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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야구팀-153화 (153/255)

우리 동네 야구팀-153화

"..."

그때 그애가 떠오르자 내 머릿속은 순간적으로 석고 반죽처럼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러면서 단 한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예전 걔도 이름이 유예영... 지금 얘 이름도 유예영... 설마...?'

그러면서 설마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더이상 예영의 그런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서 뒤돌아섰다. 그리고 그애를 그대로 버리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예영이 날 잡지 않았다. 나는 그 틈을 타서 어떻게든 그 혼란스러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더욱더 빨리 걸어서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밖으로 나오자 애들은 그새 어디로 간건지 보이지 않았다. 아직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서 근처에 보이는 벤치에 앉아서 그대로 힘없이 앉아버렸다.

"하아..."

그러자 거의 자동적으로 나오는 한숨, 이어서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어버렸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물어보듯이 중얼거렸다.

"왜 여태까지 그애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단 한번도 못했던거지...?"

분명히 그애, 예영은 처음봤을때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내가 알던 예영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얼굴은 화장으로 떡칠을 한 나머지, 완전히 밀가루 반죽 같아보였고, 눈주변은 마치 팬더처럼 매우 까만색이었으며, 입술은 피라도 바른건지 매우 새빨간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처음엔 거부감이 들었던건 사실이었다. 거기다가 얼굴을 갑자기 확 들이대서 더욱더 질색이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자기정도면 어떤 남자나 좋아할줄 알고 믿고 하는 거만한 행동에, 왠지 여러 남자들과 만나면서 나를 어장 안의 물고기로 만들려는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거기에 담배냄새가 베어있는 옷까지. 정말로 최악중에 최악이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까, 예영이 그 애일 거라는것을 생각하지 못했던것이...'

그뒤로 조금씩 양아치 같은 모습들이 사라지고, 화장도 점점 연해지다가 이제는 거의 기초 화장만 하거나 맨 얼굴로 나타날때도 매우 종종 생겼었다.

그리고 처음보다 생각도 많이 바뀐것 같았고, 나만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티가 나는덧 같은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의외의 모습들도 발견하면서 점차 처음 생각했던 것들과는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왜. 왜 예영이 그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까. 이름도 완전히 똑같은데...'

게다가 지금 둘의 얼굴을 떠올려보면, 얼굴도 많이 비슷했다. 그때와 지금이 별로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성격도 비슷했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막 들이대는 활발한 성격. 그때도, 지금도 첫 만남을 보면 똑같았다. 그애가 다짜고짜 나에게 들이댔었다.

'아! 그러고보니...'

혼자 진자하게 생각을 하던 도중, 내 머릿속에서 뭔가 한가지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 목걸이!'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아까 그 복도를 향해서, 예영과 단 둘이 남게된 곳을 향해서 뛰어가기 시작했다.

'혹시, 혹시... 혹시라도 모르니까...'

그렇게 뛰는 와중에도 내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스러웠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들 혹시 모르니까 한번 확인해 보는것 뿐이라면서 그대로 짓눌러 버렸다.

그리고 아까 예영과 남게 된 그 복도가 보이는 순간

"어디로... 간거야...?"

예영은 이미 가버린건지 복도에는 고요한 적막만이 남아있었다.

*

"후우..."

집에 돌아온뒤 내 방. 나는 내 침대에 누운채로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푹푹 나오는 한숨. 원래는 이럴때마다 한대씩 피곤 그랬지만, 수혁이가 싫어하는 눈치를 보여서 이미 끊은지 오래였다. 뭐, 원래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자주 피우지도 않았고.

그러면서 어떻게 해야 수혁이가 날 바라봐줄까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비록 수혁이는 날 차버렸지만, 나는 수혁이를 놓은 생각이 없었다.

내가 처음으로,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두번째로 좋아한 사람인데. 몇년만에 좋아하게 된 사람인데, 이대로 포기할수는 없었다.

'수혁이는 왜 나를 싫어할까...'

그러면서 그럴때마다 늘상 드는 생각, 왜 수혁이는 나를 싫어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 생각을 했을때는 확실히 수혁이가 싫어할만한 요소가 매우 수두룩했다. 그리고 그걸 하나씩 정리해 나갈때마다 그 요소들은 점점 줄어들어갔다.

그리고 이제와서는 수혁이가 싫어할만한 그런 요소들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더이상 수혁이가 싫어할만한 요소는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단 하나. 그 여자애. 썸타는것 같아보이던 그 여자애밖에 문제점은 없었다.

'그애.. 그애 때문에 지금 나는 안중에도 안들어 오는거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한숨이 나왔다. 그러면서 책상 서랍안에서 목걸이 하나를 꺼내와서 조심스레 들어봤다.

A라는 이니셜이 매달린 목걸이는 공중에서 조금씩 흔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이니셜을 쳐다보면서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꺼내보네... 진짜 추억이었는데..."

나는 그 목걸이를 힘없이 쳐다보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어느새 사람이랑 대화하듯이 속으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수혁아, 너랑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너랑 정반대 사람인거 알아?

나는 침대에 걸터앉은채로 그 목걸이를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속으로는 수혁이도 아마 이 목걸이를 보면서 나랑 대화를 할거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그러길 바라면서 천천히 대화를 이어나갔다.

'너는 참 덩치도 크고 푸근한 느낌에 친절했는데, 그애는 키는 조금 작은 편이고, 오히려 조금 마른 애야. 그런데 왠지 모르게 그애한테서 너의 느낌이 나고있더라. 그리고...'

나는 그애에게 수혁이를 비교하듯이 말하면서 입가에는 아주 조심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 다음에는 하고 싶은 얘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떨리는 손. 그리고

'수혁아, 너가 보기에는 그 수혁이는 어떤거 같...'

마지막 한마디를 하려는 순간

'...어?'

혹시 그때 그 수혁이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수혁이가, 그때의 수혁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엄마! 나 잠깐 어디좀 나갔다올게!"

"저녁은?"

"알아서 먹을게!"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챙길 물건만 챙긴 다음에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밖으로 나온 순간, 나는 두 다리를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면서 버스 정류장, 아니. 집 근처 큰길을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면서 머릿속은

'정말, 정말로, 네가 그 수혁이야? 그런거야?'

라는 답만 계속 되뇌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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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화-서로 알아채지 못했던 것(3)201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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