마운드 위에 서있었다. 그리고 지감 막 타석으로 들어오늩 타자. 나는 타자를 뒤로 돌아서 애들을 한번 쳐다봤다.
'왠지 이번엔 조금 힘들거 같은데... 잘 막아줄수 있을까...?'
감독님의 말 때문인지 내 속마음은 아까보다 더 불안정한 상태였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던진다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게 뻔히 보였다.
하지만 이런 불길함을 떨쳐보려고 해도 떨쳐지지가 않는다. 그렇기에 그저 애들이 호수비를 보여주면서 잘 잡아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심판이 경기를 재개했다. 그러자 타자는 자세를 잡고는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후우... 그래, 어차피 매도 먼저 맞는게 나아. 깨지든 말든 부딪히자'
나는 속으로 각오를 하고는 종빈이가 보낸 사인을 확인했다.
이번 사인은 존 위쪽으로 던지는 커브였다. 하지만 오늘 경기에서, 아니 평상시에 잘 던지지 않는 코스였다.
종빈이랑 나랑 둘다 볼배합을 할때 높은 공을 그닥 선호하지는 않는다.
타자가 노리기도 쉬우며, 실투라도 나오는 라에는 곧바로 홈런이었다. 그래서 경기 중후반에 상대의 허를 찌를때나 사용하는게 전부였다.
그런데 초구부터 이렇게 높은 공을 요구했다. 뭔가가 이상했다.
'무슨 생각인거지...?'
나는 살짝 멍한 표정으로 종빈이를 쳐다봤다. 그러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려고 했지만, 종빈이가 먼저 가로저으면서 선수를 쳐버렸다. 무조건 이 공으로 가겠다는 의지였다.
'...이번엔 믿고 따라가보자'
결국 어쩔수없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 이런 상황에서 내가 밀어붙인적도 많았고, 이번에는 딱히 머리를 굴리기가 싫었다.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종빈이가 요구한 곳으로 찔러넣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까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변화에 최대한 신경을 쓰면서 던졌따.
까앙-
하지만 내가 공을 던진 순간, 타자의 배트가 돌아갔다. 그리고 곧바로 타격음이 들려오면서 내 옆으로 공이 빠르게 지나갔다.
'헉!'
내가 놀라면서 뒤를 돌아보자 중견수 운선이가 이미 굴러가는 공을 잡고 있었다. 선두타자에 초구부터 안타를 맞아버린 것이었다.
"하..."
나는 1루를 멍하니 쳐다봤다. 타자는 1루에서 코치로 보이는 사람에게 보호구를 벗어주고 있었다.
나는 그런 타자를 보면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리고 심장이 쿵쾅거리고 온몸이 조금씩 떨리면서 뭔가 붕 떠있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방금 공은 분명히 정상인것 같았다. 제대로 들어갔었다. 그리고 내가 주로 던지는 곳이 아니어서 충분히 먹힐수가 있었다.
그런데 안타를 맞았다. 그것도 선두타자에게 맞았다. 운이 좋아서 된거든, 처음부터 노리고 있었던거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내가 안타를 맞았고, 난 지금 심적으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인정하기 싫어도 지금 내 몸이 그걸 증명해주고 있었다.
아마 지금 내가 흔들리기 시작한 이상, 그리고 경기 처음부터 들었던 그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내가 무너지는건 이제 시간문제다.
그리고 더 큰 문제라면 우리 팀에는 나 말고 나올 투수가 없다.
어떻게든 내가 버텨야 하는게 가장 커다란 문제였다.
"하아아아..."
그러면서 이제는 숨쉬는 것마저 떨려오기 시작했다.
만약 이번 경기에서 진다면 본선에 진출하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아직 약간의 정보밖에 없는 레드 타이거즈와 붙어야 되는 경우가 되버린다.
그리고 만약 본선에 진출하기 못한다면 앞으로 쌍둥이가 야구를 할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인정할만한 성적이 예선탈락은 아닐테니까.
지금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 난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수십, 수백번이고 반복하면서 떠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긴장, 조금씩 흔들리는 내 멘탈은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더욱 불안해지고 있었다.
'무조건, 무조건 이겨야 되는데... 그런데 상대의 그 꿍꿍이가 뭔지를 모르겠어... 그걸 못알아내면 분명히 질거 같은데...'
아, 진짜 너무 떨려서 미치겠다.
*
"..."
뭔가 이상하다. 마운드 위에서 늘 굳건하게 팀을 지키고, 격려하고 끌어왔던 녀석인데. 오늘 뭔가가 이상하더니, 갑자기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것만 같다.
혹시 내가 덕아웃 밖에서 한 말 때문인가 싶었지만, 그건 아닌것 같았다. 내가 본 이녀석은 늘 상대를 압도하고 직구를 빵빵 꽃아재끼는 그런 투수였다.
늘 자신감이 넘치고, 자신의 주관이 확실하며, 호탕한 녀석이었다. 흡사 소년만화의 주인공 같은 녀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가 이상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혼자 스스로 진정하는 편인데 오늘은 자꾸만 뭔가 불안해보였다.
아무래도 내가 한번 올라가야만 될것 같았다. 그러면서 덕아웃 밖으로 뛰어나갔다.
"타임!"
내가 타임을 걸자 심판이 수락하면서 타자에게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일단 수혁이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마운드에 도착하니까 종빈이가 이어서 도착했다.
나는 수혁이를 살펴봤다. 수혁이는 눈에는 초점이 없었고, 숨을 쉬는 소리조차도 떨리고 있었다. 진정으로 긴장하고 있었다.
"얌마, 괜찮아?"
"..."
나는 일단 상태가 괜찮나 물어봤다. 그러자 수혁이는 아무말없이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니 그 누가 보더라도 지금 이녀석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금 투수를 바꿀수는 없었다. 비록 영훈이가 있긴 하지만, 그녀석은 아직 구속이 6, 70km 밖에 나오지 않을 뿐더러, 변화구가 많거나 제구가 좋은것도 아니었다.
그런 영훈이를 지금 올린다는건 수혁이를 바꾼것만 못한 결정이다.
그렇다면 일단 내가 해줄수 있는 일은 수혁이를 안정시키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수혁이를 쳐다봤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수혁아, 쫄지 마. 네 공이면 충분히 맞춰잡을수 있어. 고작 안타 하나에 쫄지 말고. 알겠지?"
나는 수혁이가 최대한 기운을 차릴수 있도록 격려를 해주었다. 그러자 조금은 긴장이 풀린건지 눈에 초점이 돌아온것 같았다.
나는 그제서야 안심을 하면서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긴장한채로 그라운드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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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화-골드스타즈 VS D.라이더즈(5)2015.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