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122화
'그러고 보니까 1루가 비어있었지...?'
포수는 잠시 잊고있었던 사실을 떠올리면서 1루를 쳐다봤다. 확실히 지금 1루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근처에서 1루수만이 대기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아까처럼 그냥 볼넷 각오하고 승부하면 되겠네'
포수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반쯤 일어서서 중아에 미트를 내밀었다.
'바깥쪽으로. 빠져도 좋으니까 중심에만 넣지마'
끄덕-
사인을 확인한 투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던질 엄두가 나지 않는지 다시 한숨을 내쉬면서 마운드 밖으로 발을 빼냈다.
"타임"
결국 잠시 타음을 거는 산욱, 그리고 잠시 타석 밖으로 나가서 스윙을 점검했다.
그다음 점검이 끝나자 다시 타석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혹시 작전이라도 있나 하면서 덕아웃을 힐끔 쳐다봤다.
'어, 뭐야?'
작전이 없을거라고 예상한 산욱과는 달리, 덕아웃에선 감독이 그에게 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작전이 나오자 산욱은 살짝 인상을 쓰면서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살짝 흠칫하는 표정을 지어졌다.
'뭐야, 초구는 무조건 가운데로 오니까 무조건 크게 휘두르라고?'
그 순간,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던 산욱의 머리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왜 무조건 크게 휘두르라고 하는건지, 혹시 방금 투수가 가운데 사인을 받았는지,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그렇게 여러가지 생각이 오갔지만, 산욱으로서는 도저히 알수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보통 투수의 제구가 나빠지면 공이 바깥으로 빠지기 마련, 한가운데로 들어오는건 게임에서나 일어날법한 일이었다.
그런데 감독은 지금 게임에서 일어날법한 일이 일어날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이상했다.
'혹시 사인이 잘못나온 걸지도 몰라'
그러면서 산욱은 다시 덕아웃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이번엔 고개만 끄덕이는 감독, 그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결국 산욱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은채로 다시 배트를 잡았다. 그리고 자세를 잡은 다음에 투수를 노려봤다.
'아, 몰라. 그냥 오면 치고, 아니면 말고!'
그리고 결국 복잡해지던 머리를 깜끔하게 비워버렸다.
한편, 산욱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사이, 투수는 연거푸 한숨만 내쉬면서 산욱을 쳐다봤다.
'아 진짜... 제구가 안되...'
지금 투수는 다행히도 멘탈이 붕괴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평상시 잘 긴장하지 않는 그의 강심장 덕분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곳에 있었다. 불안한 제구, 그 불안한 제구가 지금 이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버텨줘야만 했다. 다음으로 나올 투수가 몸을 풀 시간을 벌어줘야 했다.
그래서 일단 선택한 방법은 시간끌기, 하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었다. 무한정으로 끌수는 없었다.
'이쯤 되면...'
"어이, 빨리 던져!"
'역시나'
심판의 목소리에 투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투구판으로 발을 옮겨서 타자를 쳐다봤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어차피 홈런 맞아도 점수 내주겠지'
투수는 고개를 살짝 저으면서 포수미트를 쳐다봤다. 그리고 천천히 왼다리를 들어올렸다가 앞으로 쭉 뻗으면서 팔을 힘차게 휘둘렀다.
그리고 그순간
부웅-
산욱의 배트가 거침없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까앙-
하고 맑은 소리가 나더니 공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면서 동시에 앞으로 쭉 뻗어가기 시작했다.
타구는 순식간에 내야를 지나서 외야 공중을 지나갔다. 하지만 외야수들의 발은 일제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모두들 마찬가지였다.
다들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이 아무런 말도, 움직임도 없이 그저 공중에 떠가는 공만 쳐다봤다.
타구는 처음 그대로의 속도를 거의 유지하면서 쉼없이 날아갔다. 그리고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할 즈음
담장을 넘어가면서 심판의 손가락이 돌아갔다.
홈런이 확정된 상황, 하지만 모두들 입을 벌린채로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단지 입을 벌린채로 공이 넘어간 담장만 쳐다보고 있었다.
"호, 홈런..."
산욱의 한마디가 무겁게 내려앉았던 정적을 깨트렸다. 그리고 1루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와아아아!"
"홈런!"
"홈런! 홈런이닷!"
"으자아아!"
D.라이더즈의 덕아웃에서 매우 커다란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산욱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자신도 기뻐하면서 그라운드를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1루, 2루, 그리고 3루까지 돌아서 마지막 홈까지. 덕아웃으로 돌아가자 용식을 제외함 모든 사람들이 단체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산욱의 헬멧, 등짝 등을 가볍게 떄려댔다.
"최고다!"
"나이스 홈런!"
"타이밍 지렸고!"
"유후~"
산욱은 애들의 반응에 웃으면서 용식을 쳐다봤다. 용식도 매우 기쁜건지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고 있었지만 얼굴에 미소를 잔뜩 머금은채로 고개를 강렬하게 끄덕였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기뻐만 할수는 없는법. 경기는 다시 재개되었고, 5번타자 성빈의 볼넷과 6번 종빈의 사구로 인해서 다시 득점권에 주자가 들어가게 되었다.
"허억... 허억..."
그러자 이제 투수도 지친건지 숨을 거칠게 몰아쉬기 시작했다. 땀이 이마를 타고 주르륵 내리면서 지금 많이 지쳤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중에도 눈빛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아까보다 더더욱 살아있었다.
한대 맞으면 체력이 회복되는 능력같이 지금 그는 맞으면 맞을수록 떨기는 커녕, 집중력이 더더욱 높아지고 있었다.
물론 제구가 안되서 볼넷, 사구로 보내는건 어쩔수 없었다.
'하... 더럽게 안풀리네'
포수는 속으로 한숨만 연거푸 내쉬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럴수는 없는법, 여기서 점수차가 더 벌어지면 힘들었다. 어떻게든 탈출구를 찾아야했다.
포수는 힘겨운 표정으로 덕아웃의 감독을 쳐다봤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 감독님. 아무래도 숨기려던거 다 꺼내야 될거 같은데요...'
끄덕-
포수의 시선을 이해라도 한건지 감독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고 이내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희미하게 가로저었다.
그러고 나자 상민이 타석에 들어섰다. 그다음 곧바로 자세를 잡고는 시선을 투수에게로 고정했다.
'지금 투수는 제구가 안되고 있어. 일단 기다리자, 기다리자...'
상민은 현재 투수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그리고 침착하게,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했다.
포수는 그런 상민을 슬쩍 쳐다봤다. 그리고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한가운데로 미트를 내밀었다.
'한가운데 직구, 일단 존 안에 무조건 넣어. 그래야 그걸 쓰든 말든 한다'
투수는 사인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숨을 천천히 내뱉은 다음에 곧바로 공을 던졌다.
슈욱-
투수의 팔이 자연스럽게 휘둘리면서 공이 앞으로 뻗어나갔다. 공의 궤적은 상당히 좋은편, 포수가 요구한대로 존 안으로 들어갈것 같았다.
공이 투수의 손에서 떠나는 순간, 상민의 배트도 빠르게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트가 다 나왔을 즈음, 공이 맑은 소리를 내면서 배트에 정확히 맞았다.
까앙-
그러면서 공은 시원하게 쭉쭉 뻗어나갔다. 하지만 타구가 떨어질 즈음, 그 앞에 중견수가 자리를 잡고 서있었다.
그리고 결과는
터업-
"아웃!"
당연히 아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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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화-D.라이더즈 VS 레드 타이거즈(17)2015.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