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리 동네 야구팀-117화 (117/255)

우리 동네 야구팀-117화

힘겹게 3회말이 끝나고 4회초, 수혁은 덕아웃으로 돌아와서 붕괴된 멘탈을 다시 추스르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모두들 수혁의 상태를 아는지라 아무도 건들지 않고 잠시 쉬고 있었다.

그와중에 배트를 들고서 타석으로 걸어나가는 산욱, 타석 근처에서 몇번 배트를 휘둘러 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이 타자... 아까 바깥쪽 공을 담장 근처까지 당겨쳤다. 위험해, 조심해야된다'

포수는 산욱을 흘겨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건 투수도 마찬가지, 경계하는 눈빛으로 산욱을 쳐다봤다.

산욱은 타석에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투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마치 어떤 공이라도 오기만 하면 쳐버릴듯한 기세였다.

포수는 그런 산욱을 유심히 쳐다봤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바깥쪽 빠지는 슬라이더. 볼넷을 각오하고 상대해야될 녀석이다'

'음... 그래, 저녀석은 잡으려고 들어가면 되려 당할것 같아'

투수는 사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바로 변화에 신경을 쓰면서 전력으로 던졌다.

슈욱-

공은 투수의 손을 떠나 앞으로 쭉 뻗어나갔다. 그러다가 거의 다 오자 왼쪽으로휙 꺾이면서 포수의 미트 안으로 들어갔다.

"스트라이크!"

'음... 오늘 이정도는 되는건가?'

심판의 콜에 포수는 심판을 잠시 쳐다봤다. 그리고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투수를 쳐다봤다.

'내가 보기엔 살짝 빠진거 같은데... 오늘 심판은 이쪽 코스에는 후한것 같네. 오케이. 이걸로 공략은 쉬워졌다'

포수는 주먹으로 미트를 팡팡 두들기면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반면, 산욱은 뭔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투수를 쳐다봤다.

'아니, 뭐 이런 공을 던지는 투수가 다있지? 진짜 덕아웃에서 들은 그대로네. 각도만 바뀌면 완전히 수혁이 커브야'

산욱은 아까의 공과 수혁의 커브를 동시에 떠올렸다. 둘다 확실히 각도만 다를뿐, 엄청나게 움직이는 공들이었다.

평상시 산욱이 간간히 수혁을 상대할때, 그는 언제나 수혁의 커브에 당했었다.

스트라이크존을 마치 대각선으로 가르는듯한 커브, 직구는 노리면 어느정도 가능했지만, 커브는 아예 처음부터 커브만 생각하고 가도 땅볼이 될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완전히 똑같은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 산욱, 그래서인지 처음 타석에 들어올때보단 기세가 많이 약해져 있었다.

'씁... 이러면 슬라 아니면 직구 이 두가지중 하나를 선택해야 되는거잖아...'

산욱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잠시 타임을 외친뒤 타석 밖으로 나가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슬라... 직구... 다음공은 도대체 뭐가 올지 전혀 감이 안잡혀...'

산욱는 또다시 한숨을 내쉬면서 작게 신음소리만 내뱉었다. 지금 그에게 다음공을 에상하기 위한 아무런 단서도 없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물론 상대편 배터리는 볼넷을 각오하고 던질 생각이었지만, 산욱이 지금 그걸 알고 있을리가 없었다. 애초에 지금 상대가 자신을 상대하기 힘들어 한다는걸 모르고 있었다.

'혹시 작전이 있나...?'

그렇게 생각하던 산욱은, 혹시나 하면서 덕아웃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아무런 작전도 지시하지 않는 감독. 그대신 매니저 웅철이 덕아웃 밖으로 걸어나왔다.

'음, 뭐지...?'

산욱은 살짝 의아한 표정으로 웅철을 쳐다봤다. 그리고 웅철이 오자 곧바로 물어봤다.

"무슨 작전인데 네가 나와?"

"일단 귀좀 대봐"

웅철은 산욱의 머리를 자기쪽으로 살짝 당겼다. 그리고 얼굴이 가까워지자 귓속말로 작게 속삭였다.

"그냥 나온건데"

"뭐?"

산욱은 당황하면서 웅철을 쳐다봤다. 그러나 웅철은 아직 자기의 말이 다 끝나지 않았는지 하던 말을 계속했다.

'여튼, 네가 알아서 하래. 그럼 난 간다'

그러고는 그냥 휙 돌아가버리는 웅철, 산욱은 잠시동안 멍하니 돌아가는 웅철만 쳐다봤다.

그러다가 정신이 들자 그제서야 알수없는 의문과 함께 어이가 너무 없는 나머지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지금 뭐하자는거야...'

그러면서 옆으로 슬쩍 고개를 돌려서 투수를 쳐다봤다. 하지만 여전히 답이 나오지 않는 투수, 그래도 어떤 공을 노릴지는 결정해야 했다.

'하... 모르겠다. 그냥 슬라이더만 죽어라 노리다보면 하나쯤은 들어오겠지'

결국 산욱은 단순히 생각하고는 다시 타석 안으로 발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자세를 잡고서 투수를 노려봤다.

'슬라이더, 무조건 슬라이더만 노리자!'

*

한편, 포수는 타석으로 다시 돌아온 산욱을 말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아까 나온 살짝 덩치가 있는 남자를 떠올렸다.

'선두타자한테 작전을 말했는데 타자가 놀랐다. 그렇다면 실행하기 힘든 작전이거나, 아니면 아무 작전도 없는거, 둘중 하나밖에 없을텐데...'

포수는 살짝 굳은 표정을 지으면서 바닥을 쳐다봤다.

'하지만 여기는 동네야구, 힘든 작전을 굳이 냈을리는 없고, 그렇다면 아무 작전도 내지 않은거 같네'

그는 씨익 우스면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 아까보다 살짝 더 빠진 코스에 미트를 내밀었다.

'그럼 우리는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하던대로 하면 되는거네'

포수의 사인에 투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뒤에 신중하게, 더욱 신중하게 사인대로 공을 뿌렸다.

슈우욱-

공은 투수의 손을 떠나서 쭉 뻗어나갔다. 그리고 산욱도 배트를 바깥쪽으로 과감하게 휘둘렀다.

그러다가 공이 갑자기 옆으로 휘기 시작했다. 그러자 산욱의 입가에서 아주 희미한 미소가 생겼다.

'오케이, 맞췄다!'

그러면서 산욱은 더욱더 힘을 줘서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놀라는 기색이 없는 포수, 오히려 산욱처럼 입가에 미소가 걸려있었다.

이제 관건은 공이 배트에 맞느냐, 아니면 공의 휘는 각이 배트를 뛰어넘으냐, 그 두가지의 승부였다. 볼배합이나 구질 예측같은 수싸움이 아닌, 공이 얼마나 휘는지, 또 배트를 얼마나 뻗을수 있는지, 기술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 승자는

티잉-

산욱의 배트끝에 공이 간신히 걸리면서

"2루!"

슈욱- 파앙-

"아웃!"

2루수 땅볼로 아웃, 두 배터리의 승리였다.

"으아아!"

아웃이 확정된후, 산욱은 이를 꽉 문채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면서 터덜터덜 덕아웃으로 걸어갔다.

반면에 포수는 일어선채로 산욱처럼 한숨을 쉬고 있었다. 물론 산욱과는 전혀 다른 안도의 한숨이었다.

하지만 그도 완전히 방심할수는 없었다. 분명히 그는 아까보다 밖으로 더 빼면서 헛스윙을 유도했다. 그리고 그정도면 충분히 헛스윙이 될수 있었다.

그런데 산욱은 최대한 팔을 뻗어서 공을 배트에 맞춰냈다. 이번에는 다행히 잘 넘어갔지만, 되려 산욱의 위험성만 더 증명해준 결과가 나와버린 것이었다.

'어차피 걘 볼넷 각오하고 던지기로 했고, 이녀석 제구면 충분히 구워삶을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포수는 이내 머릿속에서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그리고 투수에게 말로 격려를 해주고는 다시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타석에는 5번타자 성빈이 들어왔다. 포수는 그런 성빈을 잠시 쳐다보더니 다시 투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까도 그랬고, 타석에서는 쌍둥이 같아보이는 녀석 둘이서 제일 간절한거 같단 말야...'

포수는 다시 성빈을 힐끔 쳐다봤다. 그리고 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일단 초구는 몸쪽 붙는 직구, 한번 가보자'

'알겠어'

투수는 사인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다리를 들어올리다가 앞으로 쭉 뻗었다. 이어서 뒤로 빠졌던 팔을 앞으로 끌어온다음 빠르게 휘둘렀다.

슈욱-

────────────────────────────────────

118화-D.라이더즈 VS 레드 타이거즈(12)2015.09.1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