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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야구팀-132화 (132/255)

우리 동네 야구팀-132화

다음날 오후. 평상시라면 운동장에서 훈련을 지도하고 있어야 하는 용식이었지만, 오늘은 유니폼이 아닌, 카페에서 한 여성과 마주본채로 앉아있었다.

그의 맞은편에 앉은 여자는 앞에 놓인 음료를 목구멍을 천천히 넘겼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는 도도한 눈빛으로 용식을 쳐다봤다.

"그래서, 지금 나보고 수익도 안나오는 그런 동네야구팀의 전력분석요원이 되어달라. 이거야?"

"응. 정 안된다면 본선 가기 전까지만 부탁할게"

"그건 왜? 혹시 뭐 예전처럼 뜯어 고치고 있어?"

"말 안해도 알고있네. 그러니까 우린 지금 네 정보가 더욱 필요한 상태지. 정 원한다면 보수도 줄수있어. 나름 짭짤할지도 몰라"

용식은 간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 여자를 쳐다봤다. 하지만 여자는 한쪽 입꼬리를 올린채로 도도하게 다리를 꼬았다.

"올해 정보 제공해주고 받은거 다 합하면 주말리그랑 왕중왕전까

지 해서... vip에 지인 할인 들어가도 100이 훌쩍 넘는데, 어떻게 만족시키려고?"

"...300. 300만원 줄게"

"뭐?!"

용식의 과감한 발언에 여자는 아까까지만 해도 미소를 짓고 있던 입이 떡 벌어졌다.

"미쳤어? 무슨 자신감으로 300씩이나 줘?"

"지금 그만큼 진지한거다. 이 꼬맹아"

그 여자가 놀라자 용식은 그제서야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검지손가락으로 여자의 이마를 꾹 눌렀다.

"아씨! 자꾸 꼬맹이라고 하지 말라니까!"

"반응이 이런데 내가 어떻게 안그러겠냐"

용식은 웃으면서 그 여자를 쳐다봤다. 그러다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유예영, 그래서 할거야 말거야"

그러자 그 여자, 아니 예영은 픽 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할게. 그리고 조만간 한번 찾아갈게"

"직접 보고 자료정리하게?"

"뭐, 그런것도 있고. 다른게 또 있어"

예영은 그러고선 얼마 남지 않은 음료를 전부 다 빨아들였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 먼저 가본다"

"언제 찾아올려고?"

"나 꼴릴때"

예영은 살짝 미소를 짓고는 뒤로 돌아서 먼저 가버렸다. 그리고 홀로 남은 용식, 그리고 나가는 예영을 빤히 쳐다봤다.

"얘 요즘들어서 많이 웃는걸 보니까...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는거 같은데..."

*

그뒤로 며칠뒤인 6월 27일 금요일, 오후 5시경 구의야구장. 그곳에는 D.라이더즈의 선수단이 모두 모인채로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오늘은 패자부활전 32강 경기, 즉, 패자부활전의 첫 경기였다. 그래서 그런지 모두들 앞으로 지면 끝이라는 생각 때문에 원래 활기차고, 즐거웠던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패자부활전은 3이닝 경기이기 때문에 길게 볼 여유도, 역전을 할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선취 득점이 더더욱 중요했다.

각자 자기 몸상태를 체크하고 가볍게 몸만 풀고는 다들 가만히 앉아서 자기 자신을 컨트롤 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

지금 아무런 말이 없는거는 용식도 마찬가지, 그러나 애들을 걱정하는것이 아니라 일단 자기 자신부터가 긴장하고 있었다. 선수들과 별 다를바가 없어보였다.

"자, 가자!"

"오늘 이기자!"

"파이팅! 우린 할수있다!"

하지만 상대편 덕아웃은 활기차다 못해 시끄러울정도로 소리가 나고 있었다. 그리고 감독과 선수들 모두가 웃는 얼굴, 마치 지금 이 게임을 이미 즐기기 시작한것 같았다.

'이거 너무 가라앉은거 아냐...?'

그 모습을 벤치에 앉은채로 가만히 지켜보던 웅철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면서 이건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일어난 순간,

"양팀 선수듣 모두 나와주세요!"

라는 심판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결국 가만히 있을수밖에 없었다.

*

'가자'

심판의 목소리가 들리자 수혁은 잠시 감고 있었던 눈을 떴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서 홈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홈플레이트 옆에 멈춰섰다.

잠시뒤, D.라이더즈의 선수들이 수혁의 옆에 한줄로 나란히 섰다. 그리고 그건 상대팀도 마찬가지. 그리고 심판의 말에 따라 서로 모자를 벗고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 난 다음에 상대편 선수들은 덕아웃으로, D.라이더즈 선수들은 글러브를 챙기고는 각자의 포지션으로 달려나갔다.

수혁도 역시 마운드 위로 천천히 걸어올랐다. 그리고 종빈이 홈에 오자 천천히, 이전의 경기들보다 신중하게 연습투구를 하기 시작했다.

'투구폼 교정 때문에 여태까지 치뤘던 경기들 중에서 내 상태가 가장 불안정한 상황이다. 제대로 집중하고 가자'

아직 투구폼을 바꾸기 시작한지 며칠 안되었기 때문에 오늘따라 공 하나하나에 평상시보다 더욱더 집중을 하게 되었다.

비록 다른 야수들이 투수 겸업을 하기 시작했지만, 그들도 수혁처럼 며칠 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만약 여기서 수혁이 무너지고 다른 투수가 올라간다면 팀이 휘청거릴수가 있었다. 그만큼 오늘은 중요했다. 여태까지 해온 어떤 경기들보다 더 중요했다.

'그래도 몇번 던져본적도 있고, 릴리스 포인트만 약간 올리는 거라서 적응하는 속도가 빠른게 그나마 다행이네...'

수혁은 그렇게 숨을 길게 내뱉었다. 그리고 심판에게 됐다는 신호를 보내자 심판이 타자에게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타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타석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배트를 단단히 쥔 다음에 타격 자세를 잡았다.

"플레이볼!"

경기가 시작되자 종빈이는 곧바로 수혁에게 사인을 보냈다. 오늘 경기의 첫공은 바깥쪽 직구, 처음부터 변화구로 가지말고 무난한게 가자는 의미였다.

'오케, 콜'

수혁은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늘 언제나처럼 왼다리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리고 양팔을 쭉 뻗으면서 왼다리를 앞으로 쭉 뻗은 다음에 이동한 중심을 따라서 팔을 힘차게 휘둘렀다.

슈욱-

공은 예전 투구폼보다 조금 더 높은 각도에서 수혁의 손을 떠나갔다. 그리고 힘차게 뻗어가다가 종빈이 요구한 곳으로 정확히 들어갔다.

파앙-

공이 들어가는 순간, 미트에서 시원한 소리가 들리면서 심판의 스트라이크 콜이 들어왔다. 그러면서 수혁의 입가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이 느낌, 오랜만이네'

'이 느낌, 간만에 느끼네'

그리고 그건 종빈도 마찬가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걸친채로 여전히 내밀고 있는 미트를 쳐다봤다.

'음... 쉽지는 않겠는데...'

한편, 타자는 공이 들어간 미트만 멍하니 쳐다봤다. 그러다가 배트를 잡은 손을 풀었다가 다시 잡고는 스윙을 체크하는건지 몇번 휘둘렀다.

"오케, 공 좋다!"

그 사이에 종빈은 공을 다시 던져주고는 오른손으로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리고는 곧바로 가랑이 사이로 손을 내밀고는 사인을 보냈다.

'이번에는 몸쪽 직구로'

'오케이'

수혁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깐 텀을 둔 다음에 아까와 똑같은 릴리스에서 공을 뿌렸다.

슈욱- 파앙-

"스트라이크!"

이번 공도 종빈이가 요구한 곳으로 안정적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초구때와 똑같이 가만히 있는 타자, 그저 공이 들어간 미트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음? 뭐지?'

타자의 심상치 않은 반응, 그러면서 수혁이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아까 자신의 공을 살짝 떠올려봤다.

'일단 초구는 기다렸다고 치자, 그런데 두번째 공까지 두고보는건 뭐지? 둘다 배트는 충분히 내밀만한 공인것 같았는데...?'

확실히 여태까지 수혁이 상대한 팀들이라면 이정도 공은 충분히 배트를 내밀어 볼만한 직구였다.

거기에 한반 더 나가서, 만약 D.라이더즈에 대한 정보수집을 했었다면 지금 수혁의 상태를 알고 적극적인 배팅을 했을수도 있었다.

'일단 한번만 더 보자'

수혁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종빈이 던져주는 공을 받았다. 그리고 무슨 꿍꿍이가 있는가 하면서 타자를 잠시동안 주시했다.

부웅- 부웅-

하지만 타자의 모습은 아까와 별반 없었다.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배트를 몇번 돌려보고는 다시 자세를 잡을 뿐이었다. 전혀 다른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냥 놓친건가...?'

결국 수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타자에 대한 관심을 접어버렸다. 그리고 종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번엔 커브 하나 떨어트려보자'

종빈은 그새 다시 쪼그려 앉아있었다. 그리고 수혁이 자신을 쳐다보자 곧바로 사인을 내보냈다.

'커브...'

수혁은 종빈의 사인을 확인했지만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자신의 오른쪽 어깨에 손을 가져다 대면서 직접 사인을 보냈다.

'아니, 한가운데 직구로 가보자'

'뭐? 미쳤어?'

수혁의 사인에 종빈이는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격하게 가로저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아까와 똑같은 사인을 내보냈다.

'커브 떨어트려'

'아니, 한번 확인해볼게 있어서 그래'

하지만 수혁도 뜻을 굽히지 않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서 오른손을 어꺠에 그대로 둔 채로 계속 사인을 보냈다.

'하아... 생각하는게 있겠지. 오케이'

그렇게 몇번의 실랑이를 반복한 결과, 결국 종빈은 어쩔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수혁이 요구한 한가운데로 미트를 내밀었다.

수혁은 그제서야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숨을 짧게 한번 내쉬었다. 그리고 잠깐 텀을 두었다가 힘을 조금 덜 준 상태로 가볍게 공을 던졌다.

슉-

공은 평상시보다 힘없이 그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조금 느리게 뻗어가다가

퍼엉-

"스트라이크, 아웃!"

미트 안으로 쑥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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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화-패자부활전 32강(2)2015.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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