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107화
"오늘은 이길수 있겠지?"
"글쎄, 전력을 보면 모르겠는데..."
"영훈아, 그딴소리 할거면 좀 닥쳐"
"쳇... 맨날 나만 닥치래"
며칠뒤, 우리는 마지막 예선전, 레드 타이거즈와 경기를 하기 위해서 이곳 산월야구장에 와 있었다.
애들은 지난번 콜드패의 충격에서 어느정도 벗어났는지 몸을 다 풀고나서 자기들끼리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하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지난번의 충격이 남아있는건지, 아니면 혹시 떨어질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인지, 대화 내용의 대부분이 오늘 경기에 대한 내용이었다.
"야, 야. 그딴 생각 그만하고 이긴다는 생각만 하자고. 말이 씨가된다 이자식들아"
"아, 감독님. 이것좀 풀어요. 아, 아!"
감독님도 나처럼 애들이아직 불안감이 남아있다고 생각하셨는지 최대한 웃어보이고 장난도 치면서 애들을 다독이고 계셨다.
'애들은 감독님이 잘 잡아주실거 같네. 다행이다'
나는 그런 감독님과 애들을 쳐다보면서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벤치에 앉은 다음에 몸을 풀고있는 상대 선수들을 쳐다봤다. 그러면서 속으로 오늘 경기에 대한 중요성을 반복하면서 이미지 메이킹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하는 경기야. 그리고 난 어떻게든 이기고 말거야. 만약 오늘 우리가 진다면 우리팀은 그냥 끝장이 나버린다'
확실히 오늘 경기는 이겨야 하는 경기였다. 만약 그럴리가 없겠지만, 오늘 경기에서 지게 된다면 앞으로 우리팀의 미래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교장의 지원이 문제냐하면, 그건 아니었다. 내가 본 교장의 성격상 지원은 계속 들어올것 같았다.
애초에 아무런 조건도 없이 지원해 주려고 했었으니까, 내가 본 교장의 성격상 지원은 계속 들어올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만약 오늘 이 경기에서 진다면, 우리는 앞으로 대회는 커녕, 시합을 할 팀도 구하기 힘들어진다.
우리 주변에 야구팀은 우리팀이 유일한 상황이다. 상대할 팀이 이 주변에는 없고, 멀리 가야되며, 정식 야구부랑 붙을수는 없으니까 수준이 맞는 팀을 찾는건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학교의 정식 야구부도 아닌, 그냥 동네 야구팀이 나갈수 있는 대회는 거의 없다. 그건 내가 처음 팀을 만들었을때 가장 고생한 부분중 하나니까 잘 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번 경기에서 진다면 쌍둥이가 야구를 하지 못하게 된다.
걔네 아버지께서 만족하실만한 성적이 예선 탈락은 아닐테니까. 무조건 야구를 하지 못하게 될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남은 인원은 일곱명, 거기다가 원체 야구에 대한 열정이 덜했던 애들은 팀에서 빠질수도 있었다.
그러면 어디선가 인원을 보충해야 하는데, 우리 주변에 들어올만한 녀석들도 없다. 다들 학원에서 불잡혀 있을테니까. 그렇게 된다면 우리팀은 아마 헤체 수순을 밟게 될것이 뻔했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내가 이 팀을 이렇게까지 만드는데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이제와서 헤체될수는 없었다.
오늘 내가 어떻게든 막을 거...
"야, 긴장했어? 오늘따라 왜 이렇게 표정이 굳어있어?"
얼마나 생각을 한걸까, 고개를 돌려보니까 선민이가 내 옆에 서있었다.
내가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선민이는 뭔가 알수없는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멀리 떨어져있는 애들을 쳐다봤다.
"우리 팀 만들기 전에 야구하면 내가 어떻게 했는지 기억나냐?"
선민이는 잔잔하게, 그리고 덤덤하게 나에게 물어봤다.
"맨날 구석에서 폰하거나 다른 애들이랑 놀고... 쨌든 야구는 안했었지. 그냥 우리가 하니까 마지못해 따라와 있는 정도였던걸로 기억하는데. 근데 그건 왜 물어봐?"
나는 뭔가 하는 시선으로 선민이의 시선을 따라 상대편 덕아웃을 쳐다봤다.
"...근데 네가 팀을 만들고나서 시합도 해보고, 감독도 생기고, 지원 받으면서 훈련도 해보고, 그리고 이젠 대회도 나가보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어느새 나도 즐기고 있더라"
선민이는 잠시 길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을 이어갔다.
"너네랑 같이 훈련을 하고, 시합을 뛰다 보니까 전염이라도 된건지 야구의 맛을 알게 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즐기고 있더라고"
선민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동안 아무말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선민이를 말없이 지켜봤다.
"그래서 오늘 고맙다고. 이말좀 하고 싶었어. 어떻게 보면 마지막 경기가 될지도 모르는데. 그 전에 이말은 꼭 하고 싶었어"
"..."
나는 그런 선민이를 보면서 아무런 말도 할수가 없었다.
평상시라면, 평상시라면 왜 오늘이 마지막 경기냐면서, 왜 우리가 질거라고 생각하냐면서 충분히 이길수 있다고 웃으면서 한마디 했겠지만, 오늘은 무슨 이유인지 그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아니, 아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 어떤 때보다 굳게 다짐이 되고 있었다.
'오늘, 어떻게든 이겨서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게 만들거야.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같이 갈거야'
나는 그렇게 가짐하면서 그라운드로 천천히 걸어갔다.
*
그렇게 서로간의 인사를 하고 난 뒤, D.라이더즈의 선수들은 모두 덕아웃으로 돌아가고 1번타자, 운선만 다시 타석으로 나왔다.
"후우...'
운선은 숨을 길게 한번 내쉬고는 배트를 간결하게, 휘둘러봤다. 그리고 헬멧을 고쳐쓰면서 투수를 쳐다봤다.
'출루, 무조건 출루다'
운선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투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공을 던졌다.
슈욱- 파앙-
"볼"
몸쪽으로 붙어서 온 속구, 운선이 움찔거리면서 피할 정도의 공이었다.
'뭐야?'
운선은 순간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서 투수를 노려봤다. 혹시 일부러 맞추려고 한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공은 매우 정확히 왔었다.
하지만 투수는 제구가 잘 안된건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볼을 받고는 오른쪽 어깨를 빙빙 돌리면서 한번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제구가 안되는건가?'
운선은 일단 지켜보기로 하고서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투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번엔 약간의 텀을 주고는 공을 던졌다.
슈욱-
공은 아까와 비슷한 속도로 포수미트를 향해서 날아갔다.
하지만 뭔가 가운데로 몰린건지 점점 가면 갈수록 아래쪽에 있던 포수의 미트가 조금씩, 조금씩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까앙-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다다다다-
"세이프!"
운선이 가볍게 안타를 만들어냈다.
"나이스!"
운선은 1루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는 기뻐했다. 그리고 이어서 그라운드로 걸어나오는 매니저 웅철, 그리고는 운선에게 보호구를 넘겨받았다.
"시원했다 인마. 넌 그 병신짓만 안하면 딱 좋은데 말야"
"헤헹, 운썬이 기분 좋따!"
"아오, 괜히 말꺼냈네. 덕아웃이나 잘 살펴봐. 작전 나올지도 모르니까"
웅철은 운선을 한침하게 쳐다보면서 다시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어서 다음타자 선민, 그는 평온한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어디 작전이...'
선민은 타석에 한발을 걸치고 덕아웃을 쳐다봤다.
그러자 뭔가 손짓을 하면서 사인을 보내는 용식. 잠시뒤, 선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머지 한발도 타석 안으로 들였다.
'오케이, 충분히 할수 있겠네'
선민은 자세를 잡고는 잠시동안, 아주 잠시동안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걸렸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공이 오자
'번트, 번트다!'
오른손을 배트 중심으로 옮기고 허리를 구부리면서 배트를 존 안으로 내밀었다.
티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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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화-D.라이더즈 VS 레드 타이거즈(2)2015.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