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119화
"후우... 후우..."
그렇게 주자가 쌓이자 투수는 또다시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경기 초반처럼 막 호흡이 거칠어 진다거나 그런 반응은 없었지만, 그래도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 투수... 일부러 신경을 쓰게해서 이렇게 만들었어...'
포수는 2루에 있는 수혁을 살짝 노려봤다. 그리고 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대로면 우리가 실점하는건 한순간이 되버린다. 게다가 그 괴물순서도 다가오는데 주자를 쌓아놓을수는 없어'
그러면서 포수는 1루와 2루를 한번씩 쳐다봤다. 그리고는 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2루에 견제구'
'견제구?'
포수의 말에 투수는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살짝 지친 표정이 잠시동안 변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난 늘 하던대로 사인에 맞춰주자'
*
'분명히 이쯤에서 견제가 올법도 한데 말이지...'
한편, 수혁은 베이스에서 조금 떨어진채로 배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대회 규정상 도루는 본선에서부터 가능했다. 예선에서는 아직 도루를 잡아내서나 할 정도의 경기 수준이 그렇게 높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경기에서는 도루가 되지않았다. 그래도 리드폭을 넓혀서 투수가 계속 신경이 쓰이게 만드는 작전은 사용할수 있었다.
'그러다 보면 한번 잡으려고 들어오든, 대충 흐름을 끊든, 나를 위협하든 슬슬 견제구가 들어올 타이밍이라는건데...'
그러면서 수혁은 가운데에 뒀던 중심을 베이스 쪽으로 살짝 기울였다. 그리고 거리를 약간 좁히려고 하는 순간, 투수가 갑자기 돌아서면서 근처에 있던 2루수에게 경제구를 던졌다.
슈욱-
"으앗!"
견제구가 날아오자 수혁은 재빨리 움직여서 먼저 베이스를 밟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심판의 세이프 제스처, 수혁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포수를 쳐다봤다.
'역시, 이럴줄 알았다니까'
그러면서 수혁은 아까보다 리드폭을 한발 정도를 줄였다. 보통 주자들이 한번 견제를 받으면 나오는 흔한 대처이기도 했지만, 지금 어차피 도루가 되지 않으니까 수혁으로서는 무작정 거리를 벌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결과였다.
'그나저나 저쪽 투수 견제가 생각보다 날카로운데...? 제구만 좋은게 아니었어...'
수혁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면서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배터리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
다시 타석, 지금 타석에는 2번타자 선민이 서있었다. 현재 카운트는 무사 1, 2루 보통 이럴때면 번트가 종종 나와서 그런지 야수들은 전진수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선민의 자세는 강공자세, 만약 여기서 강습 타구라도 나온다면 야수를 빠져나갈수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주자들은 모두다 빠른 주자들, 한명정도는 홈에 들어올만한 타구가 만들어질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수들은 전혀 그런거에 긴장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뭔가를 믿는건지, 아니면 아예 그런 생각을 할정도로 야구에 대해서 잘 아는게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긴장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감독님의 말씀에 따르면 제구는 최상급, 그렇다면 아예 한곳을 노려서 기다리는게 나을거야. 걸리면 무조건 친다!'
선민은 배트를 쥔 손에 힘을 주면서 공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투수는 좀처럼 공을 던지지 않고 시간을 끌고 있었다.
'언제쯤 오는거지...?'
선민은 던지지 않는 투수를 보면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집중이 잠시 흐트러진 순간, 투수가 공을 던졌다.
"으, 으앗!"
티잉-
갑자기 온 공에 선민은 급하게 배트를 내밀었다. 하지만 그래서 제대로 된 타구가 나올수는 없는법, 공은 투수의 글러브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투수는 곧바로 공을 꺼낸 다음에 재빨리 1루로 던졌다.
다행히 주자들은 타구를 파악하고는 그렇게까지 멀리 나간 상태는 아니었다. 슬라이딩을 할려면 충분히 살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변수가 일어나는게 야구, 1루로 돌아오려던 운선의 중심이 2루쪽으로 조금 치우쳐있던 탓에 역모션이 걸려버렸다.
그리고 바닥으로 엎어지면서 태그, 순식간에 병살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
"어, 어... 어?!"
갑작스러운 병살에 용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믿을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라운드만 멍하니 쳐다봤다.
'아니... 어떻게...'
용식은 두눈으로 똑똑히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 일이 믿기지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결과는 결과, 그리고 지금은 경기중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한숨 한번으로 다시 진정을 되찾았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냐...'
하지만 아까 당한 충격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는지 속으로 투덜거리듯이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계속 투덜거릴수는 없는법, 아직 2루에 주자가 남아있다. 수혁의 빠른 발이라면 안타 하나로도 충분히 안에 들어올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끝난건 아냐'
용식은 다시 타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호진을 쳐다봤다.
'산욱이면 충분히 칠수 있어. 문제는 호진이가 잘 연결해 줘야되는데...'
용식은 그러면서 쓰고 있던 모자를 고쳐썼다. 그리고 살짝 굳은 표정으로 호진을 쳐다봤다.
'아까 산욱이가 치는걸 보면, 이번에 충분히 큰게 한번 나올수가 있어. 그러니까 제발 어떻게든 이어만 줘라...'
한편, 타석에 있는 호진도 용식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평상시보다 배트를 더욱더 짧게 쥐고 있었다. 어떻게든 버티고, 버텨서 살아나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초구에 커트하려고 나간 배트가 그만 제대로 맞아버리면서
타앙- 터업-
"아웃!"
순식간에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나고 말았다.
*
그뒤로 경기는 수혁과 그 투수의 명품 투수전으로 물들어갔다. 수혁이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이닝을 마감하면 그 투수도 마찬가지로 깔끔하게 이닝을 정리했다.
그리고 수혁이 커브로 삼진을 잡아내면 그 투수는 슬라이더로 삼진을 잡아내는등, 두 투수간에 은근한 경쟁도 곳곳에서 나타났다.
하지만 그 둘이 이닝을 거치는동안 투구수는 전혀 달랐다.
수혁은 땅볼, 뜬공 위주로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는 한편, 그 투수는 타자들이 나갈 생각이 없는건지 계속 끈질기게 늘어지고 버틴것 때문에 6회가 종료되었을 즈음엔 이미 한계투구수가 넘어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대편 덕아웃에서 당황한 기색이 없는건, 다른 투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수혁을 제외하면 투수가 없는 D.라이더즈의 용식이 수혁을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7회초, 선두타자로 수혁이 타석에 들어선 상태. 그는 배트를 짧게 휘둘러본 다음에 자세를 잡았다.
'나 다음은 상위타선, 이번에 역전하지 못하면 힘들어진다. 무조건 살아서 나가야해'
그러면서 수혁은 이를 꽉 물었다. 그리고 공이 오면 다 쳐버릴듯한 기세로 투수를 노려봤다.
포수는 잠시동안 수혁을 쳐다봤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고는 잠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 타자... 앞에 타자만큼이나 타격실력은 별로다. 하지만 번트를 잘대고, 발이 빨라. 전진수비로 가면 되겠다'
작전이 결정되자 포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손짓으로 야수들에게 사인을 보내자 모든 야수들이 앞으로 와서 자리를 잡았다.
'문제는 이 타자가 머리가 좋다는건데...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머리를 굴려봤자 할만한 작전은 없지. 충분히 잡고도 남는다'
포수는 다시 쪼그려 앉으면서 잠시 수혁을 쳐다봤다. 그리고 가랑이 사이로 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끄덕-
투수는 사인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텀을 두었다가 가볍게 공을 던졌다.
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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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화-D.라이더즈 VS 레드 타이거즈(14)2015.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