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121화
'일단 초구를 노려친다'
운선은 배트를 더욱더 세게 쥐었다. 그리고 침착하게 투수를 쳐다봤다. 평상시에 병신짓만 일삼는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침착한데...?'
한편, 포수는 운선을 쳐다보면서 초구를 결정하고 있었다. 그와중에 운선의 표정을 보고는 뭔가 알았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흔한 경우긴 한데, 초구를 노려칠 생각인가보네'
생각이 정리되자 포수는 오른쪽으로 살짝 움직였다. 그리고 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바깥쪽 직구... 오케이'
투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글러브 안에서 직구 그립을 쥐었다. 그리고 짧게 숨을 내쉰 다음에 빠르게 다리를 올렸다가 앞으로 쭉 뻗었다.
슈욱-
투수의 손에서 떠난 공은 막힘없이 쭉 날아갔다. 그리고 운선의 배트도 거침없이 돌아갔다.
까앙-
공이 배트에 맞으면서 반대편으로 멀리 날아갔다. 운선의 마른 몸에서 나오기 힘들만한 각도와 포물선을 드리면서 쭉 뻗어나갔다.
"마이볼, 마이볼!"
하지만 곧이어 우익수가 콜을 외쳤고, 잠시뒤에 안정적으로 타구를 잡아냈다.
"후우..."
운선이 아웃되자 투수는 숨을 크게 내쉬면서 모자를 고쳐썼다. 그런 그의 얼굴은 마치 뭔가 자신이 없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진짜...잘맞았는데..."
반면에 운선은 아쉬움을 속으로 삼키면서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타석으로 들어오는 선민, 그는 평상시보다 배트를 짧게 쥐고는 침착하게 심호흡을 했다.
한편, 포수도 길게 숨을 내쉬면서 타석으로 들어오는 선민을 쳐다봤다.
'유성이 이녀석 공으로 앞으로의 타자들을 막기는 힘들어. 무조건 피해를 최소화 시켜야 된다. 2점 이내로'
포수는 조금 전의 6회초를 떠올렸다. 처음부터 끈질기게 달라붙은 결과, 순식간에 무사 만루를 만든 그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병살유도가 성공해서 다행이었지. 만약 거기서 실패했으면... 어우, 상상하기도 싫다'
포수는 고개를 옆으로 저으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다시 투수에게로 시선을 돌려서 사인을 보냈다.
타석에는 선민이 자세를 잡고 공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경기 초반과는 다르게 많이 누그러진 표정, 포수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선민을 쳐다봤다.
'뭐지...? 지난번 타석만 해도 죽일듯이 덤벼들던 녀석이 왜이러지...?'
포수는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일단 하나 빼보자는 생각으로 미트를 바깥으로 내밀고 사인을 보냈다.
끄덕-
투수는 사인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파앙- 파앙-
"볼, 볼넷"
투수의 제구가 갑자기 흔들리면서 볼넷, 선민이 1루에 출루하게 되었다.
*
"호진아, 잠깐만 와봐"
한편, D.라이더즈의 덕아웃, 선민이 볼넷으로 출루하자 용식은 덕아웃으로 나가서 막 나가려던 호진을 붙잡았다.
"지금 투수는 이상하게도 제구가 안잡히고 있다. 가운데로 들어오는게 아니라면 무조건 참아. 알겠지?"
"가운데로 오는걸 알면 이미 늦을텐데요?"
"그건 네가 알아서 판단하고. 너 정도면 충분히 판단하고도 남을거야. 자, 가봐!"
용식은 호진의 엉덩이를 툭툭 쳐주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무표정으로 그라운드를 쳐다봤다.
'내 감이 말하고 있다. 지금 투수는 갑자기 제구가 안좋아졌어. 그리고 그건 일시적인게 아냐. 아마 우리가 비집고 들어갈수 있는 마지막 틈일거야. 무조건 잡아야 된다'
용식은 겉으로는 그 어느때보다 침착한 상황을 유지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매우 긴장한채로 제발 호진이 나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산욱이 파워면 충분해. 담장 너머로 날릴수 있다. 그러니까 제발 이번엔 좀 이어져라.. 이어져라... 제발 좀...'
그러면서 열심히 빌고있는 용식이었다.
*
한편, 타석 안으로 들어간 호진은 잠시배트를 내려놓고 장갑을 다시 끼고 있었다.
'후우... 자, 일단 한가운데로 들어오는지 아닌지는 난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다시 장갑을 다 끼운 다음에 배트를 집어들었다.
'하지만 감으로 실투 하나는 더럽게 잘잡았단 말야'
그리고 위협용으로 배트를 크게 두어번 휘둘렀다.
'그리고 펀치력이 좋다는 소리도 좀 들어봤고'
그제서야 제대로 자세를 잡고 투수를 노려봤다.
'그러니까 난 내 감을 믿고 가는거다'
한편, 호진이 자세를 잡자 투수가 그를 슬쩍 쳐다봤다. 그리고 잠시 투수를 쳐다봤다.
'지금 제구가 무너져있어. 어떻게든 다시 잡으려면 무리한 사인은 안된다. 그녀석이 올라올때까지 시간만 더 끌면 되는거야'
포수는 그러면서 존 한가운데로 미트를 내밀었다. 그리고 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직구, 존 안으로만 집어넣어'
끄덕-
투수는 사인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숨을 길게 내뱉은 다음에 천천히 왼다리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앞으로 뻗으면서 팔을 휘둘렀다.
슈욱-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나서 쭉 뻗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조금 불안하게 휘둘러진 팔. 그리고 그걸 느낀건지 투수의 표정도 그닥 자신이 없어보였다
부웅-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호진의 배트가 재빠르게 휘둘러져 나왔다. 그리고 그의 팔이 다 뻗어졌을때,
까앙-
하면서 좋은 소리가 울려퍼지더니 이내 반대편으로 쭉 날아갔다.
타구는 공중으로 쭉 뻗어갔다. 그리고 내야를 순식간에 거쳐서 외야로, 정확히 좌중간을 자르는 2루타를 만들었다.
그사이에 호진은 열심히 달려서 2루에 안착, 1루에 있던 선민도 3루에 무사히 들어갔다.
"아자!"
호진은 앙 주먹을 불끈 쥐면서 짧게 외쳤다. 그리고 그건 덕아웃도 마찬가지. 특히 용식이 제일 기뻐하고 있었다.
'그래, 그거지!'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그 누구보다 더욱더 흥분된채로 기뻐하고 있었다.
"후우..."
물론 겉으로는 한숨 한번 쉬는것으로 그쳤지만.
그렇게 D.라이더즈의 덕아웃이 달아오른 사이, 산욱은 혼자서 묵묵히 배트를 챙겨들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타석으로 걸어나갔다.
산욱은 타석 근처에서 배트를 볓번 휘둘러 보고는 타석 안으로 발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침착하면서, 강렬하게 투수를 쳐다봤다.
'나는 팀의 4번타자, 중심타자...'
산욱은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배트를 꽈악 쥐었다. 그리고 최대한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뱉었다.
'결국 최악의 상태로 이녀석까지...'
한편, 포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산욱을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투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투수는 지금 불안한건지 투구판에서 발을 뗀채로 멍하니 서있었다.
'여기서는 어떻게 해야돼... 어떻게 해야되는 거냐고...'
시간이 지날수록 포수의 인상이 점점 일그러졌다. 반면, 산욱은 여전히 침착하게 자신을 제어하면서 공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던지는거야...'
하지만 속으로는 그도 떨고 있었다.
경기 후반, 비기고 있는 상황, 몰려있는 주자들까지. 보통 이런 경우면 프로선수도 저절로 긴장되고 떨릴수밖에 없는데, 기껏해야 동네수준의 경기 몇번밖에 안해본 산욱이 떠는건 당연했다.
게다가 오늘 경기에서 지면 이 팀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해산이 되고 팀이 사라질수도 있었다.
'이제서야 슬슬 손맛 보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끝내기는 싫어!'
그러면서 산욱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투수에게 온 신경을 쏟아붇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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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화-D.라이더즈 VS 레드 타이거즈(16)2015.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