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120화
슈욱-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수혁의 배트가 느리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늦은 타이밍, 공이 맞더라도 배트가 밀리면서 좋은 타구가 나올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혁의 표정에서 뭔가 늦었다는 자책이나 당했다는 표정같은건 보이지 않았다. 단지 공에 집중하고만 있었다.
그러면서 배트가 반쯤 나왔을 즈음, 수혁은 한쪽 손을 놓고는 최대한 공을 쳐다보면서 그쪽으로 배트를 갖다댔다.
티잉-
공은 배트에 살짝 비껴맞고는 뒤쪽으로 높게 날아갔다. 포수가 따라가봤지만 이미 뒷그물에 부딪힌 타구, 파울이었다.
'뭐야, 애초에 칠 생각이 없는거야 뭐야?'
타구를 잡으러 갔던 포수는 뒤돌아서 수혁을 쳐다봤다. 그리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역시 이번에도 질기게 붙는건가...?'
포수는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수혁을 쳐다봤다. 그러나 이내 콧김을 세게 뿜으면서 주먹으로 미트를 팡팡 두들겼다.
'그러면 이것도 한번 건드릴수 있나 보자고!'
포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투수에게 슬라이더 사인을 보냈다.
'오케이'
투수는 사인을 확인한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수혁이 막 준비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공을 던졌다.
슈욱-
이번 공도 아까랑 별 차이없이 빠르게 뻗어갔다. 그리고 이번에도 늦게 나오기 시작하는 수혁의 배트, 그리고 한손을 놓으면서 공이 있는 곳으로 최대한 갖다댔다.
휘익-
하지만 한번은 속아도 두번 속는 바보는 없는법. 수혁이 손을 놓은순간, 공이 수혁의 바깥쪽으로 휘면서 배트랑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수혁은 놀라는 기색을 보이면서도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공은 미트 안으로 들어갔다.
파앙-
"스트라이크!"
심판이 힘있게 제스처를 취하면서 크게 외쳤다. 그러자 수혁은 고개를 한숨을 푹 내쉬면서 포수를 힐끔 쳐다봤다.
'이녀석... 역시 만만치 않아...'
그리고 그건 포수도 마찬가지, 그도 수혁을 힐끔 쳐다봤다.
'역시... 머리 굴러가는 수준이 보통이 아니야...'
그러다가 수혁이 타임을 외치고는 잠시 타석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포수도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힘든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저녀석... 이번에도 또 이런 방식으로 올거 같은데... 다시 한번더 기습번트라도 대봐? 슬라이더는 아까 대봐서 충분히 할수 있을것 같은데...'
'후... 솔직히 슬라이더는 배트를 피하기에 뭔가 좀 애매하지... 혹시나 해서 본선 올라가면 쓸려고 했던건데... 어쩔수 없네. 지금 써야겠다'
두 사람의 머리는 재빠르게, 그리고 최대한 정확하게 굴러갔다. 그리고 잠시뒤, 수혁이 다시 타석으로 돌아오면서 경기는 재개되었다.
자기 자리로 돌아온 둘의 표정은 결심을 한건지 망설임이라고는 전혀 찾아볼수가 없었다. 둘의 얼굴은 너무 똑같게도, 굳게 다문 입과 진지한 눈빛만이 있었다.
'이번에도 번트로 간다. 다만...'
'번트다. 그리고 우린 그걸 이용한다'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이 정한 방법으로 머릿속으로 짧게 중얼거렸다. 그다음 포수가 사인을 보내자 투수가 잠시 텀을 두고는 공을 던졌다.
슈욱-
투수의 손에서 떠난 공은 그대로 쭉 날아갔다. 그리고 상체가 숙여지면서 배트가 나오기 시작하는 수혁, 그러자 전진수비로 나와있던 야수들이 앞으로 달려나왔다.
'지금이다!'
휙-
수혁은 야수들이 달려나오는걸 보고는 곧바로 배트를 뒤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공은 미트 안으로 깔끔하게 들어갔지만 밖으로 빠진건지 심판의 콜은 들리지 않았다.
'젠장! 뺼줄은...'
아직은 유리한 카운트, 하지만 포수는 당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다행히 마스크 때문에 표정이 보이지 않은게 다행이었다.
공이 볼로 들어갔다고는 하지만, 이정도면 공 한개정도 뺴는걸리 칠수는 있다. 아직까지 유리한 볼카운트고, 아직 변한건 없었다.
하지만 포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신이 예상한 결과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의 입장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손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숨겨둔 구질을 꺼냈다. 혹시 골드 스타즈 같은 팀에서 누군가 오기라도 했다면 본선에서 불리해질수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혁이 자신의 작전에 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전을 역이용한다. 그런다면 앞으로 경기가 어려워 지는걸 뜻했다.
그래도 그전까지는 어느정도 해볼만 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이걸로 확실해졌다. 그의 감이 이 선수를 속이기는 매우 힘들거라고, 그의 감이 얘기하고 있었다.
'후우...'
포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투수를 쳐다봤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거, 힘으로 눌러잡자'
한편, 수혁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은채로 포수의 미트를 쳐다봤다.
'제구가 좋아서 변화구 한두개쯤은 더 있을거라고 예상했는데... 방금 싱커맞지...?'
한편, 아까 투수가 던진공은 싱커, 역회전성의 변화구였다. 투수가 던지는 손의 방향으로 빠지는 공인 슬라이더와는 변화의 방향이 전혀 반대쪽인 공이었다.
거기다가 위아래로도 움직이니까 매번 직구와 슬라이더만 봐왔던 D. 라이더즈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치명타가 될수 있었다.
'그렇다는건 앞으로 공략이 더 힘들어질거 같다는건데...'
수혁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면서 배트를 다시 부여잡았다. 그리고 다시 자세를 잡고는 투수를 노려봤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낀걸 보면 최대한 쓰지 않으려고 한거 같아. 자세한 사정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건 그나마 다행이네'
수혁은 깨물었던 입술을 풀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투수가 공을 던지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수혁의 예상과는 다르게 투수는 전혀 공을 던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아직 사인도받지 않은건지 여유롭게 모자를 고쳐쓰고 로진백을 만지는 등, 동네 마실나온 아저씨같은 행동들만 하고 있었다.
'하, 참내. 이젠 시간을 끄네...'
결국 보다못한 수혁이 타임을 외치면서 먼저 타석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스윙을 체크해보고는 다시 타석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일부러 계속 서있지는 않네. 그렇다면...'
포수는 다시 돌아온 수혁을 보면서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번엔 아까와는 다르게 곧바로 사인을 보냈다.
끄덕-
투수가 고개를 미세하게, 수혁에게 보이지 않을정도로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 그의 사인대로 이번엔 타이밍을 주지 않고 곧바로 공을 던졌다.
슈욱-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은 아까보다 빠르게, 더 빠르게 뻗어나갔다. 그리고 아까와 전혀 정반대의 타이밍에 늦게 나가는 수혁의 배트, 그리고 그 결과
티잉-
배트의 끝에 맞으면서 투수 앞으로 천천히 굴러갔다. 그리고 투수가 잡아서 1루에 여유롭게 송구. 아웃이었다.
"아... 썅..."
수혁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1루로 뛰던 발을 돌려서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오케이. 됐어!'
반면에 포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면서 수혁을 쳐다봤다. 뭔가 골치아픈 타자를 제압했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이번엔 서로 수싸움을 해서 자신이 이겼다는 점이 더욱더 기뻐하고 있었다.
그렇게 기뻐하다가 잠시뒤, 포수가 자기편 덕아웃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말없이 그라운드를 쳐다보고 있는 감독을 쳐다봤다.
'흠... 슬슬 바꿀때가 됐는데...'
그러자 포수의 예상대로 뭔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감독, 그리고 심판에게 공을 받아들고는 마운드 위로 올라갔다.
감독이 마운드 위로 올라가자 포수도 그에 맞춰서 마스크를 벗고 위로 올라갔다.
"성훈아, 수고했다. 이제 뒤는 애들에게 맡기자"
"네, 감독님"
"야, 너 오늘 공 좋았다. 뒤는 우리한테 맡겨!"
감독은 투수의 등을 치면서 마운드 아래로 내려보냈다. 그리고 레드 타이거즈의 덕아웃에서 한 선수가 글러브를 낀채로 마운드 위로 달려나왔다.
그 투수가 올라오자 감독은 조금만 버티자는 말을 하고는 연습 투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몇번 던지고 나자 감독은 투수에게 기운을 불어넣어주고는 다시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오는 1번타자 운선, 그는 살짝 굳은 얼굴을 하고서 타석에 들어왔다. 그리고 단 한가지 생각만 하기 시작했다.
'일단 초구를 노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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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화-D.라이더즈 VS 레드 타이거즈(15)2015.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