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106화
짜악-
그애의 손이 올라가고, 내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가게 된건 순식간이었다.
"..."
그러면서 저절러 약간 벌어진 입. 나는 지금 어이가 없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당황한 표정으로 그애를 쳐다봤다.
그애는 조금 흥분한건지 나를 쳐다보면서 약간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정신차려!"
라고 소리치면서 내가 살짝 움찔하게 만들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네가 더 정신 차려! 걔네들 계속 야구하도록 만들고 싶으면, 본선에 올라가고 싶으면 지금 정신 단단히 붙들어 매고 준비해도 모자랄판에, 지금 이러고 있는게 말이나 돼?"
"..."
그애가 쉼없이 말을 내뱉는 모습을 나는 그저 멍하니 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쳐다봤다.
지금 그애는 내 모습이 한심해 보여서 나무라기 보다는, 왠지 지금 내 상황에 감정이입이 되어서 약간 울컥해서 말하는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애는 아직 할말이 끝나지 않은것 같았다. 내 예상대로 그애는 잠시 부족한 숨을 쉬고는
"정신 차려 이 멍청한놈아!"
라고 힘껏 소리쳤다.
그리고 그 한마디는 내가 다시 정신을 되찾는데 충분했다.
*
다음날 방과후 운동장. 나는 여느때처럼 훈련을 하기 위해서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나와있었다.
그리고 한쪽에서 훈련 준비중인 애들, 다행이 애들 중에서 빠진 애들은 없어보였다.
그리고 조금 살펴보니까 상민이랑 운선이 얘네 둘은 이미 훌훌 털어버린건지 평상시처럼 실실 웃으면서 준비하고 있었다.
원래 성격이 엄청나게 낙천적이라니까, 그럴만도 했다.
그와중에 가장 다행인건 수혁이가 어제 다 털어버리기라도 한건지 평상시처럼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다. 아니, 평상시보다 더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다.
왠지 조금 무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축 쳐저있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자, 모두들 집합!"
그러는 사이 어느새 준비가 완료되었다. 나는 크게 외쳐서 애들을 불러모았다.
내가 부르자 애들이 내 앞으로 집합했다. 그리고 나는 평상시처럼 훈련을 시작했다. 그러자 애들은 이제 익숙해진건지 다들 알아서 로테이션을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훈련이 시작되고 나를 애들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수혁이를 주의깊게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때 충격이 조금은 가신것 같기는 한데...'
다행히 충격이 가신건지 수혁이는 열심히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하지만 평상시보다 훤씬 더 적극적으로, 그러니까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그냥 지금 순간에 모든 체력을 때려붓듯이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저 모습을 보니까 뭔가 무리하고 있는것 같단 말야...'
원래 수혁이의 훈련 스타일은 이렇지 않았다.
눈에 띄일 정도로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체력을 잘 분배하고, 그에 따라서 적당한 수준의 체력을 소비하면서 훈련하는 방식이었다. 처음부터 무식하게 훈련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이거 나아진거 맞나...? 내가 괜히 건들었다가 얘 멘탈만 흔드는거 아냐?'
그러면서 수혁이를 따로 불러서 위로라도 해주려던 내 생각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분명히 경기 종료 직후보단 나아진것 같았지만, 아직 뭔가가 불안해보였다.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있는것처럼 보였다.
'어떡하지...'
그러면서 어떻게 해야되나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고민 끝에 내린 결과는
'그래, 뭐 한번 상태 확인하는셈 치고 따로 불러보자'
불러서 한마디 해주는 쪽으로 결정이 났다.
그렇게 결정이나자 나는 곧바로 수혁이을 불렀다. 그리고 수혁이가 오자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말을 꺼냈다.
"너... 괜찮냐?"
처음부터 너무 직접적으로 말한걸까, 내 대답에 수혁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순간적으로 내가 잘못 말했나 하는 후회를 했다.
'아... 괜히 물어봤나...?'
그렇게 말을 거두려는 찰나, 수혁이의 대답이 들려왔다.
"...별수 있나요. 이미 지난거고. 다음 경기에서 어떻게든 이겨야겠죠. 그러면 올라갈수 있으니까요"
수혁이는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다행이다. 이정도로 말하는것을 보면 멘탈이 어느정도 수습은 된것 같아보였다.
"그래, 열심히 해서 꼭 가자. 가봐"
"넵"
나는 수혁이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생각보다 괜찮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까 말하는 것을 보니까 아직 뭔가 불안한게 남아있는것 같았다. 말하기는 했는데, 뭔가를 숨기고 있는 느낌이 들고 있었다.
'이녀석... 뭔가 숨기고 있는거 같은데...'
*
그날 훈련이 끝나고 저녁 8시경, 어느 주택가의 편의점 앞. 용식이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채로 캔맥주를 한모금 들이키면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얘는 집앞인데 왜 이렇게 안나와..."
용식은 혼자 궁시렁 거리면서 맥주 한모금을 더 들이키면서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리고 다시 고개가 원상태로 돌아오자 바로 눈앞에 예영이 서있었다.
"왔어?"
"또 그놈의 술이에요? 둘이 만나면 맨날 술만 푸겠네"
예영은 용식을 한심하다는듯이 쳐다보면서 궁시렁거렸다. 용식은 그런 예영에게 일단 앉으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그래서, 오늘도 정보 달라고 온거에요?"
예영은 용식의 제스처대로 자리에 앉고는 곧바로 물어봤다. 그러자 용식은 잠시 뭔가 생각이라도 하는건지 말이 없었다.
"아, 빨리좀 말해요. 안그래도 자다 나와서 더럽게 피곤하거든요?"
예영이 약간 화를 내면서 말하자 용식이 고개를 들면서 약간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선수 출신이다 보니까 여자랑 별로 만날 기회가 없었던 그로서는 갑작스런 그녀의 반응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있긴 한데..."
"뭔데요?"
"팀의 중심을 잡는 녀석의 멘탈이 지금 뭔가 아슬한데 뭔가를 숨기고 있는것 같아서 말야..."
용식은 어렵사리 말하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그런 용식을 말없이 쳐다보는 예영, 그리고 머릿속으로 어제 수혁의 모습이 떠올랐다.
'수혁이 얘기 같은데...'
"이대로 가도 괜찮을까?"
예영이 잠시 생각에 빠져있을 즈음, 용식이 그녀의 생각을 끊고 물어봤다.
"근데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요?"
"전력분석원이니까... 아무래도 뭔가 조금 알지 않을까 싶어서"
"내가 그런걸 어떻게 알아요?"
예영은 한번더 용식을 한심하게 쳐다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USB 하나를 테이블 위에 툭 올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런데 제가 보기엔... 그녀석 아마 잘 버틸수 있을 거에요. 단지 부담을 얼마나 덜어주느냐에 따라 달린거지"
"내가?"
예영의 말에 용식이 놀라면서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럼 누가 덜어줘요. 딴애들도 다 비슷한 상황일텐데. 아, 그건 그거고 잠시만 여기 앉아 있어봐요. 잠깐 집에 남은 자료좀 들고올게요"
에영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기집 방향으로 뛰어가버렸다.
그러면서 다시 혼자 남게 되어버린 용식. 그는 잠시 내려놓았던 캔맥주를 다시 집어들고 한모금씩 홀짝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벌써 다 마셨어?"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새 맥주가 바닥이 다 나버렸다.
용식은 아쉬워하면서 캔을 테이블 위에 다시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후... 부담을 덜어줘라... 그 부담감의 이유를 모르겠는데 어쩌라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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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화-D.라이더즈 VS 레드 타이거즈(1)2015.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