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155화
"널 좋아했....어"
'어... 어... 어...'
제발, 제발 나오지 않길 바랬던 그 말이 나온 순간, 내 몸은 잠시동안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리고 이내 다시 정신이 돌아오자 온몸이 떨리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든 거절해야 하는데, 만약, 만약에라도 거절한다면 예영이의 상처가 너무 클것 같았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입장에서 고백하는건데, 몇년을 좋아해오고, 간직했던 마음이었는데, 이번만큼은 싫다는 소리가 아니, 미안하다는 소리가 쉽게 나오지를 않았다.
하지만 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괴롭지만, 너무 괴롭지만 어떻게든 거절해야만 했다. 나는 속으로 몇번이고 말해야된다, 말해야 된다고 중얼거리면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
"예영아....."
"알아, 무슨 말하려는지"
예영은 내 말을 딱 잘라버리고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한탄하듯이 술술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냥 내 마음을 말한거야. 몇년동안 말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고 지내던거, 그거 그냥 털어놓고 싶었어"
"..."
"그런데 막상 털어놓으니까, 그것도 그렇게 좋은 기분은 아닌거 같네... 더군다가 너 대답을 알고 그러니까... 오히려 더 나빠진거 같고..."
"..."
예영은 거기까지 말하고나서 잠시 울컥했는지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슥 문질렀다. 그리고 한숨을 내쉰 다음에 아직 할말이 있었는지 계속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너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뭐라고 할수도 없는거 아니겠어...? 그렇지?"
"..."
"그래도... 그래도... 앞으로 나 모른체는 하지 말아줘. 친구 사이마저 끊기기는 싫어서 그래. 그래줄수 있...지?"
이제 체념하면서 마음을 정리하는 예영의 모습, 나는 그 모습을 차마 볼수가 없어서, 정확히는 너무 미안해서 두 눈을 꼭 감아버리고 싶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여줬다.
"그럼... 됐어. 나 가볼게"
내 대답에 예영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뒤로 돌아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햇다. 나는 그런 예영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계속 속으로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
*
"어, 어, 그래서... 올수 있다고?"
[어, 근데 언제 하는거야?]
"걱정마. 기말고사 끝나고 할거니까"
[오케이. 그럼 날짜 정해지면 연락줘]
뚝-
어느 한 평범한 10대 소녀의 방. 그녀는 한참 전부터 계속 전화를 돌리면서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으아... 힘들어 죽겠네..."
그렇게 전화만 돌린지 약 한시간, 여자는 침대 위에 벌러덩 누워버리면서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그러면서 손가락은 여전히 휴대폰을 슥슥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뭔가 망설이는건지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화면만 빤히 쳐다봤다.
"흐아... 얘는 멀리 가버려서 전화하기도 좀 그렇긴 하다만... 그래도 해야겠지"
그녀도 처음에는 이정도로 할 생각까지는 없었다. 지금까지 알고 지내는 애들도 몇몇 있었고, 애초에 몇년동안 못본 애들을 한번 보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하다보니까 약 30명을 다 불러모을 정도로 판이 커져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아예 멀리 이사를 가버린 애들까지 전부 다 끌어모으는 수준이 되었다.
뚜르르- 뚜르르-
전화를 걸자 울리기 시작하는 연결음, 그렇게 몇번을 울렸을까, 연결음이 끊기면서 약간 울적한 목소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음? 뭐야, 왜이래?'
갑자기 들려오는 울적한 목소리, 그러면서 그녀는 잠시 혹시 자신이 잘못 걸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번호를 확인해본 다음에 그 여자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저... 혹시 유예영씨 휴대폰 아닌가요...?"
[맞는데요...]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다행히 맞는 번호로 전화한듯 했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울적한 목소리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 예전에 중도 초등학교 3학년 1반에 그... 고유림. 기억나...?"
[중도 초등학교...?]
"응, 기억나...?"
여자는 설마 모르나 걱정하면서 예영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동안 이어진 정적, 그러다가
[미안, 나중에 전화해줘]
뚜-뚜-뚜-
기억 한건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전화가 끊어져 버렸다.
"...뭐지?"
갑작스럽게 끊어진 전화. 유림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휴대폰을 쳐다봤다. 그러면서 왜 그러는지 자기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기 시작했다.
"오늘 무슨 안좋은일 있었나..."
유림은 그러면서 휴대폰을 침대 위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멍하니 천장만 쳐다봤다.
"아 맞다. 안수혁... 걔 번호도 좀 물어볼걸. 걔 번호 없던데..."
유림은 혼자 중얼거리면서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화면으로 시선을 돌리자 휴대포 벨소리가 울리면서
[유예영]
이라는 글자가 유림의 눈에 들어왔다.
"어, 뭐야. 벌써 왔어?"
유림은 뭔가 하면서 휴대폰을 터치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귀쪽으로 가져다대자 아까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로 전화했어...?]
다행히 아까보다는 많이 가라앉고 침착해진 목소리. 긴 대화는 무리여도 짧은 대화는 가능할것만 같았다. 유림은 속으로 할말을 다시 생각해본 다음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 조만간 그때 애들끼리 다같이 모일려고 하는데, 올수 있나 물어보려고 했어"
유림은 최대한 침착하게, 그리고 핵심만을 담아서 곧이곧대로 전달했다. 그리고 살짝 불안한건지 몸을 일으킨채로 예영의 대답을 기다렸다.
[언제 하는데...?]
잠시뒤, 예영이 긍정의 반응을 보이면서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그 순간 유림은 됐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조금 들뜬 목소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말고사 끝나고 방학하기 전에 주말쯤에 모일거 같은데... 괜찮아?"
[...알았어. 나중에 날짜 정해지면 알려줘]
유림의 말이 끝나자 또다시 이어지는 정적. 그리고 몇초정도 이어지던 정적은 예영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럼 끊을...]
그리고 예영이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
"자, 잠깐만!"
유림이 다급하게 예영을 불렀다.
[...왜?]
유림이 다급하게 부르자 예영은 뭔가 하면서 유림에게 물어봤다. 유림은 아슬했다고 생각하면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 혹시 안수혁 번호 알아...?"
[응, 아는데... 필요해?]
"사실, 걔 번호가 없어서... 그래서 그떄 친했던 너라면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해서..."
[곧바로 문자로 보내줄게. 그럼 지금 기분이 좀 그래서... 미안]
뚜-뚜-뚜-
예영은 그렇게 말하고는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유림은 그런 휴대폰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혼자서 중얼거렸다.
"설마... 내가 기분 안좋은데 민폐끼친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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