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125화
종빈은 쪼그려 앉은채로 자신에게 기합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침착하게 사인을 보냈다.
'몸쪽에 붙는 투심으로'
'...오케이'
수혁은 지친건지 잠시동안 가만히 있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타자를 슬쩍 쳐다봤다.
타자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은채로 수혁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미 자신이 안타를 치기라도 한것처럼 여유롭고, 자신있는 표정이었다.
'나한테 수싸움으로 밀려놓고도 저런 자심감을 보인다는건... 내 체력이 떨어졌다는 증거가 되겠네'
수혁은 타자를 쳐다보면서 실소를 지었다.
'근데 기분이 나쁠 정도로 만만하게 보네...?'
그러면서 수혁은 왼다리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리고 앞으로 쭉 내밀고 지면을 밟는순간, 허리가 돌아가면서 팔을 힘차게 휘둘렀다.
"하압!"
슈욱-
마지막으로 공을 채는 순간, 수혁의 입밖으로 기합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런 공은 수혁의 기합소리에서 에너지를 얻은건지 9회에 던진 공이라고는 생각되지 않게, 1회에 던진공 못지않게 힘있고 빠르게 뻗어나갔다.
파앙-
"스트라이크!"
그 결과, 공은 존 안으로 무사히 들어갔다. 그리고 종빈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얼굴이 환해졌다.
'오케이, 좋다!'
한편, 수혁을 공을 지켜보던 타자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수혁을 쳐다봤다.
'흠... 얼마 남지 않은 힘을 다 쥐어짜내고 있네?'
그래도 긴장하거나 그런 기색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배트를 더 세게 쥐었다.
'...하긴, 넌 아직 내 제대로 된 타격을 못봤었지. 그럴만도 하다'
그러면서 타자는 자세를 잡고 수혁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후우... 지금 저녀석의 작전이 떠오르지를 않는다...'
한편, 수혁은 타자를 살펴보면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지금 타석에 있는 타자는 그 머리가 좋은, 수싸움이 강했던 포수였다.
그래서 수혁은 그가 이번엔 무슨 생각인건지 밝혀내려고 했지만, 지친건지, 아니면 별 단서가 없어서인지 그닥 예상이 가지 않고 있었다.
'후우... 지금 여유로운걸 봐서는 뭔가가 있는거 같네...'
수혁은 연이어 심호흡을 하면서 지친 몸을 달래줬다. 그러면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하지만... 이번엔 네 수따위 안읽을거다'
그다음 모자를 고쳐쓰고 로진백을 주워서 몇번 툭툭 건드리고는 다시 내려놨다. 그리고 어꺠에 손가락을 대면서 사인을 보냈다.
'몸쪽 투심, 우리는 병살로 이끌어간다'
끄덕-
종빈은 사인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몸쪽으로 미트를 내밀었다. 그러자 수혁이 잠시 텀을 두고는 공을 뿌렸다.
슈욱-
수혁의 손을 떠난 공은 약간의 송진가루를 흩날리면서 쭉 뻗어나갔다.
부웅-
이번엔 배트도 같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뭔가를 노리는 스윙이 아닌, 맞추는게 목적인, 아니면 커트하는게 목적인 가벼운 스윙이 나오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공은 타자의 앞까지 다다랐다. 그리고 타자의 몸쪽으로 공 두개정도 꺾이면서 들어갔다.
하지만 타자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리고 처음 나왔던 스윙 궤적 그대로 배트를 휘둘렀다.
티잉-
공과 배트가 서로 부딪히는 순간, 배트와 타자의 손이 심하게 떨리면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타구는 유격수 호진의 키를 살짝 넘어갔다.
뒤늦게 좌익수 상민이 달려와서 공을 주웠지만, 이미 모든 주자는 각 베이스에서 세잎된 상황, 2사에 주자 1, 2루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충격 때문에 잠시 정신줄이 놓아져 버린걸까,
파앙- 파앙- 파앙- 파앙-
"볼, 볼넷!"
갑자기 제구가 흔들리면서 주자는 2사 만루 상태가 되어버렸다.
"안... 돼...."
그렇게 되자 이젠 수혁도 한계가 온건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러면서도 무조건 이겨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입으로는 무조건 막아야 된다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안돼... 수혁아... 제발....'
한편, 덕아웃의 용식은 가만히 팔짱을 낀채로 수혁을 간절히 바라봤다.
지금 그로서는 아무것도 할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마운드에 올라갈수도, 덕아웃에서 뭔가 외칠수도 없었다.
마운드는 이미 3회에 올라갔고, 덕아웃에서 수혁에게 뭔가 외친다는건 정보누출의 가능성도 있고, 무엇보다 지금 상대한테 '나 지금 불안해요' 라고 광고하는거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지금 용식이 할수 있는건 수혁을 믿으면서 가만히 서있는것 밖에는 할수 없었다.
"하... 제발... 수혁아..."
용식은 두 눈을 꽉 감으면서 작게, 희미하게, 그리고 쉼없이 '제발' 이라는 단어만 계속 중얼거렸다.
"헉... 허억..."
한편, 마운드 위에 서있는, 아니 겨우 버티고 있는 수혁의 이마에서 땀방울 하나가 흐르고 있었다.
평상시에 머리나 이마쪽에서 땀이 거의 나오지 않던 그였지만, 지금만큼긍 땀이 이마에서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스윽-
수혁은 그런 땀방울을 팔로 힘없이 닦아냈다. 그와중에도 거친 숨을 여전히 몰아쉬고 있었다.
지금 그로서는 이곳에 서있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체력적 부담은 둘쨰치고, 지금 이 상황의 무게감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안돼... 이대로는 안돼...'
그래도 정신줄은 아직 잡고있는건지 간신히 고개를 돌려서 종빈을 쳐다봤다. 그리고 그를 부르려는 찰나,
"타임!"
종빈이 타임을 외치고는 마운드 위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
"야, 너 왜그래? 정신차려!"
종빈은 마운드 위에 올라오자마자 수혁의 어깨를 붙잡고서 흔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혁은 아무런 반응없이 흔들릴 뿐이었다.
'안돼... 정신 차려야 되는데...'
지금 수혁의 머리는 여전히 정신 차리라면서 몸을 독촉하고 있었다. 하지만 몸은 여전히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종빈의 손에 그대로 이리저리 흔들릴 뿐이었다.
터업-
"야, 정신 차려! 앞으로 우리랑 야구한다면서! 안할거야? 안할거냐고!"
결국, 참다 못한건지 종빈이 미트를 끼지 않은 오른손으로 수혁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세차게 흔들면서 거의 울먹이듯이, 절규하듯이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그 소리침이 효과가 있었는지
'아, 맞다...'
순간적으로 수혁의 정신이 다시 돌아왔다.
────────────────────────────────────
126화-D.라이더즈 VS 레드 타이거즈(20)2015.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