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105화
시합이 끝나고 다음날(일요일) 수혁의 집.
가족들은 각자 볼일이 있어서 어디론가 나간 상황이었다.
그러나 수혁은 혼자 방구석에 쭈그린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씨발"
가만히 있던 입에서 욕 한마디가 새어나왔다. 그리고 곧이어 분노한듯한 거친 숨소리와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수혁은 자신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동시에 분노하고 원망하고 있었다.
내가 그때 왜 그랬는지, 이 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서, 도대체 왜 그랬는지. 여태까지 잘만 던지다가 갑자기 왜 그런건지.
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는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원망하고 있었다.
물론 그냥 3, 4점차로 지거나 접전에서 진다면 수혁이 이정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정도면 용식의 능력으로 충분히 사기를 끌어올릴수 있었을거다.
하지만 지난번 경기에서 자신이 혼자 와르르 무너저버렸다. 아니, 사실 그는 평상시처럼 굳건했지만, 상대들이 너무 강한 나머지 버티다가 무너져버린 것이었다.
문제는 그러면서 3회 15점차 콜드패, 다음 경기까지 회복할만한 충격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수혁의 스탯이 완벽하게 망가진거는 덤, 아니, 곱의 효과를 발휘했다. 아무리 팀이 중요해도 개인 성적도 중요하니까.
그래서 지금 수혁이 이렇게 자책하고, 분노하고, 원망하고 있는 것이었다.
*
미치겠다. 미치겠다. 정말로 미치겠다.
이제 남은 경기는 레드 타이거즈. 지금까지 한 경기 기록을 보면 절대로 쉬운 팀이 아니었다. 그리고 정보도, 직접 붙어본 경험도 얼마 없었다. 결과를 장담할수 없는 경기였다.
그러니까 어제 그 경기는 무조건 이겼었어야 했다. 그래서 내가 버티는게 더더욱 중요했다.
그런데, 내가 무너지면 이 팀은 끝장인데, 왜, 왜, 왜! 내가 거기서 무너져 버린건지.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고, 노력했고, 노력했는데, 그녀석들은 그런 내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실력을 숨기고 있다가 짓밟아버렸다.
잔인하다, 어떻게 상대를 가지고 놀수가 있냐고. 그리고 왜 나는 그걸 막지 못했냐고. 자꾸만 화가 치솟고, 원망만 하게 된다. 자꾸만 화가 난다.
거기다가 나 하나 때문에 쌍둥이들이 야구를 하지 못하게 될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저 불길한 기운에 혼자서 흔들리다가 한심하게 무너져버렸다.
그런 생각이 드니까 더이상 소리를 지르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나는 양손으로 내 머리를 감싸면서 소리질렀다.
"으아아아아아!"
*
뚜르르르르- 뚜르르르르-
"..."
[지금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수 없습...]
툭-
'이녀석... 충격이 너무 컷나보네...'
하, 수혁이 이녀석이 아무래도 충격이 너무 큰것 같다.
하긴, 어제 경기는 나에게도 엄청나게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다. 하지만 지금 대회는 현재진행형, 거기다가 멀리 내다볼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당장 다음 경기가 우리팀의 운명을 결정할지도 모르는 경기였다.
만약 진다고 하더라도 교장선생님은 계속 지원해줄것 같았지만,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없으면 지원하기 어려워 지실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쌍둥이가 야구를 하지 못하게 될거다. 그렇게 두명이 빠져나가면 아마 몇몇 애들도 우후죽순 빠져나갈 확률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야구에 미쳐있는 애들을 만났다. 야구를 직업으로 정하고 인생을 건 아이들이 아닌, 그저 야구를 좋아하고, 즐기면서 미치는 아이들이었다. 끝까지 같이 가고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다음 경기는 이겨야만 했다. 모든걸 걸어야만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D.라이더즈는 여태까지 이기는 경기만 해왔었다. 내가 상대편 감독으로 있던 면홍중과의 시합부터, 전교생을 상대할때도, 연습경기, 놀부 머니즈와의 예선전까지. 매번 점수차는 달랐지만 거의 압도적으로 이겨왔었다'
'그리고 어제 첫패, 그것도 3회 콜드패를 당했다. 그러면서 애들 모두다 충격이 크겠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수혁이 그자식이야. 중심을 잡고있던 걔가 무너지면 우리팀은 그냥 오합지졸이 되버린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해야될 일은 우선 수혁이를 처음으로 애들의 멘탈을 다시 원상태로 되돌리는거다'
그렇게 생각을 어느정도 정리하고 나니까 무슨 일을 해야될지 대충 감이 잡혔다. 그리고 지체할 시간도 없이 곧바로 걷옷을 걸치고는 집 밖으로 나갔다.
*
용식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할 즈음, 수혁의 집앞에는 예영이 서있었다.
지금 그녀의 얼굴은 매우 기분이 좋아보였다. 그리고 그 기분처럼 초인종을 가볍게 두분 누르고는 수혁을 기다렸다.
"..."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집안, 다시 한번 초인종을 눌러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상하네... 오늘 일요일이면 가족들이라도 나오는게 정상 아닌가?"
그녀는 열리지 않는 문만 바라보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 창문을 통해서 닫혀있는 문을 보고는 실망했다.
"다들 어디 나갔나... 부모님께도 확실히 눈도장 찍을려고 했는데. 아깝네"
그녀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입을 쭉 내밀었다. 그리고는 돌아서려는 찰나 문이 천천히 열리면서 그 사이로 어두운 수혁의 얼굴이 보였다.
"왜 왔어"
수혁은 땅바닥을 뚫고 들어갈 목소리로 물어봤다. 예영은 그런 수혁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면서 문을 활짝 열면서 급하게 달려왔다.
"너, 너 왜그래?"
예영은 수혁의 얼굴을 살피면서 놀라면서 걱정되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수혁은 그런 예영의 시선을 무시하면서 대충 얼버무렸다.
"별거 아냐"
하지만 예영은 더욱더 흥분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별거 아니긴 뭐가 아냐! 지금 얼굴이 완전 죽을상인데!"
"별거 아니라니까. 가족들 있어. 그러니까 가봐"
수혁은 그런 예영의 말을 무시하고는 문을 닫으려고 했다. 하지만 예영이 닫으려는 문을 막아버렸다.
"아니긴 뭐가 아냐. 그리고 너 지금 가족들 다 나간거 알고 있어"
"..."
"너... 무슨일 있는거야?"
"...신경꺼"
수혁은 대답을 회피하면서 몸을 뒤로 돌려버렸다. 그리고 문을 닫으려는 순간
"너... 어제 경기에서 무슨일 있었던거지?"
예영의 말에 순간 그의 손이 멈춰버렸다.
"혹시 경기에서 지기라도 한거야?"
"...가"
예영의 말에 순간 수혁의 오른손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영은 전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끈질기게 물어봤다.
"말해. 어제 져서 그런거냐고"
"...가라고"
수혁은 예영의 말을 한번더 무시했다. 그러자 갑자기 조용해진 예영, 수혁이 뒤를 돌아보자 예영이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3이닝 17실점. 완전히 무너졌네"
또렷하게 들리는 예영의 한마디. 그리고 그 한마디는 수혁에게 심장이 뚫리는듯한 고통을 주었다.
"..."
그 한마디로 수혁은 온몸이 거의 굳어버린것처럼 멈춰버렸다.
그리고 그런 수혁을 빤히 쳐다보는 예영. 그러다가 수혁을 비꼬듯이 한마디를 툭 내던졌다.
"고작 한번 무너졌다고 그렇게 죽을상을 하고..."
"네가 뭘 알아"
수혁이 예영의 말을 툭 끊고 예영을 노려봤다.
"네가 보기엔 그저 기록밖에 안 보이지?"
수혁이 죽일것같이 쳐다보자 예영은 살짝 주춤했다.
"뭐, 뭐가 더 있는데"
"나 때문에, 내가 무너져서, 다른 애들이 더이상 야구를 못하게 될수도 있는데..."
"..."
"너라면 죄책감이 안 들겠냐? 안그러겠냐고!"
수혁은 쌓인 죄책감을 여기서 다 풀어놓기라도 하듯이 크게, 더 크게 소리쳤다. 예영은 약간은 놀란 눈으로 수혁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짜악-
오른손으로 수혁의 왼쪽 뺨을 제대로 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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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화-감독의 역할2015.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