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128화
"음?"
순간, 웅철은 놀라면서 돌리려던 오른손을 잠시 멈췄다. 그리고 집중해서 중계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느린 화면, 공은 확실히 빠져있었다.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확실히 구별이 갈만큼 볼이 빠져있었다.
[아~ 저 공이 스트라이크가 되나요? 조금 이상한데요?]
[음... 솔직히 제가 봐도 볼인것 같습니다만, 심판의 눈에는 아니게 보인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어서 중계진도 이건 아니라는 식의 대화가 들려왔다. 웅철은 그런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서 심판에게 항의하는 타자의 모습이 나왔다.
타자는 확실히 억울한지 심판에게 소리까지 치면서 따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심판은 그런 타자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경기를 진행해나갔다.
결국, 타자도 분을 삭히면서 다시 타석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씩씩 거리면서 투수를 노려봤다.
"뭐지...? 이거 뭔가 이상한데...?"
그 순간, 웅철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젠 리모컨을 손에서 놓은 다음에 경기를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다.
경기는 그 뒤로도 매우 편파적이게 판정이 되었다.
어느 팀에게는 매우 후하게 판정을 내렸다면, 다른 팀에게는 엄청 박하게, 프로경기보다도 훨씬 더 박하게 평가를 주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살짝 아슬한 공은 아예 볼로 판정하고 있었다.
'확실해, 뭔가, 뭔가 있어. 분명히 뭔가가 있어. 승부조작 같은게 개입된거 같은데...'
그러면서 웅철의 처음 뭔가 이상한 기분은 이젠 확신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머리에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직... 안끝났을수도 있는데...?"
그러면서 웅철의 몸이 컴퓨터로 향하기 시작했다.
*
고층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있는 강남의 어느 한 건물, 그곳의 어느 방에 한 남자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뭔가를 보고하려는지 서있는 다른 남성, 그의 손에는 서류철이 하나 들어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남자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앞에 서있는 남자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 남자는 말없이 서류철을 책상위로 내밀었다.
남자는 그 서류철을 받아서 펼쳐봤다. 그리고 조금전까지만 해도 귀찮았던 표정이 순식간에 싹 바뀌었다.
"설마했는데... 승부조작, 이거 진짜야?"
남자는 놀란 표정으로 앞에 남자를 쳐다봤다. 그러자 남자는 아직 남은게 있었는지 USB하나를 내밀었다.
"여기 수상하다는 사람들의 메일도 몇몇 있습니다. 나중에 필요할지도 몰라서 일단 담아놓긴 했습니다만"
"어, 알았네. 그럼 일단 그 팀은 탈락시키고, 사건은 가리지마. 오히려 당장 모든데다 빵빵 보도시켜! 이건 찬스다!"
남자는 크게 말하면서 다급하게 명령했다. 그러자 남자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타악-
그 남자가 나가자 남자는 꺼져있던 컴퓨터 전원을 켠 다음 즉시 인터넷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스포츠란을 휙휙기 뒤지면서 화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오케이, 마침 안풀리고 있었는데 이게 왠 떡이냐... 크크..."
남자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음에도 실실 웃으면서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확실히 그럴만한게, 처음엔 야심차게 시작한 일이지만,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았다. 반응이 너무 저조했다.
동네야구를 보러 멀리서 오는 사람이 있을까?
만약 온다고 쳐도 실책 퍼레이드와 제구도 제대로 안된 투수, 공도 못맞추는 타자들 때문에 눈만 버리게 될 확률이 높을거다.
그런데 그렇게 안풀리던 일에 풀릴만한 거리가 제공되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러다가 사건이 일어난 지금, 그의 머리는 재빨리 돌아가서 작전이 세워졌다.
우선 그 사실을 뻥뻥 퍼트리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자신이 대표로 나서서 사과하면서 사건을 중식시킨다.
그리고 탈락한 팀들을 가지고서 패자부활전을 치른다. 그리고 거기서 우승한 팀을 고르고 본선을 치르는 계획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선 사건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끈 다음에 패자부활전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본선으로 더욱더 달군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완벽한 계획이었다.
물롬 그 계획이 성공할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지금 거의 망한거나 다름없는 상태에서는 망해봐야 더 망할곳도 없었다.
그 남자는 지금 최후의 수를 던진 것이었다.
*
"..."
다음날 학교, 수혁은 그래도 학교에 나와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지 자기 자리에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은 아무런 생각도 없는, 그저 텅 빈 상태였다. 한동안 야구에 대해서만 올인했던 그였기 때문에 그것이 사라진 지금, 그의 머릿속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
"..."
상민과 산욱은 그런 수혁을 안쓰러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수혁에게 가서 왜 그러냐면서 한마디씩 해주고 있었지만 사정을 아는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위로도 해줄수가 없었다.
지금 수혁은 그 어떤 말을 해줘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그들이 해줄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가 조회 종이 치고, 잠시뒤, 담임이 교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자기 업무 서류를 교탁에 내려놓고는 애들을 한번 쓱 둘러봤다.
"오늘은 지각생이..."
드르륵-
담임이 지각생들을 세기 시작하는 순간, 교실문이 열리면서 지각생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짜기라도 한듯이 줄줄이 들어오는 학생들, 담임은 그런 애들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어이구, 오늘 또 지각여서? 아주그냥 하루도 안빠지고 열심히 지각을 해주시니 내가 아주 몸둘바를 모르겠네"
"..."
담임이 지각생들을 비꼬듯이 말하자 다들 고개만 숙인채로 자기 자리로 급하게 돌아갔다. 그리고는 담임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이내 평상시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와~우. 이젠 지각은 일상이다 이거야? 그럼 오늘은 지각생이 청소"
그러자 지각한 애들은 이미 각오한건지 한숨만 한번씩 내쉬고는 다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담임도 마찬가지, 그 말을 끝으로 이내 자신의 일에 집중하면서 아무말도 없었다.
"자, 그럼 다들 수업 열심히 해라"
"넵"
그리고 시간이 지나 조회가 끝나고 담임이 교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뒤이어서 우르르 나가시 시작하는 애들, 수혁도 그제서야 숙이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
하지만 일어나지 않고 그저 멍한 자세로 허공만 쳐다봤다. 그러다가 거의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꺼내들고는 패턴을 풀었다. 그리고 데이터를 켠 다음에 인터넷 포털사이트로 들어갔다.
매일 아침마다 프로야구의 중계를 살짝씩 확인했던 그의 습관이 그를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이끈 것이었다.
'뭐야, 왜 여기로...'
수혁은 순간 정신을 차리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다시 전원을 끄려는 순간
'어...?'
그의 표정이 갑자기 돌변하면서 구겨졌던 얼굴이 최대한, 아주 최대한 펴지기 시작했다.
*
"하... 미치겠다..."
용식의 자취방, 오늘따라 그이 한숨소리가 방안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오늘따라 용식은 매우 깔끔한채로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결연한 표정, 마치 뭔가 중대한 일을 앞둔 사람의 모습이었다.
정확히는 중대하긴 한데, 뭔가 나쁜 쪽 일인것 같은 느낌을 풍겨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 식탁에 놓인 종이봉투 하나, 종이봉투에는 [사표] 라는 글자가 쓰여있었다.
용식은 식탁 앞에 선채로 그 종이봉투를 가만히 쳐다봤다. 그러다가 그 봉투를 왼손으로 집었다.
"....가자"
그리고 굳은 표정으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
"저... 교장선생님, 손님 오셨는데요"
"...일단 들여요"
"넵..."
개원중 교장실, 손님이 왔다는 보고를 들은 교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리고는 마치 올게 왔다는 사람처럼 체념한 모습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끝이구만..."
잠시뒤, 교장실의 문이 다시 열리고 용식이 정장을 입은채로 천천히 걸어왔다. 그러자 갑자기 표정이 돌변하는 교장, 그리고 아까보다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유감독... 이게 지급 뭡니까?"
교장은 당환한 목소리로 용식을 쳐다봤다. 하지만 용식은 말없이 자리에 앉고는 교장이 앉기만을 기다렸다.
결국, 교장도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설마하는 표정으로 용식을 자꾸만 힐끔거렸다.
하지만 용식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가만히만 앉아있었다. 그러면서 흐르기 시작하는 정적, 그러다가 교장이 답답한건지 먼저 말을 꺼냈다.
"저기, 유감독..."
"..."
하지만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는 용식때문에 실패, 그러면서 교장실은 다시 정적에 빠져들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용식이 품 안에서 종이봉투 하나를 꺼내더니 앞에 딱 내려놓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교장은 뭔가 하면서 용식이 내놓은 종이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 순간,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저절로 목소리가 커져버렸다.
"아, 아니. 지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애초에 이 학교에 정식으로 들어온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만두는데 사표는 필요할것 같아서 가져왔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용식은 재차 사과하면서 머리를 푹 숙였다. 하지만 오히려 화를 내는 교장, 그리고 어떻게든 용식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봐요, 유용식감독. 왜그럽니까, 대회 탈락했다고 끝난건 아니지 않습니까. 애들을 더 모아서 보강하고고, 마땅한 상대는 내가, 내가 찾아줄게요. 그러니까 제발, 제발 사표만큼은... 우리는 유감독 아니면 모실 감독도 없단 말입니다..."
교장은 이제 설득하자 못해 말끝을 흐리면서 거의 매달리듯이, 간절한 목소리고 그에게 부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용식의 마음은 굳혀진건지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기색이 없었다. 그러다가 교장의 말이 다 끝난듯 하자
"죄송합니다. 더이상 이끌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덜컹-
하는 소리와 함꼐 교장실의 문이 급하게 열리더니
"아직!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수혁의 목소리가 교장실을 꽉 채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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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화-아직 끝나지 않았다(3)2015.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