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104화
'후우... 안돼, 쫄지 말자. 제발 쫄지 말자'
불길한 생각이 다시 올라오니까 내 몸이 다시금 긴장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선 그러면 안된다고 진정시켰지만, 몸이 머리와 전혀 따로 놀면서 이제는 부르르 떨리기까지 시작했다.
'이대로면 무조건 맞는다'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걸 느낀 나는 이대로면 분명히 맞아나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이 흐름을 끊어버려야 된다는 생각으로 종빈이에게 올라오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타임!"
종빈이는 내 제스처를 보더니 타임을 외치고는 마운드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나를 보자마자 표정이 확 굳어졌다.
"너... 지금 힘드냐?"
"보면 모르겠냐?"
나는 종빈이에게 짧게 대답했다.
그러자 종빈이는 뭔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내 뒤쪽, 그러니까 우익수 방향을 쳐다봤다.
설마 영훈이를 마운드 위로 올리겠다는 생각은 아닌 거겠지? 설마?
나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종빈이를 쳐다봤다. 그러자 한참을 바라보던 종빈이도 역시 그건 아닌것 같았는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다시 나를 쳐다봤다.
"역시... 그건 좀 아니다"
"만약 올린다고 했으면 우린 오늘 끝장날뻔했다"
"그건 인정"
내 대답에 종빈이가 웃으면서 맞장구쳤다. 그러면서 내 몸에 잔뜩 들어간 있던 긴장, 과도한 힘이 어느정도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하, 이렇게 잠시 다른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끄니까 조금은 안정되는것 같네.
"야, 다른 방법이 없다. 투심이라도 써보자"
종빈이는 잠시 뭔가 생각을 하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
"결정구로 쓰려고 했는데... 진짜 어쩔수 없긴 없네"
나는 종빈이의 말에 어쩔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 결정구로 쓸려고 했는데?"
종빈이의 말에 나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들었다.
"어, 그래? 그럼 결정구로 가는거?"
"오케, 그럼 나 내려간다"
그렇게 투심은 결정구로 쓰기로 결정하고서 종빈이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재개되는 경기. 종빈이는 미트를 땅바닥에 툭툭 치면서 낮은 커브를 요구했다.
'아까까지 타자들의 배트가 매우 공격적으로 나왔었지. 전 타석만 해도 조용하던 녀석들이 말야. 아마 팀 사인일 확률이 높을거야'
끄덕-
나는 종빈이의 사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커브 그립을 잡은 다음에 변화에 신경을 쓰면서 던졌다.
슈욱-
공은 내 손을 떠나서 조금 붕 뜬듯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멈추는것 같이 보였다가 뚝 떨어지면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던 도중,
티잉-
하는 소리와 함께 타자가 엉덩이를 뒤로 빼면서 공에 배트를 갖다맞췄다.
"저, 저걸?"
타자의 배트와 공이 닿는순간, 나는 입이 떡 벌어지면서 잠시동안 머리가 해하얗게 비워져버렸다. 그리고 내가 이미 정신을 차렸을때는
촤아악-
"세이프!"
"아자!"
"나이스샷!"
"선취득점이닷!"
타자가 2루에 안착해있었다.
*
'아니, 분명히 공은 잘 떨어졌는데, 어째서 그런 공을 2루타로 연결시킬수가 있냐고...'
이녀석들 생각보다 실력이 엄청 좋다. 수혁이의 거의 완벽한 커브를 잘 받아쳐서 2루타로 연결시키다니, 이건 동네야구급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로 지금 수혁이 정도의 실력이면 거의 탈 동네급 수준이다. 지금 사회인 2, 3부 리그에 가도 충분히 먹힐만한 실력이었다.
그런데 얘네들은 그런 수혁이의 공을 툭툭 치면서 받아내고 있었다. 이미 고교선수와 맞먹는 실력인것 같았다.
'지금까지 이런 실력을 숨겨두고서 경기를 한거야? 그러니까 수혁이가 여태까지 돌려세울만 했...'
그렇게 혼자 투덜거리듯이 중얼거리던 찰나, 갑자기 뭔가가 번뜩 하면서 내 머릿속을 스쳐갔다.
'자, 잠깐만. 설마 지금까지 숨겨왔던 꿍꿍이가...'
그러면서 주체하지 못하면서 벌어지는 내입, 그리고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
'후우... 일단 진정하자. 아직 이기고 있어...'
3번타자에게 2루타를 맞은 직후, 나는 빠르게 뛰는 내 심장을 어렵게 달래고 있었다. 그리고 심박수가 조금 가라앉은듯 하자 들어온 타자. 나는 진지한 눈빛으로 타자를 쳐다봤다.
타자가 들어오자 종빈이가 타자를 슬쩍 쳐다봤다. 그리고는 가랑이 사이로 손가락을 내밀면서 나에게 사인을 보냈다.
'바깥쪽 직구가자. 조금 빠져도 괜찮으니까'
'바깥쪽... 직구...'
종빈이의 사인에 나는 천천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일단 지금 상황으로선 나도 한템포 쉬어줘야 할것같긴 같았다.
게다가 방금 전 타석에서 나에게 안타를 쳤던 놈이니까 조심해야 될테고, 그렇다면 존 안에 아슬하게 걸치기보단 공 한두개 차이로 빼는게 좋을것 같았다.
끄덕-
'오케이, 가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타자를 잠시 쳐다봤다. 그리고 천천히 왼다리를 들어올렸다가 최대한 제구에 신경을 써서 던졌다.
슈욱-
'됐다!'
공이 손에서 떠나가는 순간, 제대로 긁힌 느낌이 들어왔다.
공이 밀려서 조금 밋밋하게 떠가나는 느낌이 아닌, 손가락으로 채는 느낌이 들면서, 미사일같이 슝 뻗어나가는 느낌이었다.
확실히 좋았다. 충분히 먹힐것 같은 공이었다.
하지만
까앙-
타자의 배트가 나오는 순간, 매우 커다랗고 맑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타구는 도저히 멈출줄을 모르고 쭉쭉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어, 어... 안돼..."
나는 날아가는 타구를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내 속마음을 말해버렸다. 그리고 속으로는 제발 넘어가지만 말라고 간절하게 빌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은 떨어질줄을 모르더니 이내 담장을 넘어갔고, 심판이 오른팔을 위로 들어올리고 검지손가락을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 머릿속은 하얗게, 아주 하얗게 비워졌다. 그리고
"호, 홈런..."
이라는 단 한마디의 말만이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그리고는 그저 저 멀리있는 담장만을 쳐다봤다.
그러다가 정신이 조금 돌아오자 단 한가지, 이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분명히 최선의 공을 던졌는데,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온걸까'
단지 이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홈으로 들어오는 타자를 보는 순간
챙그랑-
하고 내 멘탈이 깨진것처럼 겨우겨우 버티던 내 멘탈이 완전히 붕괴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붕괴된 멘탈로 던진 결과는 17대 2.
3회 콜드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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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화-짜악2015.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